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스터마이징 온고지신
경주 월성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 배 모형과 방패 나왔다곡물과 당주 언급한 목간과 목재 구조물 등 다양한 유물 등도 발견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4.02 12:01
  • 댓글 0
월성 해자지구 발굴조사 현장 전경 [문화재청 제공]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월성 정밀발굴조사 중 해자 내부에서 ▲ 의례에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最古)의 축소 모형(미니어처) 목재 배 1점, ▲ 4~5세기에 제작된 가장 온전한 형태의 실물 방패 2점, ▲ 소규모 부대 지휘관 또는 군(郡)을 다스리는 지방관인 당주(幢主)와 곡물이 언급된 문서 목간 1점 등을 발굴하였다.

경주 월성 발굴조사 사업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은 약 101년 파사왕 22년에 축조한 신라의 왕성이다. 모양이 반달같다고 하여 반월성 또는 신월성이라고도 불린다. 자연적인 언덕 위에 돌과 흙을 이용해 성을 쌓았으며 역대 신라왕들의 궁들이 있었던 천년 왕성으로 쓰였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현재 월성에서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인 조사성과 공개, 대국민 현장설명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술조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가고 있다.

경주 월성 발굴조사는 올해로 5년차를 맞이했으며 약 22만 2천㎡의 공간에서 발굴을 진행 중이다. 지금은 성벽(A지구)과 건물지(C지구), 해자를 조사 중이다. 월성 C지구에서는 건물지를 비롯한 내부 공간 활용 방식과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걸친 층위별 유구 조성 양상이 확인되었다. 월성 해자는 물을 담아 성 안팎을 구분하면서 방어나 조경(造景)의 기능을 했으며, 다양한 의례가 이루어진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 제공]

신라시대의 미니어처, 축소 모형 목재 배

이번에 공개되는 40cm 크기의 축소 모형 목재 배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축소 모형 배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통나무배보다 발전된 형태로 실제 배와 같이 선수(뱃머리)와 선미(배꼬리)가 분명하게 표현된 것을 볼 때, 통나무배에서 구조선으로 발전하는 과도기 형태인 준구조선으로 보인다.

이 모형은 배의 형태를 정교하게 모방하고 공을 들여 만들었는데, 안팎에서 불에 그슬리거나 탄 흔적이 확인되었다.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배의 사례로 보아 이번에 출토된 유물도 의례용으로 추정된다. 배는 약 5년생의 잣나무류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작 연대는 4세기에서 5세기 초(350~367년 또는 380~424년)로 산출된다.

축소 모형 배의 경우 일본에서는 아마 약 500여 점이 출토되었고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에 나온 월성의 모형 배는 일본의 시즈오카현 야마노하나 유적에서 출토된 고분시대 중기(5세기)의 모형 배와 선수‧선미의 표현방식, 현측판(상부 구조물이 연결되는 부분)의 표현 방법 등이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앞으로 양국의 배 만드는 방법과 기술의 이동 등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방패 모양 목제품 왼쪽- 손잡이 없는 것, 오른쪽- 손잡이 있는 것 [문화재청 제공]

손잡이가 있는 형태로 발굴된 최초의 방패와 목간 기록

이번에 발견된 방패는 2점 모두 수혈해자의 최하층에서 출토되었다. 연대는 약 340~419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하나는 손잡이가 있고 하나는 없는 형태로, 손잡이가 있는 형태로 발견된 것으로 최초의 사례이며 또한 상당히 온전하게 보존된 실물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크기는 각각 가로‧세로가 14.4×73cm와 26.3×95.9cm이며, 두께는 1cm와 1.2cm이다.  몸체는 둘 다 잣나무류를 사용했으며, 손잡이는 느티나무를 사용했다. 표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기하학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붉은색‧검은색으로 채색하였으며 일정한 간격의 구멍은 실과 같은 재료로 단단히 엮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실제 방어용 무기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변 의례 시 의장용(儀裝用)으로 세워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문화재청 제공]

목간은 3면 전체에 묵서(먹물로 쓴 글씨)가 확인되었다. 주요 내용은 곡물과 관련된 사건을 당주(幢主)가 보고하거나 받은 것이다. 6세기 금석문(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에 나오는 지방관의 명칭인 당주가 목간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례이다.

또한, 벼, 조, 피, 콩 등의 곡물이 차례로 등장하고 그 부피를 일(壹), 삼(參), 팔(捌)과 같은 갖은자로 표현했다. 앞서 안압지(현재 동궁과 월지) 목간(7~8세기)에서 한자보다 획을 더 많게 한 글자인 갖은자가 확인되었는데, 신라의 갖은자 사용 문화가 통일 이전부터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해자 내부에서 발견된 구조물과 다양한 유물들

이 외에도 월성해자 내부에서 호안(護岸) 목제 구조물과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목제 구조물은 해자 호안(기슭)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로 수혈해자 북벽에 조성했다. 수혈해자 바닥을 파서 1.5m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판재로 연결하였다. 최대 높이 3m인 나무기둥과 최대 7단의 판재가 남아 있어, 대규모 토목 공사가 삼국통일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라의 목제 구조물 전체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당시의 목재 가공 기술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월성 해자 호안 목제 구조물 노출 현황 [문화재청 제공]

더불어 해자 내부에서 확인된 6개월 전후의 어린 멧돼지뼈 26개체는 신라인들이 어린개체를 식용 혹은 의례용으로 선호하였던 것을 시사해준다. 삼국 시대 신라 왕경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던 곰뼈는 현재까지 15점(최소 3개체)이 나왔는데, 앞발과 발꿈치 등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 외에도 2~3세기부터 분묘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는 수정도 가공되지 않은 원석상태로 출토했고, 통일기 이후에 조성되어 사용된 3호 석축해자의 바닥 지점에서는 단조철부(鍛造鐵斧, 쇠도끼) 36점을 확인했다. 

또한, 해자 내부 흙을 1㎜이하의 고운 체질로 걸러 총 63종의 신라의 씨앗과 열매도 확보했는데, 국내 발굴조사 상 가장 많은 수량이다. 그리고 해자 주변의 넓은 범위에 분포했던 식물자료를 알아보기 위해 화분분석을 실시해 물 위의 가시연꽃, 물속에 살았던 수생식물, 해자 외곽 소하천변의 느티나무 군락 등을 파악했다. 이 밖에 물의 흐름‧깊이‧수질을 알려주는 당시의 규조(물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를 분석하여 해자에 담겼던 물의 정보도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5세기 무렵 신라 왕궁의 경관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방패와 목제 배 등 이번에 공개되는 유물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월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들은 오는 5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저작권자 © 핸드메이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강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경주 쪽샘 신라 무덤에서 1500년 전 행렬도 그려진 토기 나오다
경주 쪽샘 신라 무덤에서 1500년 전 행렬도 그려진 토기 나오다
'폐자원이 예술로', 청계천에서 업사이클 전시를 만나다
'폐자원이 예술로', 청계천에서 업사이클 전시를 만나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