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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재 18만점, 돌아올 수 있을까?민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국외소재문화재, 인력과 예산·조직적 대응 환수 어려움 겪어··· 장기적이며 체계적 대응 필요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7.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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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우리 선조들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훌륭한 문화유산들을 남겼다. 하지만 오랜 역사 동안 전쟁과 식민 지배라는 가슴 아픈 사건들 속에서 수많은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도난당하는 일도 수없이 벌어졌다.

국외소재문화재 재단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파악된 것은 21개국 18만 2080점이나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는 특히 일본이 전체의 42%인 7만 6382점을 갖고 있으며, 그다음은 미국 5만 532점, 독일 1만 2052점 순이다.

해외에 소재하고 있는 다양한 우리 문화재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화재 반출이지만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중의 상당수는 일본의 영향이 컸다. 한일합방의 주역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를 너무나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000점의 고려청자를 무분별하게 수집해갔으며, 일부는 일본 왕실에 진상하기도 했다.
 

오구라가 수집해간 '은평탈육각합'과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 [문화재청 제공]

또한 고고학자이자 교사였던 '가루베 지온'은 백제 고분 1천 기를 도굴하여 무수히 많은 문화재를 가져갔으며, 기업인 '오구라 다케노스케' 역시 수많은 유물을 도굴 및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오구라가 가져간 유물은 오늘날 '오구라 컬렉션'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수많은 일본인이 경매와 도굴 등의 방법으로 우리 문화재를 유출시켰다.

일본 가라쓰시의 가가미신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도'는 약 5m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고려불화이다. 일본학자들은 이 불화를 최고의 그림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화는 고려사 기록 등을 통해 고려 시대 당시 왜구가 약탈해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신라 흥덕왕 8년(833)에 만들어진 연지사종은 신라 3대 범종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가져갔으며, 현재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2006년 우리나라에서 반환운동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일본측은 이후, 수장고에 보관하며 거의 공개하고 있지 않다.

한편, 국보급 유물인 백제금동관음상은 7세기 초 만들어진 불상으로, 1907년 충남 부여에서 한 농부가 발견했다. 하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몇 년 전 한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 측은 소장자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원하는 액수와 문화재청의 예산이 맞지 않아 결렬되었다.
 

백제금동관음상 [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문화재 환수를 위한 노력과 성과

이렇게 수십만 점의 무수한 문화재가 외국에 가있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환수된 문화재는 겨우 1만 120점에 불과하다. 또한 이 중에서도 가치 있는 지정 문화재는 국보 4건, 보물 21건, 문화재 5건 등 689점뿐이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등을 통해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녹유골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좌상' 등 1,400여 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해 서둘러 이루어진 졸속 협상이었다. 돌려받은 것들은 우리가 처음에 요구한 문화재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짚신, 막도장 등 희소가치가 없는 것도 많았다.

2010년에는 당시 일본 간 나오토 총리와의 협상을 통해 일본 왕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 의 1205권을 반환받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협상도 오랜 이슈였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는 1975년 박병선에 의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이후 지속적인 반환 운동으로 인해 1993년 협상이 시작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반환된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 제124호 [문화재청 제공]
'조선왕조의궤- 성상태실가봉석란간조배의궤(내용 일부)' 보물제1901호 [문화재청 제공]

이후, 14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7년 임대 형식으로 의궤가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반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 국내의 법적, 정치적 사정을 고려하면 임대 형식으로라도 들여올 수 있게 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였다는 의견도 있다.

2012년에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탄력적인 대응을 위해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국외에 소재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현황과 경위에 대한 조사·연구 및 환수와 활용을 위한 각종 전략·정책 연구 및 추진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국외문화재재단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환수한 문화재는 2018년 12월 기준 17건, 88점에 불과하다. 특히 2017년 국정감사에서 최근 4년 동안의 성과가 직접 매입은 1건, 타기관 예산에 의존하여 환수 협력한 4건 등 총 5건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9일, 게임사 '라이엇게임즈'와 문화재청의 협력하에 '조선백자' 및 '조선왕실 인장' 두점을 성공적으로 매입하였다 [라이엇게임즈 제공]

열악한 문화재 환수 실태

문화재 환수는 국가 간의 협정을 통한 것도 있지만 문화재가 소재되어 있는 국가에서의 법적 상황으로 인해 협정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특히 소장자가 약탈, 밀수 등의 물건인 것을 몰랐던 경우 소유권이 인정되는 '선의취득'이 문제인데, 프랑스, 일본 등은 선의취득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증 또는 직접 매입을 통해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 특히, 문화재청은 국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매입하기 위한, 긴급 매입비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예산은 한해 약 50억 원에 불과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긴급 매입비 50억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문화재 매입비도 포함되는 만큼, 액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의 우리 문화재 거래에 대해서는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여 변동이 너무나 크다. 혹시라도 예산이 남는 경우에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많은 예산이 배정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세계의 다양한 국외소재 문화재 동향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대처하기는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다. 실제로 현지 실태 조사가 이뤄진 문화재는 17만 점 중에 4만여 점에 불과하다. 분명 이러한 관련 기관의 예산과 인력 부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이며, 더욱 많은 지원과 관심이 촉구된다.
 

지난 4월, 라이엇게임즈와의 협력 하에 독일 경매에서 매입에 성공한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 (권 9의 23-24장)에 해당 [문화재청 제공]

아픈 역사를 내딛고, 문화강국으로의 재정비를 위해

하지만 현재와 같이, 몇몇 부처 차원의 매입 등을 통한 방법이 과연 충분한 것인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국외문화재를 일일이 파악하여 찾아오는 것은, 결국 현지에서의 협조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거대한 규모의 문화재 반환은, 정부 차원에서의 조직적 대응과 국가 간 협의로 이루어진 것이 많았다.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 끈질긴 협상과 주도면밀한 대응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앞서 살펴본 한일협정처럼, 당장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된다. 따라서 문화재 환수 협의는 오랜 인내심을 갖고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법과 문화재관계법 등에 능통한 학자 및 외교관 등 전문 인력을 활용한 대응과 함께 각 부처 조직 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대응이 절실해진다. 정치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장기적인 대응이 가능한 인프라와 체제 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는 그동안의 대한민국 역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수한 우리 문화재를 어떻게든 빼돌렸고, 지금도 그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

지금 21세기,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국력이 강해졌다. 또한 문화산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민족적 감정을 극복하고, 세계무대에서 문화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흩어져있는 국외문화재들이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이를 위해, 국민과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해지고 있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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