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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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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 곽혜인 기자
  • 승인 2022.09.07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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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전시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핸드메이커 곽혜인 기자] 조각가 문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가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고전은 조각·회화·공예·건축·도자 등 다방면에 걸쳐 예술활동을 펼친 문신(1922-1995)의 삶과 작품을 조망하고자 마련됐다.

일본 규슈의 한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 노동자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문신의 생애를 살펴보면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에서 자라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프랑스에서 20년을 지내며 조각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인생을 마감했다.

이 같은 이방인의 삶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흐름과 195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한국 추상조각의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꽤나 이례적이었고, 동시에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문신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 얽매이는 대신 유연하게 변화를 추구하며 예술의 다양한 지평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자유, 고독, 열정, 긴장이 동시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세상을 향했던 그의 도전정신과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1977년 프레떼 아뜰리에에서 작업 중인 문신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문신은 한국과 일본, 프랑스를 넘나들며 인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자신의 일생에 대해 감수해야만 했던 불운이 아니라,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라고 말했다. 이방인으로서 지리적·민족적·국가적 경계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작품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전시의 부제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이 다양한 형태의 여러 조각 작품에 붙였던 제목을 인용했다. 문신에게 ‘우주’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고향’과도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향하여’는 생명의 근원과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침잠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를 함축한다.

문신의 조각 작품은 단순한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특정 시기에 특정 형태를 집중해 제작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제작한 드로잉을 1980-90년대에 새로운 크기와 재료의 조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시대 순서에 따라 접근하는 대신 크게 회화, 조각, 건축으로 나누고 전시의 중심이 되는 조각 부분에서 형태의 다양한 변주와 창작과정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문신의 예술 사상과 실천의 독특한 면모가 직관적으로 발현된 장르인 드로잉은 4개의 전시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관람객을 만난다.

1부 파노라마 속으로

문신, 닭장, 1950,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문신, 고기잡이, 1948, 캔버스에 유채, 53.5x131.5cm, MMCA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1938년,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간 문신은 이듬해 일본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일본 각지에서 모인 청년 예술가들이 저마다 다양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교류했던 도쿄 예술인촌에 거주하면서 화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다졌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문신은 마산 추산동 언덕에 터를 잡고 부산, 대구, 서울 등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화면의 기교를 위한 낭만’보다 ‘현실 생활의 체험’을 중시한 그는 온화한 기후에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마산의 풍경과 평범한 주변 사람들의 소박하고 거친 삶, 향토성 짙은 정물을 화폭에 담았다.

1957년, 문신은 아카데미즘을 내세운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면서 서울을 활동의 장으로 삼았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층 건물과 가로수가 즐비한 도시풍경으로 이동했고 화면은 도시적 감각으로 충만했다. 당시 그는 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해 평면화, 단순화 등 추상적 요소를 접목했다.

문신의 회화에서 구상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로, 그는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대신 점·선·면과 같은 순수 조형요소와 마티에르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프랑스에서 목격한 앵포르멜(Informel)과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프랑스로 건너간 직후 생계를 위해 파리 북쪽에 위치한 라브넬의 고성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대상의 추상적 형태와 구조, 재료의 물성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됐다. 이후 그는 조각으로 영역을 전환하지만 회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문신의 회화는 우리에게 그의 삶과 예술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

2부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

문신, 개미, 1970, 참나무, 119.5x30x19.6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문신, 무제, 1977, 흑단, 54.6×128.5×23cm, MMCA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2부에서는 복제 불가능한 문신의 나무 조각과 관련 드로잉을 소개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문신은 최소한의 조형 단위인 ‘구’ 또는 ‘반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 추상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 프랑스 남부에서 열린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 출품한 13미터 높이의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은 문신이라는 조각가의 이름을 프랑스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전시에 초대받아 석고, 나무, 브론즈 조각을 선보이며 프랑스 미술계로부터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문신은 조각을 제작하기 전에 무수히 드로잉을 그렸다. 그는 원과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물이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반복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지닌 다양한 형태가 창조되는 것에 매료됐다고 한다. ‘개미’로 불리는 그의 조각은 이렇게 탄생했다.

문신의 조각은 크게 구 또는 반구가 구축적 배열되어 무한히 확산되는 듯한 기하학적 형태와 작품 <개미>처럼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생명주의적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 형태는 무언가의 이미지나 의미를 지닌 추상적 본질의 표상이 아닌 시간과 공간, 정신, 물질 등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하는 구체적인 존재였다.

3부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

문신, 개미(라 후루미), 1985, 브론즈, 119.5×30×28cm, MMCA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3, 1989, 브론즈, 67.8x38.5x22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문신은 하나의 작품을 시작하기 전부터 긴 준비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재료와 도구를 잡는 순간 계획에 의존하지 않고 손의 물리적인 동작에 철저히 몰입했다. 숙련된 기술과 직감을 통해 손의 감각이 향상되면 동작은 즉흥적으로 리듬을 타게 되고 작가는 상상력을 매개로 직관적인 도약에 다다랐다. 흥미롭게도 문신의 조각은 즉흥의 과정을 거친 후 고도로 섬세하고 치밀한 세부처리로 마무리됐다.

형태를 중시한 그는 조각의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했으며 같은 형태를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제작했다. 때론 미묘하고, 때론 드라마틱한 이 변형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세련되게 마감된 문신의 조각을 감상하는 묘미 중 하나다. 문신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창조의 고된 물리적 행위를 즐겼고 감상자는 그의 작품에서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 부단한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문신의 조각은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니다. 마치 생명체가 정확한 대칭이 아니듯 그의 조각 역시 미묘한 차이를 지닌다. 문신의 조각에서 대칭은 엄격한 법칙이나 그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자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잠재성이 다양하게 분화되는 생명체처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엄격하면서도 환상적인 조각으로 평가받았다.

4부 도시와 조각

문신, 우주를 향하여, 1985, 스테인리스 스틸, 280×120×120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1980년 문신이 영구 귀국했을 무렵, 한국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1950-60년대 한창 제작되던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기념 동상과 다른 종류의 야외 조형물이 활발하게 조성되기 시작했다.

작가는 당시 국내 브론즈 주조 기술이 프랑스보다 떨어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자 해결 방법을 찾던 중, 비교적 가볍고 부식이나 녹에 강해 야외조형물 재료로 이상적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발견했다. 그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은 나무나 브론즈 조각과는 또 다른 현대적 감각을 발산했다. 완성된 조각의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표면은 빛을 흡수하기도 하고 반사하면서 보는 이를 포함한 주변 풍경을 반영한다. 거울과 유사한 효과를 지니지만 불룩한 곡면에 의해 왜곡된 대칭은 감상자로 하여금 특별한 시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비록 문신이 ‘풍경과 건축 사이에 위치하는’ 포스트모던한 조각을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의 조각은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문신 예술의 본질은 조각, 건축, 공원, 도시 등 보다 확장된 맥락에 위치할 때 풍부하게 발휘된다.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회고전은 그의 삶과 예술이 지닌 동시대적 의미를 재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는 내년 1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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