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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져야 할 마야 문명의 풍요로움, 팔렝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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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져야 할 마야 문명의 풍요로움, 팔렝케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5.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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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렝케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2020년 6월, 멕시코의 휴양지 칸쿤에서 마야의 숨겨진 유적지인 팔렝케 등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는 '마야 열차' 사업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마야 열차'는 2018년 취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 대통령이 주력으로 밀고 있는 사업으로 정부는 관광 사업 활성화와 지역발전,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마야 열차' 사업에 따른 유적지 훼손 및 환경 파괴의 우려도 적지 않다. 약 68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유카탄 반도 5개주에 1460km의 철로를 깔고, 15개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열차 노선이 열대우림 및 자원보호구역, 원주민들의 거주지를 지나며 특히 마야 유적지 팔렝케를 거쳐 가는 거라 반대가 큰 상황이다.

멕시코 학계 및 원주민·환경단체 등 240여개 단체는 지난 2일 성명에서 “‘마야 열차’ 공사는 인권을 짓밟고 광범위한 환경 파괴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하나의 귀중한 유적지가 지금, 위태롭게 서 있다. 


마야인들이 남긴 현대의 보물, 팔렝케


멕시코 치아파스주 정글 지대에는 산토 도밍고 델 팔렝케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이 유적지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정글 속에 있었고 '팔렝케'의 고대 이름은 '라캄하 Lakamha'였다. 무성하게 자라난 밀림에 의해 본의 아니게 숨겨져 있던 유적지는 사람들에게 발굴, 복원되어 세상에 드러났다. '팔렝케'란 스페인어로 '울타리로 둘러싸인 성채'라는 뜻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팔렝케 박물관에 있는 마야인들의 상형 문자 /flickr

마야인들이 제작한 건축물과 조각품들이 발견된 것을 비롯해 팔렝케 역사의 대부분은 기념비들에 새겨진 상형 문자를 해독해 알려졌다. 이곳에서 발견된 마야 문자가 80%이상 해독되어 당시의 문화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팔렌케의 가장 유명한 통치자는 '비문의 신전'이라는 피라미드 지하에서 발굴된 무덤의 주인, 키니치 하나브 파칼이다. 그가 통치한 시기 제일 융성했던 팔렝케는 아직까지 유적지의 10% 정도만 세상에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렝케 /flickr

팔렝케를 재건하고 예술과 건축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던 통치자들 중 하나라면 약 70년간 팔렝케를 통치했던 키니치 하나브 파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비문의 신전'이라 불리는 무덤의 장례 기념비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파칼의 무덤을 발굴했을 당시 고대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무덤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었다는 평을 받았을 정도다. 실제 그가 통치한 기간 동안 팔렝케의 대부분의 기념비적인 구조물이 완성되었다.

파칼 1세의 아들 키니치 하나브 파칼은 마야 왕들 중에서도 유명한 왕으로 '파칼 대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어머니가 왕후 자리에서 물러난 뒤 12세부터 통치를 시작했다. 파칼 대왕은 683년까지 팔렝케를 통치했고 그의 어머니도 물러난 것이 아닌 그와 같이 나라를 통치했다는 설도 아직 존재한다.

팔렝케 대부분의 궁전과 신전은 그가 통치하는 기간 안에 지어졌고 도시는 번성했다. 팔렝케는 차츰차츰 정치, 경제 대국으로 나아갔다. 궁궐은 세 번에 걸쳐 리모델링되었고 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마야의 3대 유적지 중 하나인 '티칼' 등의 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팔렝케는 넓은 영토를 장악했고 다른 도시들과 동맹을 맺어 내륙의 무역 중심지로 번창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flickr

683년 파칼 대왕이 죽은 이후 그의 장남이 왕위를 물려받고 702년에는 그의 동생이 나라를 계승한다. 파칼 대왕에 의해 시작되었던 건축과 조각 작업은 계속되었고 기존의 신전이나 건축들도 확장 작업을 거쳤다. 이후 '비문의 신전' 건축을 끝낸다. 파칼의 석관은 매우 크게 지어졌고 마야의 무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옥으로 된 컬렉션들을 볼 수 있다. 주변에서 발견된 많은 양의 옥은 그가 다시 신으로 태어났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파칼 대왕을 장식한 보석들 /flickr

이 시기는 왕의 초상화나 벽화도 발견되었고, 건축과 예술에 대한 왕들의 열정 덕분에 궁전이 계속 확장되고 재건될 수 있었다.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팔렝케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을 거듭했다. 

711년, 팔렝케는 라이벌 국가였던 토니나 왕국의 습격을 받았고 나이든 왕은 포로가 되어 토니나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팔렝케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로 약 10년간 팔렝케에는 왕이 없었고, 나중에 새 왕이 등극했지만 이 왕이 직계 왕족의 상속인이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대관식이 왕조 시대의 단절이라 생각했고, 등극했던 왕이 수년간의 정치적 공작 등을 거쳐 왕위에 올랐을 것이라 추측한다. 왕은 이후 그의 아들과 손자가 통치했으며 이 시기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토니나와의 전쟁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기록된 상형 문자를 통해 추측하고 있다. 

숲 속에 숨어 있는 듯한 팔렝케 /flickr

시간이 갈수록 팔렝케는 다른 마야 도시들에 의해 침략을 받거나 하는 일이 많아졌고 800년 이후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일도 없었다. 후기에는 침략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계단식 요새를 건설했고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만이 몇 대를 이어 그곳에 살다가 결국 모두가 떠난 후 팔렝케는 버려졌다.

팔렝케는 마야 도시들 중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들 중 하나였고 주변 산에서 흘러내리는 강들이 도시를 감싸고 흘렀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 찬란한 장소도 결국은 사람의 흔적이 끊기고 자라난 밀림에 가려져 한동안 누구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746년 스페인 선교사가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까지 그렇게 마야의 한 유적지는 죽은 듯이 숨어 있었다. 

팔렝케는 스페인이 관심이 끌 만한 초기의 유적지들 중 하나였다. 1700년대 후반 여러 장군, 탐험가들이 이 장소를 방문했다. 심지어 스페인의 아즈텍 왕국 정복자인 에르난 코르테스는 팔렝케에서 불과 48km 떨어진 곳을 지나갔지만 정작 팔렝케를 발견하진 못했다. 1746년 팔렝케의 발견 이후 유적을 본격적으로 조사한 건 알베르토 루스 루이예르라는 고고학자로 파칼 대왕의 묘를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비문의 신전 /flickr

팔렝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비문의 신전'은 총 620개의 그림 문자로 장식되어 있다는 기념물이다. 1952년 고고학자들이 파칼 대왕이 잠들어 있는, 정교하게 조각된 대리석 석관이 있는 무덤을 발견한다. 비문의 신전은 팔렝케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건축물로, 키니치 하나브 파칼을 위한 장례 기념물로 지어졌다. 이 기념비는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을 남기고 건축이 시작되어 그의 아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비문의 신전 지하에는 1952년 발굴된 묘실이 있고, 피라미드의 높이는 신전을 포함해 약 21m 정도 된다. 이 신전 지하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마야 무덤 중 가장 잘 보존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파칼 대왕의 묘가 발견된다. 왕의 시신이 있는 석관과 함께 묘비 하나도 발견되었는데 '비문의 신전'이라는 이름은 이 묘비에 적힌 기록에서 유래한 것이다. 파칼의 묘실은 지하에서 약 27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벽면은 무덤을 지키고 있는 아홉 명의 신관의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이 비문의 신전은 고대 마야를 연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유적지에 대한 역사와 정보까지 알 수 있게 했다. 비문의 판에서 발견된 상형 문자와 건물 교각 주변에 조각되어 있는 조각판, 파칼 대왕의 무덤 내부 구조 덕분이다. 이 비문을 바탕으로 유적지에서 살았던 왕조들이 여러 세대에 거치면서 겪은 출생과 왕위 계승, 죽음과 전쟁의 승리, 패배 등을 알 수 있었다. 구조는 9단 피라미드 위에 있는 사원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면에 있는 5개의 출입구는 상형문자와 조각된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 교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부는 파칼 대왕의 석관이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팔렝케 박물관에서 재현한 파칼 대왕의 석관 /flickr
파칼 대왕의 유골 /flickr

팔렝케와 비문의 신전이 처음 발견되고 나서 꾸준히 사람들이 방문하고 연구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200년이 지난 1952년에야 파칼 대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이 사원의 바닥에 석판을 제거하자 건물 잔해로 가득 찬 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2년 후 이 계단이 치워지고 나서야 저 깊숙한 안쪽에서 파칼 대왕의 무덤이 드러났다.

석관 안에는 붉은 수의를 입은 파칼 대왕의 유골이 있다. 파칼 대왕은 비취로 만든 가면을 쓰고 비취 팔찌와 반지를 낀 채 입에는 비취를 물고 있다. 얼굴을 덮은 가면의 눈에는 조가비, 눈동자에는 흑요석을 끼워 놓았다. 비취는 예로부터 마야인들에게는 생명의 상징이었다고. 

현재는 피라미드만 볼 수 있고 출입이 통제되어 묘실을 구경할 수는 없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무덤 안의 모습과 비문은 팔렝케 밖에 있는 팔렝케 박물관에서 재현을 해 놓았다. 박물관에 가면 파칼 대왕의 무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습과 함께 석관 위 석판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팔렝케 궁전 /flickr

비문의 신전 왼쪽에는 사각형의 궁전이 있다. 여러 건물로 되어 있고 몇 세대를 걸쳐 지어졌다. 이 궁전은 마야 귀족들에 의해 관료적, 정치적 기능과 함께 오락, 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쓰였다. 왕실의 거주지가 고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팔렝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야 유적지에서 가장 복잡한 건축 구조물 중 하나로 꼽힌다. 

2016년 7월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 탐사팀이 비문의 사원 밑에서 지하수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탐사팀을 이끈 고고학자 아르놀도 곤살레스는 파칼 왕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통로를 비유해 이 수로가 사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또한 마야인에들에게 물은 삶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며 이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말한다. 

4층탑 /flickr

궁전 안에는 수많은 조각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은 4층탑으로 마야나 아즈텍 문명에서는 보기 힘든, 천체 관측용인 천문대 역할을 했다. 앞쪽에는 인공 관계 수로에 물이 흐르고 있으며 이 물을 공급받아 썼던 수많은 목욕탕과 사우나가 갖춰져 있다. 이 수로는 오툴룸 강을 건너 메인 광장 아래로 흘러가는 구조였다. 

잎사귀 신전 /flickr
부조 장식 /flickr

팔렝케 궁전은 팔렝케에서 가장 큰 건물이며 주변에 태양의 신전, 십자가 신전 등 세 개의 대표적 신전이 몰려 있다. 이 신전들은 파칼의 후계자인 바흘람이 그들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지은 것이다. 디자인은 대부분 비슷하며 역시나 상형 문자와 조각들을 볼 수 있다.

궁궐들은 귀족들이 썼지만 하인이나 군인들의 숙소로도 쓰였다. 마야 왕과 귀족들의 모습을 묘사한 스투코로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며 아직 유적지 전체의 10% 정도밖에 복원이 되지 않았기에 이 장소 또한 계속 복원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 팔렝케 
 

팔렝케 /flickr

최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 대통령이 '5세기 동안 외세와 멕시코 정부에 학대당한 마야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전했다. 올해 독립 200주년을 맞아 마야 원주민들에 사과하게 됐다고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 사과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고 비난한다. 멕시코의 관광 산업을 위한 '마야 열차' 사업 때문에 마야인들의 환심을 사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작년, 마야 열차 개발 계획 루트에서 2000여개의 고대 마야 문명 유적과 고고학 유물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일부 마야 원주민들은 벌써 이 계획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 제국을 건설해 살았던 마야인들의 후손들은 지금 마야 열차가 가로지르게 될 유카탄 반도에 아직도 살고 있다. 편리함도 좋고 관광 산업도 물론 좋겠지만 이익을 위해 천 년을 넘게 밀림 사이에 보존되어 있던 유적지가 파괴되는 것은 인류 역사에 크나큰 손해로 남을지도 모른다. 팔렝케가 이 상황을 지금 보고 있다면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옛날 밀림에서 숨어 살던 때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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