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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모든 것] 화려하고 섬세한 불교회화의 극치, 고려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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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모든 것] 화려하고 섬세한 불교회화의 극치, 고려 불화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8.11.02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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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노인에서 소장 중인 미륵하생경변상도 1350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고려는 우리 역사 중 불교가 가장 번창했던 시대였다. 당시 불교는 고려의 국교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영향을 끼쳤다. 고려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팔만대장경' 역시 부처님의 힘을 빌려 외적을 막기 위한 종교적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는 당시 회화에서도 그대로 불교의 특징이 전해진다. 고려 회화는 불교 의식을 담은 '불화'로 대표할 수 있다. 고려에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끊임없이 지어졌고 연등회, 팔관회 등 불교 행사가 국가가 직접 주관하는 전국적 행사가 되면서 자연히 불화의 제작도 중요해졌다.

조선시대의 회화가 소박함, 민속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면 고려 불화는 화려함, 고급스러움을 특징으로 할 수 있다. 중국 원나라에서도 고려 불화를 '화려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다'라고 기록했을 정도였다.

고려 불화는 비단을 바탕으로 광물질로 만든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했다. 주로 주사(적색), 석록(녹색), 석청(청색) 등 안료를 사용했는데 원석을 가루 내고 맑은 아교물을 부어서 여러 차례 거르면서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불화에는 금니도 자주 사용했다. 금가루를 개어만드는 금니는 고려불화의 주요한 특징으로 고려 불화의 화려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루클린 박물관 아미타삼존도

그릴 때에는 밑그림을 먹선으로 윤곽을 잡고 번지듯 칠하는 선염 처리로 테두리를 붉게 칠한다. 그다음 더 짙은 자주색으로 굵게 처리하고 다양한 안료를 칠하면서 채색을 했다. 안료 가루를 비단 위에 칠할 때는 아교를 함께 붙여서 잘 붙을 수 있도록 했다.

뒷면에 물감을 칠하고 앞면에 색이 배어 나오면 다시 앞에서 칠하는 '배채법' 뒷면에서 반복해서 칠해주는 '복채법'은 고려불화에서 많이 쓰인 기법이다. 이 기법들은 맑고 은은한 색채의 효과를 주어 여래와 보살을 신비롭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에 알맞은 방법이다.

고려 불화는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많지가 않다. 많은 작품들이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 약탈당하거나 불타버린 것이다. 고려 불화는 세계적으로 160여 점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겨우 4~5점만이 전해진다.

고려의 불화 중 유명한 작품으로 '수월관음도'가 있다. 중생의 괴로움을 사랑으로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그림인데 다양한 화가에 의해 그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일본에 있다. 일본 사찰 '가가미진자'에 있는 수월관음도는 5m 높이의 초대형 고려불화인데 일본학자들이 세계에서 최고의 그림이라고 극찬했다.

용산구 삼성미술관 보물 제926호 수월관음도

사진의 수월관음보살도는 용산구 삼성미술관에 있는 보물 제926호이다. 전체적으로 채색, 묘선, 문양 모두 고려불화의 기본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미타여래도 프랑스 기메박물관 @Unidentified artist

아미타여래도는 극락에서 법을 설파하는 부처인 아미타불을 그린 그림이다. 사진은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며 일본에서도 국립교토박물관, 니혼은행 등에서 몇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용인대학교에서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

고려 불화의 정교함과 화려함 등은 이후 어느 미술작품도 제대로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고려불화는 소더비 경매에서 수십 억원에 팔리고 있을 정도로 그 가치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렇게 아름답고 독특한 문화재가 여기저기 떠나버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화려했던 고려 불교문화를 대표했던 불화가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을 날이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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