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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농촌의 구수한 풍경, 주렁주렁 둥근 박과 바가지다양한 일상용품과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박의 매력
  • 이진 기자
  • 승인 2019.06.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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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핸드메이커 이진 기자] '흥부네 가족은 다리를 다친 제비를 치료해준 대가로 박씨를 받았다. 흥부네가 박을 얻을 요량으로 그 박씨를 심자 금세 거대한 박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흥부네가 그중 하나를 골라 박을 타자 안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농촌 서민의 일상과 함께해온 박

유명한 전래동화 흥부전의 내용이다. 여기서 나오는 '박'은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을 의미한다. 박과 채소로서 대표적인 것은 호박, 수박, 참외, 멜론 등이 있다. 원래 박은 인도, 아프리카를 원산지로 하지만 금세 유럽, 동아시아에도 퍼져나갔다.

박은 우리 옛 서민과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이기도 했다. 초가집 지붕에 덩굴들과 함께 주렁주렁 달려 있는 큼지막한 박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미지이다. 오늘날에도 '바가지 긁다', '바가지 씌우다', '바가지 머리' 등의 관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서민의 일상에서 박이 널리 쓰이던 것이 그대로 생활 속에서의 비유로 사용하면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B.C 69~A.D 4년)의 탄생을 다룬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박혁거세가 큰 알에서 나왔는데 이 알이 마치 박과 같아, 박(朴)을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로 볼 때 박이 아주 예전부터 한반도에서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은 거친 기후에도 잘 자란다. 또한 과육은 식용으로 사용하고 과피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서민에게 애용됐다. 특히 우리에게 호리병박으로 만든 호리병과 표주박 등의 바가지는 대표적인 농촌의 생활공예품이다.
 

다양한 바가지들 @Rik Schuiling, TropCrop-TCS
호리병박으로 작품 만들기 @pixabay

박의 다양한 용도와 종류

박은 수정된 지 약 20일이면 급격히 커진다. 이때 아직 여물지 않은 박의 속을 파내어 길게 오리고 햇볕에 말린 나물을 '박고지'라고 한다. 이 박고지는 서민들도 먹었지만 왕의 수라상에도 올랐던 음식이다. 효능이 뛰어나 오늘날에도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수정 이후, 약 40일이 넘으면 점차 박이 여물고 단단하게 굳어지게 된다. 표피가 완전히 굳어지면 과육을 제거한 다음, 그늘에 말린다. (햇볕에 말리면 껍질에 금이 가고 깨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이를 가공해서 다양한 바가지를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

바가지는 상류계층이 주로 이용한 도자기 등에 비해 비록 품질과 미적 감각은 떨어질지 몰라도 아주 가볍고 제작과 관리가 간편했기에 결코 그 실용성이 뒤처지지 않았다. 서민들은 바가지로 쌀을 퍼거나 물을 마시는 컵, 음식 용기, 모자, 탈 등 아주 다양하게 활용했다.

호리병박(조롱박)은 그 모양이 호리병같이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어릴 때에는 과육을 식용으로 먹으나 성숙하여 과피가 단단해지면 과육은 먹지 못하고 대신 공예품을 만든다. 호리병의 끝을 자르고 안을 비운 다음, 잘 건조하면 모양 그대로 호리병처럼 사용할 수 있다.
 

씨앗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한 뒤웅박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거대한 크기의 둥근박은 표주박, 뒤웅박 등을 만들었다. 뒤웅박은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부분을 따낸 다음, 속을 파내서 말린 큰 용기이다. 따낸 꼭지 부분은 뚜껑으로 사용했다. 뒤웅박은 습기를 잘 흡수하여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한편, 표주박은 한국인이 사용한 대표적인 바가지이다. 서민들뿐 아니라 선비들도 표주박을 술잔 등으로 사용했는데, 물론 선비들의 것은 박보다는 나무 혹은 금은 등의 귀한 금속을 재료로 만든 것이 많았다. 서민의 표주박은 호리병박과 둥근박을 모두 사용했는데 이들 박을 세로로 반으로 잘라내고 끓는 물에 잘 삶은 다음, 건조해서 사용했다.

혼례 또는 일상에서 술잔으로 사용하는 바가지와 호리병, 옻칠과 주칠로 마무리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호박으로 만든 조명등 '잭오랜턴' @Julie Pi

현대에서의 '박공예'

오늘날에는 시골 농촌에서조차 주렁주렁 열린 박의 풍경을 보기 힘들어졌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가지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또한 풍족해진 식생활로 인해, 몇몇 과일을 제외하면 박을 먹을 일도 줄었다. 굳이 번거롭게 박을 재배할 필요도, 일일이 손으로 바가지를 만들 필요도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박공예는 새로운 예술성을 갖춘 전통 공예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박공예를 하는 공예가들은 옻칠·인두·조각·채색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 박공예품은 주로 장식품으로 사용하지만 박으로 만든 조명등, 주전자, 받침대 등 현대와 콜라보한 새로운 생활용품으로도 만들어진다.

바가지공예는 급격히 잊혔지만 짚으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던 '짚풀공예'처럼 농촌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자 일상이었던 만큼, 그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현대의 감성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잠재력도 있다. 하지만 박공예는 짚풀공예와는 달리 아직 '무형문화재'로의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별다른 지원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할로윈 등의 영향으로 호박을 이용한 공예와 아트가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할로윈 문화가 퍼지면서 조금씩 박공예도 알려지고 있다. 전통 박공예가 현대와 만나 어떻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지 그 고민이 시급해 보인다.

이진 기자  jin2ya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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