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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게 배우고, 로마에게 전파한 에트루리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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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게 배우고, 로마에게 전파한 에트루리아 미술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7.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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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 분묘에 있는 벽화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기원전 8세기부터 1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의 중부 에트루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미술이라 '에트루리아 미술'이라고 불렸던 이 예술은 20세기 초 여러 발굴, 연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로마에 지배를 당하기 전부터 에트루리아인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미술에 뛰어난 능력을 가져 로마를 비롯한 서유럽의 조형 미술 문화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미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었던 토착민이라는 설, 알프스를 넘어와 반도에 이주했다는 설, 리디아인이 바다를 건너 이주해 왔다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빌라노바 토착 문화를 계승해 동방 및 그리스의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 문명을 형성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들만의 개성을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지중해 무역으로 성장한 에트루리아 미술 

에트루리아인들은 빌라노바 문화에 영향을 받았고 그리스, 페니키아, 이집트, 아시리아 같은 다른 나라들과 상업적, 문화적 접촉을 통해 에트루리아 예술을 만든다. 로마인들 또한 나중에 에트루리아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예술에도 영향을 받았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바다 무역상이 되어 지중해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문명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페니키아인, 그리스 상인들에 의해 에트루리아인들은 점차 지중해 문화의 주류가 된다. 그리스와 페니키아, 동양에서 온 문화는 고대 지중해의 무역망을 통해 에트루리아에 도달했고, 그리스 화가들은 기원전 7세기부터 에트루리아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에트루리아의 테라코타 조각 /flickr

무역 이외에도 에트루리아인들의 부의 대부분은 그들이 살았던 지역의 풍부한 천연 자원에서 나왔다. 농업을 위한 토양은 비옥했고 땅은 광물과 금속 등이 자원이 풍부했다. 에트루리아는 대개 왕에 의해 통치된 것으로 보이며 에트루리아의 왕들은 로마의 초기 통치자들로 이어졌다.

이들은 역사적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고, 오늘날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려진 건 살아남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쓴 기록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기록은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외부의 시각에서 에트루리아를 바라보기 때문에 실제 에트루리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거라 추정된다. 

많은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고대 에트루리아의 철기 문화를 빌라노바 문화라 부르며, 이것은 에트루리아인들이 이 시기 이탈리아에 도착했다는 학설을 뒷받침한다. 에트루리아는 단일 국가가 아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부족들과 동맹을 맺은 독립된 도시국가들의 집합체였다. 이 도시들은 문화적으로 유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특징과 취향에 따른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금 세공 작품 /flickr

에트루리아인들의 예술은 그리스, 아오니아 등에서 활약했던 동시대 사람들이 그리고 만들었던 작품보다는 기술이 부족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석을 자르고 금을 세공하고, 테라코타를 만드는 이들의 예술 작품은 에트루리아인들이 그 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 세계에서의 예술보다는 비록 질은 낮았어도 결코 다른 곳들보다 부족한 건 아니었다. 

빌라노바 문화를 계승한 에트루리아인들은 유능한 공예가들이었다. 이들은 페니키아인, 그리스 상인들에게서 얻은 물건들을 모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곧 자신들만의 스타일들을 구축한다. 서서히 도시 계획이 세워지고 기념비적인 건축과 대규모 조각, 그림들이 이들의 주요 예술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개인적인 예술의 표현에 있어 그리스인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에트루리아의 주요 스타일은 그리스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 양식이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며 성장했다면 에트루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반영시키는 것이 아닌, 외적인 형태들만 받아들였다.

즉 에트루리아인들이 그리스 스타일을 차용한 건 사실이지만 유사점을 찾기도 어렵고 그저 막상 따라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의 예술 형태, 스타일, 세부 사항 등을 참고했지만 에트루리아만의 독특한 관습을 적용하며 선별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게티 빌라에 있는 지붕 장식 /flickr

에트루리아인들은 다른 나라의 미술을 높이 평가했으며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유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에트루리아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먼저 여신들의 나신 조각상을 만들었고 에트루리아에 존재하지 않는, 동양의 신화적인 존재들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다. 또 그리스 세계, 빌라노바 문화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들의 문화를 합치기도 했다.

부유한 에트루리아인들에게 예술은 일상이 되었다. 이들은 특히 종교와 사후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에게 신은 신비로우며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고 사람들은 죽음 후 그들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에트루리아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함께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의 예술은 주로 무덤에서 많이 보였으며, 장례식 과정과 규칙은 이들 기준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지켜졌다.

공동묘지의 모습 /flickr
석관에 조각된 부조의 모습 /flickr

여러 분야 중에서도 무덤과 공동묘지는 에트루리아 문화에서 가장 발굴과 연구가 많이 된 부분이다. 학자들은 에트루리아의 장례 문화를 연구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역사를 통틀어 그들은 두 가지 매장 관습이 있었는데 화장과 매장이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한 분묘를 만들고 여러 일용품을 부장한 다음 분묘의 벽면을 여러 벽화로 장식했다. 신전이나 공공 건물에도 벽화가 있다고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 있는 것은 없다. 

화장용인 유골함과 매장용인 석관이 한 무덤에 발견된 것으로 보아 여러 세대에 걸쳐 두 방법을 동시에 썼음을 알 수 있다. 7세기 들어 이들은 사람의 머리를 카노푸스 화분에 그리기 시작했고 6세기 후반에는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 시작하면서 테라코타 석관에 묻었다. 에트루리아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타르퀴니아, 체르베테리, 큐시 등과 같은 많은 유적지에서 발견된다. 벽화들은 에트루리아 신화를 포함해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수렵과 어로의 묘 /Wikipedia Common CC BY 3.0

6세기 말의 '수렵과 어로의 묘'는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 방에 있는 벽화는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나무 두 그루가 두번째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막고 있으며, 이 방은 사람들이 사냥하고 낚시를 하는 모습을 묘사해 무덤의 이름이 붙여졌다. 네모난 벽에 바다를 배치하고 한복판에 배를 타며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며 하늘에는 많은 새들이 날고 있고 바다에는 돌고래가 놀고 있는 모습이 있다. 

이 장면은 에트루리아 사람들과 자연과의 관계를 보여주며 사회에서 사냥과 낚시가 중요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원전 6세기의 벽화들은 춤추는 남녀를 주제로 한 것이 많고 묘사 방법은 지극히 자유분방하다. 인물과 더불어 돌고래, 수목, 화초 등의 자연적인 존재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분묘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에트루리아에서 죽은 사람의 혼은 불멸로 남아 있으며 죽은 후에도 지금 생의 연장으로 똑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었다.

청동 거울 /flickr

에트루리아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타르퀴니아에서는 청동 손거울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에트루리아 사회에서 지위를 상징한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청동으로 작업을 자주 했으며 이 청동 작품들을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다. 청동 외에도 에트루리인들은 복잡한 이미지로 조각을 새기는 데 능숙했다. 이 거울은 일상 생활에서 실용적인 물건이었을뿐 아니라 에트루리아 귀족 여성들의 신분을 상징했으며 신부 지참금의 일부로도 주어졌다.

이 무덤 말고도 다른 곳에서 발견된 많은 청동 거울은 6세기에서 2세기까지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한 손으로 잡도록 설계된 거울의 측면은 표면을 광을 냈으며 일부 거울은 단일 경첩으로 부착된 덮개로 보호된 모양을 가졌다. 청동 거울의 평평한 뒷면은 장식이나 비문, 부조를 새길 수 있는 이상적인 캔버스 그 자체였다. 일부 손잡이는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고 거울에 그려진 장면들은 거울에 새겨진 글씨들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주로 인기 있는 주제는 결혼 준비, 껴안고 있는 커플, 사람이 옷을 입는 모습 등이었다. 물론 가장 흔한 주제는 신화에 대한 것이었고 종종 뒤틀린 담쟁이 덩굴, 월계수 잎들도 볼 수 있었다.  

부케로 /flickr

부케로 도자기는 그리스 도자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에트루리아 도자기들은 기원전 7세기 말부터 널리 알려졌다. 부케로는 일종의 국가 도자기이며 윤이 나는 검정색으로 도색해 금속 제품의 특징을 훌륭하게 재현했다. 부케로는 에트루리아 장인들이 제작한 가장 독특한 작품이며, 가마 기술을 통해 내부와 외부 모두 흑색 도자기를 만드는 특수한 제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부케로는 포도주와 함께 에트루리아의 주요 무역 품목이기도 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접시, 꽃병, 물병 등 다양한 물체를 부케로로 만들어 재료의 다용성을 입증했다. 금속보다는 덜 비쌌지만 사람들에겐 여전히 사치품이었다. 부케로의 장식은 추상적인 디자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스 도자기가 보급되고 인기를 끌면서 생산량이 점차 감소했다.

카에레탄 히드라 /Wikipedia Common CC BY-SA 3.0

이후 수입품들이 에트루리아 시장을 지배하며 이오니아인들이 에트루리아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들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여겨지는 'Caeretan hydria'는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가 히드라를 죽이는 장면이다. 헤라클레스는 오른쪽에서 다가와 수염을 기른 아홉 개의 머리 중 하나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곤봉을 들어올리고 있다. 그 옆에는 큰 게 한 마리가 헤라클레스의 발뒤꿈치에 붙어 있다.

이올라오는 왼손으로 히드라 머리 중 하나를 잡고 오른손의 낫으로 머리를 잘라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에트루리아의 카에레에서 생산된 꽃병들 중 하나로, 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두 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꽃병의 기본 요소들 중에서도 에트루리아인들을 위해 재해석한 선명한 색상, 꽃 장식이 눈에 띈다. 

옴파로스 항아리 /flickr

에트루리아의 조각은 6세기 말이 되어서야 커다란 조각상 등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전의 것들은 분묘에서 발견된 초기의 테라코타 항아리에서 발견되곤 했다. 초기의 항아리에는 뚜껑 위에 작은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기원전 7세기에는 항아리 전체가 하나의 인체 형상이 된다. 에트루리아는 구리, 철, 납, 은 등의 풍부한 금속 자원을 갖고 있어 이 재료들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많은 에트루리아인들은 청동 제품을 생산하는 전문 작업장을 세웠고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를 공격했을 때 2,000여개 이상의 청동상을 약탈해 동전을 만들기 위해 이 청동들을 녹였다고 한다.

아레초의 키메라 /flickr

대부분의 조각상들은 예복을 입은 여성들, 벌거벗은 남성들, 또는 무장한 전사들이다. 종종 헤라클레스 같은 신을 묘사하기도 했다. 에트루리아의 유명한 대형 조각상으로는 아레초의 '키메라'를 들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 불타고 있는 괴물의 모습은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괴물을 죽인 영웅 벨레로폰과 그의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조각을 포함한다. 한쪽 다리에는 '틴에게 바치는 선물'이라 쓰여 있는데 이것은 에트루리아 판테온의 수장인 티니아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토디의 마르스 /flickr

또다른 작품으로는 '토디의 마르스'가 있는데, 이 작품은 거의 실물 크기의 젊은이를 묘사한 것으로 한때는 창도 들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돈을 뿌리고 있는 모습이라는 설도 있지만 원래는 헬멧을 쓰고 전투에 나서기 전, 술을 마시는 의식을 하는 모습이라 한다. 속이 비어 있는 청동 주조상은 머리와 팔, 다리, 몸통으로 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고대 이탈리아 조각상들 중 매우 드문 편에 속한다. 마르스는 갑옷을 입고 무장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로마 시대의 술잔인 파테라에 담긴 술을 마시려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파테라와 쇠로 만든 창은 따로 보관되어 지금의 동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베이오의 아폴론상 /Wikipedia Common CC BY-SA 4.0

'베이오의 아폴론상' 역시 고대 에트루리아 조각의 대표적인 예로 얼굴은 단순하게 조각되어 있고 머리는 양식화된 구조로 마치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것 같은 기하학적인 곡선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 조각상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움직임이 풍부하며 그리스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외관을 보여준다. 아폴론의 형상은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팔을 뻗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몸은 충실한 모델링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 벗는 대신 어깨를 덮은 토가를 입고 있다. 옷주름은 무늬가 있고 양식화되어 있으며 몸에 달라붙은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 현실감을 준다. '베이오의 아폴론상'은 에트루리아의 조각가 불카가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이 외에도 불카는 로마 역사가들에 의해 로마의 가장 중요한 사원인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를 기리는 신전의 조각상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Seianti Hanunia Tlesnasa /Wikimedia Common

에트루리아인들은 죽은 사람들의 유골을 항아리에 묻거나 테라코타 석관에 담았다. 두 종류 모두 뚜껑 부분에 고인이 조각된 모습을 볼 수 있고 때때로 두 명 이상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를 맞아 이들의 장례 예술은 빛을 발했으며 인물들은 죽은 사람들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로 유명했다. 큐시의 에트루리아 귀족 여성인 세이안티 타누니아 틀레나사의 석관이 그 훌륭한 예시로, 한 사람을 묘사하며 밝은 색으로 칠해졌다. 

토대만 남아 있는 에트루리아 신전의 모습 /flickr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그리스 신전에서 개조된 새로운 양식을 만들었고 이것은 나중에 로마의 신전 디자인에도 영향을 준다. 신전 건물, 제단, 샘 등은 신성한 공간이었고 그리스와 로마처럼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되는 제단은 사원 밖에 있었다. 오늘날은 사원의 토대와 테라코타 장식만 남아 있는데 사원 자체가 주로 침식되고 퇴화되기 쉬운 나무와 진흙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에트루리아인들은 그들의 신전 토대에 돌이나 투파(석회화)를 썼다. 투파는 부드럽고 조각하기도 쉬우며 공기에 노출되면 단단해지는 화산석이다. 사원의 상부 구조는 나무와 진흙 벽돌로 지어졌으며 석고나 회반죽으로 벽을 덮고 광택을 내어 페인트칠을 했다. 테라코타 지붕 타일은 건물을 오래 갈 수 있게 했다. 


그리스와 로마 사이 그 어딘가 존재한 에트루리아 미술 
 

금속 공예에 특히 뛰어났던 에트루리라인들 /flickr

에트루리아인들이 일구어낸 예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는 이들이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능력도 없어 그리스 문화를 베끼기만 한 단순한 표절이라 얘기한다. 실제로 수년간 에트루리아 미술이 다른 지중해 예술들 중에서도 어떤 평가를 받아야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에트루리아 미술이 그리스에게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이들의 작품들이 정체성이 없는 단순한 모방이라 결론을 내리는 건 섣부르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에트루리아인들의 능력과 노력이 있어서였다. 이들은 그리스의 양식을 취했지만 에트루리아의 문화와 관습에 맞춰 변형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이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를 적용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고 이 예술은 로마에게 전해지며 로마의 여러 양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로마는 에트루리아 도시를 정복했지만 이들의 양식은 로마의 취향과 문화에도 반영되어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예술을 종종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에트루리아의 미술은 고대 도시 국가로 이 나라에서 꽃을 피운 문명으로 인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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