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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장인의 세심함, 서울공예박물관 탐방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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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장인의 세심함, 서울공예박물관 탐방기②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10.12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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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공예품을 보면 ‘세심함’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당시의 그림이나 자수, 나전칠기 등을 보면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정교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 공예품만 조명을 받을 뿐, 그것을 만든 장인들은 무대 뒤에서 박수를 받을 뿐이다.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두 번째로 방문한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공예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를 만든 장인, 공예품을 사랑한 수집가의 정신과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보이기 위한 공예가 아닌, 생활과 밀접한 공예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볼 곳이 많은 전시 3동

서울공예박물관은 전시 1동과 3동 양쪽에서 입장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전시 3동에서 입장했다. 3동에는 상설전시실 2곳과 보이는 수장고 등 지난번 관람 때 보지 못했던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시 3동 입구 / 전은지 기자
전시 3동 입구 / 전은지 기자
로비에서 대기 중인 관람객들 / 전은지 기자
로비에서 대기 중인 관람객들 / 전은지 기자

비 오는 날이었지만, 관람객은 지난번보다 늘어난 듯했다. 대학생이나 주부 등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관람을 위해 로비에 보였다. 3동은 1동과 다르게 좀 더 아늑한 분위기였으며, 탁자와 테이블이 하나가 된 가구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안내도에서도 이곳 1층의 이름이 ‘로비‧사랑방’인 듯했다.
 

로비 의자 / 전은지 기자
로비 의자 / 전은지 기자
로비 한쪽에 마련된 OBJECTS 9 안내 / 전은지 기자
로비 한쪽에 마련된 OBJECTS 9 안내 / 전은지 기자

로비 한쪽에는 박물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영상과 책자 등이 있었다. ‘OBJECTS 9’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는 전시실 전시물들이 어떤 시기에 수집되고 설치되었는지를 안내했다. 특히나 사람들이 그냥 앉아서 쉬는 의자나 탁자도 모두 작가의 작품이었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어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의 지루함을 줄여주기도 했다.
 

현재 입장 가능한 곳 / 전은지 기자
현재 입장 가능한 곳 / 전은지 기자
예약자는 팔찌를 착용한다 / 전은지 기자
예약자는 팔찌를 착용한다 / 전은지 기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우산은 입구 거치대에 놓은 뒤, 예약자 이름 확인 후 팔찌를 착용했다. 현재 입장이 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별도 예약이 필요한 어린이 박물관과 준비 중인 안내동, 전망대, 별당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실로 그려 넣은 행복에 대한 염원
- 전시 3동 상설전시 ‘자수, 꽃이 피다’

전시 3동 2층 상설전시실에는 ‘자수, 꽃이 피다’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곳은 수집가인 허동화 씨로부터 기증받은 자수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전시 3동은 허동화 씨의 아호인 ‘사전가(絲田家)’를 따서 ‘사전가 직물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수 화조도 10폭 병풍 / 전은지 기자
자수 화조도 10폭 병풍 / 전은지 기자
화조도 병풍 속 새의 모습 / 전은지 기자
화조도 병풍 속 새의 모습 / 전은지 기자

자수로 만든 병풍부터 책 표지, 방석, 노리개, 옷, 신발 등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자수 화조도 10폭 병풍’이다. 꽃과 새를 그리는 화조도를 수로 놓은 뒤에 병풍으로 만든 것인데, 19~20세기에 만들어졌지만, 자수를 놓은 실이 풀렸다거나 색이 변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만큼 당시 장인들이 얼마나 세세하게 수를 놓았는지 알 수 있다.
 

자수 묵죽도 4폭 병풍 / 전은지 기자
자수 묵죽도 4폭 병풍 / 전은지 기자
묵죽도 속 글씨와 낙인 / 전은지 기자
묵죽도 속 글씨와 낙인 / 전은지 기자

자수는 단순히 바느질하며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림을 그리는 수준을 보여주기도 했다. 난이나 대나무 등은 사대부 양반이 먹으로 그림을 그리던 단골 소재였는데, 묵죽도 병풍도 멀리서 보고 당연히 종이에 그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왼쪽에서 두 번째만 서화가 이병직이 먹으로 그린 그림이고, 나머지 3점의 묵죽도는 모두 자수로 놓은 것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수로 놓은 묵죽도는 은색 실로 자수를 놓은 듯 실에 빛이 반사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입체감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자수로 놓은 그림은 청나라 시인이자 서예가인 이병수의 작품인데, 글씨와 낙인도 수로 놓은 것이 놀라웠다. 먹으로 표현할 수 있는 농담도 세세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자수 노안도 10폭 병풍 / 전은지 기자
자수 노안도 10폭 병풍 / 전은지 기자
노안도 속 기러기 / 전은지 기자
노안도 속 기러기 / 전은지 기자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노안도(蘆雁圖) 병풍도 어떻게 자수로 표현했을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입체감이 돋보인다. 조선 시대 도화서 화원인 선연 양기훈의 작품으로 수를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기러기가 무려 53마리다. 이중 어느 하나도 똑같은 모습을 한 것이 없다. 당시 수를 놓은 이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다.
 

자수 사계분경도 / 전은지 기자
자수 사계분경도 / 전은지 기자
사계분경도 세부 모습 / 전은지 기자
사계분경도 세부 모습 / 전은지 기자

자수 병풍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자수 사계분경도’다. 화분에 화초를 심어 자연의 풍경을 만들고 감상하는 것을 ‘분경(盆景)’이라고 하는데, 4폭의 자수 그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의미하는 꽃과 화분을 수놓았다.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세월의 힘을 이겨낸 자수의 정교함에 감탄했다.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머문 작품도 이곳이었다. 보통은 사각형 직물에 테두리를 둘러서 수를 놓지만, 이 작품은 사각형 직물 안에 원형 직물을 배치해 수를 놓았다는 것은 보기 드물다고 한다. 그 역사적 가치 때문에 이 작품은 보물 제653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수저 주머니, 두루주머니, 실패, 바늘 주머니, 안경 주머니 등에 화려한 꽃과 글씨를 수놓으며 행복을 기원했다 / 전은지 기자
수저 주머니, 두루주머니, 실패, 바늘 주머니, 안경 주머니 등에 화려한 꽃과 글씨를 수놓으며 행복을 기원했다 / 전은지 기자

자수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기기도 했다. 아무래도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이 많았기 때문인가 싶다. 복을 상징하는 박쥐,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라는 의미의 봉황, 모란, 나비 등의 그림이나 장수와 복을 의미하는 ‘수복(壽福)’, 기쁜 일이 가득하라는 의미로 ‘희(囍)’ 등의 글자를 새겨 넣었다.
 

혼례복으로 입은 활옷, 수혜와 혼선 / 전은지 기자
혼례복으로 입은 활옷, 수혜와 혼선 / 전은지 기자

자수를 놓아 만드는 것들이 혼수품이거나 일상에서 쓰는 생활용품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주로 만들었으며, 당시 여성들에게는 바느질과 자수가 기본 규범으로 강조되었을 정도다. 그때는 누구나 ‘장인’이었으며 ‘금손’이었던 셈이다.
 

당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했을 듯한 물건들에 자수가 놓인 것들이 많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전은지 기자
당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했을 듯한 물건들에 자수가 놓인 것들이 많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전은지 기자

이는 반대로 여성 장인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궁에서는 자수품을 제작하는 ‘수방(繡房)’이 따로 있었지만, 만들었던 나인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전시품 중에서도 재료와 만든 시기 정도만 적혀있을 뿐, 만든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19~20세기의 자수 백룡도 족자. 누가 만들었는지 구체적인 이름은 없지만, 생활공예품이 아닌 예술품으로의 자수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19~20세기의 자수 백룡도 족자. 누가 만들었는지 구체적인 이름은 없지만, 생활공예품이 아닌 예술품으로의 자수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자수의 모습도 변화했다. 가정에서 엄마가 딸에게 전수해주던 전통이 아닌,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하도록 교육하게 된 것이다. 1932년에 설립된 조선여자기예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직물 공예품을 생산해 그를 판매한 수익으로 학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실업교육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교육함으로써 자수가 생활공예가 아닌 예술로 확장되었다.
 

자수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 / 전은지 기자
자수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 / 전은지 기자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멋을 중시했는지는 자수 공예품을 만드는 도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수를 놓을 때 사용하는 골무, 바늘을 끼워두는 바늘방석, 실을 보관하는 실첩, 실을 감는 실패와 자에도 화려한 자수와 무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저 골무는 따로 판매 안 하나. 너무 예쁘다”라고 말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다양한 자수기법으로 만든 흉배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자수기법으로 만든 흉배 / 전은지 기자
종이수본, 나무수본 / 전은지 기자
종이수본, 나무수본 / 전은지 기자

전시실 마지막에는 어떤 방법으로 수를 놓는지 소개했다. 선을 표현하는 기법, 면을 채우는 기법, 입체감을 주며 장식하는 기법 등 다양했다. 천 위에 그림을 그려 수를 놓는 줄 알았는데, 종이나 나무로 만든 수본이 존재했다는 것도 독특했다.
 

/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전시실 마지막에는 자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코로나 감염 예방 차원에서 운영하지 않고 있다.


네모 속에 피어나는 예술, 일상 속 보자기
- 전시 3동 상설전시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자수 공예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보자기다. 지금은 선물을 할 때, 포장지 대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감싸는 천에 불과한 것이 보자기이지만, 당시에는 보자기도 정해진 크기와 형태가 있었으며, 어떻게 묶고 감싸는지에 따라 방법도 달랐다. 지금은 없어도 되지만, 옛날에는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인문 보자기 / 전은지 기자
인문 보자기 / 전은지 기자

보자기도 어디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랐다. 궁중에서 사용한 보자기에는 문양이나 자수가 놓여있지만, 민간에서는 무늬가 없이 이불이나 옷가지를 감싸는 단순한 형태를 사용했다.

궁중에서 사용했던 인문 보자기는 마에 다양한 색으로 길상무늬를 회염(繪染) 기법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 영지, 모란 무늬, 불로초, 꽃무늬 등을 그렸다. 생각보다 보자기는 ‘삼국유사’부터 그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보자기 크기별 용도 / 전은지 기자
보자기 크기별 용도 / 전은지 기자

요즘 보자기는 끈이 없지만, 당시에는 크기나 용도에 따라 2개, 4개의 끈이 달려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34cm인 것을 1폭 보자기라고 하는데, 혼례 때 쓰는 기러기나 노리개, 소반 등을 감쌀 때 사용했다. 2폭 보자기는 1폭이 4개가 모인 크기인데, 비녀, 각대, 장식함 등을 감쌌으며, 가장 큰 4폭 보자기는 1폭이 16개, 2폭이 4개가 모인 크기로 빨래나 이불, 옷 등을 감쌌다고 한다.
 

전시실 내부 모습 / 전은지 기자
전시실 내부 모습 / 전은지 기자

전시실에는 여러 개의 보자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각각의 용도에 따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바로 아래에 예시처럼 보여주어 이해가 쉬웠다.
 

혼례에 사용하던 기러기 보자기, 사주단자 보자기 / 전은지 기자
혼례에 사용하던 기러기 보자기, 사주단자 보자기 / 전은지 기자
비녀를 감싼 금박보자기 / 전은지 기자
비녀를 감싼 금박보자기 / 전은지 기자
조각 상보자기 / 전은지 기자
조각 상보자기 / 전은지 기자

혼례 할 때 사용하거나 각종 장신구를 포장하던 보자기는 화려했다. 금박으로 무늬를 넣거나 자수를 놓았다. 끈이 있어 튼튼하게 묶을 줄 알았지만, 끈은 한복의 노리개처럼 장신구처럼 사용되어 물건에 고정하는 수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각 보자기 / 전은지 기자
조각 보자기 / 전은지 기자

이불이나 옷을 감싸던 것은 아무래도 크기가 커서 그런지, 천 조각을 이어서 만든 조각 보자기가 많았다. 어떤 것들은 오래 사용했는지 구멍이 생기거나 부분부분 바느질로 기워놓은 듯 흔적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종이나 PP박스 등에 넣어 포장하지만, 당시에는 오직 보자기로만 짐을 싸서 다녔기에 그 흠집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수가 놓인 보자기들 / 전은지 기자
화려한 수가 놓인 보자기들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조각보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조각보 / 전은지 기자

보자기에 화려한 수를 놓은 것도 많았지만, 요즘의 업사이클링과 연계되는 보자기가 있으니, ‘조각보’다. 이름처럼 바느질을 하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어서 바느질 도구, 장신구, 보자기 등을 만들었는데 남은 천을 재활용하는 의미도 있지만, 정성스럽게 이어서 복을 기원한다는 의미도 담겼다고 한다.
 

조선재봉전서에 남아있는 조각보 만드는 법 / 전은지 기자
조선재봉전서에 남아있는 조각보 만드는 법 / 전은지 기자

조각보는 당시 여인들의 생활 속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공예품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는 듯했다. 20세기 초 선교사들이 만든 학교에서는 ‘조선재봉전서’라는 교재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조각보를 만드는 방법이 쓰여있다. 색을 어떻게 조합하는지, 조각은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다양한 조각보 공예품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조각보 공예품 / 전은지 기자

자수라는 전통공예를 이어나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완성도 높은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자수 교육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보자기 묶기 체험 / 전은지 기자
보자기 묶기 체험 / 전은지 기자

전시실 가장 끝에는 용도에 따라 보자기 묶는 방법이 나와 있으며,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다. 상보자기부터 책보자기, 기러기 보자기 등 3가지를 묶어볼 수 있으며, 맞은 편에는 칠교놀이처럼 나무 조각으로 나만의 조각보를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허동화 수집가를 기리는 특별 전시 / 전은지 기자
허동화 수집가를 기리는 특별 전시 / 전은지 기자

전시실을 나오면, 자수 공예품 5천점을 기증한 허동화 씨를 기리는 특별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보자기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허동화 씨는 수집가이면서, 박물관장, 예술가였다. 한쪽에는 ‘명예 관장실’을 꾸며놓았으며, 그가 직접 사용했던 탁자와 의자, 관련된 전시자료, 을 전시해두었다. 그가 자수와 보자기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직 전시되지 못한 직물은 이곳에서
-전시 3동 보이는 수장고‧보존과학실


전시 관람 후 4층으로 이동하면 ‘보이는 수장고’가 있다. 이곳은 허동화 수집가에게 기증받은 직물 자료를 보관 중이다.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수장고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보이는 수장고와 공예품 전시 / 전은지 기자
보이는 수장고와 공예품 전시 / 전은지 기자

통유리로 안이 보이도록 만든 수장고는 얼마나 철저하게 자료를 보관 중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안에는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다. 유리 앞에는 아직 전시되지 못한 각종 직물 공예품을 전시해두어, 수장고이면서 하나의 전시실이기도 했다.
 

공예품 보존 과정 / 전은지 기자
공예품 보존 과정 / 전은지 기자

수장고 뒤편에는 기증받은 공예품을 어떻게 보존하는지 자세히 설명해두었다.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옛 모습을 잃고 퇴색된 일월수 다라니주머니를 재현했는데, 자수, 염색, 매듭 등 부분마다 전문가와 장인이 참여했다. 어떤 도구를 이용했는지도 전시해, 문화재 보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해결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박물관의 원본 자료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실
-전시 2동 공예아카이브실 ‘아임 프롬 코리아’


전시 2동에는 ‘공예아카이브실’이 있다. 이곳은 공예박물관이 소장 중인 소장품과 관련된 유‧무형의 공예기록과 박물관의 전시, 연구, 교육 등의 활동을 통해 수집한 박물관 기록을 보관 중이다. 이중 허용된 기록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된다.
 

공예아카이브실 입구 / 전은지 기자
공예아카이브실 입구 / 전은지 기자
출입 안내 / 전은지 기자
출입 안내 / 전은지 기자

복제가 아닌 실제 소장자료와 기록물이다 보니, 출입부터 철저했다. 발판 소독을 거쳐 개인 소지품은 물품 보관함에 넣어야 한다. 그다음 출입증 발급기에서 출입 등록을 한 후, QR코드를 발급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발급된 출입증 / 전은지 기자
발급된 출입증 / 전은지 기자

출입증 발급은 매우 간단하다. 이름과 연락처, 생년월일 등을 키오스크에 입력하면, QR코드가 인쇄된 출입증이 나온다. 입구 옆 리더기에 출입증을 태그하면 문이 열리고 입장할 수 있다.
 

아카이브실 공간 안내도 / 전은지 기자
아카이브실 공간 안내도 / 전은지 기자
아카이브실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아카이브실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아카이브실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아카이브실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본 기자가 절차에 따라 출입을 하는 중에 관계자를 만났는데, 보관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듯 소지품을 가지고 입장해도 좋다고 허락받았다. 내부 사진 촬영도 가능했다. 아카이브실에는 9월 22일 기준 3,886건, 12,656점의 자료를 보유 중이다.
 

아임 프롬 코리아 전시 / 전은지 기자
아임 프롬 코리아 전시 / 전은지 기자
한쪽 벽면에 소개된 예용해 선생의 일대기와 영상자료 / 전은지 기자
한쪽 벽면에 소개된 예용해 선생의 일대기와 영상자료 / 전은지 기자
예용해 선생이 사용했던 카메라와 펜, 녹음기, 조사카드 / 전은지 기자
예용해 선생이 사용했던 카메라와 펜, 녹음기, 조사카드 / 전은지 기자

아카이브실에는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언론인이자 민속문화연구자였던 예용해 선생이 해외를 다니며 모은 자료와 그가 사용했던 물품, 그가 어떤 세월을 거쳐 문화재 수집과 연구를 위해 노력했는지 일대기가 펼쳐져 있다.


서울무형문화재가 이어가는 공예의 역사
-전시 2동 지역공예실 ‘손끝으로 이어가는 서울의 공예’


전시 2동 1층 지역공예실에서는 서울에서 활동 중인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명예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25인의 공예품을 전시하는 ‘손끝으로 이어가는 서울의 공예’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이 전시는 기획전시인 만큼 오는 11월 21일까지만 진행된다.
 

전시 2동 2층 내부와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갈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전시 2동 2층 내부와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갈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지역공예실을 찾아가는 방법은 좀 복잡하다. 전시 안내도를 따라 전시 2동에서 건물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면 갈 수 없다. 본 기자도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막혀있는 길 때문에 되돌아왔다.

근처 관계자에게 길을 묻자, 전시 2동 2층 상설전시실의 가장 안쪽을 따라가면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전시동 계단이 아닌, 전시실 내부 계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전시실 입구 / 전은지 기자
전시실 입구 / 전은지 기자

이곳에 전시된 장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된 장인의 길을 따라 들어가면, 목가구를 만드는 소목장, 나전칠과 옻칠을 하는 나전장과 칠장, 붓을 만드는 필장, 대나무로 공예품을 만드는 오죽장, 도자공예를 하는 옹기장, 자수와 매듭을 만드는 자수장과 매듭장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목가구 / 전은지 기자
목가구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 옹기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 옹기 / 전은지 기자
자수공예품 / 전은지 기자
자수공예품 / 전은지 기자
김복곤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 와공후 / 전은지 기자
김복곤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 와공후 / 전은지 기자

목가구와 붓, 찻상과 구절판, 옹기 등을 보면 화려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옛것이 줄 수 있는 감성인 셈이다. 자수나 매듭으로 만든 주머니와 화경, 당의, 족두리 등은 얼마나 멋과 품격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다.
 

소목장 심용식의 공방 재현 / 전은지 기자
소목장 심용식의 공방 재현 / 전은지 기자
은공장 故 이정훈의 공방 재현 / 전은지 기자
은공장 故 이정훈의 공방 재현 / 전은지 기자

전시실 마지막에는 소목장 심용식과 은공장 故 이정훈의 공방을 재현해 두었다. 창호를 수작업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심용식 장인의 작품을 보면서 대패질을 어떻게 하는지 체험할 수 있으며, 어떤 도구로 공예품이 만들어지는지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린이 박물관 옆 녹지 / 전은지 기자
어린이 박물관 옆 녹지 / 전은지 기자

역시나 이번에도 1시간 20분이라는 관람 시간은 부족했다. 공예품의 세세함을 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이라면, 관람 에티켓이다. 일부 관람객 중에는 전시실 중간중간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있었는데 조용한 관람에 방해가 되었으며, 박물관 관람이 아닌 대화 공간이 필요해 방문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마스크는 착용하고 있었지만, 요즘처럼 모두가 감염증을 조심하는 시기에 보기 좋지 않은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따로 관계자가 제재하지 않는 것도 아쉬웠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얻은 것이 더 많은 관람이었다. 공예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넓어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우리가 모르는 공예품도 많고 그 역사도 알지 못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혹시, 서울공예박물관 관람을 계획 중이라면 예약을 2~3번에 나누어서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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