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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국가무형문화재들의 진정한 공예 명품전,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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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국가무형문화재들의 진정한 공예 명품전,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 개최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5.24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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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과 (사)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을 24일(화)까지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전시관‘올’에서 개최한다.

1979년 시작해 올해로 42회를 맞는 전통공예명품전은 우리 공예기술을 잇고 있는 작가들의 활동을 고취하고 전통공예의 아름다움과 장인들의 노고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개최되는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회원 전시이다. 올해는 ‘명품본색’을 주제로 국가무형문화재 공예분야 보유자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90여 점의 공예 명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조남용, '십장생 가리개'(左) 최선희 '죽장 조각 책장'(右) /김서진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작품 외에도 공예 장인들의 도자, 조각,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이정기 '소리북' /김서진 기자
악기장 이정기 /문화재청

악기장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고구려의 벽화 등을 통해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악기조성청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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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장인은 17세부터 북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한 시계 수리점에서 故 박균석 선생의 조카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북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재미가 생긴 그는 스승의 작업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웠다. 1980년 전수장학생이 된 그는 스승과 함께 국립국악원 ‘우리 전통악기 원형 복원’ 사업을 진행,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된 이후에도 매년 악기장 연합 공개행사에 참여하며 활동하고 있다.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정진호 '먹감 이층 애기장' /김서진 기자 

소목장은 대목장이 지은 집과 궁궐, 사찰 등의 내실에 사용하는 가구와 창호 등을 제작하는 장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랑방, 안방, 부엌 등에서 사용하는 가구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소목의 재료에는 대부분의 나무가 사용 가능하나 전통가구의 특징과 용도에 따라 괴목, 가죽나무, 혹시, 오동나무, 대추나무, 소나무, 돌배나무, 소태나무, 은행나무 등이 주로 사용된다.

정진호 소목장은 단원공방을 열고, 미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창작의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전승공예대전, 불교미술대전 등 각종 전통공예전에서 수상함으로써 2004년에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진주 지역의 소목 가구 분야의 전통 문화를 보호하면서 계승·발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전승교육사 김영이 '화조도 자수 병풍' /김서진 기자
자수 병풍 상세 모습 /김서진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전승교육사 김영이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상수 선생의 전수교육조교로 문하생을 지도하고 있다. 고향은 강원도였지만 그의 언니가 그를 수놓는 곳, 故 한상수 선생님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선생님께 바늘 잡는 것부터 재료상에서 재료 고르는 방법, 모든 것을 배우고 전수를 받았다. 유물을 보러 대학교 박물관, 사찰 등을 구경하러 다녔고 그때마다 본 것을 잊기 전에 조금씩 수를 놓았다. 기억하고 온 수의 기법이라든지 색상을 찾아 수를 놨다.

김영이 장인은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을 걷다 보면 작은 꽃 하나, 기어가는 개미도 관찰을 많이 하고 수를 놓을 때마다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기를 원한다. 자연에서 얻은 다른 것들을 본인 나름의 영감을 받아 표현을 좀 더 다채롭게 하기를 바란다. 학생이 10명이면 10명 똑같이 수를 놓는 건 원하지 않으며,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김용운 '금백금 상감 봉황문 합' /김서진 기자

조각장이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그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彫伊匠)이라고도 한다.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기법으로,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발전하여 조선시대까지 그 기능이 활발히 전승되어 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김용운 조각장은 약 40여 년간 조각 분야에 종사하면서 국보와 다수 유물을 복원·수리하는 등 전승활동에 힘써 왔다. 작품 활동과 함께 대학교 강의 등을 통해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그가 만드는 작품은 정병(淨甁)부터 항아리, 화병, 주전자, 향로, 다과함 등 다양하다. 그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물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유물을 구해 현미경으로 기법을 관찰하는 등 수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다 보니 다양한 물품을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김일만 '옹기 의약기' /김서진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기능보유자 김일만 선생의 옹기 제작은 5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다. 18살이 되어서야 경기도 여주에 와서 비로소 물레질을 본격적으로 배워서 대장(옹기를 만들거나 굽는 일을 함)으로 인정받았다.

37살에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자신의 옹기점을 처음 설립했는데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옹기점을 매입한 것이 아닌 새롭게 옹기점을 설립한 것이어서 가마를 새로 박는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옹기장 김일만 /김서진 기자

1990년대 초 어느 잡지에 선생의 옹기점이 소개되고 이를 계기로 방송에 출연하는 등 서서히 대중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옹기점 명칭이 원래 ‘금사토기’였으나 방송작가가 김일만 선생과 네 명의 아들이 함께 하니 ‘오부자 옹기’가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아 이후부터 ‘오부자 옹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2001년에는 화재로 인해 작업장이 소실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002년 10월에 선생이 사용하는 질가마 1개, 통가마 2개가 경기도 민속자료 11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주변 건물을 자유롭게 변경하는 것에 제약이 생겼다. 이 때문에 화재 후 작업장 건립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가마가 문화재로 지정된 바로 그해 11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옹기장으로 인정되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옻칠) 손대현 '국화당초문 건칠 달항아리' /김서진 기자

칠장은 칠기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칠기란 목기에 옻나무에서 채취한 나무액을 칠한 용기를 말한다. 옻칠은 오래될수록 단단해지고 습기나 벌레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과거에 팔만대장경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옻칠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은 옻칠 · 칠화 · 황칠 · 남태칠 등 4개 종목이 지정되어 있다. 손대현 장인은 1999년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칠기장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기능분야 종목조정으로 2004년도에 제1호 칠장(옻칠) 보유자로 종목이 변경되었다.

“나전칠기는 세계 최고의 전통공예 기술이다" 라는 그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장인의 혼이 만나 완성되는 나전칠기는 그야말로 섬세함과 세밀함이 극에 달한 작품으로, 천 년 전 우리 선조들이 이러한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라 말한다. 그는 이 기술이 정교하면서도 전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장인들의 놀라운 감각과 인내를 짐작하게끔 한다고 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전승교육사 유세현 '전통 화살 액자' /김서진 기자

궁시장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활을 만드는 사람은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矢匠)이라 한다. 본래 우리 민족의 활 만드는 기술은 오래전 부터 세계 어느 민족보다 탁월한 기교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민족을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는 뜻에서 ‘동이’라고 하였다.

고구려 활의 형태는 벽화 속에서 볼 수 있는데 현재 사용하는 국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전통 활은 이때부터 변함없이 이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도 활쏘기를 중요시했으며, 조선 전기에는 과거 시험의 무과 과목에 궁술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총이 수입되어 활은 전쟁용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이 변화하여 현재는 국궁인 각궁(角弓)이 보편화되었다.

유세현 선생(左), 궁시장 유영기(右) /영집궁시박물관

전수조교 유세현 선생은 유영기 궁시장의 아들로 지금도 가업을 잇고 있다. 유영기 궁시장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영집궁시박물관 설립자이자 4대째 가업을 잇는 장인으로, 현재 6대째 후손까지 업을 이어 오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 김영조 '청풍계도' /김서진 기자 

낙화장은 종이, 나무, 가죽 등의 바탕 소재를 인두로 지져서 산수화, 화조화 등의 그림을 그리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낙화에 대한 기원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수록된 ‘낙화변증설’에서 찾을 수 있으며, 19세기 초부터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낙화 기법은 본래 전통 회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본 화법은 전통 수묵화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양화의 부벽준(斧劈皴), 우점준(雨點皴) 등과 같은 각종 준법을 붓 대신 인두로 표현하며, 수묵화에 나타난 먹의 농담도 인두로 지져서 나타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낙화장은 인두와 불을 다루는 숙련된 손놀림과 미묘한 농담을 표현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낙화장 김영조 /문화재청

낙화장 보유자 김영조 선생은 현재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낙화장’ 보유자로서, 1972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낙화를 전승하고 있는 장인이다. 김영조 장인은 낙화 유물을 포함한 다수의 동양화에 대한 모사를 통해 산수화‧화조화 등 전통낙화에 대한 숙련도를 높여 왔으며, 전승공예대전 등 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함으로써 낙화의 전승에 이바지해 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전승교육사 최문정 '병머리초 단청' /김서진 기자 

최문정 단청장은 35년 여간 단청 및 불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태극기와 단청의 조화를 통해 전통적인 단청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이화여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지만 전공보다는 불교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단청장 만봉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불교 미술의 길을 걷게 됐다.

20대 후반인 지난 1995년 문화재수리기술교육 분야 문화체육부장관상 수상과 함께 문화재수리 기술자 417호(단청기술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경주 불국사 무설전 지장탱화,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 벽화 모사도, 강진 남미륵사 관음전, 영월 법흥사 대웅전, 제주 불탑사 대웅전 등 최근까지 전국 사찰을 돌며 탱화와 단청을 조성해 온 장인이다. 지난 2012년에는 문화재 전문 수리업체인 ‘문청’을 설립하기도 했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14호 소목장 권우범 '열반' /김서진 기자 

목재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라 부르고 궁궐, 사찰, 집을 짓는 목수를 대목장, 그 외 가구, 농기구, 악기, 등을 만드는 목수를 소목장이라 한다. 소목장은 여러 전문 분야로 세분화되었다. 무형문화재 분류를 보면 가구장, 창호장, 소반장, 악기장 등 각기 전문분야로 발전하게 되는데 기술의 발달함에 따라 실용성에서 치장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권우범 장인의 부친 권혁원은 대목과 소목, 그림, 서예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14살 때 연장을 자유자재로 쓰며 만든 지개를 보고 비로서 아들의 솜씨를 인정했다. 권혁원 장인은 작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목공, 조각, 상감 등 다양한 경험으로 기술 욕심도 많았다. 다양한 작품 제작을 통해 조각, 상감 등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권공예를 창업했고 사업도 번창해 1990년 전국 기능경기대회 명장부에서 1등하여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에 선정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기호 '금박 화관' /김서진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명예보유자 김덕환(左),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기호(右) /문화재청

금박장(金箔匠)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글씨나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이다. 금박은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여성의 혼례복에서 주로 금박 장식을 찾아볼 수 있다. 보관상의 어려움으로 현재까지 전해진 유물이 많지는 않으나 조선 23대 임금 순조(純祖)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가 혼례 때 입었던 것이라고 전하는 원삼인 ‘덕온공주의복’(국가민속문화재 제211호)에는 ‘壽(수)’와 ‘福(복)’자가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명예보유자로 인정된 김덕환 장인은 조선 철종조 당시 활동하던 증조부 이래 4대째 가업을 계승하여 평생 금박 기능의 보존과 전승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전수교육과 전승 활동이 어려워져 그간의 헌신적인 공로를 존중하여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보유자로 이번에 새롭게 인정된 김기호 선생은 김덕환 장인의 아들로 가업을 5대째 계승하고 있으며, 서울 북촌에 있는 ‘금박연’에서 활발한 전승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기호 선생은 보유자 인정 조사 과정에서 금박문양을 조각하는 기술, 바탕옷감에 대한 이해력과 날씨에 따른 어교(민어부레 풀)의 상태 변화를 예측하여 금박을 붙이는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었다.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국립무형유산원은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전통공예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제42회 전통공예명품전에 우리 문화와 전통공예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24일(화)까지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꼭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절대로 흔치 않은 기회기에.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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