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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원당願堂 실체 밝힌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 및 '칠성각’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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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원당願堂 실체 밝힌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 및 '칠성각’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 최상혁 기자
  • 승인 2020.08.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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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제공
서울시 제공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서울시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봉원사 칠성각'과 이곳에서 발견된 '의소제각 편액'을 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21대 왕 영조(英祖)의 장손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의 무덤인 ‘의소묘(懿昭墓)’ 원당(願堂)에 대한 실체를 밝혀준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奉元寺 懿沼祭閣 扁額)과 봉원사 칠성각(奉元寺 七星閣)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칠성각 수리 중 불단 아래에서 발견된 신자료인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서울시의 문화재 지정조사 과정에서 ‘건식 탁본’과 ‘자외선 촬영’을 진행해 정확한 각자(刻字)를 판독했다.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사변형(四邊形)의 형태로, 가로와 세로선대(갓)에 봉이 달려 있는 구조이다. 각판(알판)의 글자는 인위적으로 끌을 이용해 깎아내었고, 바탕칠 또한 도구를 사용해 강하게 벗겨진 상태이다. 각자 분석 결과 ‘의소제각(懿昭祭閣)’ 4자(字)를 양각(陽刻)하였음이 확인됐다. 편액에 각자된 <의소제각>은 영조(英祖)의 장손이며 정조(正祖)의 동복형(同腹兄)인 의소세손의 명복을 축원(祝願)하기 위해 건립된 전각을 뜻한다.

의소묘 원당’의 전각명으로 보이는 <의소제각>은 서대문 밖 안현(鞍峴)의 남쪽 기슭(현 서대문구 북아현동 중앙여자고등학교)에 만들어진 <의소묘>, 영조의 잠저인 경복궁 서편 창의궁 자리(현재 종로구 통의동 일대)에 세워졌던 <사당>과 별개로 영조가 봉원사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봉원사에 건립된 <의소제각>은 의소세손의 신위(神位)를 모신 “신당(神堂)”으로 불리었고, 지금의 <칠성각>은 1864년에 새로이 중건되면서 붙여진 전각명이다. ‘신당’이라는 전각명은 사찰에서 흔하지는 않은 것으로, ‘봉원사의 신당’은 불교의 존상 대신 유교식 신위를 봉안한 건축물을 지칭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봉원사의 신당’이『영조실록』에 기록 된 ‘의소세손의 원당’이자 <의소제각 편액>이 게시된 칠성각으로 파악된다.

‘조선왕실 원당’을 목적으로 건축된 내력과 관련 유물(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남아 있는 봉원사칠성각은 서울 · 경기지역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왕실 원당건축 연구’의 기준작이 됨으로써 그 가치가 높다.

봉원사 칠성각은 주불전인 대웅전의 북서쪽, 경사가 가파른 둔덕 에 자리하고 있다. 전면 3칸 5량가 맞배지붕의 소규모 전각으로, 측면과 후면에는 화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공포는 2출목의 다포이며, 연봉 · 봉두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조선 후기 불전의 전형적인 의장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봉원사 칠성각’을 단순히 칠성각이라는 부속전각으로 전제해서 보면 전면의 다포(多包)는 상당히 격이 높은 건축물의 의장 수법이고, 규모 역시 4.5칸으로 일반적인 칠성각에 비해 큰 편이다. 건물의 평면에서도 소규모 건축물에 퇴칸을 앞쪽에 두어 전퇴(前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유교식 사당의 평면 유형을 가져 차이를 가진다.

이러한 <봉원사 칠성각>의 건축적 요소와 관련 기록은 칠성각이 의소세손의 신위를 모신 ‘원당’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되었음을 재입증한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 제공

서울·경기 지역에 건립된 200여 동(棟)의 조선왕실 원당 가운데 <편액>의 실물이 발견된 사례는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유일하다. 원당으로 사용되었던 건축물이 확인된 사례는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 의성 고운사 연수전, 송광사 성수전 뿐이다. 더욱이 서울 · 경기지역에서는 실제 원당으로 사용된 건축물이 지금까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의 발견은 ‘조선왕실 원당’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희소한 사례로 평가되며, ‘봉원사 칠성각’ 내부에 설치된 고주의 측면에는 2개 이상의 목부재를 연결할 때 사용된 전총 건축기법인 장부짜임의 결구흔적이 남아있어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게시된 위치 가 칠성각의 불단 전면에 감실 형태의 공간에 게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사찰의 조선왕실 원당이 폐쇠되었고, 관련 편액들이 모두 훼철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고종의 성수전(聖壽殿) 원당’이었던 <순천 송광사 관음전> 전패(殿牌)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훼철되어 원형의 1/3이 훼손된 채 탁자로 개조됐다.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 또한,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궤를 같이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칠성각 불단 아래에 숨겨진 경위는 서울 진관사에 비장(秘藏)되었던 <진관사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국가 등록문화재 제458호)>의 사례가 참고된다. 진관사 또한 ‘칠성각의 불단’이라는 공간에 우리나라의 중요 문화재가 숨겨졌다는 점이다. 조선왕실과 관련된 유물인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3.1 독립운동과 관련한 문화재인 <진관사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는 분명 이를 <칠성각 불단>이라는 공간에 숨겨야만 하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봉원사 칠성각>이 조선왕실 원당이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이자, 원당 건축물의 편액 중 현전하는 극히 희귀한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봉원사 칠성각>은 서울 경기지역에서 조선왕실 원당 건축물로 확인된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왕실 원당의 건립과 운영을 알 수 있으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서울시는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봉원사 칠성각>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보존 · 관리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화재 · 산사태 등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부동산 문화재에 대하여 실측, 사진촬영, 가상현실(VR) 등으로 기록을 남겨 보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의소제각 편액을 일제가 일부러 훼손하고 숨겼을 것으로 봤다. 시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많은 사찰의 조선왕실 원당이 폐쇄됐고 관련 편액들이 모두 훼철(헐어서 치워버림)됐다"며 "의소제각 편액 또한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궤를 같이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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