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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통 의상 ①] 중국의 상징이 된 만주족의 의상, '치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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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통 의상 ①] 중국의 상징이 된 만주족의 의상, '치파오'
  • 최나래 기자
  • 승인 2019.10.16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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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복, 일본의 기모노··· 중국에는 치파오가 있다, 소수민족 만주족의 옷이 중국의 대표 의상이 되기까지

[핸드메이커 최나래 기자] 앞머리는 깎고 뒷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인 변발, 유려한 곡선과 라인을 드러낸 아름다운 전통 의상 치파오는 세계인이 중국을 볼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 두 문화는 흥미롭게도 오늘날 중국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민족인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인 만주족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만주족은 우리에게도 잘알려진 민족으로 삼국시대 당시에는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서 활약했다. 이후에는 발해의 주요 구성원이 되기도 했으나, 고려시대 여진족으로 명칭이 바뀌어 금나라를 건국하는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다시 만주족으로 바뀌고 청나라를 건국하였다. 청나라는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이후에는 중국 대륙을 통일하게 된다.
 

치파오 [출처- 위키피디아, 非主流影像派]

기마민족, 만주족의 치파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1616~1912)는 1644년 한족의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석권해 1911년 신해혁명 이전까지 한족과 여러 민족을 지배했다. 청나라는 끊임없는 영토 확대 정책으로 명나라의 배가 되는 영토를 차지했는데, 이렇게 넓어진 영토는 오늘날 거대한 중국의 전신이 되었다.

만주족은 자신보다 훨씬 인구가 많은 한족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억압적인 통치로 이를 억누르고자 했다. 특히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하여 한족의 민족의식을 꺾고자 했다. 한인들에게 만주어를 사용하게 하고 머리를 변발로 자르게 하였으며 만주족의 옷을 입게 한 것이다.

치파오는 차이나드레스(China dress, Qipao)라고도 부른다. 이 옷은 매듭단추, 차이니즈 칼라와 옆트임 등의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원래 치파오는 창파오(長袍)라고 불렸지만 한족들이 만주족의 옷이라는 뜻의 치파오(旗袍)라고 부르면서 바뀌어 갔다.

오늘날의 치파오는 여성형 원피스 형태로 굳어졌지만 원래 만주족은 남녀 모두 치파오를 입었으며 바지도 함께 입었다고 한다. 기마민족이었던 만주족은 말타기와 활쏘기 등을 할 때에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옷을 디자인하였는데, 지금과 달리 소매가 넓었으며 옆트임을 내어 몸의 움직임과 탈의를 간편하게 했다.

치파오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순치제 원년부터 시작해서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치파오는 한족 부녀에게도 받아들여지며 점점 여성들의 일상적인 의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대신 청나라 이전부터 한족의 오랜 전통 의상이었던 한푸(漢服)는 단절되어 버렸다.
 

변발을 하고 전통 의상을 입은 채 식사하는 청나라인들 [위키피디아- Lai Afong (1839~1890)이 1880년 촬영]

중국을 대표하는 의상이 되기까지, 치파오의 변천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치파오는 많은 변천을 겪는다. 1920년대는 중화민국이 대륙을 통치한 민국시대(1912~1949)였다. 당시에는 봉건적이고 유교적인 중국 문화를 개혁하기 위한 계몽 운동인 신문화운동이 한창이었으며 서구 교육을 받은 수많은 지식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자 했다.

치파오도 이러한 흐름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여성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운 꾸밈에 따른 갈망에 따라 서양의 미니스커트를 따서 길이와 소매가 짧아지게 된다. 1930년대에는 치마의 길이가 다시 땅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대신 치마의 옆트임이 허벅지까지 과감하게 올라오면서 각선미를 드러낸다.
 

1930년대 비누 포장지에 그려진 치파오를 입은 여인 [퍼블릭 도메인]

이렇게 치파오는 여성성이 강하게 부각됐다. 1940년대 이후부터는 치파오는 다시 치마 길이가 짧아졌으며 몸에 달라붙고 소매도 거의 없어진 민소매의 형태로 제작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우아하고 관능적인 치파오의 형태가 갖추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후, 1960년대에 치파오는 공산주의의 광기로 전통문화를 탄압했던 운동,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으로 잠시 쇠퇴를 겪었다. 이러한 반달리즘 속에도 불구하고 치파오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점차 중국과 국제사회의 교류 협력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인들에게 알려졌고 치파오만의 독창성과 아름다움도 인정받기 시작한다.

1972년 미·중 수교 당시 닉슨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던 영부인 패트 여사는 치파오를 보고 "중국에 왜 인구가 많은 것인지 알겠다"라고 말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재밌는 일화이다.
 

출처- 플리커, nloik

치파오의 종류

만주족 서민은 주로 마와 면, 견 등으로 짜서 만든 단일 색상의 치파오를 입었다. 반면 귀족 또는 왕실 계층은 고급 비단으로 치파오를 지었고 여기에 갖가지 자수를 놓아 아름다움을 더했다. 자수는 주로 동물문양, 식물문양, 기하문양 세가지를 사용했으며 색깔은 황금색, 빨간색, 검은색, 푸른색 등이 있었다.

전통적인 치파오의 종류는 '차오파오'(朝袍), '롱파오'(龍袍: 황제가 입던 용무늬를 수놓은 예복), '망파오'(蟒袍: 망포, 대신들이 입던 이무기 무늬를 수놓은 예복), '창푸파오'(常服袍: 평상복)로 나눈다. 하지만 오늘날의 치파오의 원류가 된 옷은 평상복인 창푸파오로 다른 옷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늘날에 치파오는 전 세계인이 입는 국제적인 옷이 된 만큼, 치파오의 디자인과 색상, 사용 원단도 다양해져 그 종류를 분류하기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수많은 소수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한족(漢族)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변발과 치파오처럼 오히려 한족이 소수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 사례도 있으며 특히 치파오는 세계인에게 중국의 독특한 전통 문화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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