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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구조물 중 하나, 괴베클리 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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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구조물 중 하나, 괴베클리 테페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9.0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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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 테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4대 고대 문명보다 7000여년 전에 인류가 도시 문명을 이루고 사회 체계를 갖추며 살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건 학자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짜릿한 일일 것이다. 세계 최초의 농업 공동체가 등장했던 메소포타미아 상부 지역에 있는, 클라우스 슈미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괴베클리 테페는 터키의 남동부 동남아나톨리아 지역의 게르무쉬 산맥에 있는 유적지이다. 샨리우르파 주의 주도인 샨리우르파시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2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터키어로 '배꼽 모양의 언덕'을 뜻한다. 

터키의 18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영국의 스톤 헨지를 7천년,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4천년이나 앞선 유적으로 기원전 1만2000년 경 전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한다. 1963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1994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중세 시대의 무덤 터였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괴베클리 테페는 적어도 1만1600년은 된 도시문명 유적지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농경 사회 이전, 공동체를 이뤄 살았던 사람들 
 

발굴 작업 중인 괴베클리 테페 /flickr

터키 남동부의 고대 도시인 우르파에서 멀지 않은 곳, 독일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는 그가 발견한 것들 중 가장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을 하게 된다. 금속 도구도, 도자기 같은 유물도 없었던 선사시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돌들이었다. 이 암석들은 그 오래된 스톤헨지보다도 약 6,000년 전에 지어졌다. 슈미트는 괴베클리 테페가 인간이 지은 최초의 성지라 말한다. 

그는 몇 세기 동안 이어진 농업, 정착 생활들로 인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갈색의 들판 이전의 풍경은 어땠는지를 상상한다. 괴베클리 테페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경작지로 이루어진 지역이었고, 수렵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다만 슈미트는 괴베클리 테페에 사람들이 영구적으로 거주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찾지 못해 아마 이곳이 인류 최초의 '언덕 위 성당'이라는 예배 장소였다고 추측한다. 슈미트는 이 유적지가 매장지일 수도 있지만 종교의 중심지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죽은 자들은 저승의 신, 그리고 영혼들 사이에 있는 언덕에 있었다고 한다면, 이 괴베클리 테페가 있는 위치도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T자 모양의 기둥 밑에 새겨져 있는 사자 조각 /터키문화관광부

실제로 언덕 위에는 사자 모습을 한 석상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신석기 시대 부싯돌 도구와 석회암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특별한 건 아니지만 수가 매우 많다는 것은 특별했다. 많은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관행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었던 시기, 종교적인 유적지를 만드는 데 이런 도구들이 쓰였다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슈미트는 이 장소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순례 목적의 장소였다고도 추측한다. 심지어 일부 연구자들은 괴베클리 테페가 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의 자리라고도 주장한다. 또 다른 비주류 역사학 신봉자들은 고대에 지구로 온 외계인들이 인류를 창조하고 노예로 부리기 위해 만든 장소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기도. 

뭐 외계인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연구자들이 괴베클리 테페와 관련한 성경의 에덴 이야기가 수렵 채집 생활에서 농업으로의 전환에 대한 우화라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지역의 사냥에서 농사로의 전환이 오히려 괴베클리 테페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이 슈미트의 의견이다. 농업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여러 작업들로 인해 괴베클리 테페에 세운 기념물들은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주변 지역들의 나무는 베어지고, 토양은 고갈된다. 그리고 이 경관은 점차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메마른 황야로 변했다는 얘기다. 

공중에서 본 괴베클리 테페 /Wikimedia Commons CC BY 4.0

괴베클리 테페는 1960년대, 여러 인류학자들에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완만하게 경사진 곡선 언덕으로 인해 현지인들에게는 '배불뚝이 언덕'으로 불리는 괴베클리 테페는 아브라함의 탄생지로 불리는 샨르우르파에 비해 수천년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비로소 조사가 시행되고 조사관들이 언덕을 방문했을 때 부서진 돌판과 여러 무덤처럼 생긴 모습에 이곳이 버려진 중세 공동묘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곳에서 석회암과 부싯돌 등을 발견했어도 그 사람들에겐 유적지의 중요성이나 고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엔 부족했었나 보다. 이들은 이곳을 선사 시대 유적지라 인정은 했지만 이후의 현장 보고서에서는 딱히 특별한 말을 언급하진 않았다. 괴베클리 테페는 그때에도 땅 밑에서, 사람들이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1994년, 슈미트는 이 지역의 유적지를 직접 조사했다. 보고서에서 '돌로 뒤덮인 언덕 꼭대기'에 관한 설명을 보고 난 후 그는 직접 그곳에 가기로 결심했다고. 그리고 그 곳에 간 슈미트는 언덕 꼭대기로 올라간 뒤 단박에 이곳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 유적지를 조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주변이 평야인 고원인 것과 달리 괴베클리 테페는 완만한 언덕을 갖고 있었다. 슈미트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인간만이 이런 지형을 만들 수 있다'란 생각 끝에 그는 이곳이 거대한 석기 유적지임을 눈치챘다. 이전 조사관들이 그저 무덤의 비석이라 착각했던 깨진 석회암 조각도 그에겐 다른 존재로 다가왔다. 이후 1년 뒤 슈미트는 5명의 동료를 이끌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들은 첫번째로 거대한 암석을 발견했는데 일부는 약간의 훼손을 입고 지표면 가까이에 묻혀 있었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괴베클리 테페 /flickr

학자들이 이 주변을 파내면서 원형으로 배열된 기둥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인 취사장, 집, 심지어 쓰레기를 묻는 구덩이도 없었고 인근 유적지에 버려져 있었던 다산의 상징인 토우 인형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학자들은 돌망치, 칼 등의 역할을 한 도구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원전 약 9,000년 전의 인근 유적지와 비교했을 때 탄소 연대가 비슷했기 때문에 슈미트는 괴베클리 테페의 석조 구조물 또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측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힘으로 16톤짜리 돌기둥을 잘라내 언덕 위로 운반하고 원형으로 세우고 배열하고, 묻었던 것이다.

고고학자 요리스 피터스는 동물 유해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로, 1998년부터 괴베클리 테페에서 나온 10만여점의 뼛조각을 검사했다. 뼈에는 베인 조각, 조각난 모서리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어떻게 동물들을 죽이고 요리도 할 수 있었을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즉 괴베클리 테페를 만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조각에 새겨진 동물 모양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슈미트는 괴베클리 테페에 살았던 사람들이 야생 동물을 길들일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거라 추정한다. 실제로 괴베클리 테페가 만들어지고 난 후 이 지역의 다른 유적지에서 정착민들이 양, 소, 돼지를 사육했다는 연구가 있었다. 또 이 곳 근처에서 거주한 사람들이 곡물을 처음으로 재배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연구 결과 괴베클리 테페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서 야생 밀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DNA 분석으로 현재 우리가 먹는 밀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품종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곳이 현재까지 알려진 밀 재배의 발상지일 확률이 제일 높다.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정착 생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농사짓는 법을 배운 후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짓고 사회 체계를 뒷받침할 조직과 자원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슈미트는 오히려 그 반대라 주장했다. 괴베클리 테페가 농경 시대 이전에 인류가 사회 집단을 이루어 종교 활동과 대규모 토목 사업을 벌였다는 증거가 되면서 농경 이후 사회 구조 및 종교가 형성되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은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 /Wikimedia Commons
괴베클리 테페 /flickr

이 무거운 돌기둥을 조각하고, 세우고, 묻으려면 적어도 수백명의 인부들이 필요했다. 상식적으로 인부들이 일만 하진 못했을 테고, 이들이 먹고 자는 일도 있었을 테다. 그래서 약 1만년 전에 적어도 이 지역에 정착한 공동체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480km 정도 떨어진, 선사시대 정착지인 차탈휘위크 신석기 유적지를 발견한 고고학자 이안 호더는 "사회문화적 변혁이 우선이고 농업이 나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는 괴베클리 테페가 신석기 사회의 진짜 기원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괴베클리 테페는 총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3층은 유적지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층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원형의 벽 안쪽에 거친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T자 모양의 돌들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의 구조물들은 모두 약 20여개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 구조물들을 각각 8개의 석조 기둥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200개에 달하는 돌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이 구조물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모른다. 가장 깊은 층에서 발굴된 구조물들은 선토기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약 3m에서 5m 높이의 T자 모양의 돌기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돌기둥들은 타원형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고 타원형의 지름은 약 10m에서 30m에 이른다. 지금까지 이러한 타원형 구조물이 모두 4개가 발견되었으며 이 안에는 200여 개의 돌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직접 석회암을 절단하고 이곳으로 옮겨와 기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독수리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모양의 조각 /flickr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고고학자 다니엘 스토르되르는 독수리가 새겨진 조각에 주목한다. 실제로 다니엘은 시리아에서 약 80km 떨어진 곳에서 동시대의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비슷한 조각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고대에는 오래 전부터 하늘을 나는 새들이 죽은 자들을 하늘로 운반한다고 믿어 왔다. 시체는 의도적으로 바깥에 남겨지고, 살은 독수리 같은 맹금류들에 의해 잡아먹힌다. 남은 뼈들은 또 다른 곳에 묻힌다. 이 장례 의식은 괴베클리 테페에 살았던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행한 일종의 의식이었다고 추정된다. 

코뿔소인가, 멧돼지일까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동물의 머리 모양을 조각한 것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그 외에도 표범, 독수리, 전갈, 거미, 뱀과 같은 다양한 동물들의 조각은 고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괴베클리 테페가 위치한 곳은 한때 푸른 목초지와 숲이 풍성한 지역이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량한 모습이다. 고대에 이곳은 아마도 수많은 가젤 무리, 거위, 오리 떼들로 사람들과 함께 붐볐을 것이다. 돌에 새겨져 있는 동물 장식들은 신석기 시대 광범위하게 숭배된 애니미즘의 경향을 띠고 있다. 황량한 고원의 건축물에 이와 같은 생명체들이 새겨져 있었던 건 당시에는 이 고원이 황량한 사막이 아니었고 오히려 울창한 숲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류에 대한 뜻밖의 비밀이 숨어 있는 곳, 괴베클리 테페
 

터키 우르파박물관에 전시된 괴베클리 테페의 조각들 /Wikimedia Commons

아직도 비밀이 무궁무진하게 묻혀 있는 곳, 괴베클리 테페는 1987년과 2004년에 개정된 문화와 자연 유적지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2005년에 제1도 고고학 보존지(1st Degree Archaeological Conservation Site)로 지정되었으며 완충 지역은 2016년에 제3도 고고학 보존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샨리우르파박물관 및 독일 고고학연구소를 통해서 모든 자산과 그 상태를 효과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이행되고 있는 유지보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괴베클리 테페엔 학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 투성이다. 이 석조 조각을 만들고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학자들은 이 유적지에 대해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이론조차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믿어 왔던, 농경 이후 사회의 형성이라는 결론을 뒤집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괴베클리 테페는 충분히 환상적이다. 괴베클리 테페가 인류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줄 것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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