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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청화 물감으로 채색한 백자 항아리, 보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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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청화 물감으로 채색한 백자 항아리, 보물된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10.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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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도자기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 풍수지리서 '지리전서동림조담(地理全書洞林照膽)', 불교경전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2' 총 3건 보물 지정예고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문화재청은 조선 도자기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 풍수지리서 '지리전서동림조담(地理全書洞林照膽)', 불교경전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2' 총 3건을 보물로 지정예고하였다. 

 

이화여대박물관 제공
이화여대박물관 제공

아름다운 문양과 색깔을 정교하게 표현한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白磁 靑畵梅鳥竹文 壺)」는 높이 약 27.8cm 크기의 아담한 청화백자 항아리로, 조선 전기인 15~16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뚜껑이 있는 입호(立壺) 형태이며 겉면에 ‘청화(靑畵)’ 물감으로 매화, 새, 대나무를 그렸다. 수준높은 기법과 정교한 표현을 봤을때 조선시대 그림을 담당한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이 참여한 관요(官窯) 백자로 추정된다. 관요란 왕실용 도자기를 위해 나라에서 직접 운영한 가마를 말한다.

참고로 청화 물감은 청색의 코발트 안료를 말하는 것이며 회회청(回回靑)이라고 부른다. 청화 물감을 사용한 도자기 중 대표적인 것은 중국의 청화백자가 있다. 조선인들 역시 영롱한 푸른색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에서 청화물감을 수입했으나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그리하여 1463년~1469년 사이에 세조의 지시로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푸른 안료인 토청(土靑)을 만들었다.

매화는 화면 전체적으로 크게 배치해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다양한 동작의 새를 삽입해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청화안료의 색조와 분위기를 잘 살려냈고 발색(發色)이 좋아 작품의 품격을 높였다. 청화백자는 당시로서는 값비싼 청화 물감과 고급 백자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가장 뛰어난 도자기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용계층이 한정되었고 제작 또한 제한되었기 때문에 수량 자체가 많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 이 항아리는 제작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 고유의 청화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한 시대 변화를 잘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어서 보물이 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전했다.
 

코발트 블루 [출처- 위키피디아]
코발트 블루 [출처- 위키피디아]
국보 제 170호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 [문화재청 제공]
국보 제 170호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 [문화재청 제공]

또한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는 국보 제170호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白磁 靑畵梅鳥竹文 有蓋壺)’와 유사하다. 정제된 백자의 바탕흙(태토, 胎土)과 문양을 장식한 기량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현존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뚜껑이 없다는 점은 다르다.
 

지리전서동림조담
지리전서동림조담

조선시대 풍수지리 교재, '지리전서동림조담'

「지리전서동림조담(地理全書洞林照膽)」은 조선시대에 천문‧지리‧측우를 담당한 관청인 관상감(觀象監) 관원을 선발하는 음양과(陰陽科) 시험 과목 중 하나로 널리 사용된 풍수지리서다. 쉽게 말해 이 책은 풍수지리를 담당한 관청의 관리를 모집하는 시험에서 쓰인 교재인 것이다.

이 책은 중국 오대(五代) 사람인 범월봉(范越鳳)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내용의 일부에 주술적 요소가 있어 주희(朱熹) 등 송대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과시(科試, 국가시험)의 과목으로 채택됐다으며 이러한 점은 이 책의 내용이 조선 고유의 풍수관(風水觀)을 성립시켰으며 조선에서 풍수지리가 국가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지리전서동림조담」은 상권과 하권 2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조선 건국 후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로 인쇄되었다. 서문이나 발문 그리고 간기(刊記, 펴낸 시기, 주체 등의 기록)가 없어 간행과 관련된 사항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계미자 중자(癸未字 中字)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태종 연간(1400~1418)에는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문‧무과와 생원‧진사 선발 시험인 사마과(司馬科) 수험서인 유학서적은 상당수 간행되었으나 잡과(雜果)의 풍수지리서는 수험생이 적어 많이 간행되지 않았으므로 전래본도 희소하다. 따라서 「지리전서동림조담」은 간행본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라는 점, 고려 말~조선 초기에 사용된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출되었다는 점, 조선 시대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풍수지리서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서지학적 의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불경과 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2(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一~二)」는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의 하나로, 우리나라 불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진 대표적인 책이다.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능엄경’이라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내용은 온갖 번뇌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요의(要義)를 설(說)하였다.

이 책은 인도의 나란타사에서 전래되었으며 중국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剌密帝)가 처음 번역하고 송나라 계환(戒環)이 이해하기 쉽도록 주해를 붙였다고 한다.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보환의 『능엄경신과』 2권과 『수능엄경환해산보기』 2권, 조선시대 유일의 『능엄경사기』 1권과 의첨의 『능엄경사기』 1권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약 10개의 다양한 판본이 전래되고 있다.

이번에 지정될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2」은 10권중 1~2권에 해당되며 태조 이성계가 승려 신총에게 대자(大字; 큰 글씨)로 판하본(板下本, 목판 불경을 만들기 전에 종이에 먹을 쓴 불경 원본)을 쓰게 한 뒤 1401년(태종 1년)에 판각하여 간행한 것이다.

나뭇결의 마모와 종이의 상태로 보아 처음 판각된 이후 조금 늦게 인쇄된 것으로 보이며, 15세기 말까지 사용된 반치음(ᅀ)과 옛이응(ᅌ) 등의 묵서 기록 또한 간행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교정 흔적은 「간경도감」(刊經都監) 언해본 간행을 위한 과정으로 판단되어 늦어도 15세기 무렵 인쇄된 것임을 추측하게 한다.
 
동일 판본인 보물 제759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의 일부 빠진 장수(張數)를 보완해 주고 본문 왼쪽에 일(一), 이(二) 등 해석을 돕기 위해 문장 사이에 우리 말로 풀어 읽을 수 있게 달아 놓은 석독구결(釋讀口訣)의 사례 등이 확인되어 조선시대 구결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의 독자적인 필체에 의한 판본으로서, 조선 초기 불경 간행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고 중세 국어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어 보물로 지정하여 연구‧보존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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