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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폐공사 70주년.....형태는 달라져도 영원하다, 화폐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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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폐공사 70주년.....형태는 달라져도 영원하다, 화폐의 가치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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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율 '흔적' /한국조폐공사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한국조폐공사는 창립 70주년을 맞아 화폐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창립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조폐공사 창립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달 개최한 ‘특별사진전’에 이어 열리는 전시다. 

이번 전시회에선 전영율·김종희·손희승·고경철·남승원 씨 등 화폐 디자이너와 화폐 조각가들의 디자인, 조각, 회화 작품 22점이 전시된다. 전영율 기술연구원장은 “화폐 디자이너와 조각가들이 함께 참여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쌓인 답답함을 잠시나마 풀고 마음의 휴식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개껍데기에서 시작한 화폐, 그 이상의 가치
 

화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물건일 테다 /flickr

우리나라의 돈을 만드는 유일한 곳인 조폐공사가 만들어진지도 벌써 70년이 지났다고 한다. 돈이라는 개념은 원시 시대부터 존재해 오긴 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현금을 쓰지 않고 심지어 가상화폐라는 개념도 생겨 실제 현금을 쓸 일이 많지 않은 편이다. 예전만 해도 잔돈을 모아 은행에 가져가면 지폐로 바꿔준다든지, 버스를 탈 때 카드 대신 지폐와 동전으로 요금을 내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은행에서 현금을 바꾸는 것도 어렵거니와, 버스도 점점 요금에 현금을 받지 않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제는 지갑에 현금이 있는 게 오히려 어색한 세상이 됐다. 

학자들은 물물교환의 역할을 하는 이 화폐의 기원이 구석기 시대 부싯돌 외 여러 도구들을 얻기 위해 서로 거래를 하던 행위를 시작으로 본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화폐를 교환의 수단, 지불의 수단, 가치의 기준, 부의 기준 등 여러 형태로 사용해 왔다. 왜 사람들은 화폐를 필요로 했던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돈 자체가 많은 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3천년 전, 중국에서 화폐로 썼던 조개껍데기 /PHGCOM, CC BY-SA

일종의 가치의 척도이기도 한 화폐는 사람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고, 사회적 위계를 확립시키며, 국가 권력도 상징한다. 옛날의 화폐는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에서 널리 유통되었던 조개류가 대부분이었다. 또는 구리, 철, 흑요석, 호박, 구슬, 금, 은 등도 다양한 화폐의 역할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을 사람들은 화폐의 형태로 사용했기도 했다. 

세겔 /Wikimedia Common, CC BY-SA 2.5

최초의 돈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처음 상인들은 산악 지대에서 운반해 온 은을 화폐로 썼다. 목축민은 은이 있으면 상인에게서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화폐 단위는 '세겔 shekel'이라 불렀는데, 메소포타미아의 기후가 건조해 곡물 재배가 어려웠고 자연히 목축민들은 농민들에게 곡물을 얻어 생활해야 했다.

일반 시민들 외에 상인들도 곡물 공급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들간의 물품 거래 형식이 나타났다. 물품과 물품을 안정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어떤 것, 부피가 크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는 금속이 좋은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은을 주머니에 넣고 무게를 달아 거래를 했는데, 이것을 세겔 화폐라고 부른 것이다. 저장과 운반이 쉬웠던, 은으로 만든 세겔은 이렇게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화폐로 출현했다. 

리디아 라이언이라 불렸던 리디아 화폐 /flickr

리디아 왕국은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금화를 만든 곳이다. 지금의 터키에 위치한 리디아는 외국 여행객들과 상인들과의 무역을 업으로 삼은 나라였다. 이들은 상품을 서양, 동양에 판매했으며 이 상황에서 화폐는 꽤 유용하게 쓰였다. 리디아인들이 만든 동전은 낡거나 변색되지도 않고 들고 다니기도 쉬웠다. 다른 왕국들도 리디아가 만든 화폐의 형태를 따라갔고 동전들은 곧 지중해 전역에 널리 퍼졌다. 

이것은 나라간의 무역의 흐름을 빠르게 만들었고 국가의 권위 또한 자연스럽게 세우게 했다. 넓게 퍼졌다고 해서 처음부터 모두가 이 화폐를 쓴 건 아니지만 화폐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시장 경제의 확산에 기여했다. 화폐는 시장 거래를 훨씬 더 쉽게 했고 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점점 어떤 대상을 사회적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으로 보게 했다.

로마의 화폐 데나리온 /flickr

로마 제국에서도 돈은 제국을 통일하고 확장시키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또한 무역의 비용을 훨씬 줄였고, 군대에 자금을 대는 데에도 중요한 도구가 됐다. 화폐는 거래 비용을 줄이게 했고 경제 또한 효율적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경제적인 관계가 모든 것에 우월하다 생각하는, 즉 돈만 있으면 최고라는 생각 또한 사람들에게 갖게 했다. 

긴 역사 속에서 화폐의 기초적인 역할은 사람들간의 상호 작용의 거래품이었다. 과거에는 완전한 자급자족이 아닌, 다른 집단과의 교류가 필수적이었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환경에 대비해 여러 부족들과의 동맹을 맺기 위해서도 화폐를 사용했다. 기원전 1450년 초기 미국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흑요석, 진주껍질 등을 화폐로 쓰면서 초기 성공적인 무역 사례를 만들어냈다.

해양 실크로드 무역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세계적인 무역 교역로를 창조했다. 화폐는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 낯선 사람들 사이의 이주와 정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부를 가져다 주었고, 점차 공동체와 사회를 발전하게 만들었다. 

동전 /flickr

기본적으로 화폐는 휴대성, 내구성, 운반성이 특징이다. 원시적인 경제 사회에서 화폐는 가치의 저장, 교환 매개체의 역할뿐만이 아닌 일종의 '윤활유' 역할 또한 했다.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에서 언급했듯이 돈은 결혼을 주선하고, 가정의 불화를 막고, 장례식에서 조문객을 위로하고,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도 쓰였다. 또 조약을 맺고, 각자의 추종자를 확보하는 등 정말 다양한 수단으로 쓰였다. 또 지배자들에게는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정부를 만들고 군대를 만들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세금이 만들어졌다. 돈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뿐만이 아닌,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서양에서 화폐가 점점 일반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즈음, 우리나라의 화폐는 고려 시대부터 등장했다. 고려 시대에 대외무역이 발전해 중국의 화페가 유입되어 결제 수단으로 쓰였다. 대외 무역은 송나라를 비롯한 거란·여진·일본 등을 상대로 하여 이루어졌는데, 당시 개경에는 많은 외국상인들이 왕래했던 만큼 국제무역은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으로 본다.

일찍부터 당전, 송전 등 중국화폐가 유입되었으나 주로 송나라나 일본과의 무역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 일반 유통계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일반 유통계에서는 주로 쌀과 베 등 물품화폐와 금·은 등 귀금속이 유통되었다. 이후 고려는 해동통보, 동국통보, 삼한통보 등 각종 동전을 유통시키려 했다. 

전폐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그러나 시민들은 화폐보다는 곡식, 옷감 등으로 물건을 계속 교환했고 종이돈이나 동전은 유통되지 않아 점점 가치가 떨어진다. 조선시대에 들어 세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통보라는 동전을 만들었고, 세조 때는 화살촉 모양의 '전폐'라는 화폐도 만들었다. 전폐는 철로 만들었고, 평상시에는 돈으로 사용하다가 전쟁 시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전폐는 전해지지 않아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복원품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 

상평통보 /서울역사박물관
상평통보 당백전 /국립중앙박물관

화폐는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유통되었으며 이때 만들어진 화폐가 우리도 잘 아는 상평통보이다. 상평통보는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둥근 원 모양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오늘날엔 조폐공사에서 화폐를 만들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중앙관청뿐만이 아닌 각 도의 감영에서도 화폐를 만들었다. 조선후기 상업이 발전하면서 화폐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이 동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상평통보를 사람들은 보통 엽전이라 불렀는데, 엽전의 '엽'이 한자로 나뭇잎이란 뜻이다. 상평통보를 만드는 틀이 나뭇가지에 잎사귀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실제 당시의 사람들은 상평통보를 셀 때 한닢, 두닢으로 불렀다. 이후 근대 시대, 흥선대원군이 집권할 당시에는 당백전이 만들어진다.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경복궁을 다시 짓는 데 돈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상평통보의 100배가 넘는 가치가 있는 돈을 만들었고 이를 당백전이라 불렀다. 

부조별전 /화폐박물관

조선시대에 화폐는 물물교환을 할 때 쓰이는 것 말고도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뜻으로도 만들어졌다. 엽전 모양의 장식품, 또는 기념 화폐를 조선시대에는 별전이라 불렀다. 기념으로 만들어진 거라 돈으로 쓰이진 않았고, 주로 왕실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엽전 형태에 글씨나 그림 등을 새겨 장식품으로 이용하거나 자식이 태어난 날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여 만들었다. 고려~조선전기 주조된 별전의 성분으로는 구리 85% 이상에 주석의 합금인 청동으로 나타났고 조선후기에는 구리+아연인 황동, 조선조 말기에는 황동에 납 또는 주석을 혼합한 합금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별전에 새겨진 모양은 수복, 부귀 등이며 그 내용을 다양한 문양으로 표현했다. 길상과 벽사의 의미가 있는 동물 문양,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나 복숭아 문양의 식물 문양, 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문자 모양을 넣은 별전이 대부분이다. 일종의 기념품이지만 여러 개의 별전을 엮어 장식적인 용도로 쓰거나 열쇠고리로 만들기도 했다. 가구나 벽면 등에 매달거나 작은 것은 갓끈, 도포줄, 시계줄, 노리개 등으로도 썼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금메달 /한국조폐공사

옛 조선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요즘의 주화 또한 무언가를 기념하는 의미로도 발행되고 있다. 최근 한국조폐공사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과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선정을 기리는 2차 기념메달을 출시했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2차 기념메달’은 금메달 2종과 문진메달 1종 등 총 3종이다.

메달은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를 재조명하고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백신나눔운동 후원을 위해 기획됐다. 이외에도 한국조폐공사는 2차 기념메달 공개와 함께 지난해 맺은 후원약정에 따라 천주교 대전교구에 후원금 5,000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후원금은 교황청을 통해 코로나 백신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데 쓰일 예정이다. 


화폐의 형태는 달라져도 가치는 영원하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조폐공사 부산 명륜동 사옥 /한국조폐공사

최근 한국조폐공사는 8월 1일까지 대전 유성구 화폐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창립 70주년 특별사진전을 개최했다. 사진전은 조폐공사의 지난 70년간 주요 순간을 담은 ‘역사’, 은행권 동전 메달 여권 주민증 등 ‘제품 및 서비스’, 신뢰받는 공기업으로서 선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활동’, 조폐인들의 소중한 모습을 포착한 ‘사람’ 등을 주제로 전시했다.

한때는 지폐와 동전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지폐와 동전을 거의 쓰지 않는 시대이며, 이제는 화폐보다 신용카드와 가상화폐가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그럼에도, 화폐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든간에 가치를 지닌 돈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조개껍데기에서 시작한 화폐가 이제는 가상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의 화폐는 또 어떤 형태로 변해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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