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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희망을 담은 촛불과 케이크의 흔적, 권지안 개인전 ‘영혼의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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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희망을 담은 촛불과 케이크의 흔적, 권지안 개인전 ‘영혼의 빨래’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2.01.04 17: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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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비는 없고, 권지안만 있었다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12월과 1월은 마지막과 시작이 맞물리는 시기라 사람들의 마음을 무언가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새해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워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특별한 분위기를 기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케이크와 촛불이다.
 

갤러리 전경 / 전은지 기자
갤러리 전경 / 전은지 기자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케이크와 촛불이 망가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대중들에게 연예인 ‘솔비’로 알려졌지만, 예술계에서는 ‘권지안’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망가진 케이크와 꺼진 촛불이지만, 여전히 ‘희망’이라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품으로 표현했다. 코로나라는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 힘겹게 살아온 우리를 위로하며, 앞으로 맞이할 미래는 촛불처럼 밝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것이다.

지난 12월 10일부터 1월 6일까지 강남구 갤러리 나우에서 진행된 권지안 작가의 개인전 ‘영혼의 빨래(SOUL WASHING)’는 케이크를 캔버스 위로 가져온 ‘Just a cake’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캔버스 위에 쓴 편지 ‘Humming’ 시리즈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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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사진보다 실제 작품이 멋지다”

이번 전시는 권지안 작가가 상을 받기 전부터 기획되어 디스플레이를 마쳤으며, 작품도 다수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관람객의 절반은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려는 이들, 또 다른 절반은 바르셀로나 국제예술상을 받은 뒤 작품이 어떤지 감상하러 온 사람들이었다고.

관람객들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는 이야기를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도경 큐레이터에게 들을 수 있었다.
 

갤러리 전경 / 전은지 기자
갤러리 전경 / 전은지 기자

이도경 큐레이터는 “보통은 연예인 화가의 작품을 기사로 접하는데, 실제 관람을 하는 분들은 ‘사진보다 좋다’, ‘이 사람이 이런 전시를 하는구나’라는 반응이 많았다. 작품이 입체적이면서 스토리가 있다 보니 알게 되어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어떤 것으로 표현했는지, 캔버스에 붙인 초가 떨어지지는 않는지 등의 궁금증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직접 눈으로 보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비난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도경 큐레이터도 이러한 인식이 안타깝다며, 전시를 통해 작가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도경 큐레이터는 “연예인 전시 기획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만나 준비를 하고 회의를 하면서 솔비가 아닌 권지안이라는 작가를 보게 되었다. 그림을 순수하게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미술종사자로서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하는지 알고 있고,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 분명 ‘솔비’라는 연예인 타이틀로 각광받는 것도 있지만, (그녀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미술전공자보다는 공부의 시간이 짧을 수 있지만, 그 노력에 비해 비난을 크게 받는 것은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망가진 케이크, 다시 켤 수 있는 희망의 촛불
- ‘Just a cake’ 시리즈

‘Just a cake’ 시리즈는 조카와 장난스럽게 클레이 아트로 만들었던 케이크에서 출발했다. 표절 논란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작품’으로 보여주겠다면서 탄생시킨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Just a cake’ 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케이크 / 전은지 기자
‘Just a cake’ 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케이크 / 전은지 기자

지난해에는 이 시리즈로 바르셀로나 국제예술상(PIAB21)을 수상하면서 이슈가 되었고, 일부에서는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쏟아졌다. 이런 논란은 권지안 작가를 힘들게도 했지만, 예술가로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된듯하다.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 속 작품 소개를 보면,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옐로우 저널리즘을 비판하고, 작품으로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피해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케이크를 모티브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권지안 작가는 “상처받은 케이크는 축하와 감사의 기능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불안정한 현대인의 초상 같다. 그 안에 꽂힌 초는 고통 속에서 생명을 불어넣는 희망의 빛을 상징한다. 케이크 조각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의 조각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캔버스 위에 표현한 망가진 케이크는 자기 자신이면서, 무언가에 상처받은 우리 자신이 되는 셈이다.
 

갤러리 내부 전시된 작품들. 멀리서 보아도 강렬한 색감이 느껴진다 / 전은지 기자
갤러리 내부 전시된 작품들. 멀리서 보아도 강렬한 색감이 느껴진다 / 전은지 기자

캔버스 위에는 화이트, 레드, 블루, 핑크, 블랙, 골드 등 다양한 컬러로 케이크를 던진 듯 표현했다. 색깔이 주는 이미지도 강렬하지만, 질척한 느낌과 질감을 주는 텍스처의 표현과 불에 녹아 망가진 초의 모양도 쉽게 범접할 수 없다. 어느 작품 하나 똑같은 모양을 발견할 수 없다.

권지안 작가는 시리즈에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모두 같은 ‘Piece of Hope’이며, 작품별로 번호를 매겨놓았을 뿐이다. 해석하면 ‘희망의 조각’이라는 뜻인데, 망가진 케이크 조각과 녹아버린 촛불이 곧 ‘희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Piece of Hope #83, 163×13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83, 163×13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전시장 가장 첫 메인에 있는 작품이다. 검은색 캔버스와 빨간색이 입혀진 초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마치 빨간색은 누군가가 흘린 고난의 피와 같이 느껴진다. 어두운 배경에 두드러지는 것이 가운데에 박혀있는 초다. 그 모양은 마치 꽃이 활짝 피어있는 듯, 꽃잎처럼 녹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작품 옆에 쓰여 있는 상징적인 문구 때문이다. 전체적인 전시 분위기와 작품의 의미를 아우른다.

‘초는 어둠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빛을 준다. 탄생을 축하할 때도, 그리움을 추모할 때도, 평화를 외칠 때도 항상 함께한다. 초는 시간의 기록이며, 희망이다.’

촛불을 한 번이라도 켜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초는 누군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생일에도 켜지만, 세상을 떠나 추모할 때도 켠다. ‘촛불시위’라는 단어처럼 어떤 일에 대한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서 바람을 담아 켜기도 한다.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바로 ‘초’인 셈이다.

촛불의 다양한 의미 중에서도 이 작품은 ‘평화’가 아닐까 싶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서 ‘희망’을 이끌어와야 한다는 의미가 느껴진다.
 

Piece of Hope,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흰 배경의 작품이 많았다. ‘케이크’라는 모티브를 떠올려보면, 하얀 생크림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각각은 분명 모양과 의미가 다르다. 어떤 것은 초 여러 개가 옹기종기 모여있기도 하고, 초 자체를 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가 초에 ‘희망’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초가 많을수록 무언가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의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그래서 더 크고 밝은 희망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난과 연예인 솔비로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아프게 다가왔고, 당시의 심정을 불규칙하게 퍼진 촛농과 텍스처의 흔적으로 표현한 듯하기 때문이다.
 

Piece of Hope #108, 73×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08, 73×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67, 50×146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67, 50×146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그럼에도 미술을 하는 작가로서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은 듯하다. 작가 노트에서 권지안 작가는 “케이크라는 소재에 내 심미안(審美眼)을 넣어 미술적 언어인 평면 회화와 조각으로 해체했다”고 밝혔기 때문.

#108번 작품은 커다란 두 송이의 꽃이 피어 대각선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얇은 꽃잎의 주름은 촛농과 재료가 마르면서 나타난 무늬로, 꽃 가운데 수술은 타다 남은 초로 표현했다. 두 송이의 꽃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경쟁하듯 피어있는 듯하다. 입체적으로 표현한 질감도 꽃의 아름다움을 부각한다.

#67번 작품은 초가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듯하다. 무언가 흐르는 듯 표현한 텍스처가 초를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갈수록 이미지가 흐려진다. 그런데 가운데에서 이어지는 듯하다. 시간은 끝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 작품도 끝이 없는 듯하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다시 녹는 촛농이 작품을 계속 새롭게 만들 것 같기 때문에.

작품 아래 쓰인 문구와 함께 보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작가의 바람이 느껴진다. ‘환한 빛을 밝히는 초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길 꿈꾼다’는 것은 권지안 작가 말고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Piece of Hope #64, 96×8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64, 96×8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07,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07,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68, 91×7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68, 91×7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흰색의 작품이 안정감을 주었다면, 붉은색의 캔버스는 우리 안에 감춰진 욕망을 드러낸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참고 인내해야 하는 현대인들이 가진 분노, 바라는 것을 이루고 싶은 꿈을 말이다.

붉은색 작품에서는 ‘희망’을 상징하던 초가 ‘열망’으로 바뀔 수 있을 듯하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초의 위치도 제각각이고, 텍스처가 반짝거리는 광택이 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뿌연 안개처럼 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마도 작품마다 작가가 표현한 열정의 정도와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Piece of Hope #60,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60,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24, 50×4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24, 50×4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파란색 계열의 작품은 전시에서 3개뿐이었지만, 붉은색 캔버스와 대조되면서 역시나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

#60번 작품은 파란색 캔버스와 텍스처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지만, 노란색 초가 반대되는 이미지를 준다. 개성이 강한 MZ세대가 떠오르게 한다. 엎질러진 물, 다 된 밥에 코 빠뜨리기 같은 속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노란색 촛농이 퍼진 모양이 진취적인 느낌도 전달한다.

#124번 작품은 같은 크기의 빨간색 작품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하지만 타원 안에 갇혀 있지만, 멀리서 덩어리를 던진 것 같은 질감의 묵직함과 그 가운데 피어난 듯한 초의 모습은 굳건해 보인다.
 

Piece of Hope #89,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89,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88,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88,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87,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87, 50×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핑크, 골드, 그린으로 표현한 망가진 케이크는 우리 사회에서 돋보이는 존재를 표현한 듯하다. 권지안 작가처럼 연예인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모임 안에서 능력이 특출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야 한다거나 주관적인 잣대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다양한 색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혹은 ‘희망’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다양한 색으로 나타낸 것일 수 있다.
 

Piece of Hope #118,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18,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19,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19, 117×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전시장 입구를 장식하는 2개의 작품은 ‘Just a cake’ 시리즈와 ‘Humming’ 시리즈를 아우르는 작품이다. 망가진 케이크와 초의 형태에 글씨를 흘려 쓴 듯한 느낌의 표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콧노래가 함께 들리는 듯하다. 어떤 콧노래를 표현한 것인지는 작가만이 알 수 있지만, 불규칙한 것으로 보아 의미 없이 흥얼거리는 허밍이지 않을까 싶다.

허밍을 표현했다는 것을 모르고 본다면, 지렁이처럼 보이기도 해, 약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가진 작품처럼 감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iece of Hope #122, 50×50cm, Mixed media on Speaker,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22, 50×50cm, Mixed media on Speaker, 2021 / 전은지 기자

표면적인 작품과 어우러진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122번 작품은 다른 시리즈 작품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작품의 가장자리를 보면 버튼이 있다. 이도경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 안에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어 작품을 감상하면서 음악도 함께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작품처럼 블루투스 스피커가 내장된 작품은 1~2천만 원 선에 경매에서 낙찰될 정도로 작품성과 실용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작품설명에 따르면, 솔비라는 가수로서의 정체성과 권지안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을 동시에 담은 것이라고 한다.

이도경 큐레이터는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면, 전시장에 있는 작품들의 가치도 모두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갤러리를 상업적인 공간인 동시에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예술공간이다. 작품 가격처럼 숫자로 보여지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주는 느낌과 의미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콧노래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슬픔’
- ‘Humming’ 시리즈

권지안 작가에게 ‘Just a cake’가 희망의 이미지였다면, ‘Humming’ 시리즈는 ‘슬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아픔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어떠한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Humming #001, 131×16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Humming #001, 131×16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영어로는 허밍이라고 하는데, 그를 이미지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한 것이 이 작품이다.

#001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슬픔에 사로잡히면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작가도 집중해서 편지를 쓸 수 없었던 듯하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권지안 작가의 아버지라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거친 텍스처가 가득한 검은 캔버스 위에 하얀색 글씨가 흐른다. 비가 내린 것처럼, 글씨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다.

작품 안에는 2개의 초가 자리 잡고 있는데, 하나는 금빛으로 빛나고 있으며, 하나는 그 빛을 잃은 검은색 그대로다. 금빛으로 빛나는 초만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Piece of Hope #127, 삼각정변 4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127, 삼각정변 4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나태주 시인이 작품 뒤에 쓴 편지 / 전은지 기자
나태주 시인이 작품 뒤에 쓴 편지 / 전은지 기자

이 작품은 허밍 시리즈는 아니지만, 이를 본 나태주 시인이 감동을 받고 권지안 작가에게 남긴 메시지라고 한다. 허밍 시리즈 속 글씨를 ‘하늘 글씨’라고 칭하며,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말, 글자로서도 다 할 수 없는 말, 마음의 글씨로 보여드려요’라고 썼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다.
 

Humming #115, 60.5×1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Humming #115, 60.5×15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Humming #85, 73×182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Humming #85, 73×182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Humming’ 시리즈도 전체적인 형태는 비슷하다. 작가가 흥얼거린 콧노래를 글로 표현한 부분은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슬픔’이라는 이미지에 집중해서 감상한다면, 그 허밍이 슬픔에 젖은 듯 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대칭을 이루며 붙어있는 촛불도 마찬가지. 2개의 초는 서로 색이 다르며, 색이 더 강렬한 쪽에 시선이 집중된다. 슬프지만, 강렬한 촛불처럼 희망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바람이 느껴진다.

Piece of Hope #91, 182×228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Piece of Hope #91, 182×228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 전은지 기자

권지안 작가는 연예인 활동을 하며 얻은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2009년부터 미술을 시작했고, 약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수와 작가라는 2개의 자아를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셀프 콜라보레이션’ 퍼포먼스와 핑거페인팅으로 꽃을 표현한 ‘바람’ 시리즈 등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만큼, 예술계와 대중의 비평을 받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비평도 작품 감상의 한 방법이기도 하며, 이런 비평을 통해 작가의 작품활동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도 대중의 비평에 대해 수긍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가 대중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연예인이라고 작품활동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예술은 정해진 틀이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분야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 옆에는 ‘예술은 열 마디 말을 대신한다’고 쓰여있었다. 기사로 전해지는 작품 소식이 아니라, 권지안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본 사람들은 ‘멋지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섣부른 비난을 던지기보다는, 폭넓은 시각으로 ‘작가 권지안’을 바라본다면, 그녀의 예술세계가 던지는 의미가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그녀가 어떤 과감한 시도로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되는 ‘첫 번째 계단’ 같은 전시였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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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 fred 2022-01-07 22:48:07
Excellent article, thank you! I was lucky to see Kwon Jian's works in Barcelona and the Saatchi Gallery in London. Magnetic, unique and emotional! I have seen some criticism from a couple of so-called "artists" on YouTube - nonsense! The award given to KJA in Barcelona was well deserved, her works drew most visitors and attention- I know, I was there (unlike the two YouTube "artists" surfing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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