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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말하는 여성의 삶...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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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말하는 여성의 삶...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0.01.17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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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여성 예술가의 삶을 조명하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와 원하지 않는 정략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여성은 다른 듯 상당히 닮아 있다. 그들의 시선과 마음은 그 시대 어디에도 닿을 곳이 없었다.

당시 18세기 후반 유럽의 시대상을 환기해보면, 여성 화가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림은 평가에서 제외되거나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마리안느는 유능한 화가인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 그림을 그려왔지만 여자 예술가라는 잣대 속에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고 예술 활동에서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갈망해야 하는 이는 또 있었다.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다. 엘로이즈는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앞두고 정혼자에게 자신의 초상을 보내야 하는 입장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결혼 전 여자의 초상을 남자에게 보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남자는 자신의 신부가 될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풍습은 여자의 선택과 취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히려 남성에게만 선택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그 당시 불평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자유란 사람에게 주어진 기본권이나 18세기 유럽 여성에게는 달랐다. 저항해야, 노력해야 자유에 대한 권한이 조금이나마 주어졌다. 이런 시대상 속에서 여성 화가로서 삶을 살아내야 했던 마리안느와 정략결혼을 거부하고자 피력했던 엘로이즈는 서로에게 영혼의 유대감을 느낀다.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시작, 시선이 주는 힘

엘로이즈는 정략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정혼자에게 초상화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원치 않았고 초상화를 그리는 것에 거부한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화가 마리안느를 고용해 딸의 초상화를 몰래 그리도록 함으로써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산책 친구가 되어 그녀의 모습을 하나하나 시선에 담는다. 여성 예술가의 시선에 담겨 지는 뮤즈 그 자체가 된 엘로이즈. 처음에는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는 화가임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마리안느의 시선에 마음이 흔들린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엘로이즈의 얼굴을, 마음을 관찰하는 마리안느. 두 사람은 서로 미묘한 감정에 끌리고 만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계속 그렸고, 첫 번째 작업이 완성됐을 때 참을 수 없는 죄책감에 자신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고용된 화가임을 고백한다. 초상화 작업은 엘로이즈의 정략결혼에 대한 저항, 자유에 대한 의지, 평등에 대한 갈망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계속해서 서로의 감정을 교류했고, 엘로이즈는 어느새 마리안느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인다. 둘은 교감을 통해 시선을 주고받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며 무섭도록 서로에게 빠져든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불평등한 세상을 살아가야 했던 여성의 삶과 여성 예술가의 작품 활동에 대한 모습을 투영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감정, 애정을 담은 로맨스물로도 가치를 가지면서 18세기 후반 금기로 여겨지던 동성연애에 대해 다룬다.

이를 단순한 페미니즘이라고 치부하기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엘로이즈를 통해 평등의 가치, 애정의 교류를 일깨운다. 사랑 안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속박하거나 얽매지 않고 자신 그 자체의 주체성을 인정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감춰진 여성 예술가의 삶을 조명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감추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18세기 후반 당시의 여성 예술가의 작업 활동은 철저히 주류에서 배제되었다. 마리안느만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쓰지 못했고 전시회도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할 수밖에 없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그간 배제되어 왔던 여성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스크린에 담아온 것은 물론 여성이 가진 욕망이나 정체성에 대해 집중해왔다. 해당 영화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첫 시대극으로 화가 마리안느의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참고 차 과거 활동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찾고자 했으나 그들의 삶과 모습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 그리고 보관조차 되지 않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을 말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셀린 시아마는 화가 마리안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했던 사회적 제약과 업압된 예술활동을 당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그가 이에 저항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가와 뮤즈의 교류,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역사적 관점에서 철저히 배제됐으나 그들의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는 점까지도 섬세한 연출을 통해 전달한다.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의 지지를 받은 수작으로 등극했다. 또한 칸영화제에서 국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비견될 만한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무도 과거 여성 예술가의 시선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다.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웠던 시대에 당당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성취감, 목적성, 주체성의 존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아트버스터의 탄생을 반기는 많은 예술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탁월한 연출과 연기에 비견되는 풍성한 볼거리 역시 예술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18세기 프랑스 브리타니 지역의 섬을 주요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을 스크린에 함께 담은 것은 물론 캐릭터에 어울게 제작된 의상은 그 시대의 모습을 고풍스럽게 재현하고 있다. 마리안느의 캐릭터성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에 주머니를 만들고 고 의복의 아름다움과 모던한 감성을 세련된 이미지로 구현했다.

해당 영화 초입에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의 시대적 배경에 관객 스스로 동화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캔버스와 작업 도구가 만들어 내는 스케치 소리, 파도 소리, 바람의 소리 등 삶의 목소리에 집중케 해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그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한 발 뒤로 물러나 억압된 채 자신을 표현해야 했던 여성 예술가의 삶과 시대적 배경에 의해 금기시됐던 사랑을 주체적이고 용기 있게 그려 나가는 연인의 모습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1월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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