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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탐구] 자연 그리고 새로운 현실의 출발, 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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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탐구] 자연 그리고 새로운 현실의 출발, 훈데르트바서
  • 이황 기자
  • 승인 2019.07.18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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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1928~2000) [출처- 위키피디아, Hannes Grobe ; cropped by Off-shell]

[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혼자 꿈을 꾸면 한낮 꿈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꾼다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Friedensreich Hundertwasser

1. 자연주의 예술가, 훈데르트바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됐다.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 핵융합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며, 유전자를 조작하고,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날아다닌다. 자연보다 강력해진 인간은 자연을 함부로 개발함으로써 생태계를 교란하고 환경을 파괴했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로 강과 바다가 오염되고 중금속으로 토양이 더러워졌다. 난개발로 산림이 파괴되었다. 매연과 온갖 화학가스로 오존층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자연주의란 인간과 자연의 조화다. 이는 단순히 자연친화적인 태도가 아니다. 자연을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주의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삶을 의미한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자연 파괴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자연주의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며 새로운 현실을 꿈꾸었던 한 예술가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혹은 건축가・환경운동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이다.

그의 작품으로 회화는 「대성당1」(1951) 「노란 집들-질투」(1966) 등이 있고 건축물은 「쿤스트하우스 빈」(1991) 「훈데르트바서 하우스」(1983~1986) 「블루마우 온천마을」(1993~1997) 등이 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이황 기자

사진 속 건물은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네모나 직선과는 거리가 멀다. 부드러운 곡선이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며 곡선의 미학을 추구했다. 또한 곡선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한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고 봄이 찾아오면 새잎이 돋아나듯이 삶과 죽음은 자연의 순리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엔 창문이 많다. 창문은 자연과 소통하는 통로다. 건물 주변을 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두드러지는 점은 건물의 색깔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예술에선 다채로운 색채의 조합을 빼놓을 수 없다. 단일함과 대칭성을 거부하고 다양함과 비대칭성을 선호했다. 그는 회화에서도 다채롭게 색을 조합했다. 훈데르트바서는 흙이나 돌로 직접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곡선과 창문, 나무, 다채로운 색채 이 모든 것이 자연을 지향하고 있다.

2. 다섯 개의 피부 이론(Five Skins)

훈데르트바서는 5개의 피부(Five Skins) 이론을 주장했다. 첫 번째 피부는 말 그대로 ‘나의 피부’다. 두 번째 피부는 ‘옷’이고 세 번째는 ‘집’, 네 번째는 ‘사회’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지구환경’으로 이어진다. 나로부터 출발해 옷과 집으로 정체성이 확장되고 결국 사회와 지구환경까지 확장된다. 5개의 피부 이론은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개인이라는 독립적 존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너와 우리와 사회와 지구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이 사회와 지구환경으로 나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는 평화운동에도 열정을 쏟았는데 히틀러의 유대인 학 살정책으로 할머니 외 친척 69명이 몰살당했던 불우한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끔찍했던 개인의 기억을 넘어 궁극적으로 세계의 평화를 원했기 때문에 평화운동에 참여했다. 개인의 안녕을 넘어서서 세계의 안녕을 염원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와 지구까지 확장시켜 생각했기 때문이다.
 

훈데르트바트 하우스 @이황 기자

3. 우리는 자연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다.

자연의 다채로운 색채와 곡선은 성냥갑처럼 줄줄이 세워진 아파트와 다르다. 자연은 결코 획일적이지 않다. 모든 생물이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저마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현대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고 끝없는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자연을 읽지 못하는 문맹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이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다. 인간이 자연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자연의 가치를 예술과 실생활 속에서 실현했다면 인간과 자연은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4. 자연주의란 인간다움이다.

훈데르트바서가 5개의 피부(Five Skins) 이론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나 하나의 욕망만을 채운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정체성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주의・환경운동과 그림 그리고 건축으로 그러한 현대사회의 병적인 문제와 치열하게 싸워왔던 것이다. 자연을 사랑한 예술가 그리고 건축치료사로 불리는 까닭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란 결국 인간다움으로 연결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길이다. 인간다움보다 편리함과 즐거움이 예술의 중심에 서버린 시대에 그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하다. 무엇이 진정한 인간다움인지 고민해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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