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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와 샤넬은 처음부터 사람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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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와 샤넬은 처음부터 사람 이름이었다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2.25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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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인간 구찌’, ‘인간 샤넬’ 등의 신조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특정한 명품 브랜드 앞에 ‘인간’이 붙는 이 명사는 브랜드의 옷을 잘 소화하거나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셀러브리티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유명 연예인을 가리켜 많이 사용되는 이 단어는 ‘착붙’이라는 단어와도 연관이 있다. ‘착붙’ 역시 새롭게 쓰이고 있는 단어로 화장이나 패션 등이 착 달라붙듯 잘 어울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벌써 다수의 연예인이 이 새로운 신조어의 주인공으로 지목받고 있다. 가수 아이유, 방탄소년단의 뷔, 엑소의 카이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의 아이템을 착붙으로 소화하여 ‘인간 구찌’라고 불리고 있으며 가수 블랙핑크의 제니, 빅뱅의 지드래곤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샤넬을 잘 소화하며 ‘인간 샤넬’이라 불린다. 
 

'인간 샤넬'이라 불리는 가수 블랙핑크 멤버 제니, 제니 인스타그램@jennierubyjane
'인간 구찌'라 불리는 가수 아이유, 아이유 인스타그램@dlwlrma 

이런 현상은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와 셀러브리티의 이미지를 동기화하려는 관점에서 자주 쓰이는 신조어지만 사실 구찌와 샤넬 그리고 그 외의 여러 명품 브랜드명은 처음부터 사람의 이름이었다. 

샤넬은 설립자이자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이름에서 유래된 브랜드명으로 구찌 역시 같은 맥락으로 구찌오 구찌의 이름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의 정신, 심미성이 브랜드에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오히려 MZ세대에게는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는 셀러브리티가 명품의 대명사가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샤넬과 구찌의 공통점은 잘 나가는 명품 패션 브랜드라는 것에 있다. 샤넬은 루이비통, 에르메스와 함께 3대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구찌는 마르코 비자리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영입되면서 전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과감하게 변화했고, 다수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고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2017년 3분기 매출에서 2016년 동기간 대비 49.9%의 증가를 이뤘다. 또한 영국의 컨설팅 업체인 파이낸스에서 선정한 2020년 명품 브랜드 가치 순위에 따르면 구찌는 2위에 랭크 되며 또 한 번 현시대 가장 주목받는 패션 브랜드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실존했던 진짜 ‘인간 샤넬’, ‘인간 구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스포트라이트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실제로 자신의 정신과 디자인성을 브랜드에 접목한 그들의 생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인간 샤넬, 여성의 옷에 자유를 더하다 

현대의 브랜드 샤넬의 패션을 떠올리면 트위드 정장 재킷, 고급스러운 퀼팅 백 등을 먼저 꼽는다. 워낙 하이엔드 브랜드인 탓에 여성스럽고 우아한 디자인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다. 

샤넬의 생애 모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볼드한 진주 목걸이, 모자 역시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땐 다소 페미닌한 요소처럼 느껴지지만, 정말 샤넬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집중해야 한다. 
 

Gabrielle Bonheur Chanel, Marion Pik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Gabrielle Bonheur Chanel, Marion Pik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20세기 여성 패션의 혁신을 주도했다고 알려지는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8월 프랑스의 소뮈르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의해 유년기 시절 수녀원에서 생활하며 바느질을 배웠다. 

수녀원 생활은 훗날 그녀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 준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수녀원 생활에 대해 그녀는 훗날 사뭇 부정적으로 회상했지만, 그로 인해 샤넬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녀복에서 기인한 블랙 앤 화이트 디자인 등 여러 가지로 금욕적이고 절제된 훗날의 디자인은 이 시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검정색은 상복에서 주로 쓰이던 색상이었으나 그녀는 가장 모던하면서도 시크한 형태로 검정색을 여성의 일상복에 적용하여 디자인한다.  
 

Mathieu Acker, Pexels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감을 준 블랙앤 화이트, Mathieu Acker, Pexels

무료 원생이었던 샤넬은 수녀원 내에서 차별을 받는 무리에 속했다. 그녀에게 수녀원 생활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녀원의 엄격하고 절제된 분위기의 속성이 샤넬에게는 맞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그녀의 디자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엄격한 수녀원 생활 속에서 브랜드의 모티브를 발견하지만 샤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은 어딘지 양면적인 면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샤넬이라고 하면 본명인 ‘가브리엘’보다 ‘코코’라는 예명이 더 익숙하다. 18살 물랭의 기숙학교로 옮겨 졸업한 후 그녀는 낮에는 보조양재사로 일했고 밤에는 술집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렸던 별명이 코코인데 그녀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코코 샤넬이라 부르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코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시작해서 그녀의 브랜드가 전 세계에 익숙하게 각인되어 버린다. 

그녀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여성복의 역할을 다른 관점에서 디자인했다는 것과 여러 남성과의 염문을 꼽는다. 샤넬이 여성 패션에 있어 큰 부분을 변화시켰다는 것에는 언제나 이견이 없으나 그녀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항상 여러 가지 평가가 존재했다. 

샤넬은 아서 카펠의 후원으로 파리 패션 거리 캉봉가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가게를 열게 된다. 지금은 샤넬의 패션이 지극히 여성스러우며 고급스러운 명품의 대명사가 되었으나 그때 당시에는 오히려 수수하고 간편한 모자의 디자인이 상류층 여성들에게 외면당했다. 물론 당시 유명한 연극배우가 샤넬의 모자를 착용하고 연극에 등장하면서 상류층 여성들에게 입소문이 나게 된다. 

샤넬 패션이 가진 디자인의 속성은 의외로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부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샤넬은 오히려 코르셋, 치렁치렁하여 활동에 제한을 미치는 화려한 옷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서 카펠을 만나기 전 그녀를 프랑스 상류 사회로 진출시킨 젊은 장교 발잔의 집에 머물 때는 남성용 승마복과 스웨터를 개량해 여성의 옷을 만들기도 했다. 부티크를 오픈한 후 가장 먼저 선보인 것도 휴양지에 어울릴 수 있는 단순하고 편의성이 높은 디자인이었다.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은 자유로운 활동에 불편을 줄 수 있다, Caleb Oquendo, Pexels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은 자유로운 활동에 불편을 줄 수 있다, Caleb Oquendo, Pexels

첫 번째로 출시된 의상은 여성복인 ‘카디건’이다. 그녀는 항구도시인 도빌의 차고 습한 날씨에서 이 카디건을 착안한다. 폴로 경기장에서 남성들이 입는 니트 셔츠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했다고 알려진다. 카디건은 보온성을 가지고 있어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패션 소재이며 느슨하고 오버핏으로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기존 여성들이 입어야 했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필요 없게 만들었다. 
 

Gabrielle Bonheur Chanel,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Gabrielle Bonheur Chanel,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렇게 샤넬은 여성의 옷을 더 간결하게, 더 시크하게 디자인했다. 남성 속옷에 사용됐던 얇고 가벼운 천을 투피스에 활용하기도 하고, 장식적 요소가 많은 옷 보다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서 여성의 매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큰 호주머니를 달아 실용적으로 제작한 짧은 소매 재킷이나 코르셋을 하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상의와 하의 등 활동성을 더한 샤넬의 패션이란, 자유로운 복장을 원했던 그 시대 여성의 욕구를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샤넬은 패션에서만큼은 순종적이고 시대의 모습에 순응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화려한 액세서리로 인한 허례허식이 만연했던 기존의 틀을 깨고 그녀는 최초로 모조 소재의 코스튬 주얼리를 디자인했다. 모조 보석으로 만든 액세서리는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그녀는 ‘보석이란 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샤넬의 초상에서 볼 수 있었던 볼드한 진주 목걸이 또한 모조 진주로, 보석이란 패션의 일부라는 그녀의 신념이 드러난 스타일링이라고 볼 수 있다. 

샤넬은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시크하고 가볍게 스타일링에 담아냈으며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페미닌한 요소 역시 감추지 않는 것으로 패션의 양면성을 표현했다. 리틀 블랙 드레스, 최초의 배합 향수인 샤넬 넘버5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며 그녀의 패션과 삶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영향을 미쳤다. 
 

샤넬의 매장 픽사베이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샤넬의 매장, 픽사베이
샤넬 전시회에서, 샤넬 넘버 5 향수 픽사베이
샤넬 전시회에서 샤넬 넘버 5 향수 ,픽사베이

샤넬이 가진 패션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과 옷을 바라보는 정교한 시선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녀의 성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샤넬의 정치적인 성향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나치를 지지했다는 점, 종전 후에는 부역 혐의를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여성의 패션에서 코르셋의 쓸모를 없앤 것은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패션의 대가였던 폴 푸아레였으며 샤넬은 페미니즘 운동과는 관계가 없다는 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패션이 페미니즘 정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여성의 옷에서 활동성과 자유성을 찾았다는 부분에서 여성의 복장을 변화시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샤넬에 관한 여러 가지 시선과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인간 샤넬의 삶을 군더더기 없이 들여다보면 더 없이 매력적이고 패션에 대한 그녀만의 영민한 시선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으며 여성의 몸에 자유를 입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 구찌, 이탈리아 장인 정신을 담다 

구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여러 유명인도 사랑했던 브랜드다. 이탈리아 패션지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유명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은 구찌의 처음은 영국 런던 호텔의 벨보이의 손에서였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브랜드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피렌체에서 가업으로 밀짚모자를 만드는 집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밀짚모자 제조가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가업으로 잇지 않고 당시 전 세계 부자들이 방문하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했다. 
 

Guccio Gucci c.194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Guccio Gucci c.194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구찌는 이때 벨보이로 일하면서 고급 호텔에 손님으로 방문하는 부자들의 여행용 가방을 보며 흥미를 느끼고 영감을 받게 된다. 그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 공방에서 기술을 배우고 그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따서 구찌를 창업한다. 

구찌의 특징적인 점은 직접 가죽을 배우고 기술을 익혔다는 것이다. 그 이후 말의 안장 같은 가죽 용품이나 이런 디자인을 적용한 가죽 가방을 판매했고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 그의 가방은 여러 고객에게 판매되기 시작하며, 그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명성을 얻게 된다. 

현대에도 구찌의 가방을 살펴보면 전면에 디자인된 금색 체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디자인은 신발에도 적용되는 디자인으로 구찌의 여러 가지 상징이 되는 디자인 중 하나다. 이는 구찌의 홀스빗 라인으로 ‘말 재갈’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장식이다. 
 

홀스빗 가죽 신발, 구찌 공식 인스타그램 @gucci

구찌는 창업 후 초기에 승마용품을 생산했다. 덕분에 승마를 즐기는 이탈리아 귀족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브랜드의 제품 라인 확대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 이후로 생산 제품을 확대하며 판매하기 시작했고 여러 종류의 가죽 제품을 승마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했다. 
 

승마로 부터 디자인의 모티브를 얻었던 구찌 픽사베이
구찌는 승마로 부터 디자인의 모티브를 얻었다 /픽사베이

구찌를 상징하는 디자인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유명한 뱀부백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가죽 등의 소재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탈리아가 패전국이 되면서 대부분 물자를 조달하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 

가죽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업체가 도산하게 되며 구찌의 장인 정신을 담은 가죽 가방은 물자 조달의 문제로 생산이 어려워 질 뻔하지만 이때 그의 첫째 아들 알도 구찌가 돼지 피혁을 기존 가죽의 대체재로 찾아낸다. 그리고 그 당시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이에 접목해서 손잡이를 만들어 뱀부백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대나무 손잡이가 돋보이는 구찌의 가방 /Godisable Jacob, Pexels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구찌 제품들 /Jackie Jabson, Pexels 

구찌는 여느 하이엔드 명품 브래드가 그래왔던 것처럼 역시 많은 셀러브리티의 애정을 받았다.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자식인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그 경영을 이어받게 된 후에도 브랜드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다.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판매율 저조라는 큰 산을 만나게 되지만 이 역시 수장이 교체되면서 현명하게 극복하게 된다. 

명실상부 젊고 힙한 브랜드로 거듭나게 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구찌는 여전히 변화와 트렌드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있다. 오래된 브랜드의 생명력을 훌륭한 디자인성, 차별화된 경영방식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인간 구찌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통찰력 있는 판단으로 새로운 패션을 선도하는 능력을 선보였던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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