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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이달의 추천 유물로‘명문 분청사기 대접’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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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이달의 추천 유물로‘명문 분청사기 대접’소개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8.05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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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분청사기 대접 /문화재청 유투브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시대 도자기인 <명문(銘文) 분청사기 대접>을 8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해 국립고궁박물관 2층 상설전시장 ’왕실의 생활실‘에서 소개하고,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로 온라인 공개했다.  

‘명문 분청사기 대접’은 15세기 제작된 것들로, 바탕에 도장을 찍어 홈을 파고 백색 흙을 채워 넣는 기법(인화, 印花)으로 무늬를 새겼다. 15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분청사기 대접은 그릇 겉면에 새겨진 글자가 특징적인 유물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 16세기까지 유행한 도자기로, 청자의 쇠퇴 과정에서 등장해 백자가 자리잡기 전까지 궁궐에서 주로 쓰였다. 

인화 /문화재청 유투브

분청사기의 표면은 촘촘하게 찍은 작은 원들로 채워져 있다. 이를 인화문이라 부르는데, 인화는 도장 등의 도구를 사용해 도자기 바탕에 무늬를 찍고 백색 흙을 채워넣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유물의 특징은 그릇 바깥에 '합천'과 '장흥고'란 글자를 새긴 것이다.

15세기에는 이처럼 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가 많이 목격되며, 다양한 글자에는 모두 새겨진 목적이 있다. 합천은 그릇이 제작된 지역을, 장흥고는 그릇이 사용된 관청을 가리키며 장흥고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마련하고 보급했던 관청이다. 분청사기에 적힌 합천장흥고는 이 그릇이 합천의 가마에서 궁궐에 납품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지역과 관청 이름이 새겨진 모습 /문화재청 유투브

도자기에 글자를 새긴 이유는 궁궐에서 쓰는 그릇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태종은 1417년, 명령을 내려 국가에 바치는 그릇에 관청의 이름을 새기게 했다. 그리고 관청 표시가 있는 그릇을 개인적으로 소지하다가 드러나면 처벌받도록 했다. 연회가 열릴 때마다 그릇이 자주 사라졌기 때문에 용기에 직접 이름을 새겨 도난을 방지했다. 지역 이름을 새긴 건 그릇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 초기 궁궐에서는 왕실이나 관청용 도자기를 전국 각지에서 받아 사용했는데 여러 지역에서 제작된 도자기의 질을 일일이 감독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분청사기에 제작 지역을 새겨 각 지역에서 품질을 책임지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이름과 관청이 새겨진 대접의 모습 /문화재청 유투브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분청사기들에 새겨진 내섬시, 인수부, 소격서 같은 명칭은 모두 조선시대 관청의 이름으로, 관청 명칭은 보통 군위, 의흥, 함안 같은 지역과 함께 새겨져 있다. 모두 경상도 지역으로, 분청사기에 경상도 지명이 많이 나타나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는 15세기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는데,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분청사기 대접도 글자가 있는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그릇들은 국가적으로 쓰이기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고 규격화된 모습을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추상적인 마감의 분청사기와는 다르지만 조선 초기 왕실이 관용 물품을 어떻게 공급하고 관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분청사기 인화문 합천장흥고명 대접’ 외에도 다양한 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들 10여 점을 함께 관람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 초기에 국가의 감독 아래 있었던 분청사기의 생산과 보급 상황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진행되며,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과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에서 국·영문 자막과 함께 해설영상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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