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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수도암비, 김생이 808년 쓴 필적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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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수도암비, 김생이 808년 쓴 필적으로 밝혀져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6.05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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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국 위덕대 박물관장 등 조사단, 원화삼년 등 21자 추가 판독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이때 홍관이 김생의 행서와 초서 한 권을 보여주니 두 사람이 크게 놀라며, ‘오늘 뜻밖에 왕우군(王右軍)의 글씨를 보게 될 줄 몰랐다' 하였다. 그러자 홍관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신라의 김생이 쓴 것이요.’ 라고 말하니, 두 사람은 웃으며, ‘천하에 왕우군을 제외하고 어찌 이런 묘필(妙筆)이 있겠소’ 하였다. 이에 홍관은 여러 번 김생의 글씨라고 하였지만 끝내 믿지 아니하였다. -'삼국사기 권48 열전 제8 김생조'

이 이야기는 숭녕(崇寧 송나라 휘종 연호, 1102∼1106)에 고려 사신 홍관이 송나라에 갔다가 김생 글씨를 송나라 관리에게 보여줬더니 중국 최고 명필로 꼽히는 왕희지(王羲之) 필체로 오인했다는 내용이다.

신라의 명필 서예가, 김생(711~미상)은 비록 미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고, 80을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으며,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서체와 작품을 창시하며 입신(立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후대에 고려의 이규보·이인로, 조선의 서거정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김생을 극찬했으며, 오늘날까지 한국 서예사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김천 수도암비', 808년 김생이 글씨를 새긴 것으로 밝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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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명필 김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확인된 경북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이하 수도암비)가 김생이 원화삼년(元和三年, 808)에 쓴 글씨를 새긴 비석이라는 추가 판독 결과가 나왔다.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 이영호 경북대 교수는 김천 수도암비를 조사해 기존에 읽은 글자 22자 외에 김생서(金生書), 원화삼년(元和三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등 21자를 더 판독했다고 4일 밝혔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비석은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에 있으며, 크기는 높이 177㎝, 너비 60∼61㎝, 두께 42∼44㎝이다. 일제강점기에 판 것으로 짐작되는 '창주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본래 세로 길이 4∼5.5㎝인 글자를 8행에 26자씩 새겼다.

박 관장은 "비석 끝부분 8행에서 흐릿하지만 다른 글자보다 조금 작게 새긴 '김생서'(金生書) 세 자를 찾았다"며 "'원화삼년'이라는 연호는 6행 중간에 있는데, 후대에 판 도(道)자에 의해 원(元)자가 가로로 절단됐으나 일부 획이 남아 판독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석을 세운 목적은 박방룡 원장이 제1행에서 판독한 '비로자나불'을 통해 가닥을 잡았다"며 "수도암비는 신라 말기에 만든 작품으로 알려진 보물 제307호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려주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조사단은 수도암비를 조사한 뒤, 김생 사후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만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와 필체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김생 진적(眞蹟·실제 필적)이라는 견해를 내놨는데,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문구인 '김생서'(金生書), '원화삼년'(元和三年)이 드러난 것이다. 원화삼년은 당나라 헌종(805∼820)이 즉위하고, 이듬해부터 사용한 연호를 말하며, 808년을 의미한다.

서예사를 전공한 정 위원은 당시 "전체적으로 북위풍 해서(정자체)로 썼는데, 행서(정자체와 흘림체의 중간)의 필의가 많다"며 수도암비가 현존하는 유일한 김생 친필이자 태자사비 원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관장은 "수도암비는 비석 연마 상태가 고르지 않아 통상 엄청난 시간과 공력을 들여 만드는 집자비라고 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김생의 친필이 더 있을 가능성 제기

문제는 삼국사기에 경운(景雲) 2년, 즉 711년이라고 기록된 김생 출생 시점과 수도암비 제작 시기인 808년(원화삼년)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 관장은 삼국사기에 있는 김생 생몰 연도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또한 제작 시기와 필체를 근거로 김천 갈항사지 동탑 상층 기단 명문, 산청 단속사 신행선사비 글씨도 김생 친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호 교수는 "이제 김생 글씨는 집자비인 태자사비가 아니라 김생 진적이 확실시되는 수도암비를 기준으로 연구해야 한다"며 "수도암비 보존 방안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사단은 수도암비 추가 판독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신라사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신라사학보에 게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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