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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의 원조 논쟁, 정말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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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의 원조 논쟁, 정말 중요한 것은?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10.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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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으로 돌고 돌면서 변화된 것들만 살아남은 문화의 역사, 전통과 현대의 가치 사이에서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한국 사람은 전통을 좋아한다. 고유의 문화, 원조 문화 등을 내세우며 본인의 것 혹은 우리나라의 것이 가장 먼저다, 오래되었다, 전통이 있다는 것을 유별나게 강조하곤 한다.

'태권도는 전통적인 한국의 무술인가?', '일본의 고대 문화의 원류는 한국이었는가?', '라면의 원조는 누구인가?' 등 문화에 대한 원조 논쟁은 한국 사람에게 아주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이것이 누구의 것이며 우리 고유의 것이 맞는가 등을 가리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원류 논쟁은 어쩌면 자존심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뜨거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수한 문화를 타인의 것과 비교하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기도 하다.
 

원조 논쟁은 뜨거운 주제이다 [출처-pixabay]

문화란 돌고 도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귀속 논쟁은 그렇게 쉽게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 역사를 보면 문화는 돌고 도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가 어느 한 국가나 개인한테서 완벽히 100% 구현되어 나오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만이 과연 우수하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문화란 혼자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문화가 어떤 한 국가 안에서만 뚝딱 만들어지고 계속 그 국가 안에서만 전통적으로 원류 그대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문화라는 것은 개인 간, 지역 간, 민족 간, 국가 간에 서로 교류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전승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과연 고유의 문화라는 것과 원조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일까? 한국의 대표 전통 음식인 김치는 현재와 원형이 많이 다르다. 지금의 빨간 김치는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전래되면서 시작된 것이며 대중화된 시기는 더욱 짧다. '한식이 맵다'라는 이미지가 사실 오랫동안 전해져온 전통은 아니었던 것이다.
 

베트남의 대표 음식, 쌀국수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출처-pixabay]

베트남의 대표 음식으로 잘 알려진 쌀국수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 쌀국수는 의외로 그 역사가 100년 정도로 상당히 짧으며 베트남에서 독단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쌀국수는 19세기 초, 프랑스의 야채수프인 '뽀오페(pot au feu)'를 베트남인의 입맛과 식재료에 맞게 변형되면서 만들어졌다.

또한 우리는 파스타를 이탈리아 요리로 알고 있으나 파스타의 원류는 아라비아 상인이 만든 것이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사막을 오랫동안 횡단하면서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한 다음, 이것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요리해먹게 되었다. 비슷한 면 요리인 라면 역시 일본 음식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그 시초는 중국이었다.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꼽히는 코트는 서양 의상이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19세기 유럽 신사들이 입고 다니는 프록코트가 현재의 코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프록코트도 사실 유럽이 아닌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의상에서 기원했다. 오스만의 의상인 카프탄을 17~18세기 유럽인들이 입어보게 되었고 이를 차츰 개량한 것이다.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조가 아니다

역사의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가 아니다. 물론 그 뿌리를 명확히 밝혀두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이 일일이 그것을 신경 쓸 수 있을까? 원조와 뿌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그것이 케케묵은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시 활용하고 알맞은 형태로 재탄생시켜서 대중에게 어필하느냐이다. 역사가 250년 정도에 불과한 미국이 할리우드, 콜라, 햄버거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로 세계를 선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제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든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독일과 몽골에서 시작된 햄버거는 오늘날 미국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출처-pixabay]

오랫동안 중국은 '도자기의 종주국'으로 자리 잡아왔다. 유럽인들은 우수한 중국 도자기를 수입해오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18세기 이후, 유럽의 도자기가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의 도자기를 뛰어넘는 우수한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은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약 200년 앞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활자 기술은 아주 우수했다. 하지만 한국의 활자는 일부 계층만이 향유한 것과 달리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유럽 대중들에게 책을 전파하는 촉매제로 작용했고 결국은 유럽이 이후에는 더 우수한 인쇄기술을 갖추게 된다.

만약 전통만을 강조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 문화는 뒤처지고 말 것이다. 과거의 영광은 뒤로 한 채, 창고 구석 어딘가에 먼지가 쌓여 아무도 찾지 않는 낡은 물건처럼 말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해야만 살아 숨 쉴 수 있다.


전통 vs 퓨전의 논란

우리 문화는 전통과 퓨전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지난해에 고궁 무료 관람 조건인 한복 착용에 퓨전한복은 제외하기로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나치게 원형과 다른 변형·왜곡된 한복의 가치를 깎아내린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시대에 맞춰 한복도 개성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몇 년 전에는 '한식 세계화 산업'에 양념치킨이 선정되면서 과연 양념치킨이 한식이냐는 논란도 뜨거웠다. 양념치킨이 한식이 아니라는 측은 전통적인 한식 조리법과 거리가 멀며 양념치킨이 기본적으로 서양의 치킨을 토대로 했으므로 한식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전통 한식만을 외국인에게 강요한다면 한식을 세계화할 수 있을까? 왜 외국인들은 비빔밥이나 김치 같은 다른 전통 한식보다 양념치킨을 'korean fried chicken'이라고 부르면서 더 좋아하는 걸까? 왜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전통 의상을 일상에서도 편하게 입지만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할까?

이러한 문제는 핸드메이드 작가들, 수공예 장인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오랫동안 가업을 이어온 공예 장인들은 자부심 때문에 쉽사리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의 기법과 원형만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고 큰 수입을 얻는 작가들은 시대의 흐름을 잃고 대중의 기호와 트렌드에 맞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전통적인가는 상관없이 말이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학생이 전통 귀주머니를 현대적인 미니백으로 재탄생시킨 작품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한국전통문화대학생이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인 감성과 결합해 만든 작품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정체성 보존과 시대의 변화를 모두 잡기 위해

물론 문화 원류 논쟁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논쟁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의 유명한 디저트 케이크인 '파블로바'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수십 년 동안 원조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감자튀김 요리인 '프렌치 프라이'는 벨기에와 프랑스가 서로 원조라고 논쟁을 벌이면서 외교전쟁을 치른 적이 있으며 지금도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내가 가진 유무형의 저작물을 누군가가 멋대로 침해하거나 이용하여 이득을 가로채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작권 등 법적인 권리가 규정된다. 그래서 원류 논쟁을 단순한 감정적 자존심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때로는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이득 등과 관련된 싸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법적 제도적으로 문화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전통과 원형에 집착하며 머무르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정체성을 지키되 개방적인 자세를 통해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 흐름을 통찰하고 다른 것을 참고하고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살아있는 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가 보여주듯 문화는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며 시대에 맞춰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폐쇄적인 문화는 도태된다. 온실처럼 보호받은 순혈보다 거친 환경에서 적응해온 잡초가 더 우수한 것이다. 그 원조와 토대가 어떻든 간에 그것을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시키고 인정받아야 그것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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