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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페인팅과 미디어 그리고 소품의 콜라보, 백현진 개인전 ‘말보다는(Beyond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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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페인팅과 미디어 그리고 소품의 콜라보, 백현진 개인전 ‘말보다는(Beyond Words)’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6.18 1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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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예술에는 끝도,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예술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펼쳐진다. 영상이나 음악 등이 어우러지는 미디어 아트가 가장 좋은 사례가 될듯하다.
 

백현진 개인전 ‘말보다는’ 전경 / 전은지 기자
백현진 개인전 ‘말보다는’ 전경 / 전은지 기자

종로구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는 화가이자 가수, 배우, 설치미술가로 활동 중인 백현진 작가의 개인전 ‘말보다는(Beyond Words)’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음악, 비디오, 공연, 대본, 퍼포먼스, 연기로 구성되며, 총 60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구작 회화 3점을 제외하고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으로, 이는 회화 44점, 설치작품 9개, 음악 4곡, 비디오와 대본 각각 한 편씩, 그리고 조각 1점이다.


다방면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 백현진

마니아들 사이에서 배우, 가수로 알려진 백현진 작가. 그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인 어어부 프로젝트, 싱어송라이터 방준석과의 프로젝트 밴드 방백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은 ‘아방가르드’다. 기존의 음악 장르를 패러디하거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가사, 퍼포먼스 등을 선보여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밴드라고 할 수 있다.
 

전시와 함께 공개한 영상 ‘말보다는’ 속 배우로 등장하는 백현진. 그는 이 영상의 연출은 물론 대본을 쓰기도 했다 / 말보다는 영상 캡처(https://youtu.be/7gjXku74-jc)
전시와 함께 공개한 영상 ‘말보다는’ 속 배우로 등장하는 백현진. 그는 이 영상의 연출은 물론 대본을 쓰기도 했다 / 말보다는 영상 캡처(https://youtu.be/7gjXku74-jc)

그는 배우로도 활동 중인데, 영화 ‘북촌방향’, ‘경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최근에는 드라마 ‘모범택시’ 등에서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백현진 작가가 화가로서 추구하는 페인팅 스타일로 비슷하다. 계획이나 목적 없이 흐르는 대로, 과정에 몸을 맡겨 직관적으로 그린다고 한다. 그가 화가, 설치미술가, 행위예술가, 음악가, 배우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스타일은 미술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은 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아트선재센터, 상하이 민생 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등 세계 주요 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작가로 선정됐다.


작품명과 작품을 계속 바라보게 하는 매력

전시는 본관과 별관에서 진행되는데, 보통 미술작품 설치의 틀을 깨는 방식이다. 또한, 작품만 보면,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작품명과 함께 감상하면서 나만의 생각을 더하면, 비로소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특별한 점은, 보통은 갤러리 내에는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이 흐르거나 핀 조명 등이 있기 마련이다. 백현진 작가는 전시장 별로 QR 코드를 만들어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개인적으로 청취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눈과 귀가 집중할 수 있는 공감각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어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체를 관객으로 돌린 듯하다. 전시나 작품 전반적인 설명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전시되는 작품을 설명하는 모든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 작가의 의도 때문이다. 백현진 작가는 갤러리 측에도 “관람객이 각자 보고 들리는 대로 관람하시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만 전달했다고 한다.
 

전시와 연계되는 영상과 작가가 직접 쓴 대본 / 전은지 기자
전시와 연계되는 영상을 볼 수 있는 QR 코드와 작가가 직접 쓴 대본 / 전은지 기자

대신 전시장에 작가가 남긴 흔적이라고는 ‘말보다는’ 영상 속 대본뿐이다. 이는 전시를 위해 백현진 작가가 쓴 가상의 대본 ‘사람이 많이 다녀 막다른 골목이라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췌했다고 한다. 대사는 다음과 같다.

“아니,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짜로 영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보고 듣는 거, 굉장히 중요하지. 너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보고 듣는 걸 좋아하니. (피식대며) 먹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 근데 어쨌든, 보이고 들리는 게 성에 안 차니까, 내가 직접 만들어서 보고 듣고 하는 거지.

아니지 아니지, 내가 왜 언어를 부정하겠니? 언어를 다루는 사람인데. 그거랑 별개로...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너는 알아듣지? (다시 이제껏 말하던 방향을 향해서) 응.. 너는 잘 이해가 안 가? 음... 내가 언어로 설명을 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이게 말로 하기엔 진짜 너무...”


영상 속에서 작가는 혼자 등장하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는 듯 바라보면서 말한다. 이번 전시의 의도를 ‘연기’로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드는 영상이었다. 영상 연출부터 대본, 연기, 음악까지 모든 것을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는 부분이 대사 속에도 녹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말보다는’ 작품을 보며 느끼라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전시장 입장 후 주어진 갤러리 안내도 속 작품명을 함께 보아야 한다.
 

드나듦 In-and-Out, Oil, enamel spray paint on linen, 186×186cm(diptych), 2020 / 전은지 기자
드나듦 In-and-Out, Oil, enamel spray paint on linen, 186×186cm(diptych), 2020 / 전은지 기자

어떤 창문을 그린 듯하다. 하지만 보통 창문은 투명한 유리 너머의 풍경이 보이겠지만, 이 작품 속 창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검은색으로 창틀이 그려지지 않은 맨 아랫부분에서는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준다. 그 부분만 창문이 열려 있는 듯이 말이다. 창문이 열리면 바람이 느껴지는데 그 드나듦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창문이 열려 있지 않아도,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생각이나 심리를 정리하는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재생 Playback, Oil on linen, 40×40cm, 2020 / 전은지 기자
재생 Playback, Oil on linen, 40×40cm, 2020 / 전은지 기자

보통 재생 표시는 ‘▶’ 이런 삼각형 모양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오각형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마치 일시 정지를 뜻하는 ‘■’와 합쳐진 듯하다.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때로는 멈춤도 필요하다는 작가의 조언일까. 캔버스 리넨 재질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색채보다는 그림에 집중하게 된다.
 

(뒷부분 큰 그림) 아직 삶 20-02 Still life 20-02, Oil on linen, 214×214cm, 2020(앞부분 왼쪽 그림) 현명함(친구) Prudence (My friend), Oil on linen, 93×93cm, 2020(앞부분 오른쪽 그림) 변신 Metamorphosis, Oil on linen, 93×93cm, 2020 / 전은지 기자
(뒷부분 큰 그림) 아직 삶 20-02 Still life 20-02, Oil on linen, 214×214cm, 2020
(앞부분 왼쪽 그림) 현명함(친구) Prudence (My friend), Oil on linen, 93×93cm, 2020
(앞부분 오른쪽 그림) 변신 Metamorphosis, Oil on linen, 93×93cm, 2020 / 전은지 기자

작품 중에는 이렇게 결합한 듯 전시된 것이 2개 있었다. 하지만 오묘하고 난해한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3점의 작품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흰색 바탕 위에 형형색색으로 그어진 선과 면이 어우러져 있다.

반원 모양이 여러 개 모여있는 ‘아직 삶’은 사람이 여러 명 모여있는 듯하고, ‘현명함(친구)’은 지니의 램프처럼 삼각형에서 무언가 피어나는 모양이다. 지니처럼 현명한 결정을 도와준다는 의미일까. ‘변신’은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형태가 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농담과 통곡의 벽지 Jokes & Wailing Wallpaper, Oil, enamel spray paint on linen, 186×465cm(polyptych), 2019-2020 / 전은지 기자
농담과 통곡의 벽지 Jokes & Wailing Wallpaper, Oil, enamel spray paint on linen, 186×465cm(polyptych), 2019-2020 / 전은지 기자

2층 전시실에 있던 이 작품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림 중앙에 그려진 것은 익살스러운 농담처럼 그린 형태이고, 전체적인 배경에 무늬처럼 그려진 것은 통곡을 표현한 듯하다. 농담은 즐겁고 재밌는 것이지만 통곡은 슬픔과 가깝다. 2가지의 상반되는 것이 어우러지니 통곡도, 농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었다.
 

요절 Premature Death, Oil, enamel spray paint on canvas with wood frame, 110×165cm, 2011, 2021 / 전은지 기자
요절 Premature Death, Oil, enamel spray paint on canvas with wood frame, 110×165cm, 2011, 2021 / 전은지 기자

어두운 캔버스가 누군가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가운데 에메랄드색 바탕의 검은 점은 누군가를 애도하는 검은 달 같다. 그 대각선 캔버스가 빨갛게 물든 것을 보니,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피를 흘리는 느낌이다. 녹색과 연보라색으로 이어지던 직선이 검은색으로 덮이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요절’이라는 의미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밝은 어두움 Bright Darkness, Oil, enamel spray paint on linen, 206×412cm(polyptych), 2020 / 전은지 기자
밝은 어두움 Bright Darkness, Oil, enamel spray paint on linen, 206×412cm(polyptych), 2020 / 전은지 기자

전시 중에서 대형 작품 중 하나다. 가장 오래 발길을 붙잡은 작품이기도 하다. ‘밝은 어두움’은 흔히 문학적 표현에서 역설법을 나타내는 제목이다. 어두움은 어두움일 뿐, 밝을 수 없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과 흰색을 사용했다. 밝은 부분에는 형태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밀집해있다. 반면, 검은색 바탕에는 파란색과 희미하게 보이는 여러 색의 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져 없어질지도 모르는 작품

별관 1층으로 옮겨가면, ‘생분해 가능한 것’이라는 동명 제목의 작품 8점이 전시되어 있다. 왜 생분해 가능한 것인가 보았더니, 생분해 가능한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환경 보호를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는, 생분해되듯 작품의 한계가 있음을 나타내기도 할 것 같다.
 

생분해 가능한 것 21-04 Biodegradable Thing 21-04,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papers, 119×89cm(framed),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4 Biodegradable Thing 21-04,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papers, 119×89cm(framed),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6 Biodegradable Thing 21-06,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papers, 119.5×89.5cm(4 pieces, framed),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6 Biodegradable Thing 21-06,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papers, 119.5×89.5cm(4 pieces, framed),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7 Biodegradable Thing 21-07,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papers, 119.5×89.5cm(4 pieces, framed),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7 Biodegradable Thing 21-07,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papers, 119.5×89.5cm(4 pieces, framed), 2021 / 전은지 기자

언젠가는 없어질 수 있는 작품이라 그런지, 고민 없이 그려낸 습작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명암의 표현이라던가, 원과 직선, 도형의 조화가 하나로 뭉쳐있는 느낌이다. 4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21-06’과 ‘21-07’은 4컷 만화처럼 하나의 작품이 어떻게 채색되고 그려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분해 가능한 것 21-01 Biodegradable Thing 21-01,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canvas, 140.5×161cm,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1 Biodegradable Thing 21-01,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canvas, 140.5×161cm, 2021 / 전은지 기자

‘21-01’은 화려한 무늬 위에 모래시계처럼 보이는 반원 2개와 타원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한쪽이 찢어져 있다. 언젠가는 이 작품이 분해되어 사라질 수 있음을 퍼포먼스처럼 보여주는 듯하다.
 

생분해 가능한 것 21-02 Biodegradable Thing 21-02,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canvas, 141×251cm,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2 Biodegradable Thing 21-02,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canvas, 141×251cm,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3 Biodegradable Thing 21-03,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canvas, 141×251cm, 2021 / 전은지 기자
생분해 가능한 것 21-03 Biodegradable Thing 21-03, Natural paint on biodegradable canvas, 141×251cm, 2021 / 전은지 기자

백현진 작가의 작품 중 거의 유일하게 형태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21-02’는 여러 도형이 도장처럼 찍혀있는 느낌이며, ‘21-03’은 바닷가를 그린 듯하다. 여름이면 해변에 펼쳐지는 파라솔이 우직한 나무처럼 서 있다. 저 파라솔이 없었다면, 두 작품은 데칼코마니를 하듯 비슷한 형태의 작품이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미디어와 미술의 참신한 결합

갤러리에 들어서면 주는 안내도에는 QR 코드가 인쇄되어 있다. 전시관마다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읽게 되면, 그 전시관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은 백현진 작가가 직접 만든 것으로, 뮤지션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QR 코드를 읽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QR 코드를 읽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8~9분여의 음악과 함께 전시관을 둘러보니 그림이 영상처럼 움직이듯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천장 가까이 설치된 그림들 / 전은지 기자
천장 가까이 설치된 그림들 / 전은지 기자
사색 Contemplation, Oil on linen, 93×93cm, 2019 / 전은지 기자
사색 Contemplation, Oil on linen, 93×93cm, 2019 / 전은지 기자

백현진 작가는 작품 설치에도 의미를 담은 듯하다. 3개의 작품이 겹친 듯 설치하는 것도 모자랐던지, 작품을 바닥에 눕혀놓거나 가까이 볼 수 없게 천장 가까이 걸어놓았다. 그래서 갤러리 구석구석을 조심히, 위와 아래 모두 샅샅이 감상하게 했다.

사색이라는 작품은 바닥에 눕혀있었다. 보통 작품은 벽에 걸려있기 마련인데 바닥에 방치하듯 눕혀놓은 시도는 참신했다. 그 앞에 서서 사색에 잠기게도 했지만, 그림 속에는 뭔가 사람의 형제가 보이는 듯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래에는 푸른 풀이 돋아 있는 장소에 서서 사색에 잠긴 사람 말이다.
 

대환영 Welcome, Welcome!, Mixed media, 135×104cm, 2021 / 전은지 기자
대환영 Welcome, Welcome!, Mixed media, 135×104cm, 2021 / 전은지 기자

미처 뜯지 못한 작품이 걸려있는 줄 알았던 작품이다. 함께 관람하던 이들도 “이게 작품이었어?”하고 바라볼 정도다. 포장을 뜯지 못한 작품이 궁금해지면서, 이렇게 작품을 만들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겹쳤다.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환영한다는 것일까. 그것도 왜 ‘대환영’인지 모르겠다.
 

국내산 Produced Domestically,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국내산 Produced Domestically,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전시관 안내도를 보지 않았다면 작품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형광등이 수명을 다한 듯이 깜빡이는 퍼포먼스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름처럼 국내에서 생산된 형광등일까.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 아래 작품들은 어떤 것을 그린 것인지 쉽게 보기가 어려웠다. 미디어와 미술의 결합을 보여주는 독특하고 참신한 작품이었다.


심오한 설치 조형물

전시장에는 설치작품도 발견할 수 있는데, 식물을 활용하거나 여러 재료를 결합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씨발 Ssshhhiiittt!,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씨발 Ssshhhiiittt!,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작품 제목부터 굉장히 자극적이다. 다 죽은 식물 화분인데, 그 안에는 유리 조각 몇 개가 있다. 정성스럽게 키우던 식물이 깨진 유리 때문에 죽은 것일까. 그래서 욕까지 나왔던 심리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전시관 정 가운데에 있는 이 작품은 자칫하면 건드릴 수도 있을 법하다. 무언가 실수로 잘못 건드리면 욕이 나오는 상황을 표현한 설치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구식 농담과 신식 농담 Old-Style & New-Style joking,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구식 농담과 신식 농담 Old-Style & New-Style joking,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돌 몇 개가 모여있다. 그런데 몇 개는 공사장에 있던 것처럼 지저분하지만, 어떤 것은 깨끗하고, 어떤 것은 물속에 있는 듯 이끼까지 돋아 있다. 지저분한 돌은 구식, 이끼가 돋은 돌은 신식인 걸까. 세대 간의 격차를 나타내는 단어인 ‘꼰대’, ‘라떼’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구식과 신식이지만 모여있는 것이 우리의 삶 자체기도 하다.
 

삼남매 Three Sibling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삼남매 Three Sibling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삼남매’는 이끼가 끼어있는 돌 3개가 놓여있다. 그런데 2개는 붙어있고, 2개는 떨어져 있다. 남매라는 것을 보면, 2개의 돌은 성별이 같고, 떨어진 1개의 돌만 성별이 다른 것일까 싶다. 남매이지만 성장하면서 독립하게 되면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작품 같다. 나뭇가지도 3개인데, 2개는 붙어있고, 1개만 떨어져 있다. 재미있기도 하고, 심오하기도 하다.
 

정다움 Geniality, Yarns,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정다움 Geniality, Yarns,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털실 뭉치 2개가 바닥에 놓여있고, 실 가닥은 한쪽씩 천장에 닿아있다. 털실의 따뜻함에서 정다움이 느껴지긴 하지만, 왜 천장까지 이어져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돌잔치를 할 때, 아이의 목에 오래 살라는 의미로 명주실 뭉치를 걸어주는 것과 연결해 본다면, 정답게 오래오래 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일까 생각된다.
 

품위 Dignity,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품위 Dignity,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이 작품은 진짜 그냥 화분을 가져다 놓은 듯하다. 어떤 식물인지 찾아보니, 이름도 낯선 ‘페페로미아 클루시폴리아’다. 거실이나 발코니 안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로, 후추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한다.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 공기정화 식물이라고 하니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보인다. 작품도 햇빛이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설치된 이유가 있었다. 자라난 모습이 ‘품위’ 있어 보이기 때문에 이 같은 제목을 지었을까. 말라버린 화분인 ‘씨발’과 대조적이다.
 

OK AI,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OK AI,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난해한 작품 중 하나다. 머리가 뚫린 밀짚모자 사이로 보이는 깨진 접시가 있는 작품인데, 제목은 ‘OK AI’다. 인공지능 AI가 점령하고 있는 세상을 풍자한 것일까. AI에게 모든 걸 맡기고 머리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듯하다.
 

쉿! Shhh!,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쉿! Shhh!,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21 / 전은지 기자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한 작품이다. 초를 켜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초는 아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듯한 원기둥 위에는 못이 박혀있고, 그 위에는 알루미늄 포일로 촛불이 켜진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그와 함께 강아지풀처럼 보이는 식물을 꽂아두었다. 초를 켜면 왠지 조용히 해야 하는 규칙을 몸소 설명하는 듯한 작품이다.


보통의 전시는 그림이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형태와 색채에 집중하게 되지만 백현진 작가는 그런 틀을 부수었다. 작가는 자신의 개성과 의미를 담아 작품을 만들었지만, 설명하지 않은 채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온전히 모든 것을 해석하도록 했다. 각자가 보이는 대로 관람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해하지만, 재미있기도 하고, 참신한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미디어 아트의 콜라보를 감상할 수 있어 좋은 전시였다.

한편, 백현진 작가의 개인전 ‘말보다는’은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오는 7월 3일까지 열린다. 전시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와 라이브 음악 공연은 오는 6월 19일과 7월 3일에 펼쳐지고, 전시의 연계 출판물로 소책자, 포스터, 카세트테이프 한정판 패키지가 6월 중순에 출간될 예정이다.

전시는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이며, 관람은 무료다. 백현진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갤러리는 무료, 미술관은 유료. 즉, ‘갤무미유’. 오늘의 사자성어입니다. 대도시인의 상식으로 꼭 기억하셔요, ‘갤무미유’”라고 설명했다. 센스있게 전시를 설명한 멘트도 인상적이니 ‘갤무미유’를 명심하고 관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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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2021-06-19 00:52:08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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