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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탐구] 건축가 안도 다다오 1부 - 젊은 날의 꿈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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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탐구] 건축가 안도 다다오 1부 - 젊은 날의 꿈과 여행
  • 이황 기자
  • 승인 2019.08.2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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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Ando Tadao)  [출처-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새로운 꿈. 건축을 향해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1941년 일본 효고현 나루오하마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벌써 나이 만 77세 노인이 되었다. 최장암으로 최장과 비장을 떼어낸 그는 젊을 때만큼 몸이 튼튼하지는 않지만 건축에 대한 뜨거운 마음은 여전해 보인다.

그는 정식으로 건축을 배운 적이 없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대학교를 다닐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어쩌면 독학을 했기 때문에 안도가 세계적인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만약 정석적인 건축가의 코스를 밟았다면 지배적인 건축이론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건축설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도적․전문적 교육은 사고의 폭을 좁히는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많다.

그가 처음부터 건축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 복싱선수가 되었다. 복싱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당시 대졸자 초임이 1만 엔 정도였는데 3라운드를 뛰면 4천 엔을 받을 수 있어 기뻤다고 한다. 그렇게 한창 복서로 활동하며 안도는 그 일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복싱 스타 '하라다'가 안도가 소속된 체육관에 연습차 찾아왔다. 안도는 챔피언 하라다가 운동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자 좌절감을 느낀다. 하라다 같은 복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후로 복싱을 그만둔다. 그는 할 수 없는 일을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랬다. 그는 고교생활이 끝나갈 즈음 복싱을 그만두었다. 복싱을 시작한지 2년 째였다.

안도가 쓴 책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체육관 동료들과 함께 그의 스파링을 보던 나는 마음이 이내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스피드, 파워, 심폐기능, 회복력, 어디를 봐도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저렇게까지 발전할 수는 없을 거라는 엄혹한 현실을 목도한 것이다.”

복싱을 그만두고 상실감이 컸지만 그는 곧바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에 늘 흥미를 가져왔음을 깨달았고 건축가를 꿈꾸게 된다. 그는 자유를 추구하는 기질 때문에 다른 친구들처럼 철공소나 자동차공업 쪽으로 취직하지 않는다. 잠깐 회사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금방 그만두곤 했다. 안도를 홀로 키운 외할머니는 안도가 어렸을 때부터 독립과 자립을 강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안도는 더 이상 외할머니에게 신세를 질 수 없다며 경제적 자립을 위해 무작정 사회로 뛰어든다.

르 코르뷔지에와 여행

그가 건축을 독학했다고는 하지만 스승이 없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안도를 직접 가르친 스승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빼앗겨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스승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를 헌책방에 읽고는 단번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당시 그 헌책을 살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그 책을 사가지 못하도록 책더미 맨 밑에 넣어놓곤 했다. 돈을 벌어 그 책을 꼭 사겠다는 일념이었다. 다음날 헌책방에 가보면 또 다시 책이 맨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다시 맨 밑에 넣어두었다. 돈을 모은 안도는 결국 그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안도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건축전공서적을 읽으며 건축을 공부해 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건축공부의 전부가 아니었다. 안도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바로 여행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저서 「건축을 향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날의 여행은 깊은 의의를 갖는다.” 24살이 된 안도는 벌어둔 돈을 탈탈 털어 나훗카로 간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다. 모스크바,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돌아본다. 그리고 남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화객선(화물과 여객을 동시에 운반하는 선박) MM라인을 타고 케아프타운, 마다가스카르, 인도,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간다. 7개월의 여행이었다. 젊은 날의 여행은 훗날 안도에게 있어서 큰 자산이 되었다.
 

롱샹 성당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안도 다다오의 공부,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서

그는 여행중 유럽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며 걷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건축을 가만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다시 바라보고 또 생각하는 그러한 시간들이 그에게는 살아있는 공부였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고만 있어도 건축이라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반복되는 묵상을 통해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안도는 건축에 대해서 조금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한 다음 여행을 떠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더 넓은 세계를 접하고 싶은 마음에 주려 있었다고 한다. 젊은 날의 격렬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으로 사브아 주택, 라투레트수도원, 유니테 다비타시옹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안도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건축은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이었다. 롱샹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건축 작품과는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2부에서 좀 더 언급하겠다)

르 코르뷔지에 또한 안도처럼 스승 없이 혼자서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안도로서는 친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안도는 프랑스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를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녔지만 정작 르 코르뷔지에를 만날 수 없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안도가 여행을 떠나기 한달 전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두 예술가는 만난적은 없지만, 그들의 건축 세계관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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