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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나라, 가야의 제철 공예기술찬란했던 역사, 그 시대의 공예
  • 최상혁 기자
  • 승인 2019.02.0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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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가야는 BC. 100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의 여러 나라들이 통합되어 세워진 연맹 왕국이다. 엄연히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재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지만 가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듯 하다.

심지어 가야는 삼국시대에 끼지도 못한 채, 짧게 존재하다 사라진 나라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가야는 오랫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이며 결코 삼국에 뒤처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야는 어떤 문화에서 성했던 것이가.
 

김해 대성동 고분 @Kayazeguk

가야가 있던 낙동강과 김해에는 아주 우수한 철들이 나왔다. 그래서 가야를 철(鐵)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야의 철은 일본과 낙랑, 중국 등에 수출되기도 했으며 가야인들도 철을 제련해 우수한 공예품과 무기를 만들었다.

이미 가야지역에는 고령 지산동 고분과 부산 복천동 고분 등 여러 유적지에서 각종 철기와 제작도구 및 작업장 등이 발굴되었고 이를 통해 우수한 가야의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덩이쇠 또는 철정(鐵鋌)이라고 불렀던 쇠판은 가야지역에서 많이 발굴되는 문화재이다. 이것은 각종 철기를 만드는 소재로도 쓰였으며 화폐로도 사용됐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규격이 소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납작한 판모양의 도끼인 판상철부도 흔하게 발견됐으며 철정과 함께 화폐의 역할을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판상철부와 철정은 주로 철을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 방식으로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판갑단갑 @Good friend100

가야의 철제 갑옷과 투구도 가야의 우수한 단조 기법을 보여준다. 원래 가야의 초창기 갑옷은 나무 혹은 가죽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차츰 우수한 제철 기술을 활용한 철갑옷을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갑옷은 단갑(판갑)과 찰갑(쾌갑)으로 나뉘는데 단갑은 쇠판에 못을 박아 만든 것이며 찰갑은  철판을 두드려 가늘고 길게 만든 부재들을 구멍을 뚫고 가죽끈 등으로 연결해 만드는 갑옷을 말한다. 찰갑은 기존 단갑보다 진보된 형태로 신축과 몸의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또한 갑옷과 투구는 녹을 방지하기 위해 옻칠을 했으며 표면에 철, 뼈, 종이 등으로 비늘 모양 등을 만들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단갑은 줄어들고 쾌갑 형태의 갑옷이 점차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가야인들은 단조 방식 외에도 거푸집 등에 쇳물을 부어 모양을 만드는 주조 방식, 쇠를 갈아 만드는 연마, 쇠를 불리는 제강, 쇠를 녹여 금속을 추출하는 제련 등 다양한 제철 기법을 활용할 줄 알았다.
 

가야의 환두대도 옥전고분가야다라국 용봉문 @Kayazeguk

가야의 칼은 당시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칼이었던 용봉무늬고리장식칼, 단봉문 또는 용봉문의 환두대도 등이 있다. 이들 칼은 단조와 주조 방식은 물론 고리와 손잡이 부분에 다른 귀금속을 상감하는 상감기법과 목공예 등 다양한 가야의 공예 기술을 총망라했다.

가야는 또한 철제 외에도 가야만의 독특한 토기와 금동관, 귀금속 장신구 등도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문화재들은 백제와 신라, 고구려 등 다양한 나라와 함께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겨났을 것이지만 가야의 공예기술은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야 찰갑 @dentarg

찬란했던 철의 나라 가야는 결국 이러한 문화를 뒤로 한 채 신라에게 멸망하면서 역사의 한 줌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가야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한창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가야사 복원을 강조할 정도이다.

또한 '철의 왕국'은 사실 가야가 아닌 신라라는 주장도 학계에서 제기된 적이 있다. 앞으로 다양한 발굴과 연구가 나와야겠다만 중요한 것은 가야든 신라든 소중한 우리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베일에 쌓인 가야를 비롯한 고대사를 더욱 풍요롭게 조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상혁 기자  hurra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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