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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석장의 힘, 이재순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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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석장의 힘, 이재순 장인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2.05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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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석장 /문화유산채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석장이란 성곽의 성벽을 비롯한 각종 건축·설치물의 석구조물과 불상·석탑·부도·석교나 석비 등 다양한 석조각품(석공예품)을 제작하거나 복원, 보수하는 이를 말한다. 석조물의 전통 양식을 재현하는 데 있어 충분한 기량과 예술성, 조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보통 전통 공구를 사용하여 전통 기법에 따라 작업한다.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에 남아 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이 석장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석조 문화재는 삼국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어 우리나라의 석조물 제작 기술이 꽤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옛날 석재는 사찰과 궁궐 건축의 주요 자재였고, 탑과 불상 등 각종 조형물의 소재였다. 전쟁이 많은 때였던 만큼 돌로 쌓는 성의 축조 또한 활발했다. 대표적인 석조형물로는 미륵사지석탑,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중원 고구려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등을 꼽을 수 있다. 

국가에서는 시대의 변화, 현대적 기계와 장비의 도입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석조물 제작의 전통 기법과 기능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석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했다. 석조각 분야의 이재순 석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석장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2007년 9월 17일 지정되었다. 


석재의 종류와 쓰는 도구

 

이재순 석장의 석호, 화강암 재질의 백호를 조형한 작품이다 /문화유산채널

조각을 하는 돌의 종류는 화강암, 대리석, 사암이나 셰일을 주로 쓴다. 석조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화강암인데, 화강암은 우리나라 국토의 약 25%이며 석재 재료로는 90% 이상을 차지한다. 석재로 이용되는 화강암은 강도와 내마모성이 좋고 빛깔이 고우며 광택도 뛰어나다. 흡수성이 작고 돌결이 치밀해 가공했을 때 단면이 아름답다는 장점이 있다. 

대리석은 조직이 치밀하고 색상이 다양해 연마하면 광택이 나는 특징으로 정밀한 조각을 할 수 있지만 빗물에 함유되어 있는 산에 의해 용해되는 성질이 있어, 야외용보다는 실내용에 쓰이는 조각으로 적합하다.

그 외에도 기존 암석이 풍화되어 침식 작용에 의해 부스러져 퇴적된 암석인 사암과 셰일은 흔히 오석과 청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오석은 장식용, 청석은 공예품으로 많이 사용된다. 오석은 가공을 하면 고급스러운 광택이 나지만 강도가 강해 정으로 다듬기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고, 청석은 가공하면 청록색의 특유의 느낌을 주지만 질이 고르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붓으로 작업 중인 이재순 석장 /문화재청 

석재를 절단하고 다듬는 데에는 다양한 도구가 쓰인다. 계측 도구인 자, 틈새에 박아 그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쐐기, 선을 긋는 용도로 쓰는 먹칼,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붓, 석재를 다듬는 용도로 쓰는 메,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낼 때 쓰는 털이개, 거칠게 작업이 된 표면을 곱게 쪼아낼 때 쓰는 도드락망치, 돌을 채취하거나 다음을 때 쓰는 정 등이 있다. 


이재순 석장 돌을 만나다

이재순 석장 /한국문화재재단

그가 처음 돌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4살 때 석공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들과 형의 부탁으로 일을 도와주면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학비를 벌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돌에 대한 재미를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외삼촌과 형들 밑에서 여러 일을 하며 돌을 만지던 그는 형과 함께 당시 유명한 석공이었던 김부관 선생을 찾아가 6개월 정도 일을 배운다. 그리고 그 수하에서 돌의 평면을 다듬는 치석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쌓게 된다.

이후 16살 때 김진영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인 조각 작업을 배우게 된다. 이재순 석장은 일에 대한 눈썰미와 성실함으로 인해 남보다 빨리 일을 배웠지만 그만큼 시기하는 사람들도 생겨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고. 결국 작은 실수 때문에 작업장을 나오게 되는데, 그는 이 때의 시련은 자신을 진정한 석장의 길로 이끄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작업 중인 이재순 석장 /문화유산채널 

작업장을 나온 이재순 석장은 경주 석굴암에 들렀다가 본존불을 비롯한 여러 석불을 보며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다시 김진영 선생 밑에 들어가 10여년 정도 일을 하게 된다. 스승이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하거나 어떤 모임에 함께 할 때 이재순 석장도 여러 조각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조각이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들음으로써 식견을 넓힐 수도 있었다. 이런 경험은 훗날 이재순 석장에게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초석이 된다.

이재순 석장은 스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를 이해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는 그가 불상을 작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석조의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재능을 가졌지만, 그 중에서도 불상이나 불탑 등에 특별한 기량을 갖고 있었다. 숭례문, 지광국사탑, 월정사석조보살좌상, 거돈사원국공사승묘탑, 북관대첩비, 익산미륵사지석탑 등이 그의 복원 작업들의 예이다.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일본 덕정사, 대만 기륭 자항기념당 등에도 그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그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이재순 석장이 복원 작업에 참여한 익산 미륵사지석탑 /국립문화재연구소

그의 꼼꼼하고 겸손한 성격은 자신의 명성을 쌓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 그 해 7월에는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연달아 수상을 했다. 그 외에도 1991년 다산문화대상 예술부분대상, 대한미국불교미술대전, 전승공예대전,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 등 다양한 수상 기록을 쌓았다. 


이재순 석장이 참여한 숭례문과 지광국사탑 

이재순 석장은 숭례문 복원 작업에 참여한 주요 인물 중 하나다 /flickr

이재순 석장의 대표적인 복원 작업으로는 숭례문 복원공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육축(성문의 문루를 떠받치는 기초 시설)과 성곽 등 훼손된 부분의 돌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새 돌을 다듬어 끼워 넣는 치석 작업을 맡았다. 이재순 석장은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지만, 뜻밖에도 복원 공사를 하며 생각지 못한 보물을 얻었다고 전했다.

바로 조선 초기 숭례문을 세울 당시 육축의 기초 지대석과 홍예문의 문지도리석(문짝이 꽂히는 바닥돌)등이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깊이 묻혀 있었기 때문에 돌의 표면 처리도 살아 있었고 숭례문의 원형은 물론 어떤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었는지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재순 석장은 2010년 5월부터 불에 상한 돌들을 뜯어내고 전통 방식으로 치석해 하나하나 크기를 맞춰 완성했다면서, 이 작업은 마치 빠진 이를 다시 새 이로 갈아 끼우는 일과 같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석조의 특징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돌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인데, 이를 통해 안정감과 한국적인 건축미가 살아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흔들림 방지, 비가 올 때의 물의 흐름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를 숭례문 복원 공사를 통해 깨달았다며 돌의 미학, 석공의 예술을 책으로 남겨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지광국사탑의 옥개석 /문화재청 

최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부터 5년여만에 지광국사탑 보존을 완료했다. 지광국사탑 복원을 위한 대체석으로는 원주 지역에서 산출된 석재 사용을 원칙으로 했다. 석탑의 산지가 원주이기 때문에 신석재의 산지도 원주로 결정한 것이다. 

지광국사탑 복원을 위한 신석 제작에는 이재순 석장이 참여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지광국사탑의 복원을 위해 가장 적합한 인재라 판단된 것이리라. 새 돌을 깨고 문양을 새겨 넣는 작업을 한 이재순 석장은 5년에 걸친 보존처리 작업을 끝내고 나서 지광국사탑의 문양은 정말 정교하게 섬세하며, 이전에도 숭례문 등 몇 차례 국보 복원 작업에 참여했지만 이번이 가장 어려웠다고 전했다. 


전통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석장의 힘 

이재순 석장 /문화유산채널 

이재순 석장은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기 전 부처님께 매번 삼배(三拜)를 올린다고 한다. 작업의 안전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며, 전통 석장의 맥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보유자이기 이전에 선배 석공으로서 화강석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석장의 맥을 잇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그는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 석공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후에도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조각가 김영중 선생이 강의 중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매주 선생을 찾아가 7년 동안 흙 만지는 것부터 모형을 만드는 것까지 제대로 익힌 그였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 노력한다. 전통을 소중히 알고 계승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그는 생각한다. 석장으로써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의 손에서 오늘도 돌은 아름다운 예술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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