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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얼이 든 꽃, 진달래로 만드는 두견주지역특산품展
  • 최미리 기자
  • 승인 2019.03.0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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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한국인의 얼이 깃든 진달래꽃

봄이 되면 알록달록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꽃들에 꿀벌들이 모여들면서 겨울을 끝맺고 새로운 한 해의 생명을 알린다. 이때 피는 꽃들은 당분이 풍부하고 영양과 맛도 좋아 사람들이 식용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특히 화사한 보랏빛을 내뿜는 진달래는 식용으로도 적합하고 전국 어디서나 잘 자라는 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가난한 민중들이 식량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일상과 함께 해 온 진달래는 한국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온 꽃이다. 김소월 시인은 그 유명한 '진달래꽃' 시를 지어 한국인의 애환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화에 진달래를 지정하자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진달래로 만드는 면천 두견주의 전설

진달래로 비빔밥, 샐러드, 화채, 화전, 차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으며 또 술을 담그기도 했다. 진달래는 한자어로 두견화(杜鵑花)라고도 불렀는데 그래서 진달래로 담근 술을 '두견주'라고 불렀는데 특히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의 것이 유명해 '면천 두견주'라고도 한다.

두견주와 관련한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 태조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했던 개국공신 복지겸은 고향이 면천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지겸은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의사도 그 병을 치료하지 못했고 결국 복지겸은 면천으로 요양을 왔다.

이에 그의 딸은 아버지가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간절히 기도를 드리다가 신선을 만나게 됐다. 신선은 복지겸의 딸에게 우물인 안샘의 물과 진달래로 담근 술을 먹여야 한다고 전해주었다. 딸은 신선의 말에 따라 진달래로 만든 술을 아버지에게 먹였는데 그러자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고 한다.
 

면천 무공사 사당에 있는 복지겸 영정

두견주를 만드는 방법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지은 여성용 생활백과인 규합총서를 비롯해 다양한 문헌에서 두견주를 빚는 방법이 기록됐다. 규합총서에서는 두견주를 만들 때 멥쌀과 가루로 된 누룩으로 먼저 밑술을 빚고 한지에 밀봉하여 한 달 정도 발효시켰다. 그다음에는 다시 멥쌀과 찹쌀로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데 이때 건조된 진달래를 함께 넣으며 2주~3주 동안 담가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두견주는 진달래 특유의 맛과 향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과 문헌마다 두견주를 만드는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두견주 역시 집에서 각각 빗는 가양주를 기본으로 하므로 만드는 실력에 따라 품질도 달라진다.

두견주를 만드는 데에 중요한 것은 진달래의 양을 잘 맞추는 것이다. 너무 진달래가 많으면 색이 붉어지고 쓴맛이 난다. 반대로 너무 적게 넣으면 맛이 밋밋해진다. 또한 진달래의 꽃술에는 소량의 독이 있으므로 꽃술을 제거하고 잘 건조해 넣는 것이 좋다.

사용하는 진달래는 한창 만개하는 시기에 채취하는 것이 좋으며 그늘에 잘 건조해야 두견주를 만드는 데에 가장 최적인 상태가 된다. 이렇듯 두견주는 그 방법이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면천 두견주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된 두견주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봄을 맞아 농사일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잡고 건강과 평화를 빌었던 날이다. 이때 주민들은 동네에 모여 화전놀이(꽃놀이)를 즐겼다. 진달래로 만든 화전과 두견주 등도 전통적으로 삼짇날 화전놀이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식민통치가 시작되고 집에서 담그는 우리 전통 가양주가 탄압받으면서 우리 두견주 역시 이로 인해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해방 이후에는 정부의 보존 정책에 힘입어 두견주 기술도 겨우 보존됐다. 

현재 두견주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6-2호로 지정됐다. 우리 전통주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지만 국가가 직접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전통주는 두견주 외에 문배주, 교동법주 밖에 없다. 

두견주는 원래 박승규 장인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서 면천 두견주를 빚어 왔다. 하지만 박승규 장인이 2001년 별세하면서 특별한 계승자 없이 '면천 두견주 보존회'가 맥을 잇고 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으나 현재는 정부와 당진군의 지원 및 마을 사람들의 애정이 합쳐지며 품질 좋은 두견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인의 얼이 담긴 두견주, 평화의 길을 위한 한걸음

또한 두견주는 작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만찬주로 쓰이는 역사적인 쾌거까지 이뤘다. 두견주는 이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관심과 주문이 폭주하기도 했다.

김현길 면천두견주 보존회장은 이에 대해 "우리민족의 정서가 깃든 진달래로 빚은 두견주가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되면서 면천면민과 당진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영랑의 효심이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남북 화합의 꽃으로 다시 피어난 것처럼 두견주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국민주 반열에 올랐으면 좋겠다"라고 기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진달래는 한반도의 가난한 민중들이 오랫동안 즐겨온 꽃이다. 예전부터 민중이 진달래를 통해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나누며 화목하게 즐겨왔던 것처럼 두견주도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는 김소월의 시처럼 번영의 길에 진달래가 사뿐히 뿌려졌으면 좋겠다.

최미리 기자  myry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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