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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복이야기] 조선 방한 아이템, '누비 기법'과 '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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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복이야기] 조선 방한 아이템, '누비 기법'과 '볼끼'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1.06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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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조상의 지혜
멋과 실용을 담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겨울이 오고 날이 추워지면 다들 저마다 자신만의 방한 아이템을 꺼내 든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롱패딩은 한때 국민 아이템이라고 불릴 정도로, 겨울에는 꼭 입어줘야 하는 외투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생존템’(추운 겨울 생존하기 위해 입어야 하는 아이템)이라 부른다. 

과연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롱패딩이 생존템이 되었을까. 과거에도 현대의 롱패딩을 대신할 겨울 옷이 존재했을까. 물론 조선 시대에도 현대의 롱패딩을 대신할 외투가 존재했으며 그 외의 방한 아이템 역시 생각보다 다양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조상의 지혜는 의외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발휘됐던 것으로 보인다.
 

중원김위묘출토유물 /충북대학교박물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중원김위묘출토유물 /충북대학교박물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타래버선 /국립민속박물관
타래버선 /국립민속박물관



겨울을 준비하는 조상의 모습 

우리나라 근대의 기상 관측은 1904년 측후소가 설치되며 역사를 기록했다. 부산과 인천, 목포에 설치되었으며 이때 최초의 기상 관측이 이뤄졌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기상을 관측하기 위한 시도는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기구 중에는 측우기는 그 여러 시도 중 하나이다. 

측우기는 조선 시대 강수량에 관해 측정하는 기구였으며 세종 때 제작됐다. 농사를 위해 강수량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실상 측정 기준이 통일되지 않고 모호해 어려움이 있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사실 과거부터 조상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 그리고 날씨를 파악하기 위해 천문학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기상 관측의 역사를 돌아볼 때 정확한 기온의 수치를 파악한 것은 근대에 와서 가능한 일이었으며 그러므로 조선 시대의 평균 기온을 계산하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조상들의 삶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띠고 있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이를 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에 돌입했다. 이는 의식주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과거 우리 조상은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문과 창에 창호지를 발라 바람을 막기 위한 준비를 했다. 창호지를 덧대기 전에 기름을 먹여 보온 효과를 높이고 또는 창호지를 여러 겹 덧붙이기도 하며 주거 공간의 보온을 유지했다. 그 외에도 아궁이를 통해 불을 지펴서 방바닥을 뜨끈하게 데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 난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창호지와 온돌은 따뜻해진 방 안의 공기를 밖으로 나가지 않게 잡아줄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나 마찬가지였다. 
 

창호지 /국민민속박물관
창호지 /국민민속박물관
한국인의 대표 저장 음식 김치 /픽사베이
한국인의 대표 저장 음식 김치 /픽사베이

먹는 것 역시 달랐다. 겨울철 저장 음식인 김치는 추운 겨울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조상의 지혜라 여겨진다. 찬 바람이 슬슬 부는 입동에 주로 김장을 했으며, 그 외에도 나물, 생선을 소금에 재워놓거나 말리기도 해서 추운 겨울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조상의 지혜

앞서 식(食)과 주(住)의 형태에서 조상이 겨울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겨울의 나기 위한 의복의 형태 역시 달랐는데, 현대처럼 섬유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던 과거엔 어떤 옷을 입어 추위를 달랬을까. 

우선 겨울용 한복 옷감은 단, 명주, 목면 등이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복을 지을 때는 옷감의 선택 역시 매우 중요했다. 올의 간격이 촘촘하고 다른 계절의 원단에 비해서 바람을 막기에 용이한 옷감이 주로 선택됐다. 

이런 옷감들을 겹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솜을 두거나, 솜을 두어서 누벼 입는 기법은 우리 조상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 주로 택했던 방식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이 ‘누비’를 통해서 옷을 조금 더 따뜻하게 보온성을 갖춰 입기 위한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아청색 화문단 솜누비장옷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고종의 누비저고리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솜을 대는 방법은 간편하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보온법이다. 솜 자체를 두어서 원단에 포개 만드는 것은 간단한 듯하지만 누비 기법은 바느질거리가 많아 이를 만드는 것에는 큰 정성이 필요했다. 누비는 홈질로 바느질하는데 평행이나 직선 등으로 누벼서 완성한다. 누비의 넓이, 솜의 두툼함에 따라서 종류를 나눌 수 있으며, 솜을 두껍게 넣어 만드는 ‘오목누비’, 솜을 적절하게 채워 넣고 중간 정도의 넓이로 누벼서 만든 ‘중누비’ 그리고 ‘세누비’와 ‘잔누비’는 솜을 얇게 겹쳐 누비폭을 촘촘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납작누비는 솜을 얇게 깔아 납작하게 누빈 것을 말한다.

누비 기법은 솜을 충전재로써 채워 보온을 높이고 안에 덧댄 솜을 고정하려는 기능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디자인적으로도 매우 돋보였다. 솜이 톡톡하게 들어가 있으며 그 위를 죽죽 바느질로 박아 나간 형태로서 폭신하면서도 톡톡한 원단의 디자인이 겨울철에 잘 어울린다. 

누비는 겨울 한복을 지을 때 주로 사용되었으며 꼭 본 의상뿐 아니라 버선, 모자 등에도 자주 활용되었다. 솜이 톡톡하게 차올라 있을수록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해줄 수 있었는데 사실이 누비 솜옷을 처음부터 누구나 입었던 것은 아니다. 

누비에 필요한 솜은 목화씨를 통해 얻는다. 씨앗을 맺을 때 생기는 털에서 솜과 무명천을 만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처음 목화가 들어온 것은 고려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목화가 굉장히 중국에서 흔한 것이었고, 우리나라 역시 고려 시대 이전 삼국시대부터 목화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존재한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몰래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서 가지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유명하지만, 이 역시 숨겨서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동북아시아의 기후에 맞춘 개량종을 가져와 목화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도록 했다는 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목화 수확 /픽사베이
목화 수확 /픽사베이

사실 목화는 인도의 고원지대가 그 원산지다. 목화는 온난하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한반도의 경우 사계절이 뚜렷하고 장마가 있어 목화가 잘 자라는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이유로 처음 목화를 재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에 속했다. 자라는 시간을 충분히 필요하고 재배하는 데에도 까다로웠기 때문에 목화에서 얻을 수 있는 솜 역시 그 가치가 높았다. 결국 솜을 재료로 한 누비 한복은 초기엔 왕족이나 양반 가문의 사람들에 한해서 입을 수 있었다. 다만 문익점을 통해서 개량종이 들여오고 조선 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솜이 조금 더 보편화되면서 일반 서민도 이 누비 솜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던 귀도리

보통 귀도리라고 하면 겨우내 군밤 장수 아저씨가 귀에 걸고 있던 방한용품을 떠올린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에게는 조금 더 익숙한 물건으로 군용으로 보급된 귀도리는 머리띠의 형태로 만들어져 나온다.  

이 귀도리는 현대에도 굉장히 유용하게 사람의 체온을 보호한다. 흔히 강원도 지역에서 복무하는 군인이나 외부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필수 아이템이라고 하지만 요즘에는 이 귀도리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현대 방한 아이템 귀도리 /윤미지 기자
현대 방한 아이템 귀도리 /윤미지 기자

다양한 디자인의 귀도리를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서 쉽게 구매 가능하며 방한의 목적에만 충실한 일반적인 귀도리 디자인부터 뜨개, 털, 패딩 등 개인에 취향에 따라 심미적인 기능까지 갖춘 것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조선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모양의 방한용품이 존재했다. 바로 ‘볼끼’다. 직사각형의 천 위에 털을 덧대어 만들고 긴 끈이 양쪽으로 있어 머리 위로 묶어주는 형태다. 현대엔 주로 머리띠처럼 본체가 위쪽을 둘러 귀까지 덮는 형태로 제작되지만, 과거엔 직사각형의 본체가 턱을 감싸 끈을 머리 위로 올려 묶어 착용했다. 아무래도 이 볼끼는 턱 부분을 더 따뜻하게 보호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이 착용했으며 이와 함께 덧쓸 수 있는 아이템으로는 남바위가 있었다. 

남바위 역시 조선 시대 방한용 쓰개 중 하나다. 남바위는 모자처럼 쓸 수 있는 형태로 이마를 덮고 뒷머리 쪽으로 길게 본체가 내려온다. 가장자리 쪽으로 털이 둘러지는데,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털이 다 달랐다. 
 

남바위 /국립민속박물관
남바위 /국립민속박물관
토끼털을 덧댄 볼끼가 합해진 남바위 /국립민속박물관
토끼털을 덧댄 볼끼가 합해진 남바위 /국립민속박물관

현대에도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온도가 많이 낮아지면 두통이나 귀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도 노인 혹은 몸이 허한 사람은 이 남바위를 봄이나 가을철에도 착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엄’은 군인들이 착용한 방한용 쓰개로서 변방 지역에서 일하는 군인이 겨울철에 썼던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겨울철 쓰개로는 ‘아얌’이 있다. 조선 초기 양반집 부녀자들이 외출용으로 착용했던 이 쓰개는 이마 둘레를 감싸는 ‘모부’, 긴 댕기 부분의 ‘드림’으로 모양이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일반 서민의 부녀자부터 기녀들도 이 아얌을 착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방한의 목적으로 착용하였으나 이내 심미적인 이유로도 이 아얌을 쓰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조바위는 조선 후기에 생겨난 것으로 여자들이 대표 방한모라 볼 수 있다. 조바위는 한복의 옷감 중 단으로 만들어지며 뺨까지 내려와 따뜻하게 착용이 가능한 쓰개 중 하나이다. 
 

아얌 /국립민속박물관
아얌 /국립민속박물관
아얌을 쓴 기생의 모습이 그려진 엽서 /국립민속박물관
아얌을 쓴 기생의 모습이 그려진 엽서 /국립민속박물관

조선 시대에는 방한의 목적을 위해 착용했던 쓰개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다. 성별에 따라 달리 착용하는 쓰개도 있으며 디자인 역시 전부 달랐다. 또한 신분에 따라서 모자에 사용할 수 있는 원단, 무늬, 색상, 장식이 구분되어 있다는 특징이 존재했지만 충분히 실용적이며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조선 시대 의복의 멋과 실용성 

사실 조선 시대는 의복 착용에서 굉장히 자유도가 높았던 때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민의 경우 비싼 옷감은 접하기도 어려웠으며 신분의 차이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옷감 종류와 의복의 색상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디자인이나 색상이 발전하기에 굉장히 한정되어있는 환경이라 여길 수 있지만 과거 의복을 살펴보면 의외로 다양한 형태와 전통적이면서도 고급스러움이 살아 있는 색상 사용을 발견하게 된다. 

방한용 아이템의 경우 실용성을 위주로 사용됐던 물건이지만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며 추구하는 디자인도 각양각색임을 알 수 있다. 모자의 길이와 이마를 덮는 형태에 따라서도 디자인이 나뉘었으며 여성이 착용했던 쓰개 중 아얌이나 조바위, 그리고 여성의 남바위는 비교적 화려한 장식을 많이 더해서 제작됐다. 

동물의 모피를 이용해서 꾸미기도 했는데 남성의 남바위는 쓰개 가장자리에 털을 두르는 것으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이는 심미적으로도 충분히 따뜻하며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완성한다. 

조선 시대 의복이 실용성과 멋을 모두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조상의 지혜와 그 안에서 개성을 놓치지 않는 조상의 멋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한다. 

2021년 1월 첫째 주는 상당히 낮은 기온으로 추운 날씨가 예상된다고 한다. 남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우리도 자신에게 맞는 겨울 방한을 위한 아이템을 준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참고서적 : 아름다운 한국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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