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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공신 문서 「20공신회맹축」 국보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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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공신 문서 「20공신회맹축」 국보 지정 예고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1.07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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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 예고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히 남아 있고 25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 보물 제1513호「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과 「구미 대둔사 경장」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하였다. 「문경 봉암사 마애여래좌상」등 조선 시대 불교문화재 3건은 보물로 지정하였다.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보물 제1513호, 2007.4.20. 지정)는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 중 개국공신부터 보사공신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종묘에 올리는 축문(제사 때 신에게 축원하는 글)과 제문으로 구성되었으며,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시명지보」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추었다.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문화재청

회맹축의 제목은 ‘이십공신회맹축’이며, 조밀하게 짠 옅은 황비단 위에 붉은 선을 가로 세로로 치고 그 안에 단정한 글씨로 써내려갔다. 가로 약 25m에 달하는 긴 문서의 양 끝은 붉은색과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위‧아래를 옥(玉)으로 장식한 축으로 마무리해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어람용 문서답게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인상을 준다. 

이 회맹축은 17세기 후반 숙종 대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역사‧학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왕실 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므로 국보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편, 새롭게 보물로 이번에 지정 예고된 「구미 대둔사 경장」은 1630년(인조 8)에 조성된 경장(불교경전을 보관한 장)으로, 조선 시대 불교 목공예품 중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파악된 매우 희소한 사례다.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은 높이 11m에 이르는 대형 불화 1폭과 각종 복장물을 넣은 복장낭, 복장낭을 보관한 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불화와 함께 복장유물을 놓은 복장낭이 온전하게 일괄로 남아 있는 이 경우 또한 매우 드물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등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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