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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목걸이... 디자인과 의미도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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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목걸이... 디자인과 의미도 달라져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0.09.1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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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문화재청은 지난 2011년 김해 대성동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됐던 가야 시대 유리 목걸이 3개가 보물로 지정된다고 밝혔다.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양한 재질의 구슬이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어졌으며, 색감도 조화롭게 구성돼 가야인들의 시간과 정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유물이다.

특히나 이 목걸이들은 철로 유명했던 가야가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났으며, 장신구 문화 또한 활발하게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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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는 전세계에서 지금도 사랑받는 장신구 중의 하나인데, 1700년 전 조상들도 그 아름다움을 알고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게 되니 그 역사와 의미가 궁금해졌다.


몸을 꾸미고, 보호하는 의미

목걸이는 이름 그대로 목에 거는 장신구다. 몸치장을 하는데 쓰이는 물건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주술의 목적으로 착용하거나 목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했다. 또는 신분이나 성별을 표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원주민들이 착용하는 목걸이에서 주물숭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개나 동물뼈 등으로 만든 것들이 많다 / pixabay
원주민들이 착용하는 목걸이에서 주물숭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개나 동물뼈 등으로 만든 것들이 많다 / pixabay

동물이나 식물, 수호신 등을 숭배하는 토테미즘과 비슷한 주물숭배도 있었는데, 주물은 인간이나 집, 마을을 지키고, 질병을 막으며, 건강과 부(富)와 풍작을 가져온다고 여겼다. 그 주물 중 하나로 목걸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석기 시대에도 나무열매나 조개껍데기, 동물의 뼈, 흙이나 돌로 만든 유물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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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목걸이의 형태는 구슬 형태의 다양한 재료를 실 등에 엮어 만들어 목에 걸도록 되어 있다. 선사시대는 나무나 동물의 뼈 등이 주 재료였다면, 시대가 발전하면서 유리, 도기, 호박 등의 보석류나 금속에 발전에 따라 금속으로 만든 것들도 많아졌다.

다양한 재료에 디자인도 다양해지면서, 현대에 들어서는 아름다움을 더하는 장식의 의미가 강해진 듯하다. 또한, 목걸이에는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어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 선물하기도 한다.


금과 옥이 어우러진 우리나라 목걸이

목걸이는 동서양 모두에서 보편적인 장신구로 사용되어온 만큼, 우리나라의 장신구 역사도 화려함을 자랑한다. 특히, 삼국시대는 금속기술의 발달로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귀걸이, 목걸이, 왕관 등이 많았다. 대부분 왕이나 왕비, 귀족들을 위한 것으로 보아, 당시 장신구는 신분과 권위를 나타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삼국시대 장신구에 나타난 조형적 특징에 관한 연구 (백제 장신구를 중심으로/ 신미영, 박승철 (2012)’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의 장신구 특징이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유물 중 대표적 벽화인 ‘무용총 수렵도’ / 위키미디어
고구려의 유물 중 대표적 벽화인 ‘무용총 수렵도’ / 위키미디어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던 고구려 시대는 장신구도 다양했지만, ‘목걸이’는 문헌에도 기록이 없을 정도로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관, 관식, 귀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 등이 다양하게 출토됐으며, 높은 세공술은 물론 북방이라는 지리적 이유 때문인지 장신구에서도 강인함과 소박함, 역동성과 웅장한 미의식이 표출되었다고 한다.

관을 장식하는 관식에는 원형, 반달, 꽃모양 등을 조각했거나, 귀걸이는 1개의 고리로 이뤄진 소환식(素環式)이나 귓불에 다는 고리가 있는 이환부, 그 고리에 매달린 장식인 중간식, 최하단을 장식하는 수하식으로 이뤄진 수식부 귀걸이가 있었다. 팔찌는 청동과 은, 반지는 청도제, 은제, 금제 등이 있었다. 목걸이를 빼고 다양한 장신구가 발전했던 고구려였다.

신라시대 금목걸이. (왼쪽부터) 국보제 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보물 제456호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보물 제619호 천마총 목걸이 / 문화재청
신라시대 금목걸이. (왼쪽부터) 국보제 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보물 제456호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보물 제619호 천마총 목걸이 / 문화재청

황금의 나라라고도 하는 신라는 장신구도 대부분 순금으로 된 것이 많았으며, 대부분 왕족과 귀족이 착용해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쓰였다. 고구려와 달리 신라 시대에는 금대, 금귀걸이, 금가락지, 금팔찌 뿐만 아니라 목걸이도 발견되었다.

신라 시대 목걸이는 신체 중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가슴을 장식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져, 그 형태도 길었다. 국보 제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는 길이가 33.2cm로, 목에 걸면 가슴까지 길게 늘어질 정도다. 또한, 마디마디 이어져 만든 백제의 목걸이와 달리 하나로 이어진 완형 형태의 목걸이가 많았으며, 금 외에도 환옥, 관옥, 곡옥 등 여러 옥류를 끈으로 엮어 사용하기도 했다.

보물로 지정되는 김해 대성동, 양동리 출토 목걸이 / 문화재청
보물로 지정되는 김해 대성동, 양동리 출토 목걸이 / 문화재청

신라에 흡수되면서 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가야도 빼놓을 수 없다. ‘가야 장신구의 조형적 특성(조진숙, 2010)’에 따르면, 가야에서는 금속 장신구보다 유리로 만든 장신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슬을 귀하게 여겼던 삼한의 계보를 이은 가야는 유리를 잡아 늘려서 유리구슬을 만들었으며, 유리, 수정, 호박, 비취 등 재질이나 판옥, 곡옥, 대롱옥, 다면옥 등으로 형태도 다양했다. 특히, 유리에 금박을 입히고 유리를 씌운 금박유리구슬이나, 태아의 모습, 짐승의 발톱을 연상시키는 곡옥이 많이 출토됐다고 한다.

고분에서 발견되는 가야의 목걸이는 실로 엮여서 해체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 형태가 온전한 것들을 보면,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형태로 깎거나 유리로 곡옥이나 둥근옥을 만들어 착용한 것이 많았다. 현대의 목걸이처럼 중앙에 곡옥을 넣어 장식한 형태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 문화재청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 문화재청

백제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세운 나라인만큼, 고구려 북방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기에 중국의 남조 문화도 받아들여 고구려보다 화려한 백제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장신구 또한 다양하다.

고구려, 신라와 마찬가지로 금속 장신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목걸이만 봐도 그 세공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는 각각 14㎝, 16㎝의 2종류다.

활 모양으로 약간 휘어진 육각의 금막대를 9마디, 7마디로 연결해 만들었다. 금막대를 끝으로 갈수록 가늘게 다듬어 고리를 만들고 다른 것과 연결시킨 형태다. 고리를 만들고 남은 부분은 여러 번 감아서 풀리지 않게 만들었다.

금막대를 일정한 길이와 간격으로 연결시켰으며, 별다른 장식이 없는 디자인으로 현대에 내세워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사용된 재료도 금과 목, 유리 등 다양하게 사용했으며, 금 알갱이를 누금기법으로 세공해 화려하게 만들었다.


보석세공이 발달한 외국 목걸이

주술, 신분, 권위 등을 상징하는 목걸이의 의미는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큰 차이는 없다. 한 가지 모양의 차이가 있다면, 금이나 옥, 유리 등을 사용한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은 보석 사용이 많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 왕족들은 턱받이 형태의 화려한 비브 목걸이를 착용했다 / pixabay
고대 이집트 왕족들은 턱받이 형태의 화려한 비브 목걸이를 착용했다 / pixabay

두산백과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상류층 여성들은 유리석, 루비, 금 등으로 된 초커를, 고대 이집트는 여러 색의 구슬을 연결시킨 턱받이 모양의 비브나 치플릿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많이 사용한 카메오 / pixabay
그리스에서 많이 사용한 카메오 / pixabay

점차 시대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석을 사용한 목걸이가 생겨났다. 그리스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석류석, 오팔 등의 보석을 끼운 사슬 목걸이와 카메오, 로마에서는 진주를 사용했다.

중세부터는 이런 기술이 유럽 각지로 퍼졌다. 금이나 보석 외에도 유리, 칠보 등 인공보석도 생겨나면서 유럽의 목걸이 세공 기술에 영향을 주었다. 이 당시의 목걸이는 상류층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쓰였다.

인조 보석 팬던트 목걸이나 진주 목걸이는 요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 디자인이다 / pixabay
인조 보석 팬던트 목걸이나 진주 목걸이는 요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 디자인이다 / pixabay

르네상스 이후부터 목걸이는 서민에게도 퍼졌다. 동방과 교류하며 정교한 세공기술이 발달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카메오, 진주 등은 목걸이의 대표적인 디자인이 되었다. 18세기에는 복장이 간소화되면서 목걸이가 리본을 매는 정도로 바뀌면서 침체되었다가 19세기 말에 인조보석이 더욱 발달하면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목걸이 길이에 따라 이름 달라져

다양한 목걸이 길이 / 위키미디어
다양한 목걸이 길이 / 위키미디어

목걸이는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이 있지만, 그 길이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초커, 프린세스, 마티니, 오페라, 로프 등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초커 / pixabay
초커 / pixabay
영화 ‘레옹’에서 초커 목걸이를 한 마틸다 / 네이버 영화
영화 ‘레옹’에서 초커 목걸이를 한 마틸다 / 네이버 영화

초커(Choker)는 길이가 32~40cm(약 16inch) 정도로 목에 딱 붙여 두르는 형태다. 팬던트 장식이 달려있는 벨벳 리본 형태의 밴드 초커나 진주 등이 여러 줄로 구성되어 있거나, 가늘은 끈으로 되어 있다. 영화 ‘레옹’에서 여주인공 마틸다가 하고 나와서 잘 알려진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프린세스 / pixabay
프린세스 / pixabay
마티니 / pixabay
마티니 / pixabay

프린세스(Princess)는 약 40~46cm(17~18inch)로 보통 착용하는 목걸이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선과 쇄골 정도에 걸쳐져서 목선을 아름답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티니(Matinee) 또는 마티네는 약 50~55cm(20~22inch)로, 프린세스보다 좀 더 길다. 가슴까지 내려오기 때문에 터틀넥이나 티셔츠 등 옷 위로 착용하거나 블라우스나 원피스 같은 단정한 차림에도 잘 어울린다. 체형이 조금 통통한 사람들이 데일리로 하기에도 좋다.

오페라 / pixabay
오페라 / pixabay
로프 / pixabay
로프 / pixabay

오페라(Opera)는 약 60~71cm(24~30inch)의 긴 목걸이다. 배 윗부분까지 내려오기 때문에 체형을 보다 날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로프(Rope)는 약 90~107cm(36inch)로 배꼽 정도까지 내려온다. 때문에 그냥 착용하기보다는 한번 묶거나 2겹으로 감아서 착용하기도 해 여러 개의 목걸이를 착용한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요즘 일상 속에서의 목걸이는 마스크 목걸이, 이름표, 핸드폰 목걸이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목에 건다는 실용성 자체가 부각됐다. 그래도 아름다움을 위해 착용하는 목걸이의 본질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 신비롭다. 앞으로는 목걸이에 어떤 기능이 더해지게 될지 기대가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만큼, 예전처럼 전자기기와 결합된 목걸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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