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11-27 13:45 (금)
중국 민중의 대표자기 '자주요', 소박한 옛 사람의 흔적을 담다
상태바
중국 민중의 대표자기 '자주요', 소박한 옛 사람의 흔적을 담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7.02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자주요 특별전', 자주요의 모든 것을 느껴보자
자주요 인물무늬 뚜껑 항아리 [한성백제박물관 제공]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자주요(磁州窯, Cizhouyao)'란 당나라 말기부터 시작하여 명·청까지 중국 하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민간 자기와 그 가마를 말한다. 도자기의 자(磁)가 자주요의 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로 자주요는 중국 도자기의 역사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주요는 흰 화장토 위에 검은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백지흑화(白地黑花)와 흰 화장토 위에 그린 문양의 배경을 긁어 만드는 백지척화(白地剔花)가 대표적이다. 자주요는 고급 백자 대신 조금 투박하지만 흰 화장토를 입히는 방법으로 만들었기에 오랫동안 민간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오랜 시대를 거쳐 민간에서 만들어진 만큼, 자주요는 시대 별로 아주 다양한 모습을 통해 발전해왔다. 다양한 그림과 글, 장식 등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자주요는 당시 생활상을 알려주는 데에 아주 중요한 민속자료로 쓰인다.

오늘날에도 중국 10대 도자 생산지에 포함된다고 하는 자주요는 일본, 한반도, 동남아시아 및 이집트까지 수출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만들어진 우리의 '분청사기'도 자주요의 영향을 깊숙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주요를 제작했던 만두가마 모형

이번에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자주요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6월 28일부터 8월 25일까지 진행되는 '자기에 입힌 세상만사-자주요' 전시이다. ‘민간 가마의 으뜸_자주요’, ‘자주요의 성립’,  ‘자주요의 글과 그림’, ‘자주요의 확산’ 4가지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이상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기중한 다양한 유물과 친절한 설명을 중심으로 자주요의 이해를 돕는다.

자주요를 제작하는 방법은 ① 먼저 주변 광산에 질 좋은 흙을 채취하고 손질하여 바탕흙(胎土)을 만드는 것이다. 흙은 철분 성분이 많아 구우면 회색을 띠는 대청토, 암석을 가공한 흙으로 구우면 황갈색을 띠는 항토 등을 주로 사용한다. 흙은 곡식을 탈곡하는 데에 쓰는 도구인 '연자방아'로 빻아 다지고 그다음, 물로 이물질을 걸러내어 입자를 가늘게 만든다.

② 그다음 흙을 물을 섞어 반죽하여 물레에 돌려가며 모양을 만든다. ③ 그리고 그릇의 모양이 잡히면 겉에 알칼리백토를 가공해 만든 흰 화장토를 바르고 화장토가 마르면 안료를 묻혀 무늬를 그린다. ④ 이렇게 완성된 그릇은 마무리로 녹유·황유·람유·흑유 등 유약을 바르고 갑발에 담아 가마에 넣고 구우면 된다.

자주요를 대표하는 다양한 가마들
 

백지척화- 그릇이 살짝 마른 상태에서 화장토를 입히고, 화장토가 마르기 전에 무늬를 그리고 다시 이를 깎아낸 다음, 투명유를 발라 굽는다. 흰색의 문양과 바탕의 회색이 대비되어 문양이 두드러진다.
길주요에서 만든 흑자 대접, 흑자 용과 봉황무늬 접시, 장유 대접

길주요는 강서성에 위치한 가마로, 남송과 원나라 때에 전성기를 맞았다. 유악을 입히기 전 그림을 그리는 유하채회(釉下彩繪) 기법은 길주요로 남하해온, 자주요 도공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길주요에서는 또한 화장토를 쓰지 않은 독특한 흑자를 주로 생산했다.
 

길주요 흑자 매화무늬 매병
장사요 그릇- 청자 포도무늬 주전자, 청자 사자무늬 주전자, 백지녹갈채 침 뱉는 그릇, 청자 풀잎무늬 주전자

남방 후난성(호남성)을 중심으로 한 장사요는 자주요처럼 흰 화장토를 바르고 다양한 문양과 시문을 그리거나 쓴 다음, 투명유를 입혀 구웠다. 또한 비교적 표현이 단조로운 자주요에 비해 산화동 및 산화철로 녹채, 갈채, 녹갈채 등 다양한 색을 표현하였다. 

한편, 허베이성(하북성) 자현에 위치한 관태요는 특히 자주요의 대표적인 가마이다. 약 50만m 제곱 규모를 자랑하는 이 가마터는 시대별로 다양한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하북성 부양하 유역에 위치한 팽성요는 31만m 제곱 규모의 가마인데, 명·청 시대에는 남방의 경덕진과 함께 당시 도자기 가마를 대표했다. 민간 뿐 아니라 관요도 설치되어 왕실용 그릇도 만들었다.
 

백지흑화 풀꽃무늬 접시, 백지흑화 국화무늬 접시
백지척화 모란넝쿨무늬 접시모양 입 병, 백지흑화 모란무늬 매병, 백지흑척화 모란넝쿨무늬 두 귀 항아리
백지흑화 인물무늬 뚜껑 항아리
자주요의 영희도

자주요의 문양

자주요는 새기기, 도장찍기, 그리기, 깎아내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문양을 새겼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그리기(백지흑화)와 깎아내기(백지척화)는 자주요의 문양을 잘 드러내 주었기에 특히 많이 쓰였던 대표적 기법이다. 

문양은 기하문, 식물문, 산수문, 동물문, 인물문 등 다양했으며 시와 소설, 문자 등을 바탕에 쓰기도 했다. 자주요 자기에 있는 꽃 문양은 약 80%가 모란무늬가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모란은 중국인들에게 각별한 존재였으다. 모란은 절개, 아름다움, 부귀 등을 상징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에서는 어린아이를 그림, 자수, 조각 등에 표현하기도 했다. 이를 영희도(嬰戲圖) 또는 영희문이라고 한다. 자주요 역시 이러한 영희문을 찾아볼 수 있는데, 아이들의 생활 모습을 그렸기에 영희문 그림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추정해볼 수 있다.
 

분청사기 국화무늬 접시

자주요의 확산

자주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상류, 홍해 부근과 탄지니아 킬와섬, 이란, 이라크 그리고 케냐의 몸바사에서도 발견된다. 이를 통해 저 멀리 중동과 아프리카로도 자주요계 자기가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태국, 필리핀, 베트남, 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자주요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의 교지 자기와 태국의 수코타이 자기 등도 자주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일본과 한국에서도 역시 자주요의 흔적을 강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예전부터 자주요 외에도 다양한 중국 도자기를 수입해서 왕실, 승려, 무사 등이 사용해왔다. 따라서 유적지에서 중국 도자기 유물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제작했기에 굳이 서민이 사용하는 자주요를 수입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고려 및 조선시대 유적에서 적게나마 자주요계 그릇이 출토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분청사기'는 흰 화장토를 발라 구워 백자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서민들이 사용했다는 점, 검은 안료 또는 화장토를 긁어 문양을 만들었다는 점 등이 자주요와 비슷하다. 따라서 분청사기가 자주요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대다수 연구자들은 분청사기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이어받았으며, 자주요 제작이 중단되고 100여 년 뒤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자주요의 영향을 부정한다.
 

삼채 베개와 백지획화 베개편 -삼채(三彩)는 그릇에 황유·백유·녹유·갈유 등 3가지 이상의 연유를 사용하여 다양한 색깔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자주요는 왕실에서 사용된 고급 백자와 청자와 비교한다면 고귀한 아름다움은 덜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급 자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주요만의 정겨운 투박함이 왠지 모를 매력을 내뿜는다. 또한 자주요의 그림과 글귀에는 자주요에서만 볼 수 있는 소박한 당시 민중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커진다.

한성백제박물관 관계자는 "자주요는 오랜 중국 민중의 문화가 생생하게 녹아있는 대표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전시의 제목인 '자기에 입힌 세상만사(世上萬事)' 역시 도자기 안에 당시 사람들의 세상 다양한 일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은 것이다. 다양한 자주요를 만나며 그 시대를 살아간 옛 사람의 흔적을 느껴보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