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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어 있는 유적지, 환상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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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어 있는 유적지, 환상열석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7.1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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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 유적지 /문화유산채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재인 고인돌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거석 문화'의 한 종류다. 거석 문화는 인간이 어떤 목적 의식을 갖고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구조물을 만들어 숭배의 상징이나 무덤으로 돌을 이용한 문화를 얘기한다. 세계의 거석 문화는 선사 시대의 기념물이나 무덤에서 주로 보이며, 돌을 이용한 구조물을 가리킬 때 우리나라의 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세계 거석 문화에서는 고인돌, 선돌, 열석, 환상열석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열석은 선돌을 한 줄이나 여러 줄이 평행으로 세워진 형태이며 환상열석은 선돌은 원형으로 배열한 형태로, 한 열 또는 이중 삼중으로 배열된 것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발견된 적이 없다가 2020년 춘천 가설 건축물 축조부지 내 유적발굴조사지에서 환상열석 유적지로 추정되는 흔적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기도 했다. 


스톤 헨지의 또다른 말, 환상열석

거석 문화는 공통적으로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다고 보며, 주로 큰 바다 인근에 분포하고 있어 해양 문화의 일부로 보는 측면도 있다. 풍작과 수확물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운 기념물, 부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 존경하는 지도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거석비 등이 있다. 자연의 여러 현상과 인간의 생사로 인해 만들어진 거석은 지역에 따라 거석의 규모나 구조, 형태도 다양하다. 

제천 입석리 선돌 /문화재청 

우리나라 거석 문화의 중심인 선돌은 자연석이나 손질을 한 돌을 세워놓은 것으로 선사 시대부터 만들어졌다. 오래된 것일수록 자연석에 가깝고 후대로 내려갈수록 사람 모양의 조각을 한 석상이 많다. 또한 선돌은 새끼줄을 치고 볏짚으로 덮어 신례로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물이기도 했고, 출산과 나쁜 것을 물리치는 수호의 의미를 가졌다. 선돌은 점차 목재로 바뀌어 가며 장승이 되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으로 불렸다. 제주도의 돌하르방도 같은 의미의 기념물로 신격화된 대상이다. 이들의 본래 기능은 땅과 재산, 사람들을 지키는 것에 있었다.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 /flickr

유럽과 러시아 중간에 있는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역은 거석 문화 지역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처럼 이 지역의 대표 거석 문화도 고인돌을 꼽을 수 있다. 기원전 3000년 중반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고인돌 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보였던 고인돌 문화와 비슷하며, 해안가나 강가 하한 지대에 위치한다.

주로 10-12개가 모여 있으며 고인돌의 형식은 석판형, 조합형, 구유형, 하나의 돌로 이루어지는 형태 등 다양하다. 고인돌의 머리 방향은 남향이나 동향을 가리켜 태양과 관련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잘 가공된 덮개돌이 주로 쓰였고 무덤방은 경우에 따라 주변 지형을 이용해 파서 설치하거나 지상에도 설치했던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카르나크 지역의 열석 /flickr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거석묘는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무덤방을 갖고 있으며 대개 지상에 드러나 있다. 축조 연대는 기원전 5000-3000년으로 추정하며 여러 사람이 묻힌 다수장의 형태를 띠었다. 긴 통로에서 생긴 형태에서 생활 용품을 쌓아 놓는 헛간, 창고로 썼고 주거용이나 휴식 공간으로도 썼다고 한다.

프랑스 카르나크에 있는 열석은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 유럽의 거석 기념물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브리타니 지방의 거석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무덤방은 원형, 타원형, 사각형으로 외견은 거대한 석총으로 덮여 있다. 석총의 내부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고인돌이 포함되어 있고 장례 방법은 다수장의 형태로 추측한다. 

스톤 헨지 /unsplash

영국의 거석묘는 대부분 굴식무덤방 구조를 갖고 있으며 돌무덤, 연도무덤, 쐐기형무덤 등이 있다. 콘월 지앙을 포함해 영국 남서쪽, 웨일즈 해안 지방과 아일랜드 등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영국에 분포하는 열석, 선돌, 환상열석 등은 대부분 천문 관측 또는 의례적인 행위를 하는 장소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대표적으로는 남부 웨섹스에 위치하는 스톤 헨지와 에이브베리의 환상 열석 유적지를 들 수 있다. 특히 스톤 헨지는 영국 거석 문화의 상징이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스톤 헨지를 건축학적 의미로 따졌을 때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환상열석이라 할 수 있다. 바깥쪽 원에는 두개의 커다란 돌을 세워 그 위에 수평으로 커다란 돌을 눕혀 놓고 정교하게 모양을 다듬어 연결한 삼석탑이 있다. 

스톤 헨지는 블루스톤과 사르센이라는 두 종류의 석재가 사용됐다. 석재 중 가장 큰 것이 40톤 이상 나가는데 문제는 이 석재를 옮긴 거리가 약 240km 정도라는 것이다. 선사 시대 사람들은 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겼던 것일까? 방법은 나무를 바닥에 깔고 바위에 줄을 매달아 끌어 오는 방식을 썼을 것이라 추정한다. 스톤 헨지의 바깥쪽에 세워진 돌은 푸른색을 띤 현무암인데, 이 돌은 웨일스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옛 사람들은 10톤이 넘는 돌을 바다를 건너 이 곳까지 옮겨왔다는 얘기가 된다. 

많은 조사와 연구 끝에 거석이 설치된 과정을 얼추 알 수 있었는데,  돌이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파고 지렛대를 이용하여 밧줄로 돌을 고정시킨 뒤 200여 명이 줄을 끌어당겨서 세웠다고 한다. 거석을 세운 후 덮개돌을 올리는 방법으로는 흙과 나무를 거석의 가장 높은 부분까지 쌓아 올린 후 돌을 올렸다는 설과 지렛대를 사용하여 쌓아 올렸다는 설이 존재한다. 

스톤헨지 애비뉴 /flickr

스톤 헨지의 주요 기념물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스톤헨지 커서스와 애비뉴(종교적 의미의 통로)의 길이는 무려 3km이며 더링턴 월은 지름만 500m이다. 옛날 이 거석을 축조했을 사람들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스톤 헨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것은 우주에 살고 있는 외계인이 만들었다더라, 중세 시대 마술사와 마녀들이 이 앞에서 춤을 추면서 소원을 빌었다더라 하는 별별 설이 떠돌아다녔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고대 잉글로색슨 언어로 '매달려 있는 바윗돌'이란 뜻의 스톤 헨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8세기 웨일스 출신의 역사가 네니우스가 쓴 '영국사'다. 네니우스는 '영국사'에서 스톤 헨지에 대해 멀린이라는 마술사가 춤추는 데 쓰려고 초능력을 발휘해 아일랜드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전하고 있다.

1135년 '영국 왕과 역사' 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나오며 1666년 오브리라는 이름의 사람이 돌을 세울 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흙으로 둑을 쌓아 올린 다음 돌이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파고 돌을 세웠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밖에도 켈트족의 사제인 드루이드족이 자신의 조상이 만든 유적이라고 주장했으며, 뿔 모양을 한 거대한 건물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어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진 유래는 없는 셈이다. 

덮개돌 /unsplash

스톤 헨지 유적지 안쪽의 돌들은 두 기둥 사이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말굽 모양을 하고 있다. 바깥쪽에는 큰 돌기둥이 원형으로 세워져 있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덮개돌로 연결이 되어 있다. 거석 주변에는 힐스톤이라는 다른 형태의 돌이 있는데 하짓날 태양이 뜨는 방향과 일치하는 곳에 있다. 일출, 동지의 일몰 방향의 선상 위에 놓인 스톤 헨지 애비뉴는 아마도 종교적인 행렬의 통로였을 것이라 추정하며 스톤 헨지 환상열석의 배열을 통해 선사 시대 사람들의 천문학적 지식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스톤 헨지가 신석기 시대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을 올린 곳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딱히 명확한 증거도 없고, 거석 주변에 있는 구덩이의 용도 또한 알지 못한다. 스톤 헨지는 세 단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기원전 3100년경에 주변에 흙을 쌓아 올린 1단계 공사를 진행했고 기원전 2500년경에 웨일스에서 가져온 30개의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바깥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평평한 바위를 올려놓는 공사를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1600년경 말버러 언덕에서 옮겨 온 돌로 안쪽에 말발굽 모양의 삼석탑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이브베리 환상열석 /flickr

스톤 헨지와 더불어 에이브베리의 환상열석 유적지는 대략 기원전 3000-20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인공적으로 깎은 돌을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계획적으로 배치해 당시 특정 목적으로 쓰였던 곳으로 보이나 분명하게 밝혀진 건 없다. 다만 종교적인 장소, 또는 천체관측소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유적지의 형태와 구조도 아직까지 연구 중이다. 스톤 헨지보다는 덜 유명해도 규모나 건축 연대에 있어서는 스톤 헨지보다 앞서 있다. 선사 시대 환상열석 중 최대 규모로 스톤 헨지의 넓이는 에이브버리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에이브베리의 환상 열석 유적지는 거대한 제방과 도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방 안에는 다듬지 않은 180점의 선돌들이 세워져 있으며 큰 바깥 원과 2개의 작은 안쪽 원을 형성하고 있다. 네 방향의 출입구가 있는데 그 중 두 곳의 뻗어난 길은 평행한 선돌을 세워 웨스트케넷 애비뉴와 백햄프턴 애비뉴로 향하는 방향을 표시해 세웠다.

이것은 환상열석에서 인근의 다른 기념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거석들이며 길이와 크기 면에서 조직화된 선사 시대 사회를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곳에 세워진 거석의 개수는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며 현재는 27개만 존재하는 이 곳에 원래는 100개, 또는 98개의 거석이 존재했다는 의견들이 갈린다. 

돌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 /flickr

에이브베리가 스톤 헨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종교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유적지 중앙에는 작은 돌을 사용해 이중으로 만든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고대 국가에서 신에게 의식을 올린 제단과 비슷하다. 아마도 이곳에서 신에게 재앙을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가 열렸던 것으로 추정한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도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악마를 무서워했던 이 지역 사람들이 이곳에서 악마의 대장인 바알세불과 마녀들이 춤을 추며 잔치를 벌이는 장소로 생각해 이 곳에 접근하는 것조차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가거나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하며 이 영향은 18세기까지 이어졌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주민들은 이곳을 농지로 활용하거나 집을 지었고, 거석을 부숴 건축 자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세네감비아 환상열석 유적지 /flickr

100년 이상 연구했어도 아직 일부밖에 알려진 환상열석 유적지도 있다. 서아프리카의 두 국가 세네갈과 감비아에 걸쳐져 있는 세네감비아 환상열석 유적지는 천 개 이상의 거대한 붉은색 돌기둥들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모두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원을 만든 것은 아니며 일부는 매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돌기둥의 대부분은 라테라이트 기둥으로 붉은 색을 띠는데, 이 붉은색 환상열석들은 감비아 강을 따라 350km에 이르는 지역에 100km의 폭으로 떼를 지어 나타나는 형태를 취한다. 

그동안 유럽과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었지만 그 중 특히 세네감비아에서 발견된 이 환상열석은 매우 유명하다. 아마 매장터였던 것으로 추정하며, 실제 중심지에서는 유골과 함께 창, 화살, 이외의 다른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누가 건설했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열석이 1500년 이상 전에 세워졌다는 것을 봤을 때 이 지역이 꽤 큰 번영을 누리며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세네감비아 환상열석 유적지 /flickr

이 환상열석 유적지는 학자들이 100년 이상 연구했지만 아직도 일부밖에 발굴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전체 거석 문화 지역에는 아직도 더 많은 연구거리가 존재한다. 발굴한 유물을 이용해 학자들은 유적이 기원전 3세기부터 16세기까지 2,000여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봉분과 환상 열석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으며 봉분과 열석 중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졌는지, 또는 동시에 만들어졌는지도 모두 다 명확하지 않다. 


인류의 보물 창고, 환상열석 유적지

스톤 헨지 /pixabay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환상열석은 스톤 헨지일 수 있지만, 전세계에는 수천개의 거석 기념물이 존재한다. 네다섯개의 작은 돌무더기부터 시작해 거대한 원 모양의 돌무더기까지, 어떤 용도로 쓰인 곳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현대의 사람들에겐 어찌됐든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매장지였을 수도 있고, 농업 행사와 관련있을 수도 있다. 종종 고대의 사람들보다 현대의 사람들이 훨씬 월등한 기술을 갖고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유적지들을 보면 너무나 무례한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스톤 헨지를 비롯한 거석 문화가 특별한 이유는 우주를 간다는 지금도 이 곳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있어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고고학자들도 아직 이 환상열석 유적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 흔한 포크레인 하나 생각도 못 할 옛날 사람의 힘만으로 거대한 돌을 운반하고 지렛대와 흙을 이용해 수십 톤의 바위를 세운 뒤 그 위에 덮개 돌을 올려놓는다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환상열석 유적지의 연구가 지속되고 밝혀지지 않았던 비밀들이 공개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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