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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첫눈이 내린 지구의 축소판, 비엔나의 스노글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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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첫눈이 내린 지구의 축소판, 비엔나의 스노글로브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4.0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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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글로브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손으로 집어 흔들면 하얀 눈이 쏟아지듯 내리는 모습의 스노글로브는 유리로 만들어진 투명한 구 모양으로, 안에는 갖가지 장식으로 된 모형과 액체가 들어 있다. 이 액체는 눈이 자유롭게 흩어질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스노글로브는 흔들릴 때마다 눈이 내리는 것처럼 하얀 입자들이 흩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흔든 다음에 다시 내려놓으면 눈은 액체 사이로 천천히 떨어진다. 때때로 오르골처럼 노래가 나오는 뮤직 박스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으며, 안의 모형뿐만이 아닌 원의 둘레에도 장식이 되어 있다. 수집가들에겐 중요한 취미 생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노글로브는 19세기 말 의료용 수술 기구를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던 어윈 퍼지가 만든 슈니쿠겔(Schneekugel)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공예품이자 기념품이기도 한 스노글로브는 비엔나 오리지널 스노글로브로도 불리며, 흩어지는 눈보라를 만드는 제조 공정이나 제작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는 만큼 보안이 엄격하다. 현재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은 어윈 퍼지의 4대 후손인 사빈느 퍼지가 맡아 운영을 하고 있다.


스노글로브의 시작 

어윈 퍼지 /Perzy family

1900년, 당시 24살이었던 어윈 퍼지는 의료 도구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도구의 새 디자인을 만들고 실험하며 시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중 지역 외과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쓸 수 있도록 밝은 전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의뢰를 수락한다. 그 당시엔 전구가 있었지만 많은 빛을 내지 못했고, 퍼지는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전구나 램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빛을 얻기 위해 촛불 앞에 물로 채워진 유리 구를 놓고 작업하는 구두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얻은 퍼지는 촛불 대신 전구로 그 방법을 재현하고 싶었다. 중세부터 쓰였던, 빛을 모으기 위해 사용한 물이 채워진 플라스크를 뜻하는 슈니쿠겔의 빛을 늘리기 위해 우선 금속 조각을 물에 넣어 봤지만 너무 빨리 가라앉아 첫번째 시도는 실패한다. 그는 듀럼밀을 부순 밀가루인 세몰리나 가루를 플라스크 안에 붓고 물을 채웠을 때 마치 눈이 내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걸 알게 된다.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퍼지의 첫 스노글로브인 마리아젤 바실리카를 모델로 한 작품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 

비록 전구의 광도를 개선하진 못했지만 그는 뜻밖에도 스노글로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이후 마리아젤 바실리카를 모델로 한 모형을 넣은 쉬니쿠글, 첫 번째 스노글로브를 만든다. 친구에게 주었던 스노글로브가 즉각 판매된 것을 보고, 퍼지는 이 물건이 혁신적인 발명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1905년까지 퍼지는 눈보라를 흉내내기 위해 다른 미니어처와 하얀 재료를 갖고 놀며 끊임없는 시도를 한다. 곧 스노글로브의 발명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자 퍼지는 동생 루드비히와 함께 스노글로브 생산에 전념하기 위해 비엔나에 가게를 열었다. 퍼지는 그의 발명품을 일명 '눈이 내리는 유리구' 라 불렀고, 특허를 신청했다.

스노글로브 /flickr

초기의 스노글로브는 검은색 세라믹 베이스에 액체를 채운 다음 밀봉된 유리 돔으로 구성되었다. 반짝거리는 '눈'은 모래나 톱밥을 사용해 만들었다. 그러나 점점 물품이 정교해지며 유리가 얇아지고 베이스도 가벼워졌다.

나중에 건강과 안전상의 이유로 유리는 대부분 하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고, 액체는 가벼운 기름에서 물과 부동액, 글리세롤의 혼합물로 진화했다. 글리세롤이 '눈'이 떨어지는 것을 늦추게 하는 것도 한몫했다. 오늘날의 스노글로브는 흔들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들으며 감상할 수 있는 뮤직 박스, 내부 조명, 심지어 '눈'을 움직이게 하는 전기 모터까지 포함되어 나오는 경우도 많다. 

퍼지는 20, 40, 60mm 등 세가지의 다른 크기로 스노글로브를 만들었다가, 1977년 120mm의 커다란 스노글로브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는 25mm가 가장 잘 팔리는 크기가 되었고,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스노글로브가 출품된 뒤 5개 업체가 뛰어들며 유럽에서도 스노글로브를 거래하게 된다.

비엔나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나온 스노글로브 /flickr

1908년 퍼지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새로운 형태의 유리구를 만든 업적으로 상을 받는다. 퍼지는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품질의 유리 구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퍼지가 개발한 스노글로브의 '늦게 쌓이는 눈'의 비법은 1급 비밀이며, 값싼 모조품과 달리 퍼지의 스노글로브는 약 2분간 휘날리는 눈보라를 감상할 수 있다. 

그 후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퍼지의 생활에도 타격을 주게 된다. 이 기발한 창작물에 대한 지원은 끊겼고, 스노글로브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1950년대 전쟁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면서 퍼지 2세가 가업을 이어받는다.

유리구 안에 있던 바실리카나 교회의 이미지는 다른 재미있는 것들로 대체되었다. 산타클로스, 눈사람, 자연의 풍경, 크리스마스 트리 등으로 모델은 다양하게 바뀌었고, 퍼지 2세는 수집 가능한 스노글로브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이 특별한 유리 구는 큰 히트를 쳤다.

에드윈 퍼지 3세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 전경 /flickr

에드윈 퍼지 3세는 1980년대 초부터 퍼지 가의 스노글로브 가게를 운영했고, 퍼지 기업을 '오리지널 비엔나 스노글로브'로 개명하고 스노글로브 박물관을 개관했다. 그가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을 땐 겨우 다섯 살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일에 열정이 컸던 그는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와 핸드폰 같은 많은 전자 제품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스노글로브는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이 이곳에 오면 커진 눈으로 다들 한두개의 눈 덩이를 손에 쥐고 흔드는데, 나에게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라고 전했다. 퍼지 3세는 그의 딸과 같이 가업에 종사했으며, 그는 자신의 딸이 이 박물관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 얘기했고 현재는 퍼지 4세인 사빈느 퍼지가 가업을 이어받아 일을 하고 있다. 

퍼지 3세는 독일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스노글로브를 활발히 만들고 있고 인기가 많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그는 퍼지 가의 '눈보라'에 대한 특허도 있으며, 다른 스노글로브보다 눈보라의 가라앉는 속도가 훨씬 느린 것이 자신들의 강점이라 밝혔다. 물론 제조 기법은 극비라 작업장의 일부분은 방문객들에게도 출입 금지라고 한다. 그는 특별한 디자인이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스노글로브를 만드는 과정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 

퍼지 가는 3D 프린터를 포함한 현대 기술을 사용해 스노글로브를 작업한다. 돔은 플라스틱이 아닌 벨기에산 고급 유리로 만들어지며, 화학물질 대신 알프스 산맥의 청정수를 첨가한다. 각 조각에 해당하는 금형을 만들고, 방문객들에게 컴퓨터로 디자인한 작품들을 보여주며 작업한다. 스노글로브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350여개가 넘지만 고객의 맞춤 주문 또한 가능하며 수천 개의 다른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다.

맞춤 주문은 총 매출의 20%를 차지한다고 하며, 원하는 이미지를 전달하면 생전 퍼지가 작업했던 그 가게에서 직원들이 미니어처 모델을 만든다. 매년 30만개 이상의 스노글로브를 생산하고 있으며 모든 작업은 직접 손으로 칠하고 수동으로 조립한다. 단, 유리 구만 외부에서 구입해 온다.

미국 대통령들의 스노글로브, 왼쪽 스노글로브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 것이고 오른쪽의 스노글로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헌정한 것 /flickr
작업장, 퍼지 가의 사람들 사진이 붙어 있다 /flickr

스노글로브 박물관에 방문하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약 20분 정도 투어를 할 수 있다. 스노글로브가 탄생한 방에서 투어는 시작되며 사진, 액자, 문서 및 작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스노글로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단계별 시연도 진행되며 투어가 끝나면 관람객들은 방문을 기념하는 특별한 기념품을 살 수도 있고 직접 주문제작을 할 수도 있다. 

영화 '시민 케인'의 오프닝에 나오는 스노글로브 /movieclips

스노글로브가 대중 매체에 등장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예는 영화 '시민 케인'의 오프닝 씬에 등장한 스노글로브다. 등장 인물인 찰스 포스터 케인이 스노글로브를 들고 침대에 누워 로즈버드를 중얼거리다 곧 스노글로브는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유리구 안의 세계가 부서진다. 전문가들은 이 연출이 영화에 등장할 케인의 이야기가 깨진 스노글로브의 흩어진 눈보라와 비슷하게 연출한 것이라 말한다. 

화장지가 들어간 스노글로브 /oew.at
마스크를 쓴 눈사람이 있는 스노글로브 /oew.at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두루마리 화장지 사재기로 한동안 난리가 났을 즈음 사빈느 퍼지는 이 광경을 보고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다. 그는 스노글로브 안에 화장지를 넣은 제품을 제작했다. 수술 마스크를 쓴 눈사람 모형의 스노글로브와 더불어 '코로나19 특별 에디션'인 웃지 못할 이 스노글로브는 안에 화장지 모형을 넣고 아래에 'stayhome(집에 있어라)'란 메시지를 넣었다. 이 스노글로브는 출시된 지 몇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열정있는 사람들이 이어가는 장인 정신 

비엔나 스노글로브 박물관 전경 /flickr

현재 스노글로브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빈느 퍼지는 원래 다른 꿈이 있었다고 한다. 연극과 연출에 관심이 있었고, 무대에도 직접 서고 싶었지만 그의 아버지인 에드윈 퍼지는 항상 사람들 앞에서 이 아이가 자신을 잇는 장인이 될 거란 말을 했다고.

지금도 사빈느에게 연극이나 뮤지컬은 관심이 있지만 스노글로브를 인생의 우선으로 두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세상에 같은 내용의 공연과 영화는 많지만 똑같은 스노글로브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그는 전했다. 

오늘날에도 비엔나의 스노글로브들은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고 있다. 어윈 퍼지와 그의 가족들은 스노글로브를 비엔나의 최고 기념품으로 만들었다. 오래된 교외 주택들이 몰려 있는 골목의 한 끄트머리에 있는 가게에서 퍼지 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티브를 발명하고, 스노글로브를 발명했던 어윈 퍼지처럼 열정을 가지고 스노글로브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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