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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나쁘면 쓰는 안경, 원래는 고급 사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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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나쁘면 쓰는 안경, 원래는 고급 사치품이었다.
  • 최상혁 기자
  • 승인 2019.02.21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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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하는 핸드메이드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눈이 나쁜 사람들은 시력 교정을 위해 안경을 쓴다. 특히 요즘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휴대폰을 가까이하는 경우가 많아 안경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옛날에는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었을 테니 안경을 쓸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책을 좋아했던 정조와 세종대왕은 시력이 나빴다고 한다. 이렇듯 예전에도 시력이 좋지 않아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안경의 역사

근시와 원시는 수정체가 두껍거나 얇아져 망막에 제대로 초점이 맺히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안경은 망막 앞에 상이 맺히는 근시를 오목렌즈를 활용해 더 제대로 맺히게 교정해주며 망막 뒤에 상이 맺히는 원시는 볼록렌즈로 교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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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안경의 원리를 발견한 사람은 1268년 영국의 과학자인 베이컨인데 이 원리를 활용해 돋보기와 같은 도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안경과 비슷한 원리를 활용하는 사례는 있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물을 채운 유리공을 활용해 책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고 한다.

로마의 유명한 폭군인 네로 황제도 눈이 나빠 둥근 에메랄드를 가공해서 눈에 대고 검투사 경기를 봤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중국 송나라의 판관들은 연수정으로 만든 검은 안경을 썼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 선글라스에 더 가깝다.)
 

오늘날의 의미에서 제대로 된 시력 교정용 안경을 제작한 것은 1286년 이탈리아의 유리공들이었다고 한다. 이후 안경은 사치품으로 주로 만들어졌다. 전문 장인들이 직접 귀금속, 상아 등 값비싼 재료를 가공해 테를 만들며 제작하며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사치품이었던 안경은 1440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을 시작점으로 급속히 대중화된다. 대량 인쇄된 책이 대중들에게도 퍼졌고 이로 인해 안경의 수요도 급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안경과 경주 남석 안경

우리나라에서는 김성일(1538~1593)이 처음으로 안경을 썼다. 김성일은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서양에서 들여온 안경을 보고 조선으로 가지고 왔다. 

처음 사람들은 이를 '애체' 또는 '왜납'이라고 불렀는데 점차 안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안경은 양반과 왕실에 널리 사용됐고 정조 역시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정무를 봤다고 한다.
 

안경은 중국 등에서 수입하기도 했지만 17세기부터는 자체적으로 안경을 제작했다. 그중에서는 특히 '경주 남석 안경'이 유명하다. 경주 남산에서 나오는 옥돌인 경주 남석은 예전부터 품질이 좋고 아름다워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것을 가공해 안경을 만든 것이다.

경주 남석 안경은 아주 비싼 사치품이었다. 사실 안경이라는 제품 자체가 당시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안경집도 직물, 목재, 가죽 등으로 화려한 공예품으로 만들어서 노리개처럼 달고 다녔다.

하지만 경주 남석 안경(돌안경)은 개항 이후에는 대량생산되는 공장 안경에 밀렸고 현재는 남산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수정 채굴이 금지되어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현재 전남 무안에는 초당대학교안경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안경과 안경 장비 등 5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 그리고 시대순으로 다양한 안경을 전시하고 있으며 또한 김성일과 정조, 고종 황제, 이승만, 박정희 등 다양한 유명인들의 안경도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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