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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확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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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확실시
  • 이진 기자
  • 승인 2019.05.14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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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서원으로 구성된 연속유산, 3년 만의 재도전 끝에 결실 맺어

[핸드메이커 이진 기자]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이었던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되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하 이코모스)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 권고’를 1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통지받았다. 등재를 권고받은 문화재는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다. 

대한민국이 등재 신청한 9곳 서원은 ▲ 소수서원(경북 영주), ▲ 도산서원(경북 안동), ▲ 병산서원(경북 안동), ▲ 옥산서원(경북 경주), ▲ 도동서원(대구 달성), ▲ 남계서원(경남 함양), ▲ 필암서원(전남 장성), ▲ 무성서원(전북 정읍), ▲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총 9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성리학 연구의 중심지였던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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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유교 교육기관이었던 서원은 공립학교인 향교와 구분되며 그 유래를 중국 당나라에서 찾는다. 하지만 급속도로 서원이 퍼진 것은 송나라에서였다. 이때에 생긴 수양·석고·악록·백록동서원을 송나라 4대 서원이라고 부른다. 특히 이 중에서도 주자학을 창시한 주자의 '백록동서원'이 유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을 시초로 삼는다. 이후 서원은 조선 각지로 퍼져나가게 된다. 특히 1550년(명종 5)에는 퇴계 이황의 건의에 따라 명종이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이라는 간판을 하사하고 노비와 책, 땅을 주면서 국가의 보조를 받는 사액서원이 시작된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고 선현을 제사 지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방 향촌에 거주하는 사림의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기도 했으며 지역 백성을 계도하는 역할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점차 폐단이 심해져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백성을 착취하고 당쟁을 일삼는 근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숙종, 영조 및 정조 등 역대 임금도 서원을 손대려고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으며 서원은 계속 늘어나 정조 대에는 650개, 고종 때에는 1000여 개에 달했다. 결국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명령에 따라 47개소만 남기고 철폐되었다.
 

서원의 구성과 건축적 특징

서원 건축의 특징은 유교적 이념과 전통 건축을 잘 구현해내었다는 특징이 있다. 기존 사찰이나 궁궐처럼 단청을 칠해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보다 검소함과 소박함, 주변 자연과의 조화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서원의 건축은 건축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음양오행에 알맞은 위치를 선정해지었으며 건물을 지을 때는 일반적으로 앞쪽에는 교육을 담당하는 강당과 기숙사를 두며 뒤쪽에는 제사 등을 담당하는 사당을 짓는 전학후묘(前學後廟)라는 배치를 따른다.

건물은 선현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교육을 실시하는 강당, 문헌을 펴내는 장판고, 유생들이 숙식하는 동재와 서재 그리고 책을 보관하는 서고, 제사용품을 담당하는 제기고, 시를 읆고 대담을 나누는 정자(누각) 등이 추가된다. 또한 뜰에는 산수유·느티나무·난초·매화·단풍 등을 심어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의미로 조경을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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