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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세계의 건축 문화재도, 그의 펜화도 오래 기억에 남다, ‘김영택 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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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세계의 건축 문화재도, 그의 펜화도 오래 기억에 남다, ‘김영택 펜화전’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2.09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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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펜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일이 줄어들면서, 필사도 새로운 취미가 됐다. 그만큼 사람들이 사각거리며 쓰는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말도 된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펜화로 유명한 김영택 화백의 그림도 그렇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만년필이지만, 수십만 번의 획이 모여 부드러운 영감을 전해준다. 특히나 요즘처럼 힘든 시기, 그가 그린 세계 곳곳의 건축 문화재는 여행하는 듯 오래 지켜보게 된다. 역사와 문화의 거리 인사동에서 작가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작품의 숨결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30년의 화가 생활을 돌아보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지난 1월 20일부터 열린 ‘김영택 펜화전’은 코로나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아무래도 이번 전시회가 그의 유작 전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는 그가 30년 동안의 작품활동을 돌아보는 회고전 성격으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전시 일주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영택 펜화전이 열린 인사아트센터 / 전은지 기자
김영택 펜화전이 열린 인사아트센터 / 전은지 기자

전시장에는 김영택 화백의 펜화 40여 점은 물론,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쓴 펜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영국, 이탈리아, 인도 등 세계 각국의 건축 문화재를 그린 것들이다.

그가 이렇게 건축물을 펜화로 남기게 된 것은 서양의 기록화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주관한 가나문화재단에 따르면, 펜으로 기록하며 기록화가 발달했던 서양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그는 기록의 수단으로 ‘펜’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단순히 건축 문화재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서 없거나 변화된 모습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겐 그의 펜화를 보는 것 자체가 추억이 되기도 했다. 관람하던 중년의 여성 관람객들은 그의 펜화를 보며 “학교 다닐 때 펜글씨 교본 사서 쓰던 생각이 난다”며 즐겁게 웃기도 했다.
 

평일 낮이었지만, 그의 펜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 전은지 기자
평일 낮이었지만, 그의 펜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 전은지 기자

김영택 화백은 처음부터 작품활동을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던 그는 20년 넘게 일해왔다. 그러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삽화가 귀스타프 도레의 펜화를 보고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둘러보며 여행하는 느낌

김영택 화백은 작품활동을 하면서 중앙일보에 ‘김영택 화백의 펜화 기행’이라는 코너에 10년간 연재를 했다고 한다. 10년이라는 시간도 대단하지만, 여행을 다니며 펜화로 그림 건축 문화재를 기록했다는 열의도 남달라 보인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따라 동선을 옮겨 다니다 보면, 서울의 과거로도 떠났다가, 가까운 일본과 중국, 멀리 유럽까지 떠나게 된다.
 

서울 경복궁 경회루 연못, India ink on Paper, 24.6×35.5cm, 1994 / 전은지 기자
서울 경복궁 경회루 연못, India ink on Paper, 24.6×35.5cm, 1994 / 전은지 기자
일본 효고 히메지성, India ink on Paper, 46.3×63.6cm, 2009 / 전은지 기자
일본 효고 히메지성, India ink on Paper, 46.3×63.6cm, 2009 / 전은지 기자
중국 베이징 자금성 천추정,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0 / 전은지 기자
중국 베이징 자금성 천추정,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0 / 전은지 기자

그의 펜화는 오로지 검은색으로 그린 것들이라 색은 없다. 하지만, 여러 겹의 선이 명암을 이루며 여행지에서 직접 건축물을 바라보는 듯 생동감을 전한다. 마치 사진으로 찍고 나서, 드로잉 필터를 씌운 듯하다.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요르단 제라쉬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요르단 제라쉬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가느다란 펜으로 어떻게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세세함도 돋보인다.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은 기왓장이, 영국이나 이탈리아 등의 서양 건축물에는 벽돌이 많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자재가 쓰였지만, 김영택 화백의 작품은 그 개수까지 다 세어서 그린 것같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느낌이다. 기와와 벽돌의 질감도 느낄 수 있다.
 

서울 청계천 수표교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36×50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청계천 수표교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36×50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영은문 1890년대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36×50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영은문 1890년대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36×50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기념비전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26×36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기념비전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26×36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혜화문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36×50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혜화문 복원화, India ink on Paper, 36×50cm, 2007 / 전은지 기자
서울 서십자각 1900년대, India ink on Paper, 48.4×63.6cm, 2008 / 전은지 기자
서울 서십자각 1900년대, India ink on Paper, 48.4×63.6cm, 2008 / 전은지 기자

또한,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의 작품은 지금은 볼 수 없는 복원화나 옛 모습을 담은 것도 많다. 그 옛날 빨래터로 쓰였을 청계천 수표교 복원화에는 정감 어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독립문으로 잘 알려진 영은문은 초석만 남아있어 옛 모습을 알기 어렵다. 그런데 그의 작품 속 영은문은 화려함 그 자체다. 물론 주변의 초가집이 있어 그 웅장함이 더해지지만,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건축물까지 신경 썼던 조상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한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 2번 보아야 멋지다

김영택 화백은 하나의 그림을 위해 0.1mm 펜촉을 사포로 갈아 0.05mm, 0.03mm로 만들었다. 가느다란 펜촉과 함께 많게는 80만 번까지 선을 긋는다. 2014년 코리아나 여름호 대담에서 김 화백은 “무념무상으로 선을 그을 뿐입니다. 때로는 한숨부터 나오지요, 불경을 사경하는 마음으로 한 획 한 획 철필을 그어갈 뿐입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는 무념무상으로 긋는다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면 누구보다 많은 생각하고 그리는 듯하다.
 

그가 남긴 여러 개의 펜과 펜촉 / 전은지 기자
그가 남긴 여러 개의 펜과 펜촉 / 전은지 기자

이렇게 세세한 그림은 한번 보아서는 안 된다. 멀리 떨어져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2번은 보아야 한다. 그림을 멀리서 보면 멀리 보이는 대로, 가까이 보면 가까이 보이는 대로 마치 카메라 렌즈를 조절해 멀리 있는 풍경을 줌인해서 찍는 느낌이다. 김 화백은 원근법의 마술사라고 칭해도 될 정도다.
 

병산서원 만대루, India ink on Paper, 48×63.6cm, 2011 / 전은지 기자
병산서원 만대루, India ink on Paper, 48×63.6cm, 2011 / 전은지 기자
석파정 유수성중관풍루, India ink on Paper, 43×58cm, 2011 / 전은지 기자
석파정 유수성중관풍루, India ink on Paper, 43×58cm, 2011 / 전은지 기자
일본 교토 평안신궁 태평각, India ink on Paper, 41×58cm, 2009 / 전은지 기자
일본 교토 평안신궁 태평각, India ink on Paper, 41×58cm, 2009 / 전은지 기자

가나문화재단은 그의 작품 속 기법을 두고 ‘김영택 원근법’이라고 칭했다. 환경에 따라 초점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의 시각적 특성을 살린 그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의 기왓장 하나하나, 벽돌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펜은 서양의 것이지만, 그가 표현한 김영택 원근법은 동양화와 비슷해서 동서양의 조화로움을 엿볼 수 있다.
 

일본 오사카 오사카성,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0 / 전은지 기자
일본 오사카 오사카성,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0 / 전은지 기자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의 일부분. 기둥의 굴곡을 직선과 대각선을 여러 겹 그거 표현했다. 명암과 입체감이 모두 느껴진다 / 전은지 기자
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의 일부분. 기둥의 굴곡을 직선과 대각선을 여러 겹 그거 표현했다. 명암과 입체감이 모두 느껴진다 / 전은지 기자

그 원근법에는 명암의 표현이 더해진다. 보통 명암을 표현하려면 ‘면’으로 여러 겹 칠하는데, 그는 직선 혹은 대각선을 여러 번 그어 표현했다. 어둑어둑한 그림자 하나도 선으로 수십 번을 그어 어두운 ‘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와, 어떻게 이렇게 선을 세세히 그었을까’ 하며 감탄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 작가였다면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선을 긋기보다는 마구 칠해서 표현했을 텐데 하면서. 풍경 속 건축물을 그린 작품을 보면 그 명암의 표현이 무엇인지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선을 긋다가 점을 찍듯 표현하거나 아예 긋지 않고 여백을 남겨 구름을 표현한 부분도 멋지다. 그 선이 자를 대고 그은 듯 일정하다는 점도 놀랍다. 마치 그의 손 자체가 자가 된 듯, 물아일체를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멀리 또는 가까이 보아야 한다. 물론 가까이 보면, 펜화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펜의 흔적이 그대로 담기다

작품을 보면, 한 번쯤 의구심을 갖게 된다. 진짜 이런 걸로 그렸을까 하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물을 음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궁금해진다. 그러나, 김영택 화백의 작품은 그런 의구심을 단번에 깨도록 만든다. 볼펜 중에 가장 유명한 모나미 153 볼펜을 써본 사람들이라면, 잉크가 뭉쳐 나오는 ‘볼펜 똥’을 알 것이다.
 

영국 런던 타워브리지,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영국 런던 타워브리지,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이탈리아 로마 판테옹,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이탈리아 로마 판테옹,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셀,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셀,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2 / 전은지 기자
일본 교토 평안신궁 태평각 작품 일부.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잉크가 뭉쳐진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 전은지 기자
일본 교토 평안신궁 태평각 작품 일부.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잉크가 뭉쳐진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 전은지 기자

오래 써서 펜촉에 묻어 나오는데, 그게 꼭 사람의 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잔여물을 빛에 비추면 반짝거리는데, 김영택 작품도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부분이 눈에 띈다. 잉크가 뭉친 듯한 부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자국 또한 그의 노력의 한 부분이다. 괜히 50만 번, 80만 번의 선을 긋는 것이 아니다. 잉크가 뭉칠 정도로 선을 그어서 탄생하는 하나의 그림은 작품인 동시에 오래 남는 '기록'이 된다.
 

캄보디아 따프럼,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0 / 전은지 기자
캄보디아 따프럼, India ink on Paper, 41×58cm, 2010 / 전은지 기자

전시회 중앙과 거의 마지막 동선에는 ‘캄보디아 따프럼’을 그린 작품이 있다. 엄청나게 큰 고목의 뿌리가 집을 삼키는 듯한 자연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그 왼편에는 모자를 쓴 사람이 한 명 서 있는데, 그가 김영택 화백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무뿌리와 그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더욱 커 보이는 원근법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생애 마지막 전시회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작품이었을까. ‘김영택 펜화전’은 50만 번의 선이 마음속에 그대로 그어지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이제는 그가 그리는 건축물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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