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1 10:05 (목)
우리나라의 충효와 의리, 지조를 상징했던 장도를 만드는 박종군 장도장
상태바
우리나라의 충효와 의리, 지조를 상징했던 장도를 만드는 박종군 장도장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5.17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도장 박종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은장도 하면 요즘에야 여성의 정절을 상징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여성들에게 장도는 바깥 출입을 할 때 꾸미는 장식품이나 집안일을 하는 데 쓰는 일종의 연장이었다. 밖에 나가 나뭇가지를 다듬어 젓가락을 만들고 과일을 깎는 등의 편리한 필수품이기도 했다. 신분에 따라 갖고 있는 은장도의 모양과 만드는 재료도 달랐고, 일상용과 장식용 등 은장도는 여러 용도로 만들어졌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 60호인 故 박용기 장인의 뒤를 이어 2대째 장도를 만들고 있는 장도장 박종군 장인은 2011년 2월 장도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아버지와 계속 장도를 만들어 왔고 현재는 아내와 아들 모두가 3대째 장도를 만드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을 역임 중이며 광양에서 광양장도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박용기 장인과 박종군 선생 

박종군 관장이 제작한 장도들 /광양장도박물관

'장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물건이 갖출 수 다양한 용도로 쓰였고, 사람들이 항상 소지하고 다녔기에 장도의 가치는 예로부터 높게 평가받았다. 특히 조선시대 성인 남녀들에게 가장 사랑받던 물건을 꼽으라고 하면 장도는 빠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애용되어 왔다. 장도는 용도별로 크게 나누어 실용성, 장신구, 예물용, 호신용으로 나눌 수 있다. 장도는 남자의 경우 저고리고름이나 허리띠에 장도끈목의 고리를 꿰어서 차고, 여자의 경우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차거나 노리개처럼 삼았다. 

남자의 경우 칼에 문구와 산수, 누각, 운학 박쥐 등을 새기고 여자의 장도에는 꽃, 나뭇잎, 국화, 난 등을 새기는 예술을 가미했다. 실용성, 장신구, 예물용, 호신용 등 용도별로 구분되어 사용된 장도는 신분에 따라 다른 종류의 칼을 몸에 지녀 신분의 등위를 가리는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장도장은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영주·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었으며 전라남도 광양 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섬세해 종류 또한 다양하다. 장도장 박종군 선생은 철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유명했던 이 광양에서 박용기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인이었던 아버지를 둔 덕에 박종군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장도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故 박용기 장인 /한국문화재재단

박종군 선생의 아버지 박용기 옹은 세상에 같은 칼은 많지만 의리, 충효의 정신이 담겨 있는 칼은 우리나라의 장도밖에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평생 칼날과 씨름하며 장도 제작의 외길을 걸어온 박용기 옹은 칼날에 일편심(一片心)이란 글귀를 새겨넣고 장도에 담긴 충, 효, 지조의 뜻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았다.

특히 일제가 민족정신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장도를 없애려고 했던 시기,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들었기에 장도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선인들이 지켜온 충절 관념이 희박해지고 장도에 대한 관심이 소원해진 물질 위주의 현실에서 그는 장도 문화가 전국에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일을 끝까지 고집했다. 온 국민이 마음 속에 장도를 하나씩 소장하는 시대가 오면 부정부패도, 풍기문란도 없어질 거라는 소망 때문이었다.

박용기 옹은 살아생전 광양에 장도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고, 모든 재산을 광양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2005년 박물관 건립이 현실화되었다. 2010년 12월 28일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보유자의 반열에 올랐고 박용기 옹은 2014년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리고 박종군 선생이 대를 이어 2011년 장도장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장도장 박종군 /문화재청

박종군 선생은 일찍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싶었지만 처음엔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가 반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장도는 10원을 벌면 100원어치 재료를 사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 삶을 꾸려 가기에는 벅찼던 것이다. 박종군 선생도 집의 형편을 알고 있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업을 잇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미대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그는 미대에 진학한다.

4학년이 되서야 그는 본격적으로 장도를 만지기 시작했다. 박용기 장인과 마찬가지로 박종군 선생은 장도에 '일편심'을 강조했다. 그는 "장도 정신은 '일편심'이며 도덕적 가치를 말한다. 장도는 바르게 살기 위한 칼, 나쁜 마음을 도려내는 칼이다. 남을 해치는 칼인 일본도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우리나라의 칼은 본질부터 다르며 예술 그 자체다"라고 전했다.

'일편심(一片心)'은 한 조각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곧은 마음을 가리킨다. 양날칼인 일본도는 남을 해치기 위해 만든 칼이지만 우리나라의 장도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 사극으로 인해 장도는 여성들만이 하는 전유물로 알려졌지만, 고려 이래로 남녀와 신분을 막론하고 각자의 위치를 상징하는 장도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고 한다. 

故 박용기 장인의 금은장첨자도 /한국문화재재단

장도의 종류도 다양하다. 실생활에 쓰이는 젓가락이나 귀이개 등을 꽂아 쓰는 첨자도, 칼집과 칼자루를 은으로 만든 은장도, 칼집과 칼자루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귀한 재료로 만든 갖은장도, 구하기 힘든 오래된 감나무 대신 보통의 감나무를 태워 칼집과 칼자루를 만들고 간단히 장식한 맞배기장도 등이 있다. 옛 조상들은 각각 쓰는 용도와 장식에 따라 여러 장도를 갖고 다녔다. 

박종군 선생은 작업할 때 장도에 '일편심'을 새기면서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그는 "장도의 정신은 충, 효, 의리 등 숭고한 가치, 즉 광양장도에 새겨진 ‘일편심’이다. 광양장도가 유명하게 된 것은 좋은 철의 산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양 온 신하들이 직접 그 철로 장도를 만들며 충심을 다진 데서도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은장매조문갖은을자도 /광양장도박물관
대추나무금은장환갖은네모도 /광양장도박물관

故 박용기 옹은 광양장도박물관 건립에 전 재산을 기부했고, 현재는 박종군 선생이 박물관을 운영 중이다. 광양장도박물관은 박용기 옹의 평생 숙원사업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던 장도를 끄집어내기 위해 그는 개관 전 계획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을 담당했고 박물관을 광양시의 공공 재산으로 남겼다. 박물관에는 62년간 박용기 옹이 만들어 왔던 다양한 장도와 세계 각국의 칼, 국가문화재와 지방문화재 명장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박물관을 유지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며, 전시 사업까지 진행하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한 실정이다. 박종군 선생은 박물관이 작품을 팔아 유지하는 상업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여러 국가지원 사업을 알아보며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요즘은 영화를 비롯, 사극 등의 드라마에 광양장도가 등장하거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다행인 편이다. 대신 장도가 상징성을 보이는 게 아닌 단순한 소품 식의 협업은 지양하고 있다고. 

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이수자 박건영 씨(3대) /광양시

박종군 장인의 아내 정윤숙 씨와 아들 박건영 씨도 장도장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작년 1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이수자인 박건영 씨는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의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심사’를 통과했다. 

이수자 박건영은 2013년 장도장 전수 장학생으로 입문해 ‘2017년 Jewely Creator 특성화 사업단 창의성 함양 경진대회 1위’, ‘2019년 제8회 대한황실 공예대전 특선’, ‘2020년 제25회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전국 대회에서 전통공예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종군 장도장은 “2011년 장도장 보유자 지정 이후 10년 만의 첫 이수자 배출로 장도장의 전승 계보를 잇게 됐다”고 전했다.

장도에 사용하는 금속 재료로는 금, 은, 백동, 구리, 철 등이 있다. 금, 은, 백동, 구리 등은 주로 칼집과 칼자루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철은 연마하여 칼의 몸(도신)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장도는 대부분 고철을 가져다가 가열해서 칼날을 만들지만 부가 재료가 비싸 만들고 싶은 칼들을 마음껏 만드는 데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다. 

장도장 박종군 장인이 제작한 '은장봉황문상감만년필' /포스코

2016년 포스코1%나눔재단이 한국문화재재단과 협업한 '세대를 잇는 작업-이음展 장도장' 전시에 참여한 박종군 선생은 "장도에는 금과 은이 들어가는데, 이 재료들이 많이 비싸서 만들고 싶은 칼이 있어도 망설여질 때가 있었다"며, 이음展을 준비하면서 재료에 대한 걱정 없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게 30년 장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형태를 잡는 과정 /문화재청
무늬를 새기는 과정 /문화재청

장도의 제작과정은 칼자루 만드는 과정, 칼집 만드는 과정, 장석 만드는 과정, 칼날 제작하는 과정, 조립하는 과정 등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화덕에 강철을 달구고 칼날의 형태를 잡은 다음 장도에 용, 학, 사군자, 파초 등의 무늬를 새겨 넣는다. 이후 칼자루에 칼심을 박고 칼을 칼집에 넣는 작업을 한다. 대개 은장도 1개를 만드는 데는 15〜18시간 정도 걸리며 박종군 선생의 공방에는 장도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연장과 도구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의 것이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지기를, 한 장인의 소망 

장도 제작 공개행사 /문화재청

작년 광양시는 ‘2020년 장도장의 숭고한 정신세계’라는 주제로,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재재단에서 후원한 장도 제작 공개 행사를 개최했다. 박종군 장도장이 3일간 광양장도전수교육관에서 진행한 이 행사는 장도의 원형을 보존·전승하고, 장도 안에 담긴 한국인의 혼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박종군 선생은 “장도를 만들 때 장인의 혼과 온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선친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행사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박종군 선생에게는 꿈이 있다. 운영중인 광양장도박물관의 규모를 더 크게 늘려 교육, 전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장도와 친해질 수 있게 하고, 우리나라를 넘어 해외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게 꿈이다. 2008년 파리 전시회에서 박종군 선생이 만든 장도는 전시품 1점, 판매품 10점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해외에서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칼은 처음 보았다"란 찬사를 듣기도 했던 그는 장도의 전통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되고, 나아가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칼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