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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건축의 아버지, 미마르 시난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감을 미치는 소중한 인류의 유산, 불멸의 건축
  • 최상혁 기자
  • 승인 2019.10.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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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전경 [출처- pixabay]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이슬람의 건축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뾰족한 아치의 첨탑과 돔 모양을 갖춘 모스크, 화려하고 이색적인 문양 및 색깔과 웅장한 규모의 궁전 등··· 이러한 이미지를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다.

이 이슬람의 건축은 특히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기에 뛰어난 발전을 이뤘다.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속한 오스만 제국은 오랫동안 중동 지방을 석권한 패자로 군림해왔으며 오늘날 이슬람 문화의 모태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스만 건축의 중심에는 위대한 거장으로 칭송받는 미마르 시난이 있었다.

미마르는 터키어로 '건축'이라는 뜻으로 후대에 붙여진 그의 칭호였다. 미마르 시난(Mimar Sinan, 1489~1588)은 터키 중부의 카이세리라는 도시에서 아르메니아계 기독교도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시난은 오스만의 친위부대인 예니체리에 입대하여 복무했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된다. 어느 날 그가 병사들을 위해 막사를 지어준 것을 오스만 술탄이었던 쉴레이만 1세가 목격하고 재능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후 술탄은 시난에게 여러 건축을 맡기게 되면서 시난의 건축가로서의 삶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난은 98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여러 술탄들을 섬기며 목욕탕, 모스크, 학교, 다리 등 약 300여 개의 건축을 남겼다고 한다.
 

쉴레마니예 모스크 [출처- pixabay]

그의 대표작, '쉴레마니예 모스크(Süleymaniye Mosque)'는 쉴레이만 1세의 명령으로 1550년 시작해 7년의 공사기간 끝에 완성했다. 쉴레이만 1세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소피아 성당과 맞먹을 만한 건물을 짓고 싶었다.

직경 26.5m, 높이 53m의 대형 돔을 중심으로 한 건물과 4개의 긴 미나레트(첨탑), 10개의 발코니로 구성됐다. 건물 안에는 목욕탕, 병원, 공공 식당, 학교 등이 구성되어 있으며 뒤뜰에는 쉴레이만 1세와 그의 아내 록셀라나 등을 비롯한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장식은 스테인드 글라스와 터키의 독특한 이즈니크 타일 등으로 이루어진다. 나중에는 1660년의 화재와 1766년의 지진으로 일부가 손상되기도 했는데, 이때 유럽의 바로크 양식을 일부 도입해서 수리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이스탄불의 전경을 구성하는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로 자리잡았다.
 

셸리미예 모스크 [출처- 플리커, Guldem ustun]

'셸리미예 모스크(Selimiye Mosque)'는 시난 스스로 자기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밝힌 작품이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터키 최고의 건축물이며 터키 리라 지폐에 시난과 함께 수록됐다.

6년에 걸친 공사 끝에 1574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31.25m의 대형 돔 지붕과 71m의 첨탑 4개로 구성되었으며 첨탑은 각각 3개의 발코니가 달려있다. 원형 돔은 외벽에서 떨어진 여덟 개의 거대한 잔교가 지탱하고 있으며 다시 네 개의 반돔이 중앙의 대형 돔 지붕을 받쳐준다. 또한 모퉁이 외부에 솟아오른 로켓 모양의 미나렛들도 하중을 분산시킨다.

내부는 역시 화려한 아즈니크 타일을 이용한 모자이크화로 꾸며졌다. 우아한 아치들의 연속과 색채의 장식, 그리고 주위의 벽타일 위로 쏟아지는 빛은 웅장하고 경이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셀리미예 모스크 역시 건물 내부에 학교, 병원, 목욕탕 다양한 복합 공간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복합적인 단지의 요소는 당시 오스만과 이슬람 세계에 전형적인 양식이었다. 

 

미흐리마 슐탄 모스크 [출처- 위키피디아]
뤼스템 파샤 모스크 [출처-pixabay]

슐레이만 1세의 딸을 위해 지은 '미흐리마 슐탄 모스크(Mihrimah sultan mosque)', 미흐리마의 남편이자 재상인 뤼스템 파샤를 위해 지은 '뤼스템 파샤 모스크(Rustem pasa cami)'도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들이었다. 마흐리마 슐탄 모스크는 시난이 마흐리마를 사랑하는 의미로 지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후대에 각색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바냐바시 모스크 [출처- 위키피디아]
모스트다리 [출처-pixabay]

불가리아의 땅인 수도 소피아의 '바냐바시 모스크(Banya Bashi Mosque)', 보스니아의 '스타리 모스트 다리(Stari MosOld Bridge Area of the Old City of Mostar)'도 시난이 지었다.

한때는 오스만이 정복했던 소피아에는 약 70여 개의 이슬람 사원이 존재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바냐바시 모스크이다. 아울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모스트 다리는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양식의 다리이다. 석조를 이용해 특유의 아름다운 아치형으로 제작됐다. 이는 유럽과 이슬람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렇듯 방대하고 웅장한 건물들을 만든 그였지만 자신의 무덤은 의외로 소박하고 정갈한 형태로 만들었다. 이스탄불의 쉴레마니예 모스크 근처에 직접 부지를 정하고 자신이 설계한 무덤 안에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위대한 예술을 마치게 된다.
 

타지마할 [출처-pixabay]

하지만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후대에도 계속된다. 그의 제자들 역시 스승을 이어받아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슬람의 대표 사원인 '블루 모스크(Sultan Ahmed Mosque)',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인도의 타지마할(Taj Mahal)도 그의 제자들이 만든 것이다.

시난은 터키뿐이 아닌 이후 이슬람 건축의 거의 모든 것이기도 했던 이슬람의 상징적인 건축가였다. 시난처럼 이렇게 한 사람이 세계의 다양한 세계문화유산을 만들고 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현재 미마르 시난의 이름을 딴 이스탄불의 국립 대학인 '미마르 시난 미술 대학교(1883)'는 터키의 제일 가는 명문 대학으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시난은 비록 잠들었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예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상혁 기자  hurra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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