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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와는 다른 매력과 아름다움, '용천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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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와는 다른 매력과 아름다움, '용천청자'
  • 이진 기자
  • 승인 2019.06.17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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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기술의 결정체였던 중국 용천청자, 18일부터 20일까지 국내에서 용천청자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 열려

[핸드메이커 이진 기자] 도자기의 종주국은 오랫동안 '중국'이었다.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빠르게 갖추었으며, 이러한 중국의 도자기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청자의 비기, 용천청자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청자는 남송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는 중국 저장성 용천현(절강성, 浙江省 龍泉縣)을 중심으로 생산된 '용천청자(용천요, 龍泉窯)'이다. 이 용천청자는 도자기 기술이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시기인 원나라와 명나라 초기까지 크게 번성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까지도 대량으로 수출된 '중국의 진귀한 보물'이었다.

당나라 시인, 육구몽은 '9월 가을바람 불고, 이슬이 내리면 월요가 열리는데, 천봉의 비취색을 빼앗아온다'라며 용천요를 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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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청나라 때 지어진 남요필기에서는 '송대 처주에서 나와 처주청이라 명하였다. 전왕 때에 전해져 월요의 비색이라 칭해졌으며, 왕이 심히 아껴 귀히 여겨졌다. 그 흙의 성질은 견고하고 색이 희며, 유색은 푸르러 소위 ‘분골용천(粉骨龍泉)’이라 하였다'라고 나온다. 
 

용천청자는 예로부터 이렇게 그 광택과 색이 순수한 백옥 및 얼음에 비교되곤 했다.

용천요를 만드는 요지(가마터)는 남송대에는 50개 정도였지만, 원나라 대에는 약 2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남송에서는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용천요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관요로서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수출했다. 이러한 용천청자는 일본에서는 '침청자', 프랑스에서는 '설랍동'이라고 불렀다. 특히 영어로 청자를 셀라돈(celadon)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용어도 용천청자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선으로 인해 용천청자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배는 원나라에서 일본으로 가던 길에 침몰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배에서 출토된 수많은 도자기가 용천청자였던 것이다.
 

용천청자의 변천과 특징

그런데 중국 저장성에는 이미 '월주요(越州窯)'라는 초기적 형태의 청자가 있었다. 월주요는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당나라와 북송 시대까지 번성했다. 또한 우리나라 고려 청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남송 대에는 청자의 기술적 결정체인 용천청자로 나아가는 모태가 된다.

월주요는 장석(長石)과 같은 규산 물질을 재에 첨가하여 만들어낸 유약을 바르고 1200도 이상의 고화도에서 구웠다. 이 유약에는 철분이 소량 포함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청록색 또는 황록색을 띠게 된다. 월주요는 유약이 두껍고 매끈하게 용해되었으며 완전한 청자의 단계로 다가서는 과정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월주요를 굽던 가마는 주로 해안에 위치했지만, 용천현의 도자기 생산지인 가마는 주로 내륙에 위치했다. 대요(大窯), 금촌(金村), 계구(溪口) 등의 가마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요촌의 도자기가 질이 좋았다고 한다.

용천청자는 두터운 유약층으로 인한, 두터운 질감과 반투명의 부드러운 색감 등을 특징으로 한다. 석회석에 일부 장석을 넣어 산화칼슘을 8% 이하로 낮춘 '석회감유'라는 유약을 사용했는데, 이 유약은 고온에서 점토가 두꺼워져 흘러내림이 없고 광택이 뛰어났다.

이 같은 용천청자의 특징은 무늬를 새긴 다음, 유약을 얇고 투명하게 바르며 무늬가 잘 드러나도록 한 상감기법을 사용한 우리 고려청자와 비교된다. 용천요는 조각을 거의 하지 않는 순청자 또는 얕은 무늬를 찍어내거나 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금인 빙렬 등으로 장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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