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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열정이 만들어낸 소의 거대한 울음소리, 김천징장 故 김일웅과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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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열정이 만들어낸 소의 거대한 울음소리, 김천징장 故 김일웅과 김형준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2.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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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유기 /김천고려유기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방짜유기의 '방짜'는 놋쇠를 녹여 두드려 만든 생활 도구를 뜻한다. 옛날부터 경북 김천은 유기 생산지로 명성이 높았고, 특히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로는 김천이 유명했다고 한다. 김천시 양천동의 거창방면 국도변에는 아직도 가내수공업 형태의 유기 공방이 밀집되어 있다.

김천에서 이렇듯 유기 공방이 발달한 이유는 지역의 시장성과 교통성을 들 수 있다. 김천은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삼도 경계에 위치해 각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들이 모이기에 용이했고 삼도의 경계까지 배가 닿을 수 있는 항구 역할을 했던 김천 지역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구와 경산 등지에 흩어져 있던 유기 장인들이 김천으로 몰려들었고, 전국의 보부상들은 김천에서 유기를 사들인 후 다른 지역으로 되팔아 큰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故 김일웅 장인과 김형준 전수자 /김천고려유기

그러나 6.25 이후 놋쇠 그릇은 스테인레스에 밀려나긴 했지만, 징과 꽹과리는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으로 대체할 수 없어 지금도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어지고 있다. 경북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故 김일웅 장인은 4대째 함양에서 징을 만들어 온 외조부 밑에서 6년간 기술을 익힌 후 외삼촌과 김천에 내려와 40여년간 징과 꽹과리를 비롯한 유기 제품을 만들었다.

현재는 아들인 김형준 장인이 대를 이어 방짜유기 제작의 ‘대정(대장장이의 우두머리)’을 담당하고 있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 김천고려방짜유기를 운영 중이다. 김천고려방짜유기에서는 놋그릇 세트나 예단반상기, 방짜그릇, 방짜유기수저 등의 작품들이 혼수예단, 생활유기 등의 목적으로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다. 


故 김일웅 장인과 김형준 장인

김천진장 故 김일웅 장인 /문화재청 

故 김일웅 옹의 외할아버지는 경남 함양에서 4대째 가업으로 징을 만들다가 1910년대 초 김천으로 이주해 외숙부와 아버지에게 가업을 잇게 했다. 작은 아이였던 김일웅은 집에 있는 형들과 함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유기 일을 배웠다. 김일웅의 어머니 김우달은 어린 나이에 징 만드는 일을 배우는 아들이 안타까웠지만 그만큼 아들을 위해 온갖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웅은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외조부의 영향을 받으셔서 유기에 대한 식견이 남다르셨는데, 특히 내가 만든 징 소리를 들려 드리면 단박에 잘잘못을 짚어 주셨다'고 회고했다. 

묵묵히 일을 배우고 숙련하던 장인은 1977년 제7회 전국 관광 민예품 경진 대회를 시작으로 1978년과 1982년 3회에 걸쳐 수상하면서 유기 장인으로서의 명성을 전국에 알렸다. 1980년에는 김천 문화 발전에 끼친 오랜 공적이 인정되어 김천시에서 가장 큰 상인 시민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9호 김천징장으로 지정되며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김일웅 옹은 '이틀간 두드리고 때려야 징 하나를 만든다. 방짜로 만든 징이나 꽹과리는 놋 두께가 고르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하니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라며, 징은 울음의 끝이 올라가야 하고 꽹과리는 왈왈대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야 제격이라고 그는 전했다. 즉 징의 생명은 곧 소리이며, 그는 '이 소리는 단지 쇠의 소리가 아니다. 모든 소리는 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최소 7가지 정도의 징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자부했다.
 

김형준 장인 /안동 MBC영상 캡쳐

故 김일웅 장인 타계 후 가업을 승계한 김형준 장인은 ‘기술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먹고 산다’던 故 김일웅 옹의 뜻도 있지만, 자신이 대를 잇지 않으면 지금까지 내려왔던 중요한 기술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망치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 아버지가 아랫사람들에게 '네가 징소리를 낼 줄은 아느냐'라고 다그쳤을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다고 회고한다. 물론 아들인 자신에게도 다를 바 없었다고. 이어 아버지는 늘 '숙달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기술을 터득하는 데 손의 감각이 중요해 20년 이상 쉬지 않고 일해야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말했다고 전했다.  

예로부터 징의 생명은 소리에 있으며 지방에 따라 왕왕거리는 소리, 굽이치는 소리, 길게 울리는 소리, 끝이 올라가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낸다. 제대로 된 징의 소리는 깊고 긴 여운이 있으며 호소력이 있는데, 김천징의 소리는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유기가 발달한 김천에서 만드는 징은 황소의 울음소리처럼 구성지고 끝을 길게 끌다가 끝이 올라가는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어릴 적부터 어깨 너머로만 배우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징을 공부하기 시작한 김형준 장인은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울음잡기를 터득했다고 한다. 징 소리를 조율하는 '울음잡기'는 징의 제작 과정에 있어 마지막이자 중요한 단계로, 故 김일웅 옹은 황소 울음소리와 비슷한 징 소리를 잡기 위해 우시장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김형준 장인 또한 인근에 있는 우사에 들러 소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징 소리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김형준 장인은 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소리 잡기라고 한다. 좋은 징 소리는 황소의 울음 소리가 나며, 깊고 웅장하게 퍼지는 울림을 가져야 하고 여운은 길게 뻗어 하늘로 치솟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방짜란 결국 수천 번의 두드림이고, 좋은 징은 이런 방짜의 과정 없이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방짜의 과정을 거쳐 만드는 김천징

방짜유기 수저세트 /김천고려유기

최근 유기의 효용성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유기로 만들어진 식기류들의 인기가 오르고 있다. 방짜유기는 생명의 그릇이라고도 부르는데, 유기에는 해충을 쫓아내는 신비한 효능이 있으며 미네랄을 생성하고, 멸균 효과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엔 미나리에 붙어 있던 거머리를 놋수저로 쫓았다고 하니, 옛 조상들은 보온과 보냉 효과가 뛰어났던 놋쇠 그릇에 대한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수십 번의 열처리를 통해 두드려서 만든 방짜쇠는 아무리 높은 열을 가해도 인체에 유해한 성분 검출이 전혀 없는 무독성, 무공해 금속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놋그릇은 소금이나 간장 등을 담으면 변질이 되지만 방짜유기는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라 가치가 더 높았다. 특히 비빔밥이나 냉면 그릇으로 사용하면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그 온도가 유지되어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이 전쟁 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놋쇠로 된 모든 것을 빼앗아가 유기 산업은 점점 쇠락했고, 해방 후 연탄을 쓰게 되면서 연탄가스에 민감한 놋그릇 대신 스테인리스 제품들이 인기를 끌어 유기 산업은 잠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유기의 수요가 다시 늘면서 사라질 뻔한 김천의 방짜유기도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현재 김천고려방짜유기는 그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방짜유기 제작 기술을 가문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닌, 기술 전수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형준 장인은 “예전에는 방짜유기 제작이 가문의 비기였지만 이제는 기술 전수에 주력하고 있으며 방짜유기 하면 김천이 떠오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기 작업장 /김천고려유기

징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고로 천 번이 넘는 망치질이 필요하다고 전해져 온다. 징을 제작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구리 78%, 주석 22%의 비율로 녹여 만든다. 녹은 쇳물로 손바닥만한 바다기를 쇠판에 올려 높고 "앞매꾼", "전매꾼", "센매꾼" 세 명이 번갈아 메로 두들겨(도둠질)납작한 초바다기를 만든다. 지금은 세 매꾼 대신 기계로 두들기며, 바다기 3장을 포개어 한데 쥐고 달구어 두들겨 가장자리를 오그려 징의 형태인 이가리를 만든다. 

이 이가리를 '대정'이 불에 달구고 집게로 잡아 돌리면서 쇠판 위에 망치질을 해 바닥을 얇고 반반하게 고르는 싸개질을 한다. 이때 바닥 두께는 가운데가 두껍고 중간은 얇으며 가장자리는 보통으로 고르는 작업을 하는데, 자칫 고르기를 잘못 하면 징이 깨질 수 있다. 싸개질이 끝나면 이가리를 다시 불에 달구었다가 물에 담가 강도를 조절하는 담금질을 한다. 이 담금질이야말로 징 소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제일 중요한 작업이며, 이 담금질에 김천징의 비법이 숨겨져 있다. 
 

김천징 /김천사이버갤러리

담금질은 보통 밤 11시에 시작한다. 이때 쇳물의 색을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하며, 이튿날 오전 6시가 되어야 담금질이 끝난다. 보통 작업장의 온도는 400℃에서 700℃ 사이며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그릇이 녹아버리기 때문에 주로 밤부터 새벽 사이에 작업한다. 징의 기본 모양이 만들어지면 황새망치로 두들겨 울음잡기를 하는데, 첫번째로 풋울음을 시험한 후 태문양을 돌려 새기고 구멍을 뚫어 손잡이 끈을 맨다. 이때 끈을 매면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소리를 푸는 역할을 하는 주먹망치와 소리를 조이는 곤망치로 다시 두들겨 재울음을 잡는다. 재울음은 망치질 한 번만으로도 전혀 다른 소리가 나는 예민한 작업이라, 울음잡기까지 마치면 비로소 김천징이 완성된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전통을 생각하는 장인의 소망 

김천징장 특별전 /김천시

2018년 11월, 경북 김천시는 전통문화 계승 발전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도 무형문화재 김천징장 특별전을 개최했다. 김천징장 김형준 전수조교의 작품들로 전시되었으며, 징과 꽹과리로 대표되는 방짜악기와 다양한 종류의 방짜유기들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여담으로, 김형준 장인은 공방에서 한 달에 5일은 징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엔 방짜유기를 만든다고 한다.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업을 지켜 오신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런 가업을 대물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전통 문화와 김천징의 소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故 김일웅 옹 또한 살아생전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시점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방짜에 대해 실습할 수 있고 더 알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김형준 장인에겐 앞으로 두 가지의 꿈이 있다. 부친의 작업 도구와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념관을 짓는 것과, 부친의 꿈이기도 했던 2미터 크기의 대형 징을 제작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그의 꿈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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