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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공예의 과거부터 현재, 서울공예박물관 탐방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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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공예의 과거부터 현재, 서울공예박물관 탐방기①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9.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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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지난 7월 1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했다. 옛 풍문여자고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오픈한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이다. 공예의 전반적인 역사와 현재 공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모든 공예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 전은지 기자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 전은지 기자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현재 서울공예박물관은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본 기자도 이달 초에 예약해, 28일 관람해보았다. 상설 전시와 기획전시 등이 다양한 전시실에서 진행 중이었으며, 어린이 박물관이 개별적으로 운영되어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 관람객도 한 번쯤 와보기 좋은 곳이다.


홈페이지 통해 관람 예약 필수

서울공예박물관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지만, 자유롭게 원하는 시간에 방문할 수는 없다. 코로나로 인해 방문 인원과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람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관람 예약이다.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관람 및 이용’-‘예약하기’를 선택하기를 누르면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온다. 여기서 ‘관람 예약’을 선택하면 박물관의 상설, 기획전시를 모두 관람할 수 있다. 한 가지 번거로울 수 있는데,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현재, 서울공예박물관은 하루 6회로 나뉘어, 1회당 90명이 전시를 둘러볼 수 있다. 원하는 날짜를 선택하면, ▲오전 10시 ▲오전 11시 20분 ▲오후 12시 40분 ▲오후 2시 ▲오후 3시 20분 ▲오후 4시 40분 중에서 원하는 시간을 고를 수 있는데, 90명이 신청하면 해당 시간은 신청이 마무리된다. 한번 예약할 때 본인 동반 3명, 총 4명까지 신청할 수 있다.

공예박물관이 7월에 오픈하고 약 2개월 정도 지났지만, 여전히 방문객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원하는 시간에 방문하기 어려우니, 여유를 두고 예약하는 것이 좋다. 본 기자도 빠른 방문을 원했지만, 비어있는 시간이 없어 신청일 기준으로 약 3주 뒤에나 관람할 수 있었다.


지하철 이용하면 방문하기 편해

서울공예박물관은 인사동, 광화문, 경복궁 일대를 자주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찾기 쉬운 곳에 있다. 2017년까지 이곳에서 운영되던 풍문여자고등학교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에 바로 자리 잡고 있다. 또는 근처 버스정류장을 이용해도 된다. 박물관 인근 문화유적 보호를 위해 개별 주차장은 없으므로, 혹시나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정독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 출구 안내에도 서울공예박물관이 안내되어 있다 / 전은지 기자
지하철 출구에도 서울공예박물관이 안내되어 있다 / 전은지 기자
안내동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 전은지 기자
안내동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 전은지 기자

대로변에 바로 있어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전시 1, 2, 3동과 안내동, 교육동, 공예별당 등 5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내동의 박물관 가게나 카페 등은 10월 중 오픈할 것이라고 한다.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 전은지 기자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 전은지 기자
옛 풍문여고 전경 / 위키미디어(Ganzi91)
옛 풍문여고 전경 / 위키미디어(Ganzi91)

외부에서 바라본 박물관은 매우 큰 외형을 자랑했다.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사용했을 박물관 앞에는 잔디와 자갈, 나무 등으로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인상적이었다. 학교 건물을 그대로 살려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린이 박물관 / 전은지 기자
어린이 박물관 / 전은지 기자

전시 1동과 안내동, 3동 뒤편에는 어린이 박물관과 교육동, 전시동이 있다. 주변 경관을 정비하는 듯 어수선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건물 환경에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별당을 제외하면 모든 동은 건물이 이어져 있어 이동하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공예 전문 서적이 가득한 도서실

전시 1동의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공예도서실이 있다. 공예와 관련된 정기간행물이나 해외 도서, 어린이도서, 역사, 인문, 자연과학, 건축, 도록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가득하다. 아직은 비어있는 서가도 보였지만, 감성적인 내부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도서실 전경 / 전은지 기자
도서실 전경 / 전은지 기자
북 큐레이션(Book Curation) / 전은지 기자
북 큐레이션(Book Curation) / 전은지 기자

도서실 초입에는 ‘Book Curation’이라고 해서 하나의 테마와 관련된 서적을 배치해 두었다. ‘주얼리’와 관련된 서적과 함께 관련된 조형물을 전시해두어, 미니 전시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도서실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도서실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이곳의 도서는 외부 대출이 불가능하며, 도서실에서 읽는 것만 허용된다. 곳곳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데 배치된 가구 형태가 달라서 마치 공간이 분리된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다양했다 / 전은지 기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다양했다 / 전은지 기자
도서실의 다양한 검색 공간 / 전은지 기자
도서실의 다양한 검색 공간 / 전은지 기자

책을 보며 공부를 할 수 있다거나, 휴식하듯 책을 읽으며 창으로 외부를 바라볼 수도 있다. 혹은 흔들의자에서 편하게 앉아서 볼 수도 있다. 보통의 도서관처럼 도서 검색이나 PC를 이용한 자료 검색도 할 수 있다. 관람 예약 시간이 남거나 공예 관련 서적에 관심이 있다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듯하다.
 

로비에서 예약자와 인원수, 관람 시간 등을 확인한다 / 전은지 기자
로비에서 예약자와 인원수, 관람 시간 등을 확인한다 / 전은지 기자
예약자가 확인되면 손목띠를 착용하도록 한다 / 전은지 기자
예약자가 확인되면 손목띠를 착용하도록 한다 / 전은지 기자

예정된 관람 예약 시간 10분 전부터 예약 확인 후 입장을 기다린다. 방역지침에 따라 QR코드나 수기로 개인 정보를 입력한 후, 예약자 이름을 확인하면 손목에 띠를 착용하도록 한다. 회차별 관람 인원을 구분하기 위한 듯했다. 관람 시간은 총 80분이다. 본 기자는 2회차, 오전 11시 20분부터 오후 12시 40분까지 관람 가능하다고 안내받았다.
 

로비에 있는 전시실별 관람 안내 브로셔 / 전은지 기자
로비에 있는 전시실별 관람 안내 브로셔 / 전은지 기자

예약이 확인되면, 관계자가 관람 가능한 곳과 전시실 위치와 동선 등을 간단히 설명해준다. 로비에는 각 전시실과 관련된 안내문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사진은 삼각대나 플래시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다.
 

전은지 기자
전시실로 올라가는 로비 계단 / 전은지 기자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관람 시간이 되자 관람객들이 일제히 전시실로 향했다. 본 기자는 전시 1동에서 관람을 시작했지만, 관람이 끝난 후 둘러보니, 전시 3동에서 관람을 시작하는 이들도 많았다. 정해진 시간 동안 전시실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으니 원하는 곳부터 관람해도 된다.



유물로 보는 조선 시대 공예의 역사
- 전시 1동 상설전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전시 1동에는 2층 상설전시실과 3층 기획전시실이 있다. 현재 2층 상설전시실에는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제목으로 조선 시대 왕실과 양반, 평민 등이 사용한 유물을 중심으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형태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쓰였는지를 볼 수 있었다.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또한, 그 유물을 만든 ‘장인’들을 중심으로 당시 공예의 역사와 수준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 궁중을 중심으로 발전한 조선 시대의 공예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죽책(竹冊)’이었다. 왕이나 왕비, 왕세자, 후궁 등이 책봉되거나 사후에 붙는 존호나 시호 등을 올릴 때 그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쉽게 이해하면 왕족의 주민등록등본 정도 되는 셈이다. 왕이나 왕비는 옥(玉)으로 만들어서 옥책, 왕세자나 후궁 등은 대나무로 만들어 죽책이라고 했다.
 

경혜인빈 상시호 죽책 / 전은지 기자
경혜인빈 상시호 죽책 / 전은지 기자
죽책을 감쌌던 격유보 / 전은지 기자
죽책을 감쌌던 격유보 / 전은지 기자

해당 죽책을 만드는 데에는 100여 명의 장인이 협업했다고 한다. 스크린을 통해 무엇으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는데, 죽책을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각 분야의 장인이 함께했다.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죽책을 한겹 한겹 감싸는 격유보라는 보자기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화각함의 금구장식(가운데)이 바로 견양이다 / 전은지 기자
화각함의 금구장식(가운데)이 바로 견양에 의해 만들어졌다 / 전은지 기자
당의와 왕비가 입었던 전행 위치마 / 전은지 기자
당의와 왕비가 입었던 전행 위치마 / 전은지 기자

조선 시대의 공예가 또 하나 특별했던 것은 왕실에서 필요한 물품들의 치수나 제작 체제 등을 그림으로 그려 정해놓았다는 점이다. 이를 기록해 놓은 것이 공예 표본인 ‘견양(見樣)’이다.

지금이야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게 공예품이지만, 당시에는 국가에서 기준을 정해놓고 그대로 만들도록 규제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 좋은 품질은 보장되어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당시 여러 물품에 새겨진 문양이나 형태가 왜 똑같은지 궁금증을 풀게 해주는 것도 바로 견양이다.
 

백자 조각의 바닥에 견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전은지 기자
백자 조각의 바닥에 견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전은지 기자
왕실에서 만들었던 분청사기 / 전은지 기자
왕실에서 만들었던 분청사기 / 전은지 기자

견양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것이 조선 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다.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백자 조각의 바닥에는 ‘견양’이라는 한자어가 새겨져 있다. 도자기를 제작하는 분원에서 만든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정해진 크기와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 만들어진 분청사기나 백자는 어떤 지역에서 만들어도 형태나 문양, 종류, 표현기법이 모두 같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 청화백자 / 전은지 기자
조선 시대 청화백자 / 전은지 기자

조선 시대 왕실을 대표하는 자기인 청화백자에서도 견양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세종실록’과 각종 의궤에 따르면, 왕실에서 만든 도자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 복을 기원하는 ‘복(福)’, 좋은 징조나 운수, 경사스러운 일을 뜻하는 ‘만(卍)’ 등의 글자를 썼으며, 매란국죽(梅蘭菊竹)의 문양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왕실 도자기의 정형성을 볼 수 있다.


● 궁중 공예를 따라 했던 양반들

이런 견양을 통해 만들어진 왕실의 공예는 사대부 양반 계층에서 일반 서민에게 점점 스며들어 갔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나 가구, 도자기, 의복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공예 장식까지 규제했다고 한다.
 

이택균이 그린 책가도 병풍. 당시 양반들이 책장을 어떤 공예품으로 꾸몄는지 알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이택균이 그린 책가도 병풍. 당시 양반들이 책장을 어떤 공예품으로 꾸몄는지 알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하지만 양반들은 정해진 범위 내에서도 자신만의 멋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견양에 따라 만들어진 왕실의 공예품을 모방해 민간에서 따라 만든 궁중 양식인 ‘궁양(宮樣)’이 유행했을 정도다.

‘묵재일기’라는 책의 기록에 따르면, 이문건이라는 사람이 지방 관청에서 기물을 제작하는 외공장(外工匠)을 불러 가구, 생활용품을 제작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쌀, 소금 등을 지급했다고 한다. 견양에 따라 물품을 제작했던 장인을 개인적으로 집으로 불러 가구를 만든 것이다.
 

응급 시에 대비해 약재를 보관하던 약장 / 전은지 기자
사대부 집에서 응급 시에 대비해 약재를 보관하던 약장 / 전은지 기자

전시장에 있었던 약장을 봐도 당시 양반들이 공예품을 얼마나 추구했는지 짐작케 한다. 사대부 집안에서 응급 시를 대비해 약재를 보관하던 목가구이지만 옻칠을 했고, 약장의 다리나 모서리 등에 금구장식도 화려하다.
 

양반이 사용했던 가구들 / 전은지 기자
양반이 사용했던 가구들 / 전은지 기자

양반들은 실용성과 멋을 동시에 추구했던 듯하다. 전시장 내에 사대부의 사랑방에 있을법한 문방사우와 가구들을 보면 화려한 문양과 모양이 빠지지 않는다. 복숭아나 금강산 모양의 연적부터, 팔걸이와 벼루, 문갑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은은한 멋이 느껴진다.
 

부녀자들이 사용했던 규방공예품 / 전은지 기자
부녀자들이 사용했던 규방공예품 / 전은지 기자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이자 직접 사용하는 소비자였던 이들이 있으니, 바로 규방공예를 이끌어 왔던 부녀자들이다. 자수를 놓고 침선구를 만드는 것이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덕목 중 하나던 시대였다. 외출이 어려웠기 때문에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 화려한 문양을 보면 조선 시대 양반가 여성들이 노리개, 비녀 등으로 치장을 즐기는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오계엽 초상화 / 전은지 기자
오계엽 초상화 / 전은지 기자
부채 장식인 선추 / 전은지 기자
부채 장식인 선추 / 전은지 기자
다양한 갓과 갓끈 / 전은지 기자
다양한 갓과 갓끈 / 전은지 기자

이는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처럼 장신구 수도 적고, 화려하진 않지만, 당시 신분증이던 호패나 부채, 갓과 갓끈 등으로 자신의 신분과 권력을 과시했다. 대한제국 황실화가였던 채용신이 그린 오계엽의 초상화를 보면, 부채 장식인 ‘선추’와 호패끈 등의 장식을 확인할 수 있다. 바닥에 깔린 화문석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이 양반 사대부의 권위적인 모습을 부각시킨다.


●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 공예품 등장
 

반닫이 / 전은지 기자
반닫이 / 전은지 기자
소반 / 전은지 기자
소반 / 전은지 기자

이렇게 은은한 멋을 자랑하던 조선 시대의 공예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상 공예로 거듭나게 된다. 왕실과 사대부만 누리던 공예품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만큼 보편화된 형태의 공예품 양식도 나타났다. 관청에 속하지 않은 장인인 ‘사장(私匠)’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전칠 길상무늬 함 / 전은지 기자
나전칠 길상무늬 함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함에 그려진 풍경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함에 그려진 풍경 / 전은지 기자
함 전체가 칠기로 뒤덮였다 / 전은지 기자
함 전체가 칠기로 뒤덮였다 / 전은지 기자

대표적인 전통공예라고 할 수 있는 나전칠기도 일반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게 보급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예의 정교함이나 화려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견양에 의해 정해진 크기와 무늬로 만들 수 있었던 궁중 공예품보다 디자인이 다양해졌다.


● 상업화와 기술을 받아들인 근대 공예
 

만국박람회 출품한 모습 / 전은지 기자
만국박람회 출품 모습 / 전은지 기자
해외에서 들여온 듯한 도자기 제품을 사용한 유물이 남아있다 / 전은지 기자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기 조각 / 전은지 기자

1876년 개항한 이후 근현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공예 역시 산업화가 되었다. 특히 고종은 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시카고 만국박람회, 파리 만국박람회에 도자기, 나전칠기, 비단, 금속공예품 등을 출품하기도 했으며, 해외의 선진문물을 배워오도록 했다.
 

관립공업전습소 졸업증서 / 전은지 기자
관립공업전습소 졸업증서 / 전은지 기자
전습소에서 만든 국화무늬 대접 / 전은지 기자
전습소에서 만든 국화무늬 대접 / 전은지 기자
한성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금속공예 생활제품 / 전은지 기자
한성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금속공예 생활제품 / 전은지 기자

또한, 공예의 발전을 꿈꾸며 1907년 공예 기술과 장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관립공업전습소’라는 교육기관을 세우고, 한성미술품제작소를 설립했다. 공예품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고종의 칼. 끝 부분에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 전은지 기자
고종의 칼. 끝 부분에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 전은지 기자
훈장의 다양한 무늬 / 전은지 기자
훈장의 다양한 무늬 / 전은지 기자
그릇에 새겨진 오얏꽃 / 전은지 기자
그릇에 새겨진 오얏꽃 / 전은지 기자
은제 오얏꽃무늬 발 / 전은지 기자
은제 오얏꽃무늬 발 / 전은지 기자

조선 시대 공예가 왕실을 중심으로 분청사기와 청화백자가 인기였다면, 대한제국은 특유의 오얏꽃 무늬를 황실의 상징으로 여기고, 칼이나 훈장, 그릇 등에 새기도록 했다.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도자기에서 금속공예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은제 오얏꽃무늬 발에서도 정교함을 느낄 수 있다.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공예품 / 전은지 기자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공예품 / 전은지 기자

일제강점기에는 공예품이 ‘관광상품’이 되었다. 지금과 가장 비슷한 형태로, 공예품이 예술을 넘어 상업상품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성미술품제작소는 1913년 이왕직미술품제작소, 1922년 조선미술품제작소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었다. 시기적인 불행도 있었지만, 공예품이 수익을 기대하는 상품이 되면서 우리나라 공예품은 예술적 가치를 잃고 있었다.
 

강창규가 만든 나전칠 항아리 / 전은지 기자
근대공예가 강창규가 만든 나전칠 항아리 / 전은지 기자
전성규의 나전칠 넝쿨무늬 함, 12지신 소반 / 전은지 기자
근대공예가 전성규의 나전칠 넝쿨무늬 함, 12지신 소반 / 전은지 기자
근대공예가 황인준의 청자 다기, 분청사기 접시 / 전은지 기자
근대공예가 황인준의 청자 다기, 분청사기 접시 / 전은지 기자

그러나 그 시기에도 근대 공예가들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 근대 공예의 기틀을 마련했다. 전통공예에 현대적인 기술을 더해 다리가 접히는 탁자를 만드는 식이었다.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가 생겨나면서 전성규, 김진갑, 강창규, 김봉룡 등의 공예가들이 등장했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공예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 것이다.
 

다리 부분이 접히는 탁자 / 전은지 기자
다리 부분이 접히는 탁자 / 전은지 기자
당시 경성 공예상점가 지도 / 전은지 기자
당시 경성 공예상점가 지도 / 전은지 기자
상점에서 판매되던 공예품 / 전은지 기자
상점에서 판매되던 공예품 / 전은지 기자

지금의 서울이자 당시 경성에는 ‘공예상점가’가 등장했다. 당시의 큰 번화가였던 종로 일대를 중심으로 소규모 상점에서 백화점까지 다양한 상점이 등장하면서 공예품도 판매되었다. 지금 종로나 명동 지역이 중심이었다고 보면 된다. 판매되기 위해서는 실용성도 중요한데, 나전칠기 탁자의 다리를 접히도록 만들거나, 휴대가 간편하도록 작게 만드는 등 크기가 형태가 다양해졌다.

조선 시대 공예품을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봤지만, 그 안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匠人)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왕실의 그 화려한 의복과 도자기도 없었고, 판매하는 예술품의 개념도 성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공예품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 전시 2동 상설전시 ‘자연에서 공예로’


전시 2동 2층에서 진행되는 ‘자연에서 공예로’도 전시 1동의 전시와 연계된다. 이곳에서는 고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금속공예와 도자공예, 목칠공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전통공예 장인들이 그 과정을 재현해놓은 전시품도 있어 과정을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있는 곳이다.
 

영국사지에서 출토된 금강령, 금강저 / 전은지 기자
영국사지에서 출토된 금강령, 금강저 / 전은지 기자

금속공예는 청동기 시대부터 제작됐을 정도로 가장 오래된 공예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왕실 공예부터 발전한 것처럼 이 시기에도 권력층이 사용할 법한 금속공예품이 많았다. 고대에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 가장 권력자였으며, 고려 때는 불교 사상이 가장 중심이 되었던 사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청동으로 제작된 그릇과 항아리 / 전은지 기자
청동으로 제작된 그릇과 항아리 / 전은지 기자

특히, 불교와 관련된 불구(佛具)가 많았다. 금강령과 금강저의 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데, 조각한 것이 아니라 거부집을 만들어 그 안에 쇳물을 부어 굳혀 만든 방식이다. 청동으로 만든 그릇과 항아리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세월을 짐작하게 했지만, 그 형태는 변함없이 견고해, 당시 장인들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나전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 전은지 기자
나전 모란 넝쿨무늬 경함. 정교함이 느껴진다 / 전은지 기자
나전 모란 넝쿨무늬 경함. 정교함이 느껴진다 / 전은지 기자

특히 나전칠기와 관련된 도구, 과정을 전시해 놓은 곳이 인상 깊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긴 나무판이 보이는데, 20번에 걸쳐 나전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현해놓은 것이다.

백골 상태의 나무 위에 생칠, 황토인 토회를 바른다. 흙이 바르면 삼베를 바르고, 다시 생칠과 토회 과정을 거친다. 토회 물갈기를 하고 흑칠을 해준 뒤 나전 문양을 붙이고, 또다시 생칠과 토회 과정을 반복한다. 흙으로 덮어진 나전 문양을 드러내기 위해 숫돌로 갈아주고, 흑칠, 초칠, 중칠, 토회를 하고 갈아주고 광을 내면 우리가 보는 나전칠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들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들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재료와 무늬 / 전은지 기자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재료와 무늬 / 전은지 기자

이곳에 전시된 나전칠기 함과 자재들은 현대의 장인들이 재현한 것이다. 하나의 자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목장, 칠장, 나전장, 두석장 등 여러 명이 있어야 한다. 사람도 많이 필요하지만, 과정에 따라 다양한 도구와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됐다.


현대 재료와 기술로 해석한 전통공예
- 전시 1동 기획전시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1부 도자, 목, 유리


전시 1동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라는 제목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현대 작가들이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기능보다 예술성을 중심으로 만든 작품, 새로운 기술과 재료로 만든 작품 등을 선보인다.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가구 / 전은지 기자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가구 / 전은지 기자
전통을 새롭게 본 작품들 / 전은지 기자
전통을 새롭게 본 작품들 / 전은지 기자
도자기로 만든 식기 제품 / 전은지 기자
도자기로 만든 식기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재료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소반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재료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소반 / 전은지 기자

전통공예품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만들어진 작품들은 곡선보다는 직선미에 가까우면서도 옛것의 느낌이 풍겼다. 작가들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졌다.
 

화려한 유리공예 작품 / 전은지 기자
유리공예 작품 / 전은지 기자
화려한 유리공예 작품 / 전은지 기자
유리공예 작품 / 전은지 기자
3D프린터로 만든 의자와 선반 / 전은지 기자
3D프린터로 만든 의자와 장식장 / 전은지 기자
예술성이 강조된 가구들 / 전은지 기자
예술성이 강조된 가구들 / 전은지 기자

다양한 재료로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작가만의 독특한 감성을 더한 작품들을 보니, 앞으로 우리나라의 현대공예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했다. 도자공예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유리공예는 어떤 기법으로 제작이 되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 전시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해당 기획전은 1부 도자, 목, 유리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며, 오는 10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 기간에 방문 예약을 하면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시간 짧고 동선 복잡해

서울공예박물관을 처음 관람한 후기를 정리한다면, 재밌으면서도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단점을 언급하자면 넓은 공간이지만 1시간 20분 정도의 짧은 관람 시간과 복잡한 동선이다.
 

곳곳에 있는 박물관 안내도 / 전은지 기자
곳곳에 있는 박물관 안내도 / 전은지 기자

입장 전에도 관계자가 전시 1동과 2동 등이 모두 이어져 있어 관람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박물관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다른 전시실을 관람할 시간이 부족하다.

한번 둘러보는 개념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공예에 관심이 많거나 평소 박물관 관람을 세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차례 방문해야 박물관 전체를 모두 둘러볼 수 있을 듯하다. 마치 좋아하는 공연이나 영화를 N차 관람하는 것처럼 말이다.
 

브로셔에 나온 박물관 구조 안내 / 전은지 기자
브로셔에 나온 박물관 구조 안내 / 전은지 기자

또한 나와 있는 대로 이동했지만, 아직 내부 시설 정비가 끝나지 않았거나 코로나 방역지침으로 모든 출입구가 오픈되지 않아서 안내도 대로 따라가다 보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태를 경험할 수 있다. 본 기자도 전시 3동이나 전시 2동의 지역공예실, 교육동 등을 방문하지 못했다.
 

전시물 옆 모조품을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전시물 옆 모조품을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터치스크린으로 해당 전시물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터치스크린으로 해당 전시물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하지만 장점도 있다. 보통의 박물관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거나 실제로 만지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일부 유물을 실제처럼 재현한 모조품 축소판이 있어 만져볼 수 있다. 물론 유물 일부만을 재현해 둔 것이다. 그 옆에는 손 세정제를 비치해두어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다.
 

제습기, 온도계 / 전은지 기자
제습기, 온도계 등을 두어 철저히 보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전은지 기자

문화재를 잘 보존하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도자기 근처에는 온도계를 두었으며, 제습기를 배치해 관리에 철저했으며 곳곳에는 관리자가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관리자에게 물어봐도 된다.
 

미디어 아트 / 전은지 기자
미디어 아트 / 전은지 기자

단순한 전시 외에도 요즘 인기를 얻는 미디어 아트도 전시실 중간에 있었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공예 아카이브실 입구 / 전은지 기자
공예 아카이브실 입구 / 전은지 기자

몇 가지 아쉬운 점이 큰 단점이었지만, 서울공예박물관이 왜 ‘피켓팅’ 수준으로 관람예약이 어려운지, 그만큼의 가치를 알 수 있었던 탐방기였다. 아직 보지 못한 전시실이 많아 탐방기를 끝낼 수 없다.

전시 2동 3층에 위치한 다양한 박물관 기록을 수장해 놓은 공예 아카이브실이나 전시 3동의 보자기, 자수 등 규방공예, 서울지역 무형문화재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 2동 지역공예실 등을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공예역사를 탐방하기 위해 본 기자는 재방문을 위해 관람 예약을 다시 했다. 2차 탐방기를 통해 서울공예박물관의 즐거움을 다시 전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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