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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과의 경이로운 합작품, 메테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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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과의 경이로운 합작품, 메테오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9.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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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며 세력을 확장할 때,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사들이 이를 피해 메테오라의 바위 동굴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절벽 위에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들이 곧 하나하나 들어섰다. 15세기에는 24개의 수도원이 생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그러다 17세기부터는 점점 수도원을 찾는 발길이 뜸해지고, 더이상 수도원도 지어지지 않았다. 현재는 6개의 수도원이 남아 운영되고 있다. 6개의 사원들 중 4개는 남성들이, 2개는 여성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수도원들은 수사와 수녀들이 살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유네스코는 이곳의 기묘한 자연경관과 경이로운 종교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해 1988년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수도사들의 피난처, 수도원들로 변하다
 

메테오라의 풍경 /unsplash

메테오라는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에 있는 수도원 집단, 또는 이 건물들이 위치한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핀도스 산맥 옆 테살리아 서쪽 지역에 있는 이 독특한 장관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바위 기둥들과 그 위에 지어진 수도원들이 단연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땅 위로 가파르게 솟아 있는 이 절벽은 꽤 특이한 형태로, 사암과 역암의 혼합물로 되어 있다. 이 거대한 절벽은 수백만년 동안 호수 가장자리로 흘러들어온 돌, 모래, 진흙 등의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졌다.

약 6천만년 전 지구의 일련 운동으로 인해 높은 고원이 형성되고 두꺼운 사암층이 생긴다. 이후 생겨난 바위 기둥들은 물, 바람, 격변하는 온도에 의해 풍화됨으로써 탄생하게 되었다. 이 형태의 암석, 그리고 풍화 과정은 지역적으로도 그렇고 전세계의 많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메테오라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수백만년간 퇴적화로 인해 생겨난 퇴적암이 꽤 급격한 형성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멀리서 보이는 테오페트라 /flickr
개방 당시 테오페트라 내부의 모습 /flickr

메테오라 주변에는 선사 시대의 동굴인 테오페트라가 있다. 칼람바카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동굴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변혁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에서 현대 인류의 대체,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 말 이후 사냥에서 채집 시대로 바뀌는 두 가지 문화적 전환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 동굴은 석회암 언덕 기슭에 있는, 거대한 정사각형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굴 앞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은 동굴에 사는 거주자들이 깨끗한 물을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발굴과 학자들의 연구,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약 5만년 전에 인간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전에는 관람객들에게도 동굴 내부를 공개했지만 현재는 보호를 위해 무기한 폐쇄된 상태다. 

테오프테라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원시 인간의 발자국 /flickr

이처럼 메테오라 근처의 동굴들은 약 5만년 전에서 5천년 전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알려진, 테오페트라 동굴 입구에 있는 큰 돌담은 찬 바람을 막는 벽으로 건설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지구는 빙하 시대를 경험 중이었고,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많은 유물들이 동굴 안에서 발견됐다. 

메테오라의 절벽 /unsplash

신석기 시대 이후 메테오라에 거주했다고 기록된 최초의 사람들은 9세기 수도원 첨탑에 은둔했던 금욕주의자 승려들의 집단인 것으로 추측한다. 이들은 평원으로부터 550미터 높이로 우뚝 서 있는 바위 탑에서 살았다. 그곳까지 올라오는 한정된 방문객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이들은 멀리했다. 초기 이 은둔자들은 두피아니라 불리는 바위 아래 지어진 예배당에서 예배와 기도를 드리며, 일요일과 특별한 날에만 사람들과 접촉했다.

11세기 초, 수도사들이 메테오라의 동굴에 도착한다. 그러나 수도원들은 14세기까지 지어지진 않았다. 당시 수도사들은 그리스에 대한 터키의 공격에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절벽을 오르는 것은 사다리나 양묘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바위에 새겨진 계단 덕분에 올라가는 것은 훨씬 편해졌다. 수도원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말까지 금욕주의자들이 메테오라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아토스 산의 성 아타나시오스 코이노비티스가 메테오라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려온 뒤, 브로드 락 위에 '대 메테오른 수도원 Holy Monastery of Great Meteoron'을 세운다. 수도원의 진입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이들은 정치적 사화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다. 이 수도원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긴 사다리를 통해 오르는 것이었고, 승려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낄 때마다 수도원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인 사다리를 치워버렸다고. 

14세기 말, 터키의 계속되는 공격과 점령에 은둔하고 있던 수사들은 메테오라가 가장 이상적인 피난처라는 것을 발견한다. 당시 20개가 넘는 수도원이 세워졌고 17세기까지 수도사들은 상품들을 운반할 때 바구니와 밧줄을 이용해 끌어 올렸다고 한다. 숨어 살면서도 불편함을 감수했던 이들에게, 1920년 바위가 잘려나간 곳에 다리가 놓이면서 수도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메테오라 /flickr

그러나 이후 제2차세계대전이 터지며 이 곳이 폭격을 당해 많은 미술품, 그림들이 도난당했다. 현재는 6개의 수도원만이 기능을 하고 있고,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과 루사누의 성 바바라 수도원에는 수녀들이 살고 나머지 곳에서는 수도사들이 살고 있다.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은 수도원들은 잘려진 암석 곳곳에 있는 계단과 통로로만 접근할 수 있다. 

대 메테오론 수도원 Holy Monastery of Great Meteoron /flickr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메테오라는 완벽한 고립에 걸맞는 장소였다. 처음엔 최초의 은둔 수사들에 의해 지배되는 수도원이었지만, 12세기 경 닐로스라는 이름의 수도사가 흩어져 있던 메테오라의 여러 은둔 수사들을 더 조직적인 공동체로 모은다. 이후 아타나시오스는 두 번째로 높은 바위에 올라 이 수도원을 세웠다. 대 메테오론 수도원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며 가장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타나시오스는 수도원의 첫 설립자이자, 메테오라 전체를 위한 체계적인 조직자로서도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대 메테오론 수도원은 메테오라의 시작, 혹은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아타나시오스가 죽은 이후 수제자이자 세르비아 왕가 출신인 요아사프가 수도원장의 임무를 맡고, 두 사람에 의해 수도원은 증축과 재건을 거쳐 거대한 건물로 변했다.

진열되어 있는 해골들 /flickr

이 수도원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하나는 수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수도사들의 해골을 보관하고 있는 선반이다.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았던 수도사들은 아마 죽어서도 수도원에 묻히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대 메테오론 수도원은 메테오라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요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수도원 Holy Monastery of St. Nicholas Anapafsas /visitmeteora.travel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수도원 Holy Monastery of St. Nicholas Anapafsas /visitmeteora.travel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수도원은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첫번째 수도원이고, 14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아나파프사스라는 이름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두 가지 설이 가장 유력하다. 첫번째는 아나파프사스라는 이름이 수도원의 후원자들 중 한 명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며, 두 번째는 수도원 위치가 순례자의 순례 코스에서 첫 번째이기 때문에 '아나파프사스(휴식)'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수도원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수도원 입구에는 성 베드로 교회가 있으며,  관람객들은 계단을 통해 여러 층에 갈 수 있다. 교회의 돔은 낮고 창문이 없으며, 성화가 테오파네스가 1527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국`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최근 복원된 테이블은 방문객을 위한 곳이며, 납골당과 감방, 예배당도 볼 수 있다. 제일 처음 볼 수 있는 수도원인 만큼 다른 수도원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며 규모도 작은 편이다. 

바를람 수도원 Holy Monastery of Varlaam /flickr

바를람 수도원은 메테오라에서 두 번째로 큰 수도원이다. 대 메테오론 수도원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14세기 중반 바를람이라는 수도사에 의해 세워졌다. 바를람이 죽은 후 한동안 이 절벽은 버려졌고, 이오니아 출신 수도사 테오파네스와 넥타리우스가 이 버려진 수도원을 다시 세우기로 결정한다.

이들은 모든 수도사들에게 바치는 새로운 예배당을 짓는 많은 세월을 보내며 자연스레 이 절벽에 정착한다. 이 수도원은 오래 전부터 식량 공급을 위해 탑에 도르래를 설치하고 밧줄과 그물을 이용해 상품을 끌어 올렸다. 이 과정엔 상품뿐만이 아닌 사람도 같이 끌어 올렸다고. 지금은 쓰진 않지만 탑에서 잘 보존된 이 기구들을 직접 볼 수도 있다. 

루사누의 성 바바라 수도원 Holy Monastery of Roussanou, St. Barbara /flickr
루사누의 성 바바라 수도원 Holy Monastery of Roussanou, St. Barbara /flickr

루사누의 성 바바라 수도원은 왜 이름이 '루사누'인지 알려져 있진 않다. 다만 이 바위에서 살았던 첫 거주자, 또는 교회를 세운 설립자의 이름을 따 왔다고만 추측한다. 16세기 초부터 사람이 살았던 반면 수도원은 14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모습은 이오아니나에서 온 두 형제 수도사 이오아사프, 막시모스에 의해 16세기 들어 갖춰졌는데, 성녀 바르바라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다른 수도원들에 비해 높이가 낮아 접근성이 좋고, 2차세계대전 당시 큰 피해를 입었으나 고고학적 고증을 거쳐 복구되어 수녀원으로 바뀐다. 현재는 13명의 수녀들이 살고 있다. 한때는 바를람 수도원의 교회로도 쓰였으며 리셉션 홀, 전시실, 숙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의 벽화와 전시물 등은 순교자들의 순교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 삼위 수도원 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flickr

성 삼위 수도원은 도메티우스 수도사에 의해 지어졌으며,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메테오라에서 개방하고 있는 수도원들 중 가장 접근이 힘든 수도원이라는 평을 듣는다. 수도원과 연결된 교회 근처에 작은 성당이 추가되었으며 수차례 개축을 했다. 124권의 필사본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이후 성 베드로 수도원에 보관된다. 수도원에 가기 위해 관람객들은 내리막길을 걸어야 하고, 145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성 삼위 수도원 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flickr

옛날 성 삼위 수도원을 들르는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은 사다리나 그물이 있어야 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바위를 다듬어 계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현대의 사람들도 쉽게 갈 수 있다. 성 삼위 수도원 왼쪽에는 성 베드로 성당의 예배당이 있다.

세례자 요한을 기리는 작은 돌무더기가 있으며, 교회 뒤편으로 돌아가면 관람객들은 가장 높은 바위 지점으로 올라갈 수 있다. 마련된 발코니에서 관람객들은 다른 수도원들과 함께 보기 드문 경치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여담이지만 영화 'For Your Eyes Only'의 마지막 장면에 성 삼위 수도원이 배경으로 등장한다고.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 Holy Monastery of St. Stephen /visitmeteora.travel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계단 대신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입구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계단이 없어 차량으로도 이동하기 쉽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꽤 쉬운 코스의 수도원이다. 현재 메테오라의 수도원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며, 12세기 초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바위 위에서 수도사들의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안토니우스와 성 스테파노스 교회를 재건한 필로테오스가 수도원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 수도원은 수녀들에게 인계되어 수녀원으로 바뀐다. 남성들이 거주하는 수도원보다는 보안이 더 철저해 출구 한 곳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낭떠러지로 되어 있다. 교회 제단에는 세상의 종말,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과 마지막 심판을 묘사하는 '재림'이 있으며, 모자이크 제작자이자 천사의 화가라 불리는 봐시오스 토소소니스가 복원한 작품이 있다.  


박해를 피해 도망친 곳, 유네스코 유산으로 남다
 

메테오라의 야경 /unsplash

유네스코는 메테오라를 두고 서구 세계와 동방정교회에서 초기 기독교의 이상적인 은둔자 생활을 회복했을 때 수도원 공동체의 모습도 보여 주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단계를 나타낸다고 평했다. 실제로 메테오라의 거주지는 길이 없고 접근도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 있으며,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도 지금까지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다. 또한 바를람 수도원이 자리한 계곡 절벽에서 용감한 순례자들을 수직으로 373m나 올리는 데 사용되었던 그물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메테오라는 엄연한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는 짧은 옷은 입지 못한다. 치마나 반바지를 입었을 때 가릴 수 있는 스카프를 수도원 측에서 제공한다고 한다. 각 수도원마다 개장하는 시간과 요일도 다르기 때문에 여행을 간다면 참고하는 게 좋다. 메테오라 근처의 가까운 마을인 카스트라키 마을과 칼람바카 마을에 당도한다면 하늘로 뻗어 있는 위대한 암석 기둥이 만들어내는 절경, 그 위에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수도원을 볼 생각에 가슴이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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