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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풍속도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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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풍속도의 주인공이 된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10.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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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21세기 버전 풍속도 이벤트 진행
'모두의 풍속도'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한국문화재재단 궁중문화축전에서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네티즌들에게 진행 중이다. '모두의 풍속도'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다름아닌 우리가 봐 왔던 풍속도 속 등장 인물을 자신이 직접 커스텀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풍속도 하면 신윤복, 김홍도 화백이 그린 멋진 풍속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풍속도에 나오는 주인공이 다름아닌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이 기발해 여러 네티즌들의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상들의 소중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풍속화

울주대곡리암각화 /문화재청

어렸을 때 학교 교과서에서 보고 배웠고 책에서도 많이 봤을 풍속도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그림이라 정의한다. 원래 사람들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선사 시대부터 있었으며, 바위나 돌에 새겨진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울주대곡리암각화'에는 고래나 거북이, 호랑나 사슴 등 짐승들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바위에 세겨진 동물 그림 사이에는 사람들이 사냥하는 모습, 기도를 올리는 제사장 등의 모습이 보이는데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상황 묘사가 꽤 세세한 편이다. 풍속도는 좁은 의미로 쓸 땐 궁이 아닌 민간의 생활상을 다룬 그림으로 나눠 사인풍속도와 서민풍속도로 나눈다. 사인풍속도는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렸으며 서민풍속도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다루고 풍속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궁중에서도 정치할 때 참고하기 위해 서민풍속도를 그렸다고 하며, 여성들의 생활과 모습을 그린 미인도도 서민풍속도에 속한다. 

정기활 필 무용총 치사도 /국립중앙박물관

삼국 시대의 풍속화는 고분벽화에서 알 수 있으며 특히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즈음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고분 벽화에는 초상·풍속도가 유행했다. 당시의 풍속도는 그림의 주인공이 평생 누렸던 권력을 내세에서도 누리길 바랐던 소망이 있었다. '약수리벽화고분'·'장천1호벽화고분'·'무용총'·'각저총'·'쌍영총'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초상·풍속도 고분이다. 

묘 주인의 초상은 대부분 부부가 함께 나란히 그려진 경우가 많다. 수렵·씨름·전투·놀이 등 풍속의 내용 또한 매우 다양하다. 발해 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인 '정효공주묘벽화'에서는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 시종이나 악사 등 10명의 시위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무사가 대문을 지키면 시위들이 철퇴와 검을 가지고 뜰을 지키며 노복들이 둘러선 채로 시중을 들며 악사들이 노래와 연주를 즐겁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풍속도는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이 활발한 모습을 띈다. 특히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풍속화가 가장 융성하게 발달했다고. 조선 전기에는 궁중 수요의 풍속화, 사인풍속화와 서민풍속화 등 여러 분야로 발달했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크게 발달한 편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 들어 궁중 수요 풍속화와 민간 수요 풍속화가 같이 발달했는데, 특이한 건 풍속화를 '속화'라 불렀다는 것이다. 

경직도 /국립중앙박물관

원래 속화는 문인화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저속한 그림이라는 뜻인데, 조선 후기에는 풍속화나 민화를 의미하는 분류 개념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숙종은 특히 경직도(백성의 농업과 누에 치고 비단 짜는 일을 그린 풍속화)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회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은 청나라의 '패문재경직도'의 수용이다. 이 경직도는 조선 후기 풍속화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경직도에 새로운 도상과 표현 방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즉 패문재경직도의 구성과 기법을 토대로 하며, 소재는 우리나라 인물과 풍속으로 대체된 경직도가 만들어졌다. 원래 왕실용으로 쓰이던 경직도가 일반인들의 수요에 의해 만들어져 민화에서도 많이 취급했다. 이 변화는 조선 후기에 성행한 풍속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 신윤복·김득신 등 당시 유명했던 화원들이 대거 참여하며 조선 후기 풍속화는 화려한 꽃을 피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림,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문화재청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 /문화재청

사인풍속화는 조선 초기와 중기, 서민풍속화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다. 사인풍속화는 관료가 아닌 선비들의 일상이나 기념적인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그린 그림들로 선비들간의 만남의 장면, 특별한 기념일이나 행사일, 일생의 가장 소중한 장면들을 그린 평생도, 과거 시험, 조선 후기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이 포함된다. 일반 백성들의 생활상을 그린 서민풍속화는 서민이 그림 속 주인공으로, 조선 시대 전반기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는 정치적 안정, 경제 발전, 실학에 대한 관심 증대, 서민 문학 등 서민 의식이 성장하며 같이 발전했다. 이 시기는 재능있는 화가들의 등장으로 현장감 있고 역동적인 서민의 일상을 표현한 풍속화가 크게 발전했다. 국왕 또한 백성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풍속도를 보며 민생을 살폈고 궁중에서도 백성들이 사는 현장 또한 접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이 주인공인 것을 넘어 서민과 양반이 함께 등장하는 풍속화가 유행했는데,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시대 자체가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는 양반이나 왕이 아닌 우리 같은 서민도 그림의 당당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저 하찮은 취급만 받고 살았던 백성들이 어떤 장르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김홍도 - 규장각도 /국립중앙박물관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일부 사대부 화가와 전문 화원을 포함한 직업 화가로 나뉜다. 다양한 인물을 정확히 묘사하고 배경까지 그려야 하는 풍속화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연습하고 단련해야 완성도 높은 수준의 화가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문인화가인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화원이 되어 활동한 김홍도는 대표적인 풍속도 화가에 속하며, 특히 정조에게 총애를 받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정조는 “회사(繪事)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그를 좋아했다고. 정조 때 화원의 수는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도 더욱 뛰어난 화원 열 명은 따로 규장각에 소속시켰으며 별도로 선발해 특별한 대우를 했다. 김홍도는 규장각 설립 당시에 이미 <규장각도>를 그려 정조에게 바쳤으며 정조는 자신이 직접 가서 볼 수 없던 금강산의 명승이며 단양팔경 등도 그려 오도록 명령까지 했다고. 

정조는 특별히 여기던 임경업 장군 초상화도 김홍도에게 새로 옮겨 그리도록 했다. 이렇듯 각별한 대접을 받아 김홍도는 화원으로써 큰 출세라 할 수 있는 경상도 안동 지방의 찰방(지금의 역장 겸 우체국장과 유사)과 충청도 연풍 고을의 현감까지 지낼 수 있었다. 또한 김홍도는 강세황으로부터 ‘근대 명수’ 또는 ‘우리나라 금세의 신필’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가 제일 많이 알고 있을 듯한 김홍도의 풍속도 화첩 - 무동 /문화재청

김홍도는 50세 이후로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실경을 소재로 하는 진경산수를 즐겨 그렸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명승의 실경에서 농촌,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사생하는 것으로 관심이 바뀐다. 뭐니뭐니해도 그를 지금까지 역사적인 인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그가 후기에 많이 그렸던 풍속화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간략하면서도 풍부한 해학까지 곁들여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화풍과 경향은 신윤복·김득신 등 조선 후기와 말기의 여러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떤 그림에서든 우리네 멋이 드러나는 것으로 특히 유명한데, 심지어 중국 고사를 주제로 한 삼공불환도를 보면 우리나라식 건물을 배경으로 장독대 등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삼공불환도 /문화재청

19세기에는 풍속화의 제작이 활발해지며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수요가 민간으로 늘어난다. 19세기 말에는 개항장을 그린 풍속화, 종교 관련 문서나 교과서 삽화 등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실용화가 된다. 화풍은 김홍도의 화풍이 유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양화풍·문인화풍·민화풍 등 다양해지는 양상을 띤다. 그러다 조선 시대 말기 개항을 받아들이며 개항장 풍속도라는 새 장르가 만들어진다. 

기산 김준근 선생의 신삼는사람 /국립민속박물관

개항장 풍속도는 제물포, 초량 등 여러 개항장에서 조선 시대의 갖가지 풍속을 그린 것으로 작품들은 대개 외국 상인이나 선교사들에게 판매했다. 이것은 조선 시대 풍속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서도 동양화나 서양화를 통해 꾸준히 계승되었다. 

무엇보다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이 살던 모습, 옷차림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실제 선조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풍속화가 가장 활발했던 조선 시대의 풍속화는 특정 시기에 국한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찾을 수 있다. 상류층으로부터 서민층에 이르는 각 계층 간의 인물들이 특정한 시·공간에서 체험하는 공식적이거나 사적인 일상은 그 자체로 풍속화의 주요 소재와 모티브가 되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는 서민들의 존재와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 문화의 재발견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본 기자가 직접 만들어 본 풍속도의 주인공 /김서진 기자

한국문화재재단 궁중문화축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서 비대면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온라인에서 김홍도의 풍속화 속 인물들이 재미있는 해석과 함께 호응을 얻는 것을 봤다"며 "대중이 직접 참여해 '21세기 버전의 풍속도'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랐는지,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뿌듯하고 감사하다"란 소감을 밝혔다.

궁중문화축전은 12일부터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모두의 풍속도'를 공개한 상태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머리부터 동작, 표정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포즈도 우리가 흔히 하는 핸드폰을 보는 포즈, 인기 아이돌의 춤을 따라 추는 포즈 등 현대적이며 재미있다. 단순히, 아주 멀다고만 느껴져 왔던 풍속화를 자신의 캐릭터를 만듦으로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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