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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에 김정희를 읽다.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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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에 김정희를 읽다. 「세한도」
  • 이황 기자
  • 승인 2019.09.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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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고독함과 외로움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사람이라면 혼자이기 싫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런데 만약 작은 공간에 갖혀 혼자일 수밖에 없고 그때 느끼는 외로움을 감당해야만 한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어떤 이는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롭고 고독했지만, 그 현실을 직면하고 정면돌파하여 예술을 꽃피워 낸 한 사람이 있다.
 

'세한도', 1844년 김정희作, 국보제180호 [출처-문화재청]

볼품없는 그림, '세한도'

허리가 구부러진 볼품없는 소나무 한 그루와 잣나무로 보이는 나무 세 그루. 그리고 입구가 동그라미인 집 한 채. 위 그림은 조선시대 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때 그린 「세한도(歲寒圖)」다.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림 속 집은 엉터리다. 비뚤어진 모습이 곧 무너질 것 같다. 원근법에 따라서 반듯한 직육면체로 그렸다면 더 안정감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리 굽은 늙은 소나무도 하늘로 쭉 솟아오르도록 곧게 그렸다면 그림이 더 멋있었을 것이다.


위리안치와 「세한도」

정치모략에 휘말린 추사 김정희는 1840년 55세 나이로 위리안치(圍籬安置)형을 받고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위리안치는 집 바깥을 가시울타리나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두르고 그 안에서만 살도록 하는 형벌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주군안치(州郡安置)형을 받은 것과 비교해도 훨씬 가혹하다.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다산은 귀양살이를 통해 현실을 재발견한 반면 추사는 그러지 못했다고 말한다. (중략) 다산은 주군안치였던 데 비해 추사는 위리안치였던 차이도 없지 않다. 다만 추사는 위리안치를 통해 자아를 재발견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괴로움을 견뎌야만 했다. 질병에 시달렸고 고향에서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는 새어나오는 슬픔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렇지만 추사는 그렇게 힘든 날이 이어져도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제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 했고 독서와 예술에도 열심이었다. 추사에게 제주도 유배생활은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지만 예술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세한도」는 스승을 변함없이 섬기는 제자 이상적에게 김정희가 주는 선물이었다. 유배 간 사람과 친분을 이어가는 것은 자신도 정치모략에 휘말릴 수 있어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만 제자 이상적은 유배지에 갖힌 스승 김정희에게 끊임없이 진귀한 서적을 구해다 주곤 했다. 김정희는 그게 무척 고마웠다. 「세한도」에 아래 논어구절을 적은 것도 이상적에 대한 진심 어린 고마움 때문이었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한도 발문과 세한도 [문화재청 제공]

고난과 고독을 극복하다.

「세한도」는 문인화다. 문인화란 전문화가가 아닌 양반들이 그린 그림을 말한다. 문인화는 그림을 그리는 기술 즉 손놀림보다는 마음 속 감정과 사상을 그림에 얼마나 잘 담았는지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대상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세한도」를 감상할 때도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유홍준 교수가 말한 대로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8년이란 긴 시간을 보내면서 자아를 재발견했다. 그러므로 「세한도」는 김정희가 재발견한 자아를 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세한도」를 보자. 그림을 보면 온몸이 차가워진다. 추운 겨울이다. 집은 동그라미 입구가 하나 있을 뿐, 창문은 없다. 이 볼품없는 집이 척박함을 더 강조한다. 불모지에 세운 집 한 채 같다. 구부러진 소나무는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다. 잣나무 세 그루는 발로 한 번 차면 부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인다. 그러나 이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실경산수화가 아니라 문인화다. 정말로 그런 집과 나무가 있었는지 또는 얼마나 대상을 잘 묘사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점은 추사 김정희의 내면이다. 그림의 차가움과 황량함으로 김정희가 얼마나 고독하고 괴로웠을지 그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괴로운 심정을 표현하는 연약한 모습이 김정희가 말하려는 것 모두는 아니다. 「세한도」에서는 겨울을 극복하려는 강인함도 느껴진다. 그림 속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 늘 변함없는 자세로 겨울을 견뎌낸다. 봄을 맞이한다. 이 그림은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태도에 감탄하여 보낸 선물이지만 거기엔 추사 자신의 사상과 내면 또한 드러나고 있다. 변하지 않는 푸름. 그건 바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다.

「세한도」는 글씨가 아름다운 작품이기도 하다. 옛날엔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 또한 예술이었다. 글씨가 하나의 그림인 것이다. 김정희는 글씨체를 끊임없이 연구하여 자신만의 글씨체 즉 추사체를 만들어냈다. 「세한도」는 그림과 글을 함께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한도>에서 더욱 감동적인 면은 서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도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추사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중략) <시한도>의 진가는 그 제작 경위와 내용, 그림에 붙은 글씨의 아름다움, 그리고 갈필과 건묵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있다. 즉 그림과 글씨와 문장이 고매한 문인의 높은 격조를 드러내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되어봐야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고독과 직면하여 그것을 뚫고 나가야 진정한 자신과 만날 수 있다. 그런 자만이 예술을 꽃 피울 수 있다. 추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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