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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능하다고? 불가능을 조각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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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능하다고? 불가능을 조각한 사람들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9.16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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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속담이 있다. 형체가 없는 귀신이 어떻게 볍씨를 까먹느냐는 이야기인데, 말도 안 되는 일, 불가능한 일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간혹 불가능한 일이 현실 속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나 예술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그림이나 조형물로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는 사람 손으로 어떻게 만들까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세한 표현을 해서 놀랍게 만든다.
 

프란체스코 케이롤로, 환멸 (DISINGANNO) / 위키미디어 (David Sivyer)
프란체스코 케이롤로, 환멸 (DISINGANNO) / 위키미디어 (David Sivyer)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는 말도 안 되는 조각상을 소개하는 글이 등장했다. 무려 7년이 걸렸다는 조각상은 어떻게 조각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할 정도로 세세하게 만들어졌다. 이걸 혼자서 만들었다는 자체도 기이하다.


진짜 그물을 씌운 듯한 섬세함
- 프란체스코 퀘이롤로(Francesco Queirolo)


이탈리아의 조각가인 프란체스코 퀘이롤로는 여러 조각가 아래에서 기교를 배우며 성장해왔다. 바로크 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가 베르나르도 스키피아노의 작업실에서 훈련을 받은 퀘이롤로는 제노바에서 로마로 건너가 스위스의 조각가였던 주세페 루스코니의 첫 제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조각가 안토니오 코라디니에게 배우며 기교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로코코 양식을 이어받은 안토니오 코다리니는 퀘이롤로에게 대리석으로 조각할 때, 투명함과 부드러운 회화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쳤다.
 

그가 조각상으로 만든 크리스티나 여왕과 산 카를로 보로메오의 초상 / 위키미디어
그가 조각상으로 만든 크리스티나 여왕과 산 카를로 보로메오의 초상 / 위키미디어

로마에서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한 퀘이롤로는 1740년부터 스웨덴의 여왕인 크리스티나 흉상,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수석 사제이자 성인이 된 산 카를로 보로메오와 산 베르나르도 동상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 pixabay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 pixabay
트레비 분수 여신상 중에서 표시한 세 번째 여신상이 프란체스코 퀘이롤로가 만든 조각상이다 / pixabay
트레비 분수 여신상 중에서 표시한 세 번째 여신상이 프란체스코 퀘이롤로가 만든 조각상이다 / pixabay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트레비 분수에도 퀘이롤로의 작품이 있다. 교황의 문장을 새긴 분수대 위쪽을 보면, 작은 여신상 4개가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퀘이롤로가 만든 동상이다.

사전 속 작품 설명에서, 그가 만든 여신상을 두고 가을(dell'Autunno)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표현한 여신 중 하나를 맡은 것이 아닐까 싶다.
 

프란체스코 퀘이롤로가 만든 환멸 (DISINGANNO) 설계도 / 위키미디어
프란체스코 퀘이롤로가 만든 환멸 (DISINGANNO) 설계도 / 위키미디어

1752년 로마에서 나폴리로 건너온 퀘이롤로는 18세기 상징주의의 기념물을 조각하게 된다. 라이문도 디 산그로 왕자가 구상하고 감독해 만들어진 산세베로 예배당에는 그가 만든 조각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최근 이슈가 된 ‘환멸 (DISINGANNO)’이다.
 

프란체스코 케이롤로, 환멸 (DISINGANNO)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이 작품은 흔한 대리석 조각상 위에 그물을 올려놓은 듯하지만, 그물은 대리석을 조각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장식 느낌의 예술을 추구했던 로코코 양식이 그대로 살아있다. 설계도만 보아도 퀘이롤로가 이 조각상을 만드는데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프란체스코 케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케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진짜 그물인 것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움이 이 조각상의 가장 큰 포인트다. 그물에 씌인 사람이 벗어던지려는 모습은 죄에서 벗어남을 묘사한다고 말한다. 그 옆에는 천사로 보이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손에는 지성을 표현하는 불꽃이 들려있다. 천사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프란체스코 퀘이롤로, 환멸 (DISINGANNO)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천사의 발아래에는 동그란 형태의 구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사는 지구다. 그 옆에는 성경이 있다. 성경을 통해 지구와 인간을 모두 구원할 수 있다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예수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는 구절이 쓰여있다고 한다.

‘나폴리 스튜디오의 역사’라는 책을 쓴 지안주세페 오릴리아는 이 동상을 두고 “조각이 열망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힘든 시험”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동상이 언제 제작되어 완성되었는지는 찾아볼 수 없으나, 인터넷상에서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나폴리로 넘어온 1752년부터 시작돼, 1759년에서야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대리석 덩어리를 통째로 조각하는 것도 무리였지만, 정교한 그물을 만드는 것에 다른 조각가들이 파손의 우려 때문에 거절했기 때문이다. 퀘이롤로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조각상이 완성될 수 있었다.
 

(왼쪽부터) 프란체스코 퀘이롤로가 만든 신성한 사랑, 교육, 은혜, 성실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왼쪽부터) 프란체스코 퀘이롤로가 만든 신성한 사랑, 교육, 은혜, 성실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퀘이롤로는 환멸 조각상 외에도 산세베로 예배당 내에 있는 신성한 사랑(AMOR DIVINO), 교육(EDUCAZIONE), 은혜(LIBERALITÀ), 성실(SINCERITÀ) 등도 만들었다.


베일의 정교함이 조각으로 살아나다
- 주세페 산마르티노(Giuseppe Sanmartino)


퀘이롤로가 그물의 섬세함으로 유명해졌다면, 주세페 산마르티노는 동상에 투명한 베일을 씌운 듯한 정교함을 조각했다. 퀘이롤로의 조각상이 있는 산세베로 예배당에는 가장 유명한 조각인 ‘베일을 쓴 그리스도(Cristo velato)’가 있다.
 

산세베로 예배당 내에 있는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산세베로 예배당 내에 있는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1720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조각가 주세페 산마르티노는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였다. 20대에 접어든 1740년대 무렵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산마르티노는 안토니오 루카의 아틀리에에서 일하면서 제단에 필요한 소소한 소품을 만들었다.

예술가로서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1750년대에 들어선 이후다. 당시 나폴리에는 프란체스코 퀘이롤로와 안토니오 코라디니가 이탈리아 조각계를 휘어잡던 시기였다.

산세베로 예배당을 짓던 라이문도 산그로 왕자는 예배당 내부를 꾸미기 위해 유명한 화가와 조각가를 고용하고 있었다. 주세페 산마르티노도 그중 하나였다. 아마도 코라디니와 협력했던 산마르티노의 예술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산세베로 예배당의 가장 중심이 되는 조각상이자 주세페 산마르티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일을 쓴 그리스도’는 원래 안토니오 코라디니가 먼저 제작하던 조각상이었다. 그러나 작업 중에 코라디니가 1752년 사망했고, 1753년에 산마르티노가 이어 제작하게 됐다.

산마르티노는 안토니오가 스케치했던 것을 뒤집고,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베일을 쓴 그리스도’를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죽은 33세의 예수가 베일을 쓰고 누워있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대리석 조각이 값비싼 천으로 씌워진 모습이 실제와 차이가 없도록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주문한 라이문도 산그로 왕자는 젊은 조각가의 기술에 감탄했다. “가장 숙련된 조각가들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예술로 만들어진 베일의 투명성이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베일을 쓴 그리스도’는 2개의 대리석 블록으로 만들어졌다. 거의 실물 크기에 가까운 예수의 형상인데, 발아래 쪽에는 예수를 고문했던 연장, 머리에 썼던 가시관이 놓여있다. 정교함 때문인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했을지 상상이 된다.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주세페 산마르티노, 베일을 쓴 그리스도 (1753) 세부 모습 / 산세베로 예배당 홈페이지(www.museosansevero.it)

전체적으로 베일이 씌워져 있는데, 몸을 감싸는 굴곡이나 주름 등이 세세히 표현되어 있다. 베일 아래 드러나는 예수의 실루엣 또한 세세하다.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평온한 예수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며 생긴 손과 발의 못 자국, 이마의 정맥 등도 표현되어 있어 실제로 예수가 누워있는 듯한 생동감이 전해진다. 죽은 사람에게 수의처럼 씌워준 베일의 정교한 레이스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주세페 산마르티노가 만든 Nunziatella 교회, Girolamini 교회, 산 로렌조 교회의 제단 조각상 / 위키미디어(Ferdinando Scala, E. della Morte)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주세페 산마르티노가 만든 Nunziatella 교회, Girolamini 교회, 산 로렌조 교회의 제단 조각상 / 위키미디어(Ferdinando Scala, E. della Morte)

이 작품으로 유명해진 주세페 산마르티노는 Nunziatella 교회, Girolamini 교회, 산 로렌조 교회 등의 제단 조각상을 만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1793년 12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교회 조각상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인지 스트라다 델라 살루트에 있는 카푸치니 사원이나 세인트 에프리모 누오보에 있는 교회에 묻히는 것이었다고 한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연필심 속 조각
- 달튼 게티(Dalton Ghetti) & 황수민


요즘은 연필이나 샤프 등은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쯤 써본 사람들이라면 강하게 힘을 주면 부러지는 연필심, 까맣게 묻어나오는 흑연 등의 추억은 있을 것이다. 그만큼 힘에 약한 것이 연필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조각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달튼 게티의 작품 / filckr (Bernard Goldbach)
달튼 게티의 작품 / filckr (Bernard Goldbach)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달튼 게티(Dalton Ghetti)는 평범한 집의 장남이었다. 재봉사인 어머니와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그는 엄격한 분위기 속에 자라났다. 그런 그가 처음 칼을 잡고 조각을 시작한 것은 8살이었다. 보통의 학생들은 연필을 깎기 위해 칼을 가지고 다녔는데, 달튼 게티는 그때부터 비누와 분필, 연필을 깎은 것이다.
 

달튼 게티의 작품 / filckr (Samu)
달튼 게티의 작품 / filckr (Samu)

그러나 그의 예술성은 더 발전하지 못하고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원숭이를 기르고, 독거미, 개미핥기 등 동물을 좋아하던 달튼 게티는 군대를 거쳐,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 후, 24살이 되던 해에는 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 영어를 공부하며 주택 개조 작업을 했다.

미국에서 건축학을 취득하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살아오던 그는 ‘단순하게 산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왔다. 브리지포트에서 난방이 되지 않는 다락방에서 야영하는데, 탁자, 자전거, 핫플레이트가 끝이다. 그의 주머니에는 소중히 여기는 면도날과 재봉 바늘이 있을 뿐이다. 좌우명처럼 단순한 삶을 사는 셈이다.

하지만 주말에는 빼놓지 않고 패러글라이딩을 타는데, 10년 동안 이어질 정도라고 한다.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타며 “가장 아름다운 경험은 독수리와 독수리가 항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삶을 보면, 마치 ‘자연인’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연필 조각’을 놓지 않았다는 점은 특이하다. 많은 재료 중에서도 연필을 선택한 이유는 한 방향으로만 깎지만, 단단하면서도 흑연의 부드러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튼 게티의 작품. 앨비스 프레슬리와 톱 / filckr (Samu)
달튼 게티의 작품. 앨비스 프레슬리와 톱 / filckr (Samu)

한국 나이로 환갑인 그는 조각할 때, 돋보기를 전혀 보지 않으며 작업한다고 한다. 작품 중에는 몇 년이 걸리지만, 오직 인내심을 갖고 완성한다니 비범한 예술가가 아닐 수 없다. 서명할 때도 연필로만 할 정도로 연필을 사랑하는 조각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는 목수로 집 리모델링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연필 조각가 황수민 씨의 작품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캡처
연필 조각가 황수민 씨의 작품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캡처

우리나라에도 연필 조각가로 소개된 20대 청년이 있다. SBS ‘세상에 이런 일이’를 통해 2016년과 2018년 소개된 황수민 씨다. 낮에는 요리사로 활동하지만, 퇴근 후에는 연필 조각가로 자신만의 예술혼을 펼친다.
 

샤프심과 연필 가운데를 파내어 만든 황수민 씨의 작품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캡처
샤프심과 연필 가운데를 파내어 만든 황수민 씨의 작품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캡처

황수민 씨도 작은 연필을 조각하면서 흔한 돋보기 없이 그저 칼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재료도 가리지 않는다. 연필이 주재료이지만, 정말 얇은 샤프심으로도 조각을 하고, 색연필, 크레용 등도 그의 손이 닿으면 예술품이 된다.

심지어 연필심이 아닌 연필 한 가운데를 파고들어 작품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미술학원에 다니며 배우지 않았지만, 천부적인 실력으로 입체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는 가히 '황금손'이다.
 

연필 조각가 황수민 씨의 작품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캡처
연필 조각가 황수민 씨의 작품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캡처

무엇보다 황수민 씨의 작품이 놀라운 이유는 신체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서다.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어 통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집중하며 그 아픔을 잊을 수 있어 연필심 조각이 좋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본 조소과 교수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2015년 처음 연필로 조각을 시작해, 6년을 독학으로 작품활동을 해온 황수민 씨의 작품은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연필심 외에도 작은 미니어처에도 관심이 많아 직접 구상해 만든 작품도 구경할 수 있다.


양초를 조각하고, 불로 없애버린다
- 우르스 피셔(urs fischer)


저렴한 비용으로 어두운 방을 밝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단연 ‘양초’가 아닐까. 하나만 켜두어도 주변이 환해지는 마법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양초의 형태가 모양이 다양해졌고, 캔들 만들기는 원데이 클래스이자 취미로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런 양초를 깎아 조각상을 만드는 예술가가 있다.
 

Untitled, 2011, Wax, pigments, wicks, steel,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Untitled, 2011, Wax, pigments, wicks, steel,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 중인 현대 시각 예술가 우르스 피셔는 사진부터 조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 감각을 펼치고 있다. 대학에서 사진과 미술 디자인을 배운 그는 나이트클럽 등에서 경비원으로 활동했다. 아마도 예술 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1993년 암스테르담으로 넘어온 그는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취리히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런던, 로스앤젤레스, 베를린을 거쳐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동료인 아티스트 루돌프 스팅겔과 함께 작업실을 열었다.
 

Untitled, 2011, Wax, pigments, wicks, steel,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Untitled, 2011, Wax, pigments, wicks, steel,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그는 ‘반예술 운동’을 추구했다. 네오다다(Neo-Dada), 로스트 아트(Lost Art)라고도 표현되는 반예술 운동은 1915년부터 1924년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다다이즘의 사조를 잇는 예술사조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오브제, 드로잉, 콜라주, 설치물 등을 제작하며 유명세를 떨친 우르스 피셔는 예술 잡지 ‘Valut’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오늘날 가장 중요한 현대 예술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양초의 원료인 왁스로 만들어졌지만, 그 형태가 온전하지 못하다. 2011년 작품인 ‘Untitled’도 보면, 조각상이 흘러내린 듯이 망가져 있으며 바닥에는 조각상의 얼굴과 팔 등의 파편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작품 주변에 놓인 의자 오브제들도 망가지고 녹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들도 황당해보인다.
 

The Kiss, 2017, Oil-based modeling clay, plywood, steel, 186.87×132.8×154.9cm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The Kiss, 2017, Oil-based modeling clay, plywood, steel, 186.87×132.8×154.9cm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The Kiss, 2017, Oil-based modeling clay, plywood, steel, 186.87×132.8×154.9cm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The Kiss, 2017, Oil-based modeling clay, plywood, steel, 186.87×132.8×154.9cm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The Kiss’라는 작품은 연인이 정열적으로 입맞춤하는 조각상인데, 클레이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형태가 변하나 싶었는데 관람객이 직접 망가뜨린다. 관객참여형 예술인가 싶기도 한데, 마음껏 망가뜨리도록 놔둔 모습에서 우르스 피셔의 괴짜 기질이 드러나기도 한다.
 

Dasha, 2018, Paraffin wax, microcrystalline wax, pigment, stainless steel and wicks, 170×145.4×148.7cm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Dasha, 2018, Paraffin wax, microcrystalline wax, pigment, stainless steel and wicks, 170×145.4×148.7cm / 우르스 피셔 공식 홈페이지(ursfischer.com)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작품을 불에 녹여 스스로 사라지게 하거나 관람객의 도움을 받아 망가뜨리는 것일까. 그는 멀쩡한 작품이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실존주의를 표현한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와 현실의 의미를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 파악하는 사상이다. 마치,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양초가 불에 타서 녹아 사라지는 것에 비유하는 듯하다.

양초를 만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단하지는 않다. 손톱이 살짝 스쳐도 흠집이 생길 정도다. 그런 왁스를 가지고 조각상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완성한 작품을 불에 녹여 망가뜨리고 없앤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괴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예술가이지만, 우르스 피셔는 자신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어 멋지기도 하다.


조각은 시대가 발전해도 수작업이 필요한 예술이다. 옛날처럼 대리석이나 나무 등을 깎을 때도, 요즘처럼 3D 펜이나 프린터로 만들 때도 손이 없으면 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핸드메이드라는 단어의 의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 분야라고 생각된다.

반대로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은 조각상들을 보고 나니, 사람이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지 않을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가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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