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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산의 가치 VS 아파트의 가치, 김포 장릉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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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산의 가치 VS 아파트의 가치, 김포 장릉 사태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9.24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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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장릉 관련 청원 /국민청원게시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포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에 서명한 인원은 22일 10만명을 넘었고, 23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11만명을 돌파했다.

청원인은 "김포 장릉은 파주 장릉과 인천 계양산을 잇는 조경이 특징인데 해당 아파트들은 조경을 방해하고 있다"며 "아파트가 그대로 그곳에 위치하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심하게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파트들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데다 심의 없이 위법하게 지어졌으니 철거돼야 한다"며, "아파트를 그대로 놔두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로 남아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청원인은 "세계에서 인정한 우리 문화유산을 건설사 및 지자체들의 안일한 태도에 훼손되는 이러한 일이 지속된다면 과연 우리 문화가 계속해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 문화는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며, "이번 일들이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인식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하늘과 산과 풍경과 이어져 있는 김포 장릉

김포 장릉 /문화재청

김포 장릉은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같은 언덕에서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원종, 오른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인조의 아버지 원종이 잠든 장릉은 산세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폐쇄성과 안정성, 중층성을 확보하고 있다. 김포는 평야로 이루어져 산이 매우 드문데, 특히 도심권 내에서는 장릉이 위치한 장릉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추존왕은 실제 왕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세상을 떠난 뒤 왕으로 높여 묘호가 내려진 왕을 말한다. 조선 시대의 추존왕은 모두 9명으로, 이들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자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왕의 아버지,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4대 선조이다. 왕으로 추존된 이들은 종묘에 신위를 모셔 왕위에 오른 왕과 똑같은 대우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세자나 대군묘의 예로 조영된 능을 왕릉의 상설에 맞게 규모를 키우거나 석물을 추가하여 능도 위엄을 갖출 수 있게 했다.

어진으로 볼 수 있는 원종 /국립고궁박물관

추존왕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1587년 정원군에 봉해졌고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들인 능양군이 반정 세력의 추대를 받아 조선 16대 왕 인조로 즉위하자 정원대원군으로 추존되었으며 9년 후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고, 선왕인 광해군이 폐위된 터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헌왕후 구씨는 본관이 능성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평산부부인 신씨의 딸로 1578년에 태어났다. 1590년에 선조의 아들 정원군(원종)과 가례를 올려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원종 사이에서 3남(인조, 능원대군, 능창대군)을 낳았다. 1623년에 첫째 아들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연주부부인에 책봉되고 계운궁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이후 1626년에 경덕궁(경희궁) 회상전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632년에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다.

김포 장릉 전경 항공사진 /문화재청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의 향로와 어로는 직선으로 경사가 졌으며, 중간에 계단을 두어 지형에 따라 설치하였다. 왕릉은 보통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과 정자각 등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 제향 공간으로 나뉘는데, 이 두 공간은 높낮이에 차이를 둔다. 따라서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에 서면 아래의 제향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래쪽의 정자각 부근에서는 정자각, 비각, 수복방 등의 부속 건물과 우거진 수풀 등 때문에 위쪽 능침이 있는 성역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는 능역에서 가장 상위 개념의 공간인 성역 공간의 폐쇄성을 높이기 위한 설계임을 알 수 있다. 정자각 쪽에서 잘 보이지 않는 위쪽을 바라보면서 조선 왕릉의 성역으로서의 신비감, 권위성, 엄숙성 또한 느낄 수 있다. 

장릉의 재실은 원종과 인현왕후의 제향을 준비하는 곳으로 조선 21대 왕 영조와 22대 왕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며, 어로는 제향을 드리기 위해 실제로 왕이 올라가던 길이니 관람객들은 어로로 올라가 왕이 걷던 길을 느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김포 장릉 능침 /문화재청

비각 안에는 한 기의 표석이 있는데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면서 세운 표석이다. 비각 옆에는 육경원(인헌왕후의 추존 전 원의 이름)으로 있을 때 사용한 비석 받침돌이 장릉 근처에서 노출되어 발굴 후 전시되어 있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만이 둘러져 있는데, 이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기 전 흥경원을 조성할 때의 호석이다. 원종이 왕이 아니라 왕의 아버지, 즉 대원군이었으므로 대원군의 묘제를 따랐기 때문에 호석만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된 이후에 새로 설치한 석물이다. 김포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왕릉 40기, 원 13기 등 총 53기)은 2009년 6월 26일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포 장릉의 연지 /문화재청

장릉 주변에는 울창한 장릉 숲이 펼쳐져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릉에서는 인공으로 숲을 조성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조성된 산림은 철저하게 관리하는 전통 또한 있었다. 현재 숲은 장릉을 찾는 사람들의 산책로로도 활용되고 있다. 


위협받는 유산, 이것이 시작이 되지 않기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전경 /인천도시공사

20일,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김포 장릉 인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아파트를 짓는 대방건설·대광건영·금성백조를 고발했다. 문화재청은 이들 건설사가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포함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아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 고발한 것이다. 건설사의 아파트는 경기도 김포시 장릉 인근에서 건설 중이며, 대방건설은 '디에트르 에듀포레힐(1417가구)', 대광건영은 '대광로제비앙(735가구)', 금성백조는 '예미지트리플에듀(1249가구)'를 공사 중이며 각각 내년 6~9월 사이에 입주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허가 절차를 어기고 왕릉 근처에 건축물을 지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청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경우 공사 중지 또는 원상복구 명령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이 건축물들이 김포 장릉의 주변 환경을 훼손하는 점이 아닌, 이미 꼭대기층까지 골조 검사를 끝내고 내부 마감에 들어갔기 때문에 철거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입주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철거까지 간다면 수분양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이 점이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일을 두고 건설사들은 2014년 땅을 인수할 당시 소유주였던 인천도시공사가 김포시로부터 택지 개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고, 2019년에는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를 거쳐 공사를 시작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아파트를 지을 때 별도 심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서구청 또한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씨티극동 아파트 /씨티극동 아파트 홈페이지

서울 강동구의 씨티극동아파트는 마치 날카로운 칼에 잘린 듯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는데, 아파트 앞에 있는 풍납토성 유적지로 인해 이런 모양으로 지은 것이다.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들어서는 건축물은 경계지표면에서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높이 제한을 둔다는 기준에 맞춰 지었다. 장릉 쪽에 더 가깝게 지었던 장릉삼성쉐르빌도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2002년 준공된 것으로, 15층 높이지만 최대한 왕릉을 가리지 않게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서 지었다. 

이렇듯 문화재청은 유적지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의 건축물은 개별 심의하고, 건축물은 그 기준에 맞춰 건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검단신도시를 짓고 있는 건설사들이 해당 높이 이상으로 아파트를 지으면서도 개별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이 단지들이 왕릉의 조망을 해친다는 점, 동 위치도 왕릉 조망을 가리고 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쟁점이자 핵심이다. 

서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서구청 문화체육관광과에서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보내와 인허가 승인을 해줬다"고 밝혔다. 2014년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기 떄문에 2019년 인허가 때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보냈다는 말인데, 2014년에는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이상의 건축물은 개별 심의한다는 고시가 없었고 2017년 생긴 해당 고시 내용을 소급 적용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검단신도시의 최종 사업 승인은 2019년이었기 때문에 2017년 생긴 고시를 확인하고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았어야 했지만 인천시는 단지 2014년 기준만을 갖고 건설사에게 허락을 내준 것이다. 

문화재청 측은 인천도시공사가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당시 "아파트 건설에 따른 설계도, 배치도 등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은 제출하지 않았다"며 아파트 건설과 관련한 허가 사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문화재청은 건설사들로부터 개선안을 제출받아 이를 토대로 재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고양 창릉신도시 조감도 /국토교통부

문화재와 건축물의 갈등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 주변을 창릉신도시로 지정한 이후 2019년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유네스코에서 신도시개발 중단을 권고하는 세계문화유산 서오릉 주변 창릉 3기 신도시 지정 즉각 철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3기 신도시로 지정된 하남 교산지구는 문화재청이 공개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보면, 유물발굴지 3분의 1이 교산지구에 포함되어 있다"며, "그러나 국토부는 3기 신도시를 계획하면서 문화재청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철회를 촉구했다. 

장릉은 조선 시대부터 파주장릉, 김포장릉, 계양산을 일직선으로 잇는 풍경으로 이어지게끔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검단신도시가 예정대로 세워진다면 김포 장릉과 계양산 사이의 경관을 차단하게 된다. 지금 장릉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는 풍경은 푸른 산이 아닌 수십 채의 아파트 머리부터 보인다.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유네스코가 조선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때 언급했던 여러 가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김포 장릉 원경 /문화재청

"왕릉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풍수지리의 원리에 의해 정해졌고, 의례가 결합된 살아 있는 조상 숭배의 전통을 위해 세심하게 조성된 것이다. 세속적인 구역에서부터 경건한 구역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배치, 독특한 전각 및 오브제로 이루어진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조화로운 총체다"

"모든 유적이 본래의 기능과 경건함을 잘 유지해 왔으며, 특히 도시화가 덜 진전된 곳의 유적은 더욱 그렇다. 몇 개의 입구들만 바뀌었을 뿐 그 형태와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고, 따라서 조선왕릉은 전체적으로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통합 관리 시스템에 의해 효율적인 보존 계획을 세우고 유산을 관리한다. 개별 유산을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는 역량 또한 지니고 있다···" 

김포 장릉 전경 /문화재청

이미 건설사와 아파트 측은 지어 놓은 건데, 이제 와서 어쩌라는 분위기이다. 당연할 수도 있다. 어쩌면 문제를 알고 있었음에도 강행한 건설사나, 그저 허가를 내준 구청이나 이들에게는 이미 별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이 아파트가 문화유산의 경관에 맞지 않고 심지어 잘못된 방법으로 지어졌으니 당연히 철거해야 한다는 방법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들은 어쨌든 정해진 대로 아파트를 지어야 하고, 일을 끝내야 하고, 아파트에 입주해야 한다. 설사 김포 장릉이 유네스코문화유산 탈락이 되더라도 이들에겐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 살아야 할 아파트가 있고 창문을 열었을 때 푸른 산과 왕릉이 보이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혹은 나중에 이 아파트로 더 돈을 벌 수 있다면,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이득이 되지 않는 무덤 따위 무슨 상관이겠는가.

건축물이 철거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이미 내부 공사까지 끝나 가고, 일부 입주민들은 돈 없는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이런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하고,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히 원칙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이 일로 조선왕릉 전체가 유네크스코문화유산에서 탈락하게 된다 해도 우리들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에 할 말 또한 없다.

한 나라에서 문화유산이란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다만, 자격이 있는 나라만이 조상들이 소중히 아껴 왔던, 어떤 것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유산을 가질 수 있다. 유산을 지킬 자격이 없는 나라는 소중한 전통, 소중한 유산을 가질 자격 또한 없다. 이제는 이 일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우선 건물부터 지어놓고 배째라는 식으로 흘러가게 될 수도 있고, 차츰차츰 왕릉 주변이 아파트로 채워지고 산과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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