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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촘촘한 전통 빗을 만드는 장인 '참빗장', 국가무형문화재 된다고행주 보유자 지정예고··· 한국의 우수한 빗들과 그 오랜 역사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7.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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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이 없는 참빗 [문화재청 제공]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머리를 빗는 빗(櫛, comb)은 오랫동안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한 도구이다. 머리를 정리하는 것은 물론, 머리에 꽂는 장식용으로도 쓰였으며, 머리의 비듬과 이물질 그리고 머릿니 등을 제거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사실 위생이 좋지 않았던 예전, 머릿니가 많았던 시절에는 빗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이 머릿니를 잡는 것이었다. 빗으로 머릿니를 긁어내 잡아 죽이던 모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어릴 적 세대인 70년대에만 해도 아주 흔한 일상이었다.

이번에 문화재청은 전통 빗 제작 기술을 보존하고자 참빗을 만드는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참빗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하였다고 한다. 인정 예고된 보유자는 바로 고행주(高行柱, 남, 1935년생, 전라남도 담양군) 씨이다.

원래 빗은 다양한 전통 재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에는 플라스틱 및 금속으로 만든 빗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값싼 이 빗들은 기존 천연재료로 만든 빗을 대체하고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빗을 만들던 수많은 장인 역시 점차 사라지고 기술도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빗은 그동안 어떠한 역사와 변천을 거쳐왔을까?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된 참빗장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국가무형문화재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참빗장 보유자 고행주 씨 [문화재청 제공]

인류의 오랜 필수품, 빗의 역사

빗은 고고학 유물 중에서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유물이다. B.C 수천 년전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유물에서도 빗이 발견되었으며, 중국 은나라 유적에서도 목재, 골제, 옥, 상아 등으로 만든 빗이 출토되었다. 빗은 목재로 만든 것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썩기 쉬운 목재의 특성상, 많은 수량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낙랑 유적에서 목제로 만든 빗이 발견되었다. 이후 삼국시대 청주 미평동·성화동 등 유적과 여러 고분에서도 빗이 출토되고 있다. 한편, 삼국사기의 '흥덕왕 복식금제조' 기록에 의하면 대모(玳瑁 거북)·아(牙 상아)·각(角 뿔)·목제의 빗이 계급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어용(御用, 임금의 물건) 장식품을 제작하던 중앙관청 중상서(中尙署)에 빗을 만드는 소장(梳匠)이 소속되어 활동하였다고 한다. 또한 태안 앞바다에서 난파된 고려의 선박 마도 1호선과 마도 3호선에서도 참빗이 나와, 당시 왕실과 귀족층을 비롯하여 참빗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빗을 만드는 장인들이 세분화되었는데, 경국대전에서는 중앙 수공업기관인 경공장(京工匠)에 빗을 만드는 기술에 따라 얼레빗을 만드는 목소장(木梳匠), 대나무로 된 참빗을 만드는 죽소장(竹梳匠), 빗의 때를 제거하기 위하여 멧돼지 털로 빗솔을 만드는 소성장(梳省匠) 등을 두었다.

왕릉 또는 신분이 높은 귀족의 빗은 아름답게 장식한 것이 많았다. 화각(소뿔)과 주칠 및 옻칠, 나전, 칠보, 조각 등으로 다양하고 아름다운 빗을 만들었으며, 문양과 글귀를 새기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빗이 부녀자의 귀중한 물건으로 쓰였으며, 허혼(許婚)의 의미로 사용됐다.
 

얼레빗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살쩍밀이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빗의 종류

빗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고 사용 용도도 다양한 만큼,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빗을 만들었고 종류도 다양했다. 

▲얼레빗은 엉킨 머리를 가지런히 하는 데에 사용한 빗으로, 반월형 또는 각진 형태를 가졌다. ▲참빗은 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한데, 머리를 단장하거나, 때를 빼는 것은 물론 이를 잡는 데에도 제격이었다. ▲'살쩍밀이'는 망건을 쓸 때에 삐져나오는 살쩍을 밀어 넣을 때에 사용하는 빗으로 작고 갸름하게 만들었다. 또한 ▲
음양소는 빗살이 한쪽은 성기고 한쪽은 촘촘한 빗으로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했다.

이 밖에도 ▲ 살쩍을 빗어 넘기는 면빗, ▲ 조그만 얼레빗 모양으로 상투를 쓸 때 사용하는 상투빗 등이 있었으며, 빗과 거울, 빗손질 도구를 보관하는 빗접도 있다.

특히, 이 중에서 참빗은 서민들이 가장 많이 활용한 빗이었다. 참빗은 보통 대나무 등으로 만드는데, 플라스틱 제품과는 달리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아 모발 손상이 없고, 머리를 빗을 때의 느낌이 시원하고 좋다.
 

덕온공주 유물(국가민속문화재 제212호)- 해당 유물 중 윗줄 왼쪽(0132), 밑에서 두번째(0133)가 참빗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서민의 빗이자, 조선의 특산품인 참빗

조선시대에는 빗을 만드는 장인이 세분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기록 속에서 참빗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의 ‘오례(五禮)’에서 참빗을 가리키는 ‘죽소(竹梳)’라는 옛 명칭이 나온다. 경공장(京工匠)에는 대나무로 빗을 만드는 ‘죽소장(竹梳匠)’이 별도로 참빗을 제작했다.

1477년 성종실록에는 중국에 참빗(竹梳) 1,000개를 하례품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참빗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대표적인 유물로 남아있는 참빗은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가 7세의 나이에 공주로 책봉되던 때에 사용했던 ‘덕온공주 유물(국가민속문화재 제212호)’에 참빗이 있다.

참빗은 아주 다양한 공정과 도구를 사용해서 만들어진다. 그 공정이 약 40여 가지에 달한다. 대략적으로 참빗은 알맞게 굳은 3년생 이상의 대나무를 가늘게 자르고, 겉대를 모아 빗살을 만들어 실로 맨다. 빗살은 대축에 실로 감아 고정시켜 일정하게 간격을 맞춘다. 그리고 참빗 양쪽 등에 골을 파서 풀을 바르고 겉대를 마주 붙이고, 빗살을 고르게 깎고 다듬으며, 인두로 무늬를 장식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빗살을 다듬는 과정 [문화재청 제공]

또한 공정마다 아주 다양한 공구를 사용해야 한다. 대나무를 절단할 때에는 작은 톱을 쓰고, 마디 사이를 쪼갤 때에는 대칼, 빗살을 가르기 위해 쓰는 전집칼, 참빗살을 다듬는 밀칼, 숫돌, 인두 등 아주 많다. 참빗을 만들 때에는 대나무를 다양한 크기로 자르고 손질하며 빗살의 간격을 촘촘하고 고르게 유지시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세밀한 작업과 숙련된 손놀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참빗은 종류도 다양하다. 크기에 따라 대소·중소·어중소·밀소로 나누며 중소만 해도 참빗의 양 끝인 마구리를 만드는 재료에 따라 골중소·목중소·대중소로 나눈다. 참빗은 특히 담양의 것과 영얌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영암의 참빗은 마구리에 소뼈를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공구와 공정도 담양과 다소 차이가 있다. 현재 영암 참빗은 전남무형문화재 제15호로 등록된 이식우 장인이 만들고 있다.

'참빗장' 국가무형문화재된다

이번에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고행주 씨는 9살이라는 나이에 처음 참빗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74년간 참빗을 만들어오고 있다. 1986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참빗장’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행주 장인의 가문은 이미 예전부터 참빗을 제작해오고 있었다. 그 시작은 고행주의 증조부인 고(故) 고찬여 옹이며, 고찬여 옹은 생계를 위해 참빗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후, 고행주 장인은 장남 고광연, 차남 고광채한테도 기술을 전수해주며 5대째 참빗장 기술이 계승되오고 있는 중이다.

한때, 참빗 수요가 많았을 때에는 담양군에는 약 수백 가구가 참빗을 만들었다. 일제시대 당시에는 고행주 장인의 할아버지인 고학진 옹이 참빗조합 진소계원으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이들 고행주 집안만이 외롭게 참빗을 만들고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된 참빗 [문화재청 제공]

그동안 고행주 씨는 전라남도와 담양군의 각종 시연행사에 참여했으며,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등 다수의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는 등, 끊임없이 전승활동을 이어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보유자 인정조사 과정에서 고행주 씨의 참빗 제작의 숙련도와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되었다"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참빗장’과 그 보유자로 인정 예고한 고행주 씨에 대해서 30일 이상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다양한 종류의 화려하고 질좋은 빗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은 산업화를 거치며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다. 이러한 때에, 국가무형문화재로의 지정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물론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소 고행주 장인은 젊은 사람들에게로 기술 계승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 등을 토로하고 있다. 과연 전통 참빗이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을까? 전통 참빗의 뛰어난 기능과 디자인을 어떻게 현대와 발맞추어 다시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그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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