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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아름답게, 위트있게 ‘예술’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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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아름답게, 위트있게 ‘예술’로 보다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0.10.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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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10월 9일은 574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평소에는 그저 숨쉬듯 한글말하고 쓰지만, 이날만큼은 내가 한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게 한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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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올바르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런 한글을 예술작품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어려운 맞춤법도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글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거나 한글 자체를 예술로 만든 작품을 엿보고자 한다.


가갸날부터 시작된 한글날

한글날의 시작은 1926년 음력 9월 29일, ‘가갸날’부터 시작됐다. 이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을 기준으로 480주년이 된 해였다. 1928년 조선어연구회가 ‘한글날’로 명칭을 바꾸고, 1931년 양력환산법에 따라 지금의 날짜인 10월 9일로 바뀌게 됐다.

한글날은 다른 국경일과 다르게 ‘~주년’이 아닌 ‘~돌’로 센다. ‘주년’은 1년을 단위로 돌아오는 돌을 세는 단위로 한자어이기 때문에, 한글날만큼은 우리말인 ‘돌’로 바꾼 것이다.

국보 70호 ‘훈민정음’ 세종대왕의 서문 / 문화재청
국보 70호 ‘훈민정음’ 세종대왕의 서문 / 문화재청

한글날이 특히나 중요한 이유는 한글은 발음이 나오는 발성 기관의 모습을 본따 만든 글자이며, 말을 소리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다는 과학적 우수성 때문이다. 이런 한글 제작 원리가 담긴 국보 70호 ‘훈민정음(訓民正音)’은 1997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에 매년 한글날 행사를 진행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1일까지, ‘2020 한글주간’ 행사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비대면으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이번 ‘2020 한글주간’의 주제는 ‘우리의 한글, 세상의 큰 글’로, 전시, 공연, 체험, 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8일 한글날 전야제에는 서의철 가단의 ‘우리글로 듣는 우리 음악’ 공연을, ‘세종문화상’, ‘한글 창의산업 아이디어 공모전’ 및 ‘국어책임관 실적 우수기관’ 시상식과 ‘한글, 언어의 품격을 말하다’를 주제로 하는 방송인 정재환, 김창옥, 작가 임솔아 등이 참여하는 ‘이야기 공연’이 이어진다.

한글날 당일에는 제574돌 한글날 경축식과 함께, 한글, 세종대왕 관련 문제 풀이로 우승자를 가리는 ‘가갸겨루기’ 결선과 ‘아름다운 한글’을 주제로 행위예술가 김안식의 그림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한글을 아름답게 쓰는 방법, 서예 또는 캘리그라피

글자와 관련된 예술활동 중 대표적인 것은 ‘캘리그라피(calligraphy)’다.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로 ‘kallos’는 아름다움, ‘graphe’는 쓰기를 뜻한다. 그 이름이 가진 의미 그대로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 혹은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것이 바로 캘리그라피다. 서양은 14~16세기부터 시작됐지만, 우리나라는 서예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은 만년필, 우리나라는 붓으로 쓰는 셈이다.

서예 / pixabay
서예 / pixabay
안중근 의사가 쓴 ‘경천’ / 위키미디어
안중근 의사가 쓴 ‘경천’ / 위키미디어

서예는 고대 중국에서 발전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래서 중국의 서예가들의 필체로부터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이 많다. 글씨를 쓰는 기법이나 서체도 매우 다양하다. 기법은 붓을 어떻게 쥐고 어떤 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집필법, 완법, 영자필법, 간가결구법, 장봉, 노봉, 부앙법, 영입평출 등으로 나뉜다. 서예에 필요한 문방구인 붓, 먹, 벼루, 종이 등은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불리기도 했다.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 / KBS 한국사전 – 피눈물의 기록 한중록, 혜경궁 홍씨 1부 캡쳐(https://youtu.be/Hij9hj7hvkE)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 한글로 쓰여진 자전적 회고록이다 / KBS 한국사전 – 피눈물의 기록 한중록, 혜경궁 홍씨 1부 캡쳐(https://youtu.be/Hij9hj7hvkE)

서예는 대체로 한자이기 때문에 유명 서예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한자다. 대표적인 서예가로는 훈민정음 혜례본을 쓴 안평대군, 조선 전기의 대표적 서예가인 한호, 추사체를 만든 김정희 등이 있다.

한글은 주로 여성이나 일반 백성들이 썼기 때문에 서예 작품을 찾기 어렵지만, 대표적 한글 서예가로는 ‘한중록’을 쓴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홍씨)가 있다. 궁중생활을 한글로 적어낸 자전적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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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 우리나라도 서예보다는 캘리그라피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물론 캘리그라피 안에는 서예적 기법이나 요소 등이 더해졌으며, 붓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1998년 최초 캘리그라피 회사인 필디자인이 생겼고, 전문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가 창립되면서 2011년에는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캘리그라퍼로는 공병각, 전은선 작가 등이 있다. 공병각 작가는 최근 의류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여러 매체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은선 작가는 드라마 타이틀 디자인에 주로 참여하고 있다.

펜이 있는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에도 관련 앱을 이용하면 캘리그라피를 체험할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펜이 있는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에도 관련 앱을 이용하면 캘리그라피를 체험할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글씨에 디자인이 더해진 예술이지만, ‘글씨’라는 점에서 접근성이 좋은 취미이기도 하다. 혼자서 배울 수 있도록 관련 서적이나 용품을 서점이나 문구점 외에도 다이소 등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종이에 펜으로 쓰는 방식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해 전용 펜과 앱을 통해 나만의 글씨를 써볼 수도 있다.

캘리그라피 어플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상단부터) 감성공장, 캘리랑, 펜먼 / 구글 플레이스토어
캘리그라피 어플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상단부터) 감성공장, 캘리랑, 펜먼 / 구글 플레이스토어

또는 종이에 쓴 캘리그라피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플, 글씨나 색, 문구 등 탬플릿에 따라 선택하면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드는 어플, 직접 따라서 써볼 수 있는 어플 등 스마트폰을 이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글자가 보이는 ‘문자그림’

캘리그라피가 글자 자체로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면, 이 작가는 그림을 한글로 그린다. 박지후 작가는 SNS 등을 통해 한번쯤 봤을 정도로 창의력 넘치는 ‘문자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전시회, 개인전 등을 열러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 작품인 한글날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2016년 작품인 한글날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2016년 작품인 한글날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2016년 작품인 한글날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그의 작품은 단어나 문장 등이 그림의 한 부분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얼핏봐서는 그냥 그림이지만, 자세히 보면 글자가 보인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박지후 작가는 “전시회를 가면 장황한 설명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조금 답답했다”며 “문자디자인과 그림, 두 가지 영역을 결합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보고 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문자를 찾아보며 이해하는 재미, 작품을 오래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관람객에게 주고자 한 것이다.

기분이 벨루가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기분이 벨루가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칼퇴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칼퇴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집콕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집콕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그의 그림을 보면 참신함과 위트, 즐거움이 모두 담겨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그에 쓰이는 문자가 묘하게 연관되어 있다. ‘칼퇴’는 단어 그대로 ‘칼’모양으로 형상화했으며, 그 위에는 즐겁게 퇴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그려져있고, 코로나로 인해 생긴 ‘집콕’이란 문자는 다트판의 핀이 되어 그 의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보건복지부 건강생활실천캠페인 작품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보건복지부 건강생활실천캠페인 작품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너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너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인연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인연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참신한 문자 그림과 그 소재를 어떻게 찾는지에 대해 박지후 작가는 “모든 물체들에 문자를 대입해 보고 마음에 들면 메모장에 따로 적어 놓거나 사진으로 찍어둔다”며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모으고 간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문자와 단어에 대한 관찰력이 높아보였다. 그의 작품은 한글 외에도 영어단어가 결합된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박지후 작가 인스타그램 @youngsiki0cha

그의 작품을 통해 한글이 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를 넘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박지후 작가는 “박물관에 있는 우리나라의 국보들을 문자그림 시리즈로 표현해 보고 싶다”며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의 작품 중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면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는 관련된 단어 40여개가 쓰였으며, 이들이 결합해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바람대로 국보들이 문자그림처럼 만들어진다면, 한국의 전통 문화와 문화재가 알려짐과 동시에 한글의 아름다움도 더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맘때면, 신조어를 놓고 한글 파괴인지,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논쟁이 벌어진다. 하지만 금세 사그러든다. 그런 논쟁을 벌이기 전에 과학적인 글자라고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한글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한글을 예술로 승화시켜서 아름다운 언어를 하나의 문화처럼 즐기는 것이다. 한글을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고, 그림을 그리듯 한글을 쓰는 예술가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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