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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건재할 영원한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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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건재할 영원한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1.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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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 /unsplash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두고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뒤마는 죽기 전 반드시 봐야 하는 도시라 불렀다. 바다 위 인공적으로 떠 있는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차나 버스는 탈 수가 없어 오직 배, 아니면 걷기로 여행을 해야 한다.

베니스에 대중 교통으로 활용 중인 수상 버스, 바포레토(Vaporetto)는 길이 아닌 운하를 다니는 수상 버스로 관광객이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베네치아라고 하면 뱃사공이 유유히 배를 젓는 모습을 더 익숙하게 떠올릴 수도 있다. 약 5-6명을 태우고 배 끄트머리에는 뱃사공이 긴 노를 저으며 떠 가는 곤돌라다. 11세기부터 시내의 주요 교통 수단으로 쓰였으며 사람뿐만이 아닌 식료품 등도 운반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그리고 곤돌리에

정박해 있는 곤돌라들 /pixabay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곤돌라는 베네치아에서 전통적인 배로, 노를 젓는 곤돌리에에 의해 배가 나아간다. 예로부터 곤돌라는 베네치아에서는 주요 교통 수단이었고, 가장 흔한 수상 선박 중 하나였다. 관광객들이 흔히 이용하는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 이외에도 곤돌라는 여전히 베니치아의 운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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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거리가 길이 아닌 수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배나 보트가 공식적인 교통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곤돌라는 약 천 년간 진화해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보는 우아한 모습의 보트가 되었다. 곤돌라의 실제 기원은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으며, 이탈리아와 터키, 그리스 등이 모두 곤돌라가 자신들의 나라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누구도 이 단어가 어디서 기원했는지에 대해 다투고 있지만 어느샌가 곤돌라는 베니스의 상징이 됐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한 관리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곤돌라를 언급했던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민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그는 지금의 곤돌라처럼 생긴 배를 그들에게 선물로 주고, 그들이 마을 안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비토레 카르파치오, '리알토 십자가의 기적' /Public Domain

곤돌라가 이미지로 묘사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 비토레 카르파치오, 베네치아의 유명한 화가 지오반니 벨리니가 그린 그림에서 볼 수 있다. 비토레 카르파치오가 그린 '리알토 십자가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Cross in Rialto'을 보면 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나가는 곤돌라 무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림 속 곤돌라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베네치아의 곤돌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노를 젓는 묘사가 오늘날 곤돌리에가 하는 방식과 비슷해 흥미롭다. 본격적으로 곤돌라가 만들어지고 베니스를 떠다니게 된 것은 15-16세기였다. 이 시기 곤돌라는 지금과는 약간 다른데, 주로 마을의 상류층들이 사용하던 거라 화려한 장식이 많았다고 한다.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은 부유했고, 곤돌라를 포함한 여러 배들이 운하를 돌아다녔다.

옛날 사람들이 곤돌라를 탔을 때의 모습이 이랬을까 /pixabay

특히 곤돌라는 세밀한 장식과 비싼 프릴을 다는 게 많았는데, 이는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고 싶었던 상류층들의 경쟁이 빚어낸 것들이었다. 당시 곤돌라는 누구나 탐내던 보트였다. 귀족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쓰는 것 말고도 음악을 배경 삼아 도시의 운하를 따라 배 여행을 하는 사교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부유한 베네치아 귀족들은 개인 곤돌라를 한 대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며, 마치 지금의 외제차 같은 느낌을 풍겼다.

까만 색의 곤돌라 /pixabay

16세기 이탈리아 정부가 사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개인의 모든 곤돌라는 까맣게 칠하도록 명령, 허례허식과 낭비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 전까지도 곤돌라는 성행했다. 이것은 배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작업용 곤돌라는 모두 검은색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곤돌라가 검은색은 아니다. 작업에 쓰이지 않는 곤돌라도 1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레저용으로 쓰이는 곤돌라는 일반적으로 평범한 나무 색이며, 스포츠용 곤돌라는 각 클럽에 맞는 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승객용 객실(Felze)이 있는 곤돌라 /flickr

16세기 초 곤돌라에는 승객용 객실(Felze)이 있었는데, 조수석 위에 탈착이 가능한 일종의 작은 집이었다. 이 객실은 배를 탄 사람들에게 햇빛과 추위를 피하기 위한 곳이기도 했지만 승객들의 사생활을 지키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곤돌라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비밀로 유지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 객실은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서서히 없어졌는데, 관람객들이 이 객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곤돌라를 탄 이유가 사생활 문제가 아닌 도시를 구경하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번성하던 르네상스 시기까지 약 만여 개의 곤돌라가 시민들을 실어 날랐다. 곤돌라는 물의 도시 위에서 상류층, 상인, 여러 물품들을 수송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곤돌라의 디자인과 성능은 발전했지만 보트 기술의 진화는 결국 곤돌라의 숫자 감소로 이어진다. 오늘날 약 400여개의 곤돌라가 같은 디자인으로 운영되며 대부분은 교통수단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용으로 쓰인다.

20세기 초까지도 곤돌라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었다. 곤돌라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들 중 하나는 미국의 전설적인 컬렉터인 페기 구겐하임으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을 베니스에서 살았다고. 이후 곤돌라는 관광객들 전용으로 돌아갔고 면허의 제한을 두는 곤돌리에 길드에 의해 곤돌라 산업이 운영되고 있다.

곤돌라를 모는 곤돌리에 /unsplash

과거 곤돌리에들은 부유한 베네치아 사람들을 위해 일했고, 아무래도 같은 배에 탔기 때문인지 귀족들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이드 그 이상으로 도시의 비밀, 상류층들의 스캔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어도 곤돌리에들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졌고, 사람들에게 대우받았으며, 사회적 지위 또한 높았다.

곤돌리에들은 대부분 까만색 배와 어울리는 줄무늬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거의 획일화되어 곧 줄무늬 셔츠는 배에서 곤돌리에들이 입는 전형적인 옷이 됐다. 곤돌라를 운전하는 게 아니라면 이 유니폼을 입지 않으며, 그들 존재 자체가 전통이기 때문에 곤돌라에 타는 순간부터 관광객들의 플래시 세례 또한 고스란히 받는다. 줄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나 여자를 보고 누군가가 당신은 곤돌라를 모는 곤돌리에냐며 묻는 일도 적잖다고.

대부분의 곤돌리에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으며 곤돌리에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것 또한 이들에겐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은 가업을 따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신들이 사랑하는 도시를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어한다. 

곤들리에 /pixabay

원래 곤돌리에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며, 남자들만이 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2010년 8월 면허를 취득한 조르지아 보스콜로라는 여성으로 이 금기는 깨진다. 조르지아의 아버지도 곤돌리에 출신으로, 그는 이것이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인지를 확신하지 못했다고. 트렌스젠더인 알렉스 하이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정식 자격증을 따진 못했지만 호텔 및 개인 고객을 위한 '알렉스 하이 곤돌라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길드에서도 적극적으로 여성 곤돌리에를 영입 중이라고.

곤돌리에는 일반적으로 길드에 의해 통제를 받으며, 6개월에 걸쳐 400여시간의 훈련과 연습 기간을 거친다. 오늘날 곤돌리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조정 물리학을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고, 외국어를 배우고, 도시의 역사를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베네치아의 역사, 랜드마크, 외국어 능력, 실무 능력 등을 확인하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시험을 통과한다 해도 인턴십을 마친 뒤 또 최종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모든 단계를 통과하는 사람들에게는 곤돌리에 면허가 주어진다. 매년 불과 3-4개의 곤돌리에 면허증만이 발급된다고. 곤돌라를 몰아야 하는 곤돌리에는 생각보다 신체적으로 훨씬 힘들다고 한다. 바닥은 평평해도 나무는 무겁고, 노 하나로 방향을 바꾸고 배를 조종하는 건 힘도 힘이거니와 기술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의 풍경 /pixabay

베네치아에는 곤돌라 수리소가 있는데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곤돌라를 만들고 수리하는 이곳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각각 곤돌리에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전통적인 도구와 기술을 사용해 수작업으로 곤돌라를 만든다고 한다. 장인 정신이 충만한 이 곳에서는 곤돌라를 만드는 데 1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배 한 척의 수명은 약 35년으로, 그 기간이 지나면 쓸 수 없다.

곤돌라는 라임, 참나무, 마호가니, 호두, 체리, 전나무, 낙엽송, 느릅나무 등 8가지 종류의 나무와 280여개의 조각조각으로 이루어진다. 배의 기틀이 완성되면 평평한 바닥을 만들고, 이후 여러 장식을 만드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다만 해마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곤돌라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며, 소수의 전문 배 제작자들만이 곤돌라를 계속 만들고 있다. 배 끝부분의 팔꿈치 모양인 조종대(fórcola)는 배를 조종할 때 쓰며 지렛대 역할도 한다. 조종대는 곤돌리에 개개인에 맞춰 주문 제작하기도 한다고.

손님을 맞이하는 곤돌리에 /unsplash
갈퀴 모양의 페로 /unsplash

곤돌라는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대각선으로 꾸물꾸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가끔 곤돌라가 내는 소리는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운하 곳곳의 좁은 지점을 알려주기 위해 나온다고. 뱃머리에는 '페로'라 부르는 6개의 갈퀴 모양의 장식이 있는데, 6개인 이유는 베네치아의 여섯 섬을 의미한다고 한다. 

베네치아 운하와 곤돌라, 그리고 곤돌리에 /unsplash

베네치아를 떠다니는 곤돌라는 낭만적이다.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베네치아에 갔을 때 곤돌라를 타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곤돌라를 타면 옛날보다 배는 더 예뻐지고 아름답지만 배를 젓는 방식을 옛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부터 이어져 온 배를 타고 베네치아의 좁은 운하를 달리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확실히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일 것이다.

관광객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곤돌리에들과 마주 보며 그들이 말하는 베네치아에 대한 이야기, 또는 정치인들에 대한 약간의 불평, 덧붙여 그들이 가끔 툭툭 던지는 유머와 농담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릴 것이다. 때로는 오솔레미오를 멋드러지게 부르는 곤돌리에를 운좋게 만날 수도 있다. 곤돌리에들은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요즘은 모터 보트와 수상 버스가 더 많이 운하를 다닌다 해도 여전히 관광객들은 곤돌라를 찾고, 곤돌리에들은 오늘도 느릿느릿 도시 사이로 배를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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