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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이어지는 좋은 붓을 만드는 마음, 진다리붓 안명환 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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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이어지는 좋은 붓을 만드는 마음, 진다리붓 안명환 필장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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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리붓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진다리붓'은 1985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된 것으로, '진다리'는 광주 백운동의 옛 지명이다. 진다리붓은 백운동 일대에서 만들어진 붓을 통칭하는 말인데, 이는 안명환 장인의 부친인 故 안종선(제4호 진다리붓)장인이 백운동에서 운영했던 ‘진교필방’의 ‘교(橋)’자를 안명환 장인이 ‘다리’로 바꿔 ‘진다리’로 칭한 이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故 안종선 장인의 조부인 故 안재환 장인이 1930년경 광주 진다리에 정착하면서 백운동은 붓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진다리붓의 계보는 故 안재환 장인-故 안규상 장인-故 안종선 장인-안명환 장인으로 이어져 현재는 안명환 장인이 4대째 계보를 잇고 있다. 故 안종선 장인이 1989년 4월 4일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진다리붓으로 지정받았고, 안명환 장인은 2005년 3월 3일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4호 필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안명환 장인의 진다리붓 /광주시

故 안재환 장인은 처음 붓을 만들었던 건 8살 때로, 만주에 살면서 붓으로 꽤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일본에 건너가 붓 매는 일을 시작한 후 3년간 붓 공장에서 일한 그는 12세 때 만주에 살던 조부를 찾아가 붓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그곳에서 인간문화재로 인정받기도 했다.

17세 때 다시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곧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일제강점기 치하 서당에서 글을 배우는 사람의 숫자가 줄면서 붓의 수요도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현재의 백운동에 자리를 잡아 붓 만들기를 시작했고, 의재 허백련 장인에게 품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후 6.25전쟁이 끝나고 붓 수요도 다시 늘어나게 된다. 

그가 만든 붓의 종류는 50여가지 정도 된다. 액자를 만드는 데 쓰이는 큰붓, 작품용의 특장봉과 선유봉, 사군자용이 있고 낙관필과 채색필, 세필도 있다. 붓은 주문에 따라 노루, 쥐, 족제비 털을 사용하지만 안재환 장인이 즐겨쓰던 재료는 숫염소의 겨드랑이 털이라고 한다. 진다리붓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들이는 공도 엄청나다. 원료 선정에서부터 말리기, 털 고르기, 기름 빼기, 물끝 잡기 등 거쳐야 하는 공정만 100여 가지다. 
 

안명환 장인 /문화재청 

대를 이어진 진다리붓은 3대 故 안종선 장인의 장남 안명환 장인이 이어가고 있다. 그도 19세부터 붓 매기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붓을 만드는 데 열심이다. 그는 "좋은 붓이란 모의 윤기가 자르르하고 올이 가늘어야 하며 호(털끝)가 거꾸로 박힌 역모가 없어야 한다. 이 정도는 붓 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돈 욕심을 버리고 작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해야만 진정으로 좋은 붓이 나오는 것이다"고 밝혔다. 

안명환 장인은 ‘좋은 붓’의 요건으로 네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붓 끝이 날카롭고 예리한 것, 둘째는 굽은 털 없이 끝이 가지런하게 정돈된 것, 셋째는 물에 적셨을 때 모양이 팽이처럼 둥글고 중심점이 있는 것, 넷째는 곧고 탄력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법 하나를 더하는데, 바로 한 달 동안 불로 태워 밀가루처럼 곱게 된 쌀겨로 털의 기름기를 빼는 것이다. 
 

진다리붓 /광주시청각자료실

붓의 재료인 털은 대개 1월부터 3월 사이, 전라남도 남쪽과 인근 섬에서 나온 것을 최고로 친다. 겨울 바다를 겪어낸 털은 고르고 기름지지만 기름기를 머금고 있는 붓은 먹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름기를 제거해야 한다. 기름기를 어느 정도로 제거하느냐에 따라 붓의 윤기나 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적당히 기름기가 제거된 붓은 윤기가 흐르고, 종이 위를 매끄럽게 흐른다. 

진다리붓의 특징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에 있다. 붓털이 가늘고 털 길이가 짧으며 윤기가 매끄럽고 탄력이 있으며 물을 묻혔을 때 흡수가 잘 되어 먹물을 잘 먹기 때문에 글씨를 쓸 때 화선지와 조화를 이뤄 글이 잘 써지는 것이 특징이다. 귀한 붓이기 때문에 서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진다리붓을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어한다. 
 

진다리붓 /광주시청각자료실 

같은 붓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붓이 필요한 주문자의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 배냇머리를 가지고 와서 붓을 만들어달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붓에는 글씨를 쓰는데 사용하는 것이 닌 오래 살며 높은 벼슬을 하라는 바람이 담긴다고 한다.

진다리붓은 붓과 붓통을 이어주는 각통을 가죽나무와 느티나무로 제작해, 플라스틱으로 사용하는 중국과는 달리 높은 품질을 갖추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관심이 높다. 1970년대까지 20가구 정도가 붓을 제작하다 1980년대 이후 도시화에 따른 개발과 수요 감소로 지금은 안명환 장인과 형제인 안철환 대표의 진다리필공방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진다리필공방은 형태나 재료, 용도에 따라 30여 종의 붓을 연간 6천개 정도 제작해 주로 서울 지역에 보급 중이다.


진다리붓의 제작 과정

 

진다리붓을 만드는 도구 /광주시청각자료실

진다리붓 제작은 붓의 생명인 털에서부터 시작된다. 털은 첨(尖)·제(濟)·원(圓)·건(健)의 네가지 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붓끝이 뾰족해야 하고 가지런해야 하며, 털은 원형을 이루고 힘이 있어서 한 획을 긋고 난 뒤에 붓털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진다리붓에는 대개 족제비 꼬리털을 많이 쓰는 데 비해 안명환 장인은 숫염소의 겨드랑이 털을 주로 사용한다. 대(竹)는 겨울에 대나무를 베어 황토흙과 쌀겨를 섞어 물을 탄 뒤, 짚으로 문질러 햇볕에 2∼3개월 정도 말린 후 한토막씩 자른 다음 건조한 곳에 저장해 두고 쓴다.
 

진다리붓을 만드는 과정 /광주문화재단TV 유투브 캡쳐

1. 털 고르기
숫염소의 심소(속털,겨드랑이털)와 이채(바깥 털)을 골라서 염소 털에 붙어 있는 가죽을 빗으로 털어 버린다.

2. 심소 탈지 작업
신문지 위에다 솜 타듯이 탄 다음 쌀겨를 태운 재를 털 위에다 골고루 듬뿍 뿌린 다음, 연탄불에다 달군 주물로 된 다리미로 기름기를 제거한다. 한번 잡은 털은 두 번째로 빗으로 빗겨서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다리미로 잡는다.

3. 심소 정모 작업
호(끝)쪽으로 가지런히 맞춘 다음 호(끝)쪽으로 두들긴다..

4. 심소 재단 작업
호가 없는 것을 채(금속으로 된 보드라운 망으로 만든 채)로 걸러낸 다음 재단지로 감아서 가위로 호가 없는 부분을 정확히 자른다.

5. 붓 모양내기
잘라낸 모는 잔털로 총총이 같이 섞어 붓의 모양을 낸다. 만약 붓의 모양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반복해서 잔털을 채워 모양이 나올 때까지 작업한다. 모양이 나온 심소는 가지런히 뒤로 빼 금저울로 붓의 크기 별로 한 개씩 달아서 띄어내고, 띄어낸 붓은 무명실로 간단히 묶어 놓는다.

6. 이채 탈지, 정모 재단 작업
이채도 심소처럼 동일한 방법으로 탈지, 정모 작업을 하지만 재단 작업은 심소보다 약 1mm정도 짧게 재단한다. 재단이 된 이채는 신문지 위에다 다시 섞어 다리미로 마지막 기름기를 제거한다. 

7. 초가리 물기
이채를 만들어 놓은 심소보다 1/2정도 적게 띄어 붓 모양을 만들어 놓은 심소를 싸 놓는다.
 

진다리붓을 만드는 과정 /광주문화재단TV 유투브 캡쳐

8. 물 끝 보기
이채를 싼 초가리를 찬물에 끝이 있는 부분만 담궈 빗질을 해 날이 없는 무딘 칼로 도모(끝이 없는 털)를 빼낸다. 도모를 빼는 과정은 붓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이라 신중을 기해야 하고 기술 또한 필요한 과정이다.

9. 붓 매기
도모를 다 빼낸 붓(초가리)은 잘 손질해 햇볕에다 말린다. 다 마른 초가리는 가느다란 나일론 실로 뒤를 묶고, 묶은 다음 털이 빠지지 않게 묶은 부분을 강력 접착제에다 담궈 낸다. 이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1개의 붓 초가리가 완성된다. 

10. 완성 작업
완성된 초가리를 깍통을 끼워놓은 대에 맞춰 강력 접착제로 붙인다. 이 과정이 잘못되면 붓을 쓰는 도중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완성된 붓은 풀을 먹인 다음 수건으로 닦아내고 고운 빗으로 털을 빗겨서 손질을 한다. 손질한 붓을 햇볕에 건조시키면 한 개의 붓이 완성된다. 
 

완성된 진다리붓 /광주문화재단TV 유투브 캡쳐

이런 과정을 거쳐 붓 한 자루가 완성되는 것이다. 재료가 모두 갖춰진 상태에서도 붓 한 자루를 만드는 데에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故 안종선 장인 /문화재청

안명환 장인은 부친인 故 안종선 장인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님은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붓 매는 기술 하나만큼은 하늘 아래 첫번째셨다." 故 안종선 장인은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송곡 안규동 등 광주를 대표하는 서화가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진다리붓이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진다리붓을 만드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으나 故 안종선 장인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니 故 안종선 장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4대를 이어온 진다리붓 기능보유자 안명환 장인은 이 일을 하면서 돈만 생각했다면 애초에 밖으로 나가 땅놀음이나 하는 것이 더 편했을 거라 말한다. 그는 단지 욕심을 버리고, 진심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옛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통에 자신의 무언가를 더한 또 다른 ‘전통’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장인들에게 중요한 건 엄청난 부와 명예가 아니라, 계속해서 붓을 만들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과 후대에도 진다리붓이 꾸준히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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