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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전통 장인] 풀떼기로 모든 필수품을 만든 생활 장인 '초고장'과 '완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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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전통 장인] 풀떼기로 모든 필수품을 만든 생활 장인 '초고장'과 '완초장'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8.11.08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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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질하는 여인과 자리틀로 돗자리를 짜는 장인 @김홍도 그림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어느 농경민족이 그렇듯 농사를 오랫동안 근본으로 했던 우리 민족에게도 볏짚은 아주 흔한 일상 속 풍경들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짚풀을 그냥 막 버리지 않았고 슬기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농사와 도축에 필요한 소먹이로도 주고 그것을 직접 활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짚풀로 굳이 이러한 공예품을 만들 필요가 없어져 급속도로 잊히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 및 지자체는 짚풀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무형문화재 장인으로 지정하고 지원하도록 했는데 짚풀공예를 하는 장인을 '초고장(草藁匠)'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초고장이라는 명칭이 사실 없었다. 관청에 소속된 공장인 초립장, 초염장 정도만이 있었을 뿐, 짚풀공예는 당시 민중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생활공예였다.

초고장의 짚풀 제작 방법을 보면 크게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과 손만으로 엮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도구는 돗틀, 자리틀, 가마니틀, 짚신틀 등이 있다. 옷을 짜는 베틀과 같이 이들 틀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파서 날을 감은 고드랫동을 앞뒤로 걸치고 짚풀 등을 엮어서 짰다. 이 밖의 소품들은 대부분 손으로 만들었다.
 

짚풀을 엮는 다양한 방법 @짚풀생활사박물관

초고장은 시도무형문화재로서 서울시 무형문화재 장인인 한순자 장인 및 대전시 무형문화재 양중규 장인, 전라도 무형문화재 임채지 장인이 있다.

짚풀공예 작품 중 화문석은 우리나라 짚풀공예 최대의 특산품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생산된 화문석은 조선시대까지도 중국에 꾸준히 수출되며 극찬을 받은 돗자리이다. 왕골이라는 풀로 만드는 화문석은 틀에 자리를 짤 때 문양을 동시에 넣으면서 날줄이 겉으로 드러나는 노경소직법과 촘촘하게 짜면서 자리 표면에 날줄이 보이지 않게 하는 은경밀직법, 두 가지로 제작했다.

화문석은 왕골을 3, 4일 말리고 물에 하루 정도 담갔다가 염색을 한 다음 짠다. 워낙 기술이 어려워 숙련된 기술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여러 사람이 너비 6, 7자의 화문석을 짜는데도 나흘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초고장 외에도 이렇게 왕골로 작품을 만드는 장인인 '완초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이상재 장인이 국가무형문화재 완초장으로서 손으로 다양한 완골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왕골로 엮은 돗자리 @짚풀생활사박물관

강화도에서 태어나 강화도의 특산품인 강화 화문석과 다양한 짚풀 공예기술을 전수받은 한순자 장인, 동네 어른들에게 어깨넘어 공예를 배웠고 열정적으로 짚공예를 전파하려고 뛰고 있는 양중규 장인, 꿋꿋이 하고 싶은 일을 해오며 인정받기 시작한 임채지 장인, 소아마비를 겪으면서도 할아버지에게 완초공예를 배우면서 값진 작품들을 만들어낸 이상재 장인,

이들 장인 모두 자신의 일을 너무나 사랑했고 여러가지 힘든 환경을 겪으면서도 수십년 동안 공예를 놓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자부심이 있는 전통 공예가 자꾸만 잊혀져가고 명맥이 끊기지 않을까 밤낮으로 고민한다고 한다. 급격한 산업화로 쇠퇴했지만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던 전통 짚풀공예가 잊히지 않고 명맥을 이어나가 장인들의 시름을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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